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캐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여덟 살! 이 나이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문장이 적절할까?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시스터 캐리』에서 캐롤라인 미버의 나이 열여덟 살을 말하며 ‘무지와 젊음의 환상으로 가득찬, 수줍으면서도 밝은(11쪽)' 나이라고 했다. 가족들이 캐롤라인에게 ’시스터 캐리‘라고 부른 이유도 같다. 삶에 대한 불안보다는 기대가 큰, 그래서 세상이 만만한 나이.

 

캐리는 고향 컬럼비아시티를 떠나 시카고로 간다. 캐리(Carrie)는 ‘carry'와 발음이 같다. 'carry'엔 옮기다’의 뜻이 있다. 그녀는 컬럼비아시티에서 시카고로, 그리고 뉴욕으로 삶을 옮겨 갔다. ‘carry’엔 ‘짊어지다’와 ‘견디다’의 뜻이 있다. 줄어든 것 같으면 다시 느는 것이 삶의 무게가 아닌 가 싶다. 그녀의 삶도 그러했다.

 

그녀는 세 명의 남자를 만났다. 첫 번째 남자는 영업사원 드루에였다. 1989년의 시카고는 희망의 도시, 가능성의 도시였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까지 기회를 주는 도시는 아니었다. 환상은 ‘현실의 냉소’에 쉽게 깨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달콤한 유혹이 다가온다. 진실을 알지만 거부하고 이건 사랑이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드루에가 캐리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사랑이 아닌 욕정이었다. 캐리가 드루에의 손을 잡은 건 사랑이 아닌 돈이었다. 허스트우드가 끼어들지 않았어도 그들의 관계는 깨졌을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가진,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는 허스트우드가 행복하지 않은 건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젊음을 간직한 캐리는 그가 찾은 새로운 욕망이었다. 캐리가 허스트우드에게 마음이 끌린 건 그가 상류층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드루에보다 자신의 욕망을 더 많이 실현해줄 남자였다. 그녀가 그를 따라나선 건 그의 거짓말 때문이지만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다.

 

허스트우드는 그녀를 선택함으로써 돈과 명예, 가족 등 많은 것을 버렸지만, 캐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와 살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겐 미안함보다 현실이 우선이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여자, 특히나 젊고 예쁜 여자와의 사랑을 믿지 말라, 라는 것으로도 읽힌다. 『시스터 캐리』는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버리고 젊은 여자를 선택한 불륜남들은 좋아하지 않을 책이고, 버림받은 아내로선 통쾌한 책이다.

 

에임스는 드루에와 허스트우드 만큼의 관계로까지 발전하진 않았지만 캐리의 마음을 끈 남자이다. 그는 부자로 사는 것보단 훌륭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믿는 남자였다. 그녀가 에임스에게 매료된 건 자신이 만났던 남자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애하진 않지만 만약 연애했어도 금방 끝났을 것이다. 삶의 가치가 다르면 존경할 순 있어도 함께 살 순 없기에.

 

드루에의 소개로 우연히 무대에서 연기했던 캐리는 허스트우드의 파산으로 맞은 절망의 순간 다시 배우가 된다. 간절한 마음과 부단한 노력에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꿈인데 그저 ‘결혼’이라는 틀에서 안정적 보호를 받으며 화려하게 살고 싶었던 그녀가, 배우의 꿈을 꾼 적도 없고 제대로 노력도 하지 않은 그녀가 유명 배우가 된 것을 보니 그녀의 행운이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녀는 꿈을 이루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사라졌는데도 ‘삶의 완전한 기쁨으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593쪽)’고 생각했다. 그녀는 과거의 허스트우드처럼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삶을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불안했다. 그녀가 허스트우드의 전철을 밟게 될까 봐. 그녀는 기억해야 한다. 순간의 감정은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허스트우드의 교훈을. 어떤 사람들에겐 순간의 감정이 인생을 지탱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어떤 경우든 선택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한번 살아보고 싶은 삶이 수없이 많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씩밖에는 누릴 수가 없습니다. 멀리 있는 것을 향해 아무리 손을 내밀어봐도 소용이 없지요.”(627쪽)

