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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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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기억 하나.
가파른 골목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숨이 찼다. 발걸음을 떼려는데 이사를 했다는, 내가 더 이상 이 동네 살지 않는다는 것이 떠올랐다. 더 이상 가파른 골목을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돌아서는데 골목에서 웃고 울며 보냈던 시간들이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옛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새 집이 아주 맘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특별’한 일상들을. 그 후로도 몇 번쯤 내 몸은 그곳을 찾아갔다
.

(장소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는 전제 하에) 길을 걷다 어떤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면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한 외관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훗날 좋은 사람과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더 근사한 외관을 만나면 그 공간은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진다. 그 장소에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잊히지 않았을 것이다.

『공간 공감』에는 많은 그림과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칼 빌헬름 홀소에의 <집 안의 아이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아이들이 앉아 있지 않았더라면 계단은 단지 층과 층을 연결해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둠에 싸인 방에서 빛이 비추는 그 계단에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고 싶었다. 아이들 덕에 계단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고 싶은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되었다.

어떤 공간이 의미 있는 공간이 되려면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깊이 있는 경험’이 더해져야 한다. 공간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이 공간의 정의에 관심을 갖는다면 『공간 공감』은 공간의 경험을 통해 만나게 될 삶의 의미에 관심을 둔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라고 제안한다.

   
  우리가 그저 하나의 움직임이나 정지된 동작 정도로 생각하는 거닐고 머무르기에는 삶의 근본적인 방향성이 내재되어있다. 건축의 공간에서 머무름과 움직임을 만드는 일은 머무름의 ‘장소’와 움직임의 ‘축’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신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머무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깊이 있는 경험의 문제다.(69-70쪽)
 
   

공간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려면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의 오감을 활용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빛과 소리, 향기, 감촉을 통해 만난 세상은 기존에 인식했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일 거라고. 머물러 있던 공간은 깊이 있는 경험과 만나면서 살아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는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킴을. 가끔은, 아니 자주 내가 있는 공간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이 되어 버린 공간은 삶을 단조롭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떠남 많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간에 대한 집중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공간과 귀를 집중해 듣는 공간은,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공간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공간이 어디냐가 아니라 머무는 사람의 경험이다.

   
  공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와 함께 늙어갈 때 비로소 ‘삶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거주를 위한 집에서는 물론 온종일 일하고 머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숨을 쉬고, 울고 웃고 부딪히고 어루만지며 사람과 같이 살아갈 때 가치를 획득한다. 건축은 그 속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참된 역할을 시작한다.(314쪽)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공간은 더 이상 무의미한 혹은 타자의 공간이 아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먼 훗날 기억으로 남을 내 삶의 공간이다. 공간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드는 주체는 ‘나’이다. ‘나’와 ‘또 다른 나, 타인’의 경험들이 쌓여 공간은 오래도록 살아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일상의 공간들이 좀 많이 달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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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속의 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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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태초의 색을 생각해봤다. 흑백사진이 떠올랐다. 명확한 색의 구분 없이 흰색과 검정의 경계를 오가는, 회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그 사진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태초의 색은 빨강도 노랑도 파랑도 아닌 회색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우리 기억 속의 색』이다. 처음엔 전문서적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였다. 이 책은 2010년 메디치 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라고 한다. 에세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르이다. 색에 대하여 별 의식 없이 살았는데 저자는 색에 대해 특별한 기억들이 많은 모양이다.

   
  브르통을 초대하는 저녁 식사는 내 어머니에게 두려운 요리 테스트를 의미했다.
……(생략)……
또 맥주를 ‘치욕스러운’ 음료로 여겼다(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24쪽
)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이 계절 가을엔 잘 마시지 않지만 말이다. 맥주를 반드시 좋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치욕스러운 음료라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니! 잠깐 책을 읽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타인의 취향이니 존중하기로.

저자는 브르통의 노란 조끼를 처음 본 기억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태초의 색은 노란색이라고 적었다. 확실히 회색보다 근사하다. 색에 예민했던 저자는 감색 블레이저 일화를 겪고 나선 훗날 감색의 역사를 연구했다. 저자는 모든 일상을 색으로 만나고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연구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사적인 경험만이 담겨 있는 책은 아니다.

   
  나에게 색은 살아 움직이는 존재, (……) 우주의 진정한 주민이다. 선은 지나가기만, 화폭을 가로질러 이동하기만 할 뿐이다. 선은 그저 통과만 할 뿐이다.(177쪽)
 
   


위 인용문은 화가 이브 클랭의 말이자 저자가 자신의 것으로 삼은 문장이다. 뛰어난 화가들은 선만으로도 훌륭한 그림을 그리지만 색이 생동감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파란색의 상징인 청바지의 역사부터 자동차 차체의 색 이야기, 색의 기능, 삼색 신호등의 역사, 색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금의 역사, 미술사가와 예술가들의 색에 관한 생각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올림픽기에서 오대륙을 상징하는 고리의 색이 지정된 이유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든 것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지만 의미가 부여됨으로써 특정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색을 선택할 때 좋아서라기 보단 ‘감법에 의한 선택’을 했다. 까다로운 취향에 맞는 색은 늘 존재하지 않기에. 어떤 경험으로 인해 좋아했던 색은 끔찍한 색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색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오지만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 보라색은 불행의 색이지만 어떤 곳에선 21세기의 색이다. TV사극이나 CF를 보면 여왕들은 보라색을 입는다. 내게 보라색은 신비의 색이자 여왕의 색이다.

