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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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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안다, 는 문장은 그 사람을 아주 조금 안다, 의 문장에서 ‘아주 조금’이 생략된 것이다. 또는 내가 본 그 사람의 모습을 안다, 의 문장을 함축한 문장이다. 그 사람에 대해 전부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필립 로스의 소설은 『휴먼 스테인1·2』, 『울분』, 『포트노이의 불평』을 읽었다. 출간 시기론 『포트노이의 불평』이 첫 번째지만 읽은 순으로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의 목가1·2』를 읽었다.

 

그는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유대계 미국인 1세대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미국의 목가1·2』는 작가 네이선 주커먼이 1960년대 뉴저지 주 올드림록에서 사는 동안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겪은 시모어 레보브의 삶의 진실을 알아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신중하게 생각해 본 뒤에 다시 오해하는 것이다.(1권, 62쪽)

 

네이선 주커먼이 기억하는 시모어 레보브는 전설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는 시모어 레보브의 인생은 실타래처럼 술술 풀렸다고 생각했다. 시모어 레보브는 미국계 유대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예기치 않은 ‘폭탄’을 만났다. 네이선 주커먼은 시모어 레보브를 잘못 알고 있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유명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시모어 레보브의 가정은 불행했고 불행의 원인은 그의 딸 메리였다. 네이선 주커먼의 영웅이었던 시모어 레보브는 메리 때문에 ‘비극적 추락’을 경험했다. 딸을 폭탄을 설치했고 사람들을 죽였다.

 

이곳은 워싱턴의 군대가 모리스타운 근처의 고지대에서 두 번 겨울을 난 이래로 역사가 주목할 만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시골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로 현지 주민의 일상적 삶을 한 번도 침범한 적이 없는 역사가 이 은둔한 듯한 구릉지에까지 구불구불 기어들어와, 믿을 수 없게도, 그 모든 예측 가능한 예측 불가능성으로 시모어 레보브의 질서정연한 가족 안에 무질서하게 난입했다. 그리고 그곳을 유혈이 낭자한 곳으로 만들어놓았다. 사람들은 역사를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사실 아주 갑작스러운 것이다.(1권, 141-142쪽)

 

1960대의 미국은 풍요 속 빈곤이었다. 항의와 폭동이 사회 곳곳에서 퍼져 나왔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서 학생 운동은 격렬해졌다. 이 역사가 메리의 삶을, 그리고 시모어 레보브의 삶을, 평생의 삶을 흔들었다.

 

예측 불가능성의 삶은 시모어 레보브의 삶만은 아니다. 우연히 케이블에서 〈시리어스 맨〉이란 영화를 봤다. 코엔 형제가 감독한 영화로, 물리학 교수인 래리가 악재들이 겹쳐 인생이 꼬여버리자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가 인생의 답을 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인생에 답은 없었다. 문제만 있었을 뿐.

 

메리는 미국의 목가로부터 시모어 레보브를 끌어내렸다. 메리가 폭탄을 설치해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메리가 폭탄을 설치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미국의 미래를 누릴 수 있었을까. 코엔 형제의 답으로 말한다면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른 문제들이 터졌을 것이다.

 

레리는 메리와 손을 잡고 걸으며 “이게 삶이야! 이게 우리 삶이야!”(2권, 10쪽)라고 말했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로 들려 숙명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켜켜이 쌓인 오해들. 또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그림. 쓸모없어. 주제넘고. 완전히 엉망이고. 그래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그 그림들을 기준으로 사는 거야.(1권, 105쪽)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 생각한다. 아마도 ‘현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삶에 불만과 원한이 유예되는 목가의 시간은 지극히 적다, 그들의 추수감사절처럼. 그렇다고 해서 진지한(serious) 삶은 살아도 심각한(serious) 삶을 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리어스(Sirius)라는 별이 있다(국어사전에는 ‘시리우스’로 기록되어 있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이라고 한다. serious와 Sirius는 단어는 다른데 같은 발음을 낸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성 앞에 속수무책이지만 그것을 견뎌낸 인생이라면 찬란한 별일 것이다.

 

더위와 예측 가능하지만 어쩔 수 없(그렇게 믿고 싶)은 일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로 무기력한 날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부지런한 삶을 다짐해 본다. 삶에 문제가 없다는 건 삶 자체가 없다는 말과 같으므로.

 

    

 

(*) [미국의 목가] 1,2권 통합 리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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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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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어떤 작가는 글로, 어떤 작가는 이미지로 ‘그날’의 광주를 말했다. 한강의 신작 장편『소년이 운다』 역시 그날의 광주를 말한다. 이야기를 접하기 전엔 광주에 관해선 더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게 없다는 생각하지만 이야기가 나오면 늘 처음 듣는 이야기인양 놀랍고,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인다. 한강의 소설 역시 그러했다. 한강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문장 속으로 침잠하지 않았음에도.