 

현실 속 나의 삶은 시시하고, 멀리 보이는 타인의 삶은 근사하다. 근사하게 보였던 삶도 현실이 되면 시시해진다. 복잡한 삶! 완전한 기쁨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나아갈 뿐이다. 시스터, 어린 여자 아이의 시간을 끝내고 이젠 어른의 시간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만을 살든 내일을 위해 살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you)’와 ‘그들(them)’의 차이를 생각한다. ‘너’와 ‘그들’을 구분하는 건 ‘나’와의 거리다. 여기서 말하는 ‘거리’는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포함한다. 설 연휴와 이후 며칠 동안 읽은 책은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이다. 쉽지 않은 독서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 쉽지 않은 독서였다. 거리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일상 가운데서 틈틈이 읽다 보니 독서의 흐름이 깨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주인공들 보는 일도 힘겨웠다.

 

그들의 삶을 ‘나’와 ‘너’를 포함한 ‘우리’의 삶이 아닌 1940, 50, 6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사람들의 삶, 나와는 무관한 타인의 삶으로 치부해버렸다면, 그래서 방관자의 입장에서 읽었다면 이토록 괴롭진 않았을 것이다.

 

열여섯의 삶은 어떠해야 한다, 고 규정할 순 없지만, 반짝반짝 빛나야 할 시간임은 분명하다. 로레타는 열여섯 살에 ‘청춘의 종말’을 맞았다. 열여섯 살에 청춘의 종말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 역시 그랬다. 혼란의 상태에 다가온 남자를 구원자라 착각해 그와 결혼했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며느리가 되었다. 삶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버나드가 그렇게 금방, 그렇게 완전히 죽어버린 것은 지금도 의아한 일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자동차를 향해 기운차게 뛰어오던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것으로 끝이라니. 경찰이 줄스를 잡으러 오지 않은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경찰이 서두른답시고 허둥거리다가 지문을 뭉개고 증거를 잃어버리곤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은 놀라웠다. 그는 몇 주 동안 신문을 훑어보며 버나드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를 찾아보았지만, 그 일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한 사람이 그렇게 죽어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가능해? 8월에 로레타의 친구 집 창문으로 라이플이 발사되었을 때와 비슷했다. 총성이 울리고, 총알이 창문을 깨뜨리며 들어와 박혔지만 그뿐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경보가 울렸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라이플이 발사된 것은 사실이지만, 라이플이 발사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러니 후속조치가 없었다.(359쪽)

 

청춘의 종말을 가져온 사건은 그녀에겐 큰 사건이지만 그 도시 사람들에겐 일어나지 않으면 좋지만 일어난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그 도시는 평화의 도시가 아니었다. 평화의 도시에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로레타와 그녀의 아이들인 줄스와 모린의 삶은 ‘황폐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로레타는 아버지에게서 ‘젊은 것 같은데 늙은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내게는 로레타도, 그녀의 오빠 브룩도, 그녀의 아이들인 줄스와 모린도 모두 ‘젊은 것 같은데 늙은 사람’이었다. 네이딘을 포함한 줄스가 만난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로레타가 계속 남자들을 만나고 줄스가 사랑에 목매는 것도, 모린이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을 가까이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아, 젠장! 제길!”그녀가 소리친다. “더 이상 못 해먹겠네. 이런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얘가 아프든 말든 나도 몰라. 나도 내 인생을 챙겨야지!”

모린은 침대에서 엄마가 내는 소리를 듣는다. 엄마는 다른 방에서 울고 있었다.

“내 인생을 챙겨야지.” 로레타가 말한다. “내 인생은 언제 시작되는 거야?”(431쪽)

 

내 인생을 살겠다고 말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 나이의 부모님에겐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많아 자신의 인생은 뒷전이었다.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부모님만큼도 살지 못한다.

