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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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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로미오와 줄리엣(환상 서곡)」이다.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의 본문과 부록‘CD수록곡 해설’에 의하면 차이콥스키는 편집자인 발라키레프가 작곡과정 내내 괴롭혔지만 그의 의견을 수용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천재는 타고날지 모르나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배우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를 사로잡은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음악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귀로 듣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이 시리즈를 알게 되었는데 음악가에 대한 생애와 음악적 고민, 음악이 탄생이 된 배경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2장의 CD가 실려 있어 직접 음악까지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일부만 실린 음악의 경우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체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자인 제러미 시프먼은 차이콥스키의 걸작은 ‘그래요,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헤쳐 나왔어요. 그럴 땐 의기양양했지요. 심지어 가끔씩은 즐겁던데요. 당신이 겪은 고통을 알고 있어요. 기쁨도 알고 있지요.'라고 말을 걸어온다고 했다. 열 살이었던 차이콥스키는 법률학교 예과에 들어가면서 어머니와 떨어졌고 그 기억은 슬픔이자 공포였다. 잘못된 인연으로 인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고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알료사의 징집을 겪었다. 그는 사는 동안 여러 번 친구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시련이 반복되면 신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좌절감이 들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삶을 살아야 하거늘 그러하지 못하고 견디고 있다. 밤엔 잠을 자야 하거늘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고 잠을 자도 계속 꿈만 꾸며 낮에는 비몽사몽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읽다가 덮기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개도 안 앓는다는 여름감기까지 걸렸다. 음악을 듣고 있자니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은 흥분되었다. 귀가 즐거우니 마음도 즐거워졌다.

예술가 혹은 작가들의 좋은 점은 시련은 음악과 글의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에게도 그러했다. 「예브기니 오네긴」은 푸슈킨의 동명 운문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불행했던 자신을 만났다. 그는 이 작품을 최고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시련이 깊을수록 그의 음악적 재능은 깊어졌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를 믿어주고 도움을 주었던 폰 메크 부인이 있었다는 것도 그에겐 행운이었다. 차이콥스키가 돈을 함부로 쓰는 습성은 폰 메크 부인의 무조건적인 재정적 지원 탓으로 볼 수도 있지만.

노력했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는데 눈앞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좌절하게 된다.「백조의 호수」는 애초 인기가 없었다. 물론 그 이유가 춤이 중심인 발레 음악으론 너무 훌륭해서이지만. 무기력한 삶을 살면서도 마음에서 자꾸 조급함이 든다. 삶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20년 전에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돌파해도 괜찮은 작품이 되었다. 이제는 겁쟁이로 변했는지, 노년이라 힘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해 훨씬 더 가혹하게 굴고 예전에 지녔던 자신감을 상당히 잃었다. 온종일 앉아서 고작 두 페이지를 살펴보는데도 원하는 대로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긴 해도 작품에 꾸준히 진전이 있다. 진짜로 예전에는 내 자신에 대해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다. 뭔가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지식 덕분에 매우 자랑스럽고 기쁘다.(206쪽)
 
   

53세의 나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그의 시련은 음악이 되었지만 그의 음악은 현재의 우리들의 삶에 즐거움을 주었다. 나아가 미래에도 즐거움을 줄 것이다.

내리던 비는 그쳤다. 감기도 나았으면 좋겠고 비도 이젠 그만 왔으면 좋겠다. 우울증이 나아지지 않는 당신이라면 우울증 선배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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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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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방황의 공통점은 몸/마음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했다는) 것이다. 지식이든 성찰이든 머물러서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여행에선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게 된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대처하면서 인간은 성장해 간다는 점에서 여행은 인생과도 같다.

안도 다다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일본 출신으로 독학으로 건축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시작한 여행을 통해 건축을, 인생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파리와 바르셀로나, 밀라노와 보스턴, 뉴욕, 로마, 그리스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난 건축과 피카소, 잭슨 폴록, 피라네시 등 건축을 통해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만년 작품 중 하나인 롱샹 교회를 방문한다. 그는 그곳에서 강렬한 빛이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은 체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빛에 의해 건축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아르누보를 체험하면서 알게 된 것은 머리가 아닌 몸(손)의 예술이었다. 몸의 예술 즉 장인의 예술로 작품은 생명을 갖게 됨을 알게 되었다.