 

소설은 6장과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1장은 화자의 시선으로 ‘너’ 동호가 시신들 사이에서 정대와 정대 누나 정미를 찾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타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물에 공감, 혹은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2장은 혼이 된, 눈을 감을 수 없는 열여섯 살 ‘나’ 정대가 ‘너’를 따라 누나를 찾으러 가다 ‘너’의 죽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3장은 사내로부터 수배자인 번역자의 은신처를 모른다는 이유로 일곱 개의 뺨을 맞는 ‘그녀’ 김은숙의 치욕스러운 삶,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89쪽)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도 허기가 도는 삶’(87쪽)이 전개된다. 4장은 그해 스물세 살이었던 교대 복학생으로 도청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낙관’(113쪽)을 품었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양심이라고 믿었던 ‘나’의 회고를 통해 변칙적인 고문 속에 죽음을 택한 김진수의 일화가 펼쳐진다. 5장은 화자의 시선으로 그날 열일곱 살이었던, 성희 언니는 ‘우리는 고귀해’(155쪽)라고 말했지만 고귀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당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신은 시민군 처지에서 그날에 대해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기억을 더듬어 간다. 동호, 정대, 은숙, ‘나’, 당신에게 ‘국가’라는 대상은 혼란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곧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으로 확장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자비한 권력을 향해 총을 쏠 수 없는 어린 새들이었다. 6장은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사는 동호 엄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에필로그에선 당시 열 살로 서울에서 살면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호가 다니던 중학교 선생님의 아들인 ‘나’가 2013년이 되어 1980년 5월 18일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쪽) 

 

그 시절 소년(소녀였던 작가)의 손으로 소년들의 참혹한 실상은 세상 밖으로 나왔고 어둠 속에 있던 그들의 혼은 빛의 세계로 옮겨 갈 것이다. 처음엔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아니라 ‘피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맞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시 읽으니 ‘피폭은...’ 은 타자의 문제로, ‘피폭이...’는 ‘나’의 문제로 읽혔다. ‘나’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는 한강이 이 소설을 세상 밖으로 내놓은 이유와 같다. 최근에 읽은 한강의 소설에선 회복하는 인간을 만났었다. 이 소설, 회복을 말하지 않았다. 죽은 자는 돌아올 수 없고 상처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처들을 끄집어내어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망령은 각의 틈새로 부활하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한강의 소설은 그날의 광주를 말한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날의 광주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폭력의 상처를 품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던져진 사람들이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한, 짐승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짐승 취급을 받은 상처는 결코 회복될 수 없다. 소설은 죽어서도 죽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였고,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진배없는 그러나 결코 죽을 수 없었던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였고, 그날 이후로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떤 어린 새들은 날지도 못한 채 땅속에 묻혔지만, 날개가 돋은 또 다른 어린 새는 어린 새들을 잊지 않으며 세상을 향해 날고 있었다. 그것을 희망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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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2]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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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자란, 부모가 사는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그중에는 고국에 대한 실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다른 나라에 뿌리를 내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쉐페이(金雲飛)는 미국으로 유학 갔다 테안먼 사건을 접한 후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하진이란 필명으로 영어로 쓴 소설을 발표했고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자유로운 삶(A FREE LIFE』는 작가의 자전적 이민생활 경험과 타인의 삶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중국인 난과 그의 아내 핑핑의 12년 반 동안의 미국 생활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마침내 타오타오가 여권과 비자를 받았다. 지난 몇 주 동안, 그의 부모는 중국이 빗장을 완전히 걸어 잠그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제한할까봐 애를 태웠다.(1부, 15쪽)

 

소설은 보스턴에 사는 난과 핑핑 부부가 많은 돈을 써 중국에 있는 아들 타오타오를 데려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아들은 여섯 살밖에 안 됐고 그들은 3년 이상 아들을 보지 못했다. 첫 문장에 나온 ‘마침내’와 두 번째 문장을 통해 중국은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과 지금 그들이 사는 곳은 자유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난이 타오타오를 미국으로 데려온 이유는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고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이다.

 

핑핑은 즐거운 날도 잠시라는 걸 알고 있었다.(1부, 43쪽)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문장을 기록한 이유는 이 소설이 ‘즐거운 날도 잠시’라는 걸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타오타오와 함께 살게 돼 행복했으나 가난했던 그들은 재정적인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대출금을 모두 갚고 식당을 운영하며 해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맞았으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삶은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라 시를 쓰는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임신을 한 핑핑은 기뻐할 틈도 없이 아이를 잃었다. 난은 태어날 딸을 통해 위안으로 삼으려 했지만 딸은 그에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불행은 이어졌다. 핑핑이 허리를 다쳐 난은 완전한 의료보험에 가입해주는 풀타임 직장을 알아봐야 해 식당을 팔아야 했다.