 

“……(중략) 제가 평생 원한 건 하나의 인간이 되는 거였어요.” 모린이 느릿느릿 말했다. “꿈과 뒤섞이지 않는 것. 마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꼭 그런 사람이에요. 언제나 말짱히 깨서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항상 잘 웃어대지만 사실 엄마의 인생은 전부 잠들어 있어요. 코니 고모의 삶도 마찬가지예요. 엄마와 고모의 친구들도 모두,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잠들어 있는데 저는 그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아버지와 의붓아버지도 모두 잠들어 있어요, 잠들어 있는 남자들이에요. 저는 모린 웬들이 되고 싶지만, 거기에 뭔가 의미가 생기면 좋겠어요. 깨어 있고 싶어요. 하지만 정말 안 좋을 때는, 내가 보기에 나 자신인 것 같은 존재가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이것저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제 기억, 제 눈에 보이는 것, 제 생각이 뒤섞인 존재예요. 저는 그걸 통제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이 부글부글 들끓고 있어서 무서워요.”(603쪽)       

 

하나의 인간이 되는 것, 인간이면서 인간이 되는 걸 원한다는 말은 분명 모순인데 이 말에 공감하는 건 그들의 삶이 인간의 삶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분이는 이방원에게 살아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삶은 무엇이다, 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모린의 말처럼 잠들어 있는 상태로 사는 삶은 아닐 것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 기록’이라고 했다. 작가는 제자였던 모린 웬들의 편지가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고 했다. 내 삶이 비루하다 해도 그들의 삶에 비하면 투정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든 만만한 곳은 없는 것 같다. 멀리서 보기에 추함을 보지 못할 뿐. 약한 우리는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치열하게.

 

눈의 나날이 끝나가고 있다고 쓰려고 보니 내가 사는 도시엔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요즘은 어떤 말을 하는 것이 겁난다. 괜찮다고 말하고 나면 바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눈이 오든 그렇지 않든 겨울은 끝나가고 있다. 추워서 잠들어 있는 날을 보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독서도 삶도 게을렀다. 책과의 거리도,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도, 삶에 대한 거리도 가까워지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6-02-1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든 시간을 힘들게 거쳐서 살아 있어야 나중에라도 저 때들이 있었음을 기억이라도 할텐데..말이죠.

꼭 뭔가 하지않아도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어쩌면 자기가
서있는 그 자리를 견디는 것 부터가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어요.
잘 읽고 갑니다.
기대하고 있는 책인데..역시나 궁금하게 만드는 책..^^

빨간바나나 2016-02-18 00:43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무척 궁금합니다. 기대할게요~~
삶은 시간이 흘러도 힘겹지만 그만큼 알게 되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그장소] 2016-02-18 01: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조이스 캐롤 오츠 ㅡ의 글을 워낙
좋아하니..읽어 보겠습니다.
제 독서후기는 영 ㅡ이렇게 잘 쓰진 못하니..
기대는 마시고 ㅡ대화로는 얼마든 즐겁게 나눌거리가 공통분모로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또 뵈어요!^^

빨간바나나 2016-02-18 10:00   좋아요 1 | URL
조이스 캐롤 오츠의 글을 좋아하셨군요.
저는 이번에 처음 읽었어요.
너무 힘들게 읽어서 다른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도 자주 뵙길 바래요~~

[그장소] 2016-02-18 13:50   좋아요 0 | URL
다른 글은 저도 단편으로 접해서요..
읽으실만할거랍니다.
짧은 단편들..오츠의 진가도 보시게 되고요..^^

빨간바나나 2016-02-18 16:02   좋아요 1 | URL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단편이라..
기대되네요..
단편이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언제 읽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그장소] 2016-02-18 16:15   좋아요 0 | URL
대디러브 ㅡ좀비ㅡ도 좋지만 ,
악몽ㅡ이블아이ㅡ는 오츠의 세계를 정말 잘
보여주는 작품들 같아서 추천하곤 해요.
언제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

빨간바나나 2016-02-18 23:14   좋아요 1 | URL
추천해주신 단편들.. 꼭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6-02-19 01:4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들 ㅡ읽으면 부지런히 남겨볼게요!^^
넉넉한 밤 보내시길 ~^^
 
[카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인은 아담과 하와의 세 아들 중 맏이로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죽인 인물이다. 그는 여호와의 벌을 받아 세상을 떠돌았다. 사는 것이 죽음보다 더 지독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여호와는 세상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표식을 남겼다. 이후 놋에 정착한 그는 아들 에녹을 낳았다.