안도 다다오는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보곤 ‘분노’를 발견했다. 분노는 건축주와 사회의 균형 사이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건축가의 습성으로 이어졌다. 내 집을 짓는 일이 아닌 이상 건축은 의뢰인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작업이다. 예술가의 삶이 고난의 길임을 알고 있었지만 예술과 실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건축가의 삶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자유분방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탑을 만들었던 로디아는 탑이 완성되자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안다 다다오의 말처럼 그는 공허감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허감을 극복하려면 다시 열정을 쏟아 부울 일을 찾아야 한다.

예술가는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안도 다다오의 말처럼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은 매혹적이지만 불안과 고독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안락 보다는 불안과 고독의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잭슨 폴록이 44세에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그의 생은 강렬했으므로.

태양이 빛나는 건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을 알지만 빈부의 격차, 인종 문제, 범죄 등 어두운 부분에서 도시의 숨통이 트인다는 사실은 공감하고 싶지 않다. 어둠은 태양을 빛나게도 하지만 지금보다 더 짙은 어둠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유행했던 노래 중에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가 있었다. 미완성의 삶은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완성되어 간다. 여기서 규정한 타자와의 대화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타자는 내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고 책이나 예술작품으로 만난 과거의 인물일 수도 있다. 대화는 타자와 내가 말로 소통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소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도 다다오는 피라네시가 유적과 대화하면서 팽창된 자아와 대결했던 것처럼 일에 대한 놀라운 에너지를 가졌던 미켈란젤로와 대화하며, 혹은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책을 통해 안도 다다오가 만났던 세계의 건축,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면 그의 건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일이 찾아 확인하는 부지런한 독자는 아닌 까닭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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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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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이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지만, 어쨌든 이런 일도 있다.(210쪽) 

 

그로테스크(grotesque)는 프랑스어지만 낯선 단어는 아니다. 어떤 이미지를 보고 기괴하다는 인상을 받으면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한다. 어떤 장소가, 어떤 사람이 낯설고 묘한 분위기가 흘러도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을 쓴다. 볼프강 카이저의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15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다섯 세기 동안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를 통해 그로테스크의 본질을 연구한 책이다. 
 

그로테스크와 그와 연관된 표현들은 이탈이어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15세기 말 로마를 위시해 이탈리아에서 발굴된 특정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는 용어였다고 한다. 고대 장식미술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낯선 것, 새로운 것이었다. 당시의 그로테스크는 유희적인 명랑함과 자유로운 환상, 현실의 질서가 파괴된 세계와 대면할 때의 긴장감과 섬뜩함을 의미했다고 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슐레겔은 ‘존재의 심오한 비밀’이 그로테스크의 섬뜩함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혼란 혹은 상상력이 어떤 특별한 조류에 휩쓸리다 동화되는 과정에서 현실과 예술 작품은 유일하고 영원한 사랑과 성스러운 생명력의 비밀문자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그로테스크는 작가마다 다양하게 정의되었고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나는 그로테스크하면 ‘기괴하다’는 단어만 떠오르지만 그로테스크에는 ‘우스꽝스러운’이란 뜻도  있다. 우스꽝스러운 것과 그로테스크가 연결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부적절한 상황, 웃음소리가 나오면 안 되는 극한 상황에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일어난다면 적막감이 흐르며 묘한 분위기, 즉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흐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의미의 ‘우스꽝스러운’ 그로테스크도 가능할 것이다. 
 

19세기 미학의 관점으로 바라본 헤겔은 그로테스크를 다양한 영역을 부적절하게 혼합한 것, 무절제이자 왜곡, 머리나 팔을 여러 개 그려 넣은 식으로 한 가지 특정한 요소를 부자연스럽게 복제한 것이라고 했다. 호프만은 그의 문학 속에 그로테스크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괴상한 외모, 기묘한 행동 방식, 악마적인 인물들이었다. 카이저에 의하면 전반적으로 19세기의 미학자들은 그로테스크를 하찮게 여겼다고 한다.