 

초기 이민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상당수가 문맹이었다. 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이 낯설고 차별적이고 두려운 땅에 정착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했다. 고향을 떠나 뿌리 뽑힌 채 살아가는 것은 그들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그들이 가진 원기를 고갈시켰을 게 틀림없다. 창조적인 면에 대해서도 말할 것도 없다.(1부, 176쪽)

 

난은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돈을 버는 일이 우선이었다. 타오타오의 교육과 빚을 갚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가 원한 건 아메리카 드림의 실현이 아닌 자립이었다. 국민들을 신음에 빠뜨린 조국을 떠나 선택한 타국의 삶도 ‘자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타오타오는 생각대로 자라주지 않았고 뼈 빠지게 일해야 했다. 하진은 타인의 억압에서 벗어났으나 자체의 굴레에 갇힌 것이다. 난은 타국의 땅에서 다른 언어를 쓰고 살아도 중국인 사회와 단절하고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하진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중국의 가족정책과 관료제도의 모순 등을 비판한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사는 삶보다는 미국에서 이민자로의 삶을 원했다. 중국은 희망이 없었고 미국에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망, 그것은 사람을 살게 하는 힘 아니던가.

 

흐르는 시간은, 삶의 경험들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굴곡진 생이었으나, 문학에 대해 갈증을 느낀 채 살아야 했던 생이었으나 난은 소중한 것을 얻었다.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난은 핑핑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최선을 다했지만 핑핑의 마음엔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있었다. 난은 핑핑과 삶의 굴곡을 함께 넘으며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함께하는 삶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는 그토록 원했던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 『자유로운 삶』1,2권 통합 리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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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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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핀천에 대해 『느리게 배우는 사람』 앞날개에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작가들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적혀 있지만 개인적으론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다.

 

따끈따끈한 새 책임에도 오래된 듯한, 그래서 친밀한 인상이 드는 표지의 창비세계문학 30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이슬비」, 「로우랜드」, 「엔트로피」, 「언더 더 로즈」, 「은밀한 통합」의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보통 단편집의 제목의 경우 실린 단편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이라 단편 ‘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찾아봤는데 없었다.

 

5편의 단편 앞에는 작가 서문이, 뒤에는 박인찬 교수의 작품해설이 실려 있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쓰기 전에는 작가 서문이나 해설은 읽지 않는다. 외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작품 자체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오독이 넘쳐날지라도.

 

「이슬비」은 햇살이 뜨거운 1957년 7월 중순경 루이지애나 주 로치 요새의 특수병과 소속의 상병 네이선 러바인이 휴가 시작을 앞두고 허리케인이 덮친 마을에서 시신을 나르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 과정에서 러바인은 3년의 군 생활이 자신의 삶에 변화를 줄 거라는 예상을 했다. 허리케인이 만든 죽음을 보고 우리 ‘언제나’ 죽음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군대, 그리고 명령을 통해 인간은 죽음 앞에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만났다.

 

「로우랜드」에서 ‘두더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니스 플랜지가 아내 씬디가 못마땅하게 여김에도 로코 스콰르초네를 대접한 건 비발디를 좋아하는 청소부였기 때문이다. 노퍽에 정박한 해군 소해정 ‘이매큘리트호’를 벗어나 아흐레째 무단이탈 중이었던 피그는 한국전쟁 때 그가 속한 사단의 장교였던 데니스를 찾아온다. 데니스에게 ‘광활한 흐린 유리 같은 평원은 단 한명의 인물만이 완전성을 향해 성큼성큼 가로질러 가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로우랜드(91쪽)’였다. 그들은 볼링브로크의 오두막에서 술을 마시고 잠이 든다. 빠나마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이딸리아에 자수했던 태평양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잠에서 깬 데니스는 네리사라는 소녀를 만나 소녀가 이끄는 곳으로 간다. 소녀는 자신들과 다른 앵글로인 데니스와 연을 맺음으로써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꿈꿨다. 데니스는 소녀를 통해 삶의 희망 없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엔트로피」는 1957년 2월초 비가 내리는 날 미트볼 멀리건이 개최한 임대차 계약을 깨는 파티로 시작한다. 칼리스토 역시 ‘두더지 인간’ 데니스 플랜지와 다를 바 없었다. 예술적 조화로움을 간직한 소녀 오바드의 도움으로 생태적 균형이 완성된 온실에서 새와 소녀와 살았다. 수은주가 화씨 37도에서 머물자 파국의 징후를 경계하면서도 변화가 있을 거라 믿었다. 미트볼과 칼리스토는 다른 듯 보이지만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파티에 사람들이 많았으나 미트볼은 외로움을 느꼈고 칼리스토는 온기를 나눠주려고 새를 안고 있었다. 미트볼은 사람들이 존재했으나 부재를 느꼈고 칼리스토와 오바드의 기이한 삶은 새의 정적으로 사라졌다. 평형은 발밑에 추락할지 모르는 아슬함을 감추고 있다. 삶의 평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인지도.