 

구약성서<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직접 읽지는 못했고 여러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범이자 악인이다. 주제 사라마구가 생각한 카인의 모습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동생을 죽이고 도망친 카인이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했다. 그 이야기는『카인』을 통해 이어진다.

 

여호와는 불쌍하다. 자신이 만든 인간을 믿지 못했으니까. 믿음이 없다 보니 계속 테스트를 했던 게 아닐까. 아담과 하와를, 카인을, 아브라함을. 그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심지 않으면 될 게 아닌가. 경쟁을 시키지 않았다면 카인이 아벨을 죽이진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신의 마음을 산 그는 아들을 지켰다.

 

『카인』의 서두에는 여호와가 자신이 만든 아담과 하와가 겉모습은 완벽한데 말은커녕 원시적인 소리를 내지 못해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여호와의 인간 테스트는 이 과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호와는 말할지도 모른다. 더 굳건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채찍질이었다고. 내쫓긴 했지만 염려했기에 천사를 보내 도운 것이라고.

 

내가 너희를 만들었으니 너희는 무조건 내 말을 따라야 한다, 는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복종하는 인간은 원하지만 자존감을 지닌 인간은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지나친 비약일까?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뭘까? 점점 모호해진다. 모두에게 선한 사람 혹은 모두에게 악한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선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악한 사람일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카인이 악인이라면 아벨은 선인일까?

 

『카인』의 아벨은 선인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총애를 받는다고 생각한 아벨은 카인을 조롱했다. 신에게 사랑받았다는 자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비극을 만들었다. 지금의 삶을 봐도 비극의 원인은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다.

 

왜 신은 인간에게 욕망을 준 것일까. 욕망이 없는 인간을 상상한다. 아마도 인간의 삶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자꾸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 싶었던 신의 욕망이 인간의 몸으로 흘러들어 간 것은 아닐까. 그런데 신은 정말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아니었을 것이다. 신이 원한 인간은 자신 발아래 있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카인』의 카인은 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신은 말할지 모르겠다. 너 역시 카인의 후예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카인은 당신이 만든 아담의 후예입니다. 아벨이 악인이라고 해서 카인인 그를 벌할 권리는 없지만 카인의 입장에선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런 자들은 내 관할권 밖이다, 내 통제를 벗어나 있지, 신의 삶이 너희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란다, 신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그냥, 내가 원한다, 내가 할 수 있다, 내가 명령한다, 하고 말할 수가 없지, 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늘 바로 얻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카인의 이마에 표를 한 것은 사실이다, 너는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겠지만,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카인이 자기 의지가 데려가는 대로 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해도 어째서 나에게 그것을 막을 힘이 없느냐는 것이다.(142쪽)  

 

인간의 원죄는 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읽다가 이런 글을 만났다. 그랬다. 신의 능력은 완벽하지 않았다. 길을 떠나는 자에겐 떠나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신도 모르는. 운명 앞에 선 인간은 어떤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카인』 속 카인의 떠돌이 삶은 다른 성경 속 인물의 이야기 속에서 계속 이어졌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이려 했을 때 막은 사람은 천사가 아닌 카인이었다. 그런데 이 일화는 과거인지 현재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다. 성경을 읽지 않았지만 <노아의 방주>, <소돔과 고모라> 등 알고 있는 이야기는 있다. 『카인』의 카인은 성경 이야기의 시간과 장소에, 인물들의 삶에 현실인 듯 아닌 듯 휩쓸린다. 이런 시도는 재미있게 읽혔다.『카인』은 성경과 주제 사라마구의 상상이 절묘하게 뒤섞여 하나의 이야기가 된 독특한 소설이다. 성경을 잘 알았으면 소설과의 차이를 발견해 가며 읽었을 텐데, 그랬다면 단편적인 독서가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독서가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 부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사를 읽고 의견을 피력하는, 댓글을 열심히 다는 부류는 아니어도 댓글은 자주 읽었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든 그렇지 않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때때로 그들의 댓글은 내 무지와 편견을 깨트렸다.  