이 책은 역사학자 미셸 파스투로의 색에 대한 관찰과 성찰의 기록이 담겨 있는 책이다. 1950년에서 2010년 동안 유럽 및 서구 사회에서 색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 그 역사가 담겨 있다. 색에 대한 예민한 관찰력, 다양한 색이 보여주는 마법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책의 배경이 내가 사는 시대와 아주 조금 겹칠 뿐이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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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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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유명해져야 하지만 유명해지면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공인이 실제 뜻과는 무관하게 소위 ‘뜨면’ 모두 공인이 되는 현실 아니던가. 무명 시절엔 아는 이들이 없어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지만 유명해지면 ‘보는 눈’이 많은 관계로 활동의 제약을 받게 된다. 유명화가와 무명화가의 차이는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음, 즉 ‘자유’일 것이다.

옛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민화에도 관심이 갔다.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제목부터 시선을 끌었다.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궁금했다, 그들이 그림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민화는 현재, 현세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꿈으로 보았다. 여기서의 꿈을 이룰 수 없는, 바랄 수 없는 것에 걸어보는 기대가 아니다. 어린이들이 누나의 자수를 들여다보듯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본 어른들의 꿈이 바로 한국 민화의 꿈이었다. 그들은 인생과 자연 자체가 큰 꿈이고 예술이 바로 꿈이라고 믿고 있어서 사람과 인생 자체를 아름다운 꿈으로 표현했다.”(김철순, 『한국민화논고』 재인용, 26쪽)
 
   


저자 정병모는 미국 민간미술 연구가 베트릭스 럼포드의 말을 빌려 “민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예술”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에도 민화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말인 것 같다. 궁중화원은 명령에 의해 그림을 그렸고 사대부화가들은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면 서민화가들은 담이 없는 너른 마당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한바탕 놀았다는 느낌이 든다.

가진 것이 없으면 지킬 것도 없다. 자유롭지 못한 것은 지킬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서민화가들은 지켜야 할 것들이 없기에 생각한 그대로 그릴 수 있었다. 저자는 ‘무명 화가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밝게 보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간’ 것을 ‘무명화가들의 소리 없는 반란’으로 보았다. 자유로운 상상력의 소산인 민화는 민초들의 고단한 현실이자 이상향이었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민초들은 희로애락이 담긴 그림을 보며 삶의 어려움을 이겨냈을 것이다.

이 책은 책거리, 문자도, 까치호랑이, 운룡도, 십장생도 등 주제별로 민화를 다루고 있다. 현대화가 이우환은 민화를 ‘구조적인 회화’라고 칭했다고 한다. 책거리와 문자도 등에서 알 수 있듯 서민화가들은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느끼는 대로 그렸다. 그로인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 자유롭게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있었고 기존의 상식이 뒤바뀌는 일이 가능했다. 호랑이는 강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민화 속에선 까치와 토끼에게 골탕 먹는 존재였고 용은 왕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민화 속에선 위용과는 거리가 먼 무기력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민화 속 세상은 불가능이 없는 세상이었다.

무명화가들은 민화를 통해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는 게 급급한 사람들에게 자유는 사치일 수 있다. 이 가을, 민화를 보며 위안과 여유를 찾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정통화가들이 구사하기 힘든 그러한 세계따.(->세계다)
-- 리뷰 쓸 때 오타에 관한 지적은 하지 않는데 이 책은 평가단으로 쓰는 것이고 ‘글머리에’에 실린 부분이라 따로 적었다.

(*) 208~209쪽의 그림 5-16 <사람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 작은 그림보다는 큰 그림이 보는 것이 효과는 크겠지만 하나의 그림이 두 쪽에 실려 그림이 접히는 것보단 한 쪽에 실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히는 부분은 다른 곳도 아닌 호랑이 얼굴이다. 소공동 롯데 백화점에 걸려 있다고 하는데 직접 가서 보라는 깊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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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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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특히 서양미술사를 다룬 책들은 많다. 관련한 몇 권의 책들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에 관심이 갔던 건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미술’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미술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미학은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술가가 표현하는 아름다움과 미학자가 발견한 아름다움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본 아름다움과 미학자가 발견한 아름다움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동일성과 차이가 궁금했다. 게다가 아방가르드 시대는 실험적인 예술이 많이 등장한 시대 아니던가.

미학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인 유홍준은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의 “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간단히 아름다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며 반은 철학 반은 예술학이며 철학과 예술의 사이이다.”라고 했지만 여전히 미학은 내게 어려운 학문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을 통해 미학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 수 있길 원했다.