 

「이슬비」에서 리조는 비가 오는 게 싫다는 피크닉에게 ‘너하고 헤밍웨이는 같아’라고 했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초기 헤밍웨이가 떠올랐다. 「언더 더 로즈」는 원주민처럼 살았던 스파이 포텐타인의 이야기를, 「은밀한 통합」은 그로버 스노드와 팀을 비롯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써야 하나 집중도 안 되고 정리도 안 돼 더 쓸 수가 없다. 버겁기도 하고. 또다시 길을 헤매는 리뷰가 되어 버렸다. 느리게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에 조금씩 느리게 읽었는데 그보다는 머리가 맑은 날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시대적 상황, 사회적 배경들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작가 서문'과 '작품 해설'을 읽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마감날짜이므로 일단은 이걸로 마무리할까 한다. 시간이 더 있다 해도 현재로선 더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추후로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소망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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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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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가 아닌 자의로, 누군가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은 그 사람을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죽음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그리하여 그 사람은 내게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기록은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나’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관찰하고 그와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1967년부터 1979년까지를 다룬 기록으로 문단의 구분이 없다. 현실과 회상이 혼재하며 두 사람의 관계 이야기는 반복적이다. 반복된 이야기로 같은 곳을 읽고 있는 착각을 느끼곤 했다. 검색해 보니 1997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었다. 이번 소설은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1967년 빈 바움가르트너회에의 결핵전문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았다. 소설은 수술 이후 마취에서 깨어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폐병환자들을 위한 바움가르트회에 입원했을 때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암 슈타인호프에 입원해 있었다. 파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신적으로 아픈 갓난아기(12쪽)’였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그를 아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1949년, 그의 나이 만 18세에 걸린 폐결핵과 함께 불행의 시작이었다.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고 굴복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고민했지만 그가 그 길을 가지 않은 이유는 파울도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울의 입원은 ‘삶의 끝’에 선 ‘나’에게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나’에겐 살아갈 힘을 준 ‘내 인생의 사람’이 있었지만 말이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두 천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나’와 파울은 모차르트의 차이데에 관한 글이 실린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 신문을 사기 위해 나탈에서 잘츠부르크로, 바트 라이헨할로, 바트 할로 등으로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문화를 누릴 수 없는 곳은 지옥이었다. 열정과 광기의 차이는 공감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서 정말로 의미가 있는 인간은 한 손가락만으로 다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적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113쪽)

 

‘나’는 파울의 철학, 타인이 보면 ‘광기’를 높이 평가하는 듯 보인다. ‘나’의 시선에서 루트비히와 파울의 차이는 출간 여부였다. ‘나’는 파울과 음악과 철학, 정치, 수학 등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빈사상태를 느꼈다. 아마 파울도 같은 입장이었을 것이다. 파울과 ‘나’는 취향이 완전히 같진 않았지만 유일한 친구이자 ‘정신의 파트너’ 또는 ‘구원자’였다. 소설 내내 ‘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반복적으로 고백한다. 그와의 우정은 ‘삶의 방향을 가르쳐주는 길잡이였다(115쪽)’고.

 

‘나’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기록을 보면 의사들의 진단에 대해 불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신과 의사에 대해선 ‘강간살인범에 가깝다’거나 ‘우리 시대의 진짜 악마다’라는 등 다소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불신하고 있다.

 

파울은 돈의 유무로 좌지우지되는 일상적 관계에 불신이 있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나’와 파울과의 우정을 기록하면서 인간관계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모순, 문학계와 예술계의 이중성, 오스트리아 사회를 비롯한 현대 사회 비판을 함께 담았다.

 

내가 땅에 묻히는 날 이백 명의 친구들이 모일 거야. 그날 자네가 네 무덤에서 연설을 해 주었으면 해.(140쪽)

 

‘나’는 파울의 부탁을 지키지 않았고 그의 무덤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나’에게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현실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일지라도. 그래서 '나'는 파울을 기록한 것이리라.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소설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의 존재를 알았으면, 기억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5월은 행사가 많다. 개인적으로 챙겨야 할 기념일도 몇 개 있다. 대부분 관계와 관련이 있다. 5월에 몰려 있다 보니 조금은 피곤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관계가 없다면 이날들은 그저 그런 날들이었을 거라고. 관계가 있기에 의미 있는 날이 되는 거라고. 그들이 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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