 

‘댓글부대’라고 명칭을 정확하게 규정하진 않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받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그들에게 그런 일을 지시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상품)을 홍보하거나 상대방(의 상품)을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려야 해, 두려움과 죄의식. 백만 명, 이백만 명을 한꺼번에 공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야.’(164쪽)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국민을 상대로 댓글부대로 활약했다는 사실, 정치 개입을 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명백한 직무유기였다.

 

제3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은 장강명의 『댓글부대』이다. 장강명은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등단한 이후 총 5권의 장편소설과 1권의 소설집을 냈다. 『댓글부대』는 『한국이 싫어서』이후 2번째 읽는 그의 책이다. 다른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라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그가 부지런한 작가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댓글부대』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확실하진 않은 어떤 사람들의 지시를 받고 댓글부대로 활동하는 (청춘으로 예상되는)세 사람의 이야기와 그 중 한 명인 찻탓캇과 기자 임상진과의 인터뷰가 번갈아 전개되는 구성이다. 9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장마다 하나의 문장을 제목으로 달고 있다. 장강명에 의하면 문장들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명확하지 않은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이라고 한다.『댓글부대』는 인터넷으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가의 창작을 버무린 소설이다. 2권의 소설을 읽고 공통으로 든 생각은 장강명은 시대를 사는 독자들이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지 잘 안다는 것이다. 그는 불편한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소설가로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나하나가 고유의 질서와 법칙을 지닌 생태계다. 그 세계들은 태어나고 성장하며, 진화하고 죽는다. 어떤 것들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어떤 섬의 숲은 산불에도 잘 버틴다.

그러나 모든 세계에는, 그 자신만의 약점이 있다. 작고 가늘지만 세계 전체를 떠받치는 중대한 고리가. 별 생각 없이 풀어놓은 쥐 몇 마리가 토착 동물들을 전부 굶어죽게 만들 수도 있고, 그 쥐를 잡으려고 뿌린 소독약이 섬의 나무를 몽땅 말려 죽일 수도 있다……(95쪽)

 

분량도 많지 않고 글자 크기나 간격도 작지 않고 인물의 수도 많지 않고 줄거리도 쉽고 어려운 문장도 없는데 단숨에 읽히지는 않았다. 읽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희망 없는 청춘을 만나는 일을 괴로웠고 여성들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들도 불편했다. 내겐 대사와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읽혔다. 결말은 딱 예상한 그대로였다. 이 땅의 진실은 사실이 아니라 힘에서 나온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는 냉정한 사고와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하다(라고 적지만 상투적인 말을 쓸 수밖에 없는 내가 싫다).

 

올해 일곱 살이 된 조카가 가장 잘 쓰는 말은 ‘헐!’이다. 작년 하반기, 그러니까 여섯 살부터 쓰기 시작했다.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모양이다. 부모나 어른들이 은연중에 내뱉는 말을 배웠을 것이다. 조카가 아무 때나 이 말을 쓰는 건 아니다. 황당한 상황일 때만 쓴다. 단 한 번도 잘못 사용한 적이 없다. 유치원생도 말이 되는 일인지 터무니없는 일인지 구분할 줄 아는데 어른이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동치미 없이 고구마를 먹은 답답함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사이다는 어디에도 없다. ‘헐!’을 내뱉지 않는 날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건 욕심일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죽은 사람들, 살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소설이 시작하기 전 앞 페이지에 실린 플라톤의 문장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살아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 모두가 바다를 항해하진 않는다. 날의 대부분은 살아 있음이 죽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떠남은 언제나 두렵다.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냈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떠남이 두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겁이 많아진다.