 

공포의 세계로 뛰어들어 악마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자 하는 욕망이 이러한 거장들의 내부에 있는 어마어마한 건전함과 용기와 자부심으로부터 솟아오르고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또한 이들의 곁에는 유머가 형제인 공포와 더불어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도! 유머는 때로 공포와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때로는 이와 결합해 지극히 독특하고도 근사한 무언가를 탄생시킨다. 그로테스크가 바로 그것이다.(232쪽)

  

슈트로블은 유머와 공포를 그로테스크의 구성요소로 보았다. 괴기문학은 그로테스크를 표현방식으로 사용했다. 카이저는 그로테스크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파격적인 사건의 묘사에만 쓰인다면 작품에서 풍기는 그로테스크는 공허하다고 했다. 초현실주의 이론은 그로테스크의 추구를 거부했지만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로테스크가 연상된다. 그로테스크는 19세기에는 낭만주의의 순화형태로 유지되었으나 20세기에선 문학과 미술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로테스크는 미지의 무엇(es)을 극화한 것이다.(304쪽)

 

그로테스크는 한 마디로 뭐라고 규정하긴 어렵다. 작가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정의되고 표현되었다. 미술이나 문학 속에서 만나는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나 장면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인물, 세계는 아니다. 현실의 인물들이 기묘한 세상과 만나 흐르면서 미술과 문학 속에 나타난 것이다. 그로테스크가 나타나는 미술과 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 인물들이, 그 세계가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이다. 책 표지 그림인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천년왕국」을 포함하여 25편의 미술작품이 실려 있다.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편안함 혹은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그림들이다. 혼란, 공포, 기묘함, 섬뜩함 등이 전해져 지는 그림들이라 그로테스크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신간으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문학과 예술 속에 나타난 그로테스크가 궁금했으면서도 독서 자체는 많이 고민했다. 읽지 않은 책들이 예시되는 경우 독서가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이 책은 내게 좀 어려웠다. 카이저가 다루는 문학들의 대부분이 내가 읽지 않은 고전들이다보니 이해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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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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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옛 그림이 좋아졌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미소가 지어졌다.
그림 속 상황들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에 관심이 간 것은 당연하다.
 

코미디를 보지 않는다.
여러모로 웃어야 할 타이밍인데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 코미디를 보며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 동생에게
정말 재밌어?,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동생은 어디 한 번 웃겨 봐, 난 절대 안 웃을 거야, 하는 심정이 아닌
맞장구를 치며 웃을 준비를 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인 손철주는 정 깊은 우리 옛 그림은 정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잘 그렸는지 평가해 줄게, 하며
단점을 찾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보기 보단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통하는 오랜 지기를 만나듯
그림을 보면 좋겠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전기의 〈매화초옥도〉를 좋아했다.
그림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심사정의 〈달빛 매화〉를 보고 있다.
저자는 이 그림에 대한 글을 쓰면서 너만 잘난 매화냐, 라는 제목을 달았다.
흩날리지 않아도 기품이 없어도,
궁벽한 시골 허름한 담장에 핀 매화도 매화라는 것이다.
다른 날엔 〈매화초옥도〉가 맘에 들어오겠지만
오늘은 〈달빛 매화〉가 마음에 든다.
 

오명현의 〈소나무에 기댄 노인〉엔
나무에 수상쩍은 짓(?)을 한 노인의 모습의 그려져 있다.
저자 조선의 톨레랑스라며 노인을 용서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밌다.
코 대고 맡아봐도 지린내가 안 난다는 것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숨으면 나는 꼭 그 사람을 찾아야 직성이 풀렸다.
숨은 이유를 알기에 혹 딴 맘을 먹을 까 걱정이 들었다.
장득만의 〈아이에게 묻다〉에 대해
저자는 숨은 이는 숨게 하고 간 이는 가게 하자고 말한다.
밖이 꼭 좋은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밖으로 나오라고 했던가, 생각해 본다.
안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밖으로 나올 텐데 말이다.
그리워하며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해석에 의하면 홍진구의 〈오이를 진 고슴도치〉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시 많은 고슴도치는 숨은 뜻이 번성이고 국화는 장수를 뜻하므로
이 그림은 자손을 많이 낳아 다복하고 장수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슴도치 관련 속담을 빌려
오이를 진 고슴도치를 과욕을 부리거나 빚에 허덕이는 꼴로 해석했다.
누군가에게 선물, 누군가에겐 충고가 될 그림이다.
 