 
저자는 ‘지은이의 말’에서 ‘예술가 진술(artist statement)’, 즉 예술가들의 강령과 선언을 중심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의 본질을 추적할 거라고 적으며 '의도주의의 오류(intentionalist fallacy)‘의 위험이 따르나, 예술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작품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술가의 의도만으로 예술을 이해하는 것은 최선은 아니지만 예술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차례가 한스 제들마이어의 분류와 일치하게 됐다고 했다. 또한 본문 앞에 붙은 ‘들어가기’는 한스 제들마이어의 《현대예술의 혁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고 했다. 한스 제들마이어는 ‘순수성의 추구, 기술적 구축, 광기의 탐닉, 근원의 탐색’을 현대예술의 ‘근원 현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저자는 “순수, 기술, 광기, 근원이야말로 20세기 아방가르드 운동을 추구해온 네 가지 충동”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들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은 한스 제들마이어의 책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현대예술의 혁명》에 관심이 생겼다.

아방가르드 시대는 다양한 예술운동이 나타났고 사라진 시대이다. 재현의 의무에서 색채를 해방시킨 야수주의, 야수주의처럼 재현보단 표현을 강조했지만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심리에 주목했던 표현주의, 원근법의 공간을 무너뜨렸던 입체주의가 나타났던 시기였다. 표현주의는 이후 동독 출신 화가들에 의해 ‘신표현주의’로 부활했다고 한다. 다다이즘를 대체할 열망으로 탄생한 것은 초현실주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들의 흔적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졌다. 미래주의, 순수주의, 절대주의, 구성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은 모두 입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예술사의 흐름과 예술운동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은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고전예술 편』과 세트를 이루는 책으로 모더니즘 편 이후의 현대미술도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취향에 따라 순서를 바꿔 읽어도 되지만 독서의 목적이 서양미술사의 전반을 공부하기 위한 것이라면 『고전예술 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학에 대한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서인 것도 한 이유겠지만 ‘미학의 눈으로 본 아방가르드 시대의 미술’이란 부제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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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철학의 풍경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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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아이들에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롭다.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 처음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삶에 대한 질문들은 줄지 알았다. 그래서 정해진 답만 향해 걸어가면 되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되고 보니 삶에 정답은 없었다. 정답은 오답이 되고 오답은 정답이 되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된 진실은 삶이란 묻고 깨닫고 다시 묻고 깨닫는 반복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묻고 깨닫고 다시 묻는 학문이다. 그러니까 삶은 끝없이 철학하는 시간인 것이다.

 

철학과 사진,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철학의 풍경들』은 인식의 풍경,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감상의 풍경, 마음의 풍경의 다섯 가지 철학의 풍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칸트의 “감성이 없다면 아무런 대상도 주어지지 않을 테고, 지성이 없다면 아무런 대상도 사고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빌러 사진이 철학에 필요한 이유를 적고 있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것’이자 ‘볼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으로 논리적 이성과 감각적 감성이 모두 요구된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 어떤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사진가는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풍경이 더 없이 아름다워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에 담기도 하지만 오래전 나의 어느 하루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의도적으로(혹은 자신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길을 걷다 어떤 사진이 눈에 들어오면 여행자는 그 사진을 마음에 담는다. 사진 속에 담긴 풍경이 더 없이 아름다워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 마음에 담기도 하지만 오래전 나의 어느 하루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이 멎고 걸음이 멎기도 한다.

 

그 풍경은 내가 그냥 지나쳤던 풍경일 수도 있지만 사진을 통해 만나는 풍경은 미처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준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진에 담긴 스토리를 상상하기도 한다. 나는 사진 속을 채우기도 비우기도 한다. 저자는 “작은 것을 볼 줄 알고 미미한 존재감을 헤아리는 것이 철학함이고 사진함”이라고 했다.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는 것, 사진의 힘이자 철학의 힘일 것이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그림 〈구두 한 켤레〉를 통해 예술작품에서도 진리가 드러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예술과 철학이 만난다고 하며 사진도 그러하다고 했다. 대상을 파악하고 존재를 탐색하고 존재와 시간을 헤아리는 과정을 통해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의 사양은 천차만별이고 사양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얻지만 셔터만 누를 줄 알면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찍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타인이 찍은, 타인이 찍힌 사진의 감상자가 될 수도 있다.

 

사진은 침묵의 표현매체이다. 그러나 말을 못한다는 것이지 말이 없는, 말을 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을 뿐 새기지 못한 것은 아니며, 읽지 못한 것이지 내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99쪽)

 

사진은 소리 내지 않지만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은 상당하다. 목소리가 중요한 것은 사진을 통해 사유하는 것이다. 삶의 질문들을 던져보고 성찰하는 것이다. 사진은 현재의 나와 우리의 모습이다.

 

책에 실린 사진들과 글들이 마음에 든다. 사진을 봄으로 인해 내 사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어려운 철학이 가깝게 느껴진 책이기도 하다. 급하게 읽었으나 천천히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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