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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평점 :
지금 여기 있지만 지금 여기 없는, 의 문구는 이승우의 단편집 『신중한 사람』 중 「이미, 어디」에 나온다. 제목으로 쓰면서 의미를 강조하려고 서술어는 의도적으로 생략했다고 해도 불완전한 문장이다. ‘있다’와 ‘없다’라는 반대의 뜻을 지닌 단어가 동시에 쓰였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의 인물들은 ‘지금 여기 있지만 지금 여기 없는', 모순의 상황에 놓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나’ 혹은 ‘그’, ‘유’나 ‘윤’, Y나 J 등으로 명확한 이름이 없다.「딥 오리진」의 ‘가공한’만 유일하게 전체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가공한’ 역시 단어의 뜻 때문에 불명확한 이름으로 읽힌다. 가공한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심리를 숨겼다. ‘나’, ‘그’, ‘유’, ‘Y’에서 이 시대를 사는 ‘나’와 ‘너’를 봤다. ‘여기’의 삶은 사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힘들고, 갈망하는 ‘저기’의 삶은 아득하지 않던가. 어떤 이들은 그러지 않겠지만.
내 고객들은 모두 심약한 사람들이야. 누구보다 약하고 억눌린 게 많고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야. 칼을 모을 만큼 강한 것이 아니라 칼을 수집해야 할 정도로 약한 거지. 칼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칼을 소지하는 거야…… (「칼」, 219-220쪽)
『신중한 사람』의 인물들은 청춘이든 마흔이 넘었든 노인이든 안정적 삶을 살지 못한다. 편안한 삶은 평생 불가능하다는 듯이. 그들이 편안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실력보다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다.「칼」의 ‘나’는 ‘공부를 중단하고 갑자기 세상으로 나온, 특별한 기술도 없고 체력도 형편없는 스물 몇 살의 남자’로 칼을 배달하는 일을 하다 단골의 제안으로 단골의 아버지인 72세 노인의 말상대이자 밤의 시간을 지키는 일을 한다. 「리몬컨이 필요해」의 떠돌이 강사인 ‘나’는 결혼도 했고 ‘아직 기회가 오지 않은 거라고 희망을 붙들 수 있는’ 마흔이 넘었지만 밥벌이를 걱정하는 떠돌이 강사일 뿐이다.「칼」의 노인은 아들이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그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칼을 품고 산다.
불안한 현실은 ‘여기’를 떠나 ‘저기’로 가고 싶은 열망을 만들고, 집이 아닌 여관에서 살게 했다. 「리모컨이 필요해」의 ‘나’와 「이미, 어디」의 ‘그’, 「어디에도 없는」의 ‘그’는 각각의 사연으로 여관에 머문다. 여관방의 TV는 새벽 5시면 저절로 켜졌고 ‘나’는 잠을 설쳤다. 리모컨이 필요했으나 여관방에는 없었다. 선배와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는 틈에서 엉거주춤 서 있다 기억이 끊긴 후 여관방에서 깼을 땐 옆자리에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5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애들에게 밥 해주고 학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떠남은 버거운 현실의 연장이었다. 여자가 현실의 존재인지 환영인지는 알 수 없다.
현실과 환영이 구분 안 되는 건 「어디에도 없는」의 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임시직을 전전하던 그는 다른 대륙의 대도시에서 초밥집을 하는 외삼촌으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변수가 많고 예측불가능한 비자 업무’와 여관 종업원과 여관 주인의 우편물 미정리 사태로 인해 뒤늦게 비자를 받는다. 이젠 떠날 수 있다 확신하지만 집행관이 찾아온다. 5년 전, 술에 취해 옆자리 손님과 시비가 붙었고 합의를 하지 못해 형기를 살았는데 행정착오로 형기가 남은 것이다. 내 마음은 이미 ‘여기’ 없는데, ‘여기’의 삶은 여전히 나를 붙잡는다.
「이미, 어디」의 ‘그’는 ‘회사와 사회로부터 그런대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어느 날, ‘끔찍한 것들’이란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끔찍한 것’들의 실체는 가족이었다. 그는 새로 살고 싶은 갈망이 깊어져 이미의 삶을 정리했다. ‘저기’로 데려갈 사람에게 연락이 끊겼지만, 그는 이미에서 없는 사람이었고 그리하여 여기로 오게 되었다. 이미에서 없는 사람, 저기로 갈 수 없는 그의 삶은 ‘무슨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는 지금 여기 있지만 여기 없는 상태에 놓인다.
표제작인 「신중한 사람」의 Y는 ‘자기만의 완전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의도와는 다르게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놓인다. 외국으로 떠나면서 ‘친절한 이웃’에게 집을 맡겼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집을 넘기고 사라졌다. 그는 집주인이지만 주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 집으로 들어갔다. ‘저기’의 삶을 원했고 ‘여기’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저기’의 삶은 ‘여기’가 되지 않았다.
「오래된 편지」는 J선생의 집필실을 정리하는 일을 맡은 윤의 이야기이다. 단정하고 꼼꼼한 성격의 J선생은 유고 시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J선생은 30년간 건강을 지켜주었던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변을 당했고, Y는 20년도 넘게 갈망했던 집의 망가진 모습을 봐야 했다. 윤은 선생이 젊은 여자와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그것은 윤이 J선생을 존경의 대상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좋아하게 만들었다. 윤은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은 자기를 연료로 해서 타는 뜨거움’의 시절 J선생에게 익명으로 보낸 일종의 고발장인 ‘오래된 편지’를 보냈다. 집필실을 정리하다 선생이 ‘욕심내고 있다고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순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107쪽)’라고 습작품에 대한 첨삭처럼 답을 달아놓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의 삶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 삶이 언제나 옮은 건 아니며, 부정한다고 해서 삶의 전부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가끔 세상이 기우뚱했지만 그럴 때면 몸을 반대 방향으로 약간 기울여 중심을 잡았다.(「신중한 사람」, 76쪽)
이승우의 문장은 삶의 모호성만큼이나 명확하지 않고 부연이 많다. 이승우는 칼 하나를 품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설픈 희망도, 삶의 포기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삶을 시도했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려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려는 의지이다. 훗날의 삶을 바라며 현재의 삶을 견디는 일은 숭고한 일이며,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이상에서 멀어져 밥을 걱정하는 삶이라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몰라 당황스럽다 할지라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