 

주저앉지 않을래, 아직은.(109쪽)

 

헤닝 만켈은 ‘나는 진실에 기초한 이야기만을 쓰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불안한 낙원』은 19세기 말과 어쩌면 20세기에 실재했던 한 스웨덴 여자의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기록이 사라져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소설 속 그녀의 첫 번째 이름은 한나 렌스트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죽기 직전 한나에게 “꼬질꼬질한 천사. 그게 바로 너란다.”(17쪽)라고 했다. 그녀의 떠남은 네 번에 걸쳐 이루어졌고 두 번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녀를 안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와 포르스만 두 사람의 결정이었다. 두 사람은 말했다. 네게 최선의 길이라고. 사실 선택의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녀는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 중 보이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한나 렌스트룀이 항해에서 만난 것은 사랑과 죽음이었다. 바다에서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꼬질꼬질한 천사는 아프리카 도시 로우렌소 마르케스로 도망쳤다. 누구의 결정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이 죽은 바다를 항해할 힘이 없었다. 그녀의 도망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결혼으로 한나 룬드마르크가 된 그녀는 매음굴이 우선이 호텔에 머물렀다. 그녀는 단지 피부색 때문에 열등한 존재로 대접받는 흑인(여자)들을 만났다. 재혼한 남편 셰뇨르 바즈(아티밀리오)는 백인의 잘못으로 생긴 일을 흑인의 탓으로 돌렸다. 아티밀리오의 생각은 백인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흑인들 역시 백인이란 이유로 증오했다. 아프리카는 한나에게 혼란이었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208쪽)  

 

한나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첫 번째 남편의 죽음, 유산 그리고 두 번째 남편의 죽음, 두 번째 남편이 죽음 이후 곁에 있었던 침팬지 카를루스의 죽음까지. 삶의 비극은 계속됐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상을 만났다. 그것은 사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고 불안한 세상의 책임은 피부색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살아있어요.” 그렇게 썼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살아있어요.” 두 줄에 한 번꼴로 그 문장을 반복해 썼다. 편지는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긴 간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다. 스바르트만 선장의 판단처럼 죽은 것이 아니다. 슬픔에 지쳐 육지로 올라와 머물렀고 그동안 배는 호주로 항해를 계속했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있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249쪽)   

 

그녀는 ‘불안한 낙원’인 아프리카를 살아가는, 약자로 살면서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흑인 여성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아파했다. 한나 렌스트룀, 한나 룬드룬드마르크, 한나 바즈였던 여자는 아나 브랑카가 되어 같은 인종인 백인들을 배반하고 흑인 여자 이사벨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것은 불합리한 사회를 향한 더 이상 꼬질꼬질하지 않은 천사의 날갯짓이었다. 같은 세상을 산다는 건 삶의 책임도 같이 지는 것이다.         

 

조만간 부두로 나가봐야겠어, 그녀는 생각했다. 느닷없이 부서져 버린 삶, 그것을 고치려는 시도. 그렇게 나는 여기로 왔어. 이제 곧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만 하겠지. 비록 지금은 그곳이 어디일지 알 수 없지만.(352쪽)

 

아나 브랑카라는 이름마저 버린 그녀는 이사벨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배를 탔다. 이사벨의 오빠 모세스는 그녀에게 ‘검은 아나’라는 의미로 아나 네그라라는 이름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못한 아나 네그라는 사라졌다. 낙원은 애초에 없는 것일까. 그녀가 머물렀던 모든 곳은 불안한 낙원이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것이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아니라 빛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다. 그런데 항해를 하면 할수록 안갯속이다. 때로 거친 비바람이 길을 막기도 한다. 도착한 곳은 낙원이 아닌 출발지보다 더한 지옥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떠나지 말아야 할까? 한나가 첫 번째 배를 타지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녀는 떠나지 않음을 후회하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삶의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후회는 따른다. 떠남을 통해 한 뼘 아니 일 센티미터라도 성장해 있다면 그것으로도 떠남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