변상벽의 〈고양이와 국화〉 역시 노인의 장수를 바라는 그림이다.
고양이 ‘묘(猫)’는 칠십 노인을 뜻하는 모(耄)와 발음이 닮아서
옛 그림에서 고양이는 노인을 뜻한다고 한다.
저자는 쥐도 잡고 장수도 기원하는 두 벌 몫을 할 그림이라고 했다.
 

처음 김홍도의 〈표피도〉를 보며
김홍도는 왜 호랑이도 아닌 표피를 그렸을 까, 생각했다.
저자는 혁(革)은 가죽이란 뜻도 있지만 고치고 바꾼다는 뜻도 있으므로
이 그림은 털갈이를 하는 표범처럼
계획을 세웠다면 작심삼일하지 말고 선명하게 달라져야 함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보이는 그대로 봐도 좋고
숨겨진 뜻을 찾아 봐도 좋은 그림이 옛 그림이란 생각이 든다.
옛 그림, 알아갈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
  

이 책을 통해 몰랐던 많은 우리말을 만날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풀이가 달려 있어 따로 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휴가의 계절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면, 내가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싶다면
이 책처럼 옛 그림을 다룬 책들을 보며 휴가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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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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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장르적 취향은 다를지라도 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라면 기꺼이 차를 타고 영화관에 가서 돈을 쓰는 수고를 감수한다. 시간 때우기에 좋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있는가하면 몇 번을 반복해서 봐도 좋은 영화도 있고 유명한 감독의 영화라고 해서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졸음만 쏟아지는 영화도 있다. 관람자 혹은 관객의 입장에서 모든 예술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와 비해 다양한 계층에게 사랑받는 예술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사유 속의 영화]라는 근사한 제목의 책이다. 철학자와 예술심리학자와 미술이론가, 기호학자들의 영화에 대한 담론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말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들은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음악이나 미술, 인물들의 패션, 배경 등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들은 우리가 보고 느낀 만큼이다. 이론가나 학자의 글은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기에 영화에 대해 많이 알고 싶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전부 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영화를 보며 지나쳤던 것들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영화를 깊이 보고 싶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의 원리와 표리문자(1929)」를 통해선 다른 세계의 영화들과 당시 일본영화의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우리들의 일상은 생략 없이 흘러가지만 영화는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많은 일상들이 생략된다. 루돌프 아른하임은 그 차이를 생략과 암시에서 찾았다.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영화의 출발을 사물,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 보았다. 앙드레 말로는 영화의 스토리는 다양하고 스토리에 대한 호오는 관객에 따라 갈리지만 많은 스토리는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철학과 영화가 일치하여 성찰과 기술적 작업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안에 있는 것은 또한 밖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괴테의 말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철학적 사유가 영화를 만들든, 영화를 통해 철학적 사유를 했든 중요한 것은 함께 도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생각이 많아져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영화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선후관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루이 코몰리 & 장 나르보니는 「영화/이데올로기/비평」에서 영화에 질문을 던지는 비평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질 들뢰즈는 모든 예술작품이 저항 행위는 아니지만, 어떤 방식으로는 예술작품은 저항행위라고 말했다. 예술가마다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다르겠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저항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으며 많은 것을 말한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의도적으로 담아낸 것들도 있지만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영상 속에서 관객이 발견하는 것도 있다. 영화를 통해 어떤 사유를 하든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서평을 미루려고 했다. 이 책에서 다룬 영화들의 대부분을 보지 않아서인지 사유의 부족인지 독서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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