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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은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人間)이다. 한자 인(人)이 증명하듯 서로 지탱해 주어야 한다. 첫 문장과는 대립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현대는 무한경쟁의 시대이다. 내가 살려면 누군가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사는 ‘착한’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개인의 삶이 타인의 삶보다 우선한다. 이 경우 타인의 존재 이유는 나의 존재를 안정시켜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런 관계에서 제대로 된 소통은 불가하다.

 

영원히 아이로 머물고 싶은 아이도 있겠지만 어린아이 대부분은 어른이 되길 갈망한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삶은 어른들에게 구속당하는 자신들의 삶보단 자유롭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른들 역시 구속당한 삶을 산다. 그것은 더불어 사는 자의 책임이기도 하고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이 빚어낸 모순이기도 하다. 자유를 갈급하지만 틀을 부수고 나가지 못한다. 그것은 곧 낙오자가 되는 길이기에.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떠들지만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살아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숨을 쉬고 있으니 사는 것이 분명한데 숨을 쉬는 나는 낯설고 진짜 나는 사라진 느낌이 든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의 원제는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44통의 편지(44 LETTER FROM THE LIQUID MODERN WORLD)’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홀로코스트, 근대, 탈근대, 계급, 세계와 소비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발표’한 탈근대 사상가이다. 원제에 나온 ‘유동하는 근대 세계’는 저자 바우만의 독창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그는 현대 사회를 ‘액체처럼 그대로 가만히 멈춰 있을 수 없고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할 수도 없는 사회‘로 보았다. 원제에 나오는 44라는 숫자에 눈이 갔다. 저자에 의하면 임의적인 선택이지만 폴란드의 낭만주의 시인인 아담 미츠키에비치가 상상해낸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신비주의자 Forty-Four(44)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넘쳐 나는 정보와 빠르게 변하는 사회는 많은 공포 또한 양산한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바우만이 삶의 불안으로 방황하는 우리에게 주는 삶의 조언이 담겨 있는 책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현실의 삶도 두렵고 혼자 방으로 숨어드는 삶도 두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휴대폰 세상 혹은 쇼핑몰 세상에 접속한다.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거나 유혹당하거나 소비함으로써 외로움과 불안감을 해결한다.

 

인터넷 세상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똑같이 일어난다. 인터넷은 익명의 존재와 유명의 존재가 함께 사는 세상이다. 익명의 존재든, 유명의 존재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혹은 주목받고 싶은 욕망을 분출한다. 만난 적은 없지만 이름은 아는 존재에게, 만나기도 했고 이름도 알지만 인터넷상의 나는 모르는 존재에게 상처를 가한다. 또는 내가 상처를 받는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모름’은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상처를 준 사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또 다른 인터넷 세상으로, 아니면 현실로 유랑한다.

 

지하철을 타면 쪽잠을 자는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 사람이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 것을 볼 수 있다. 휴대폰을 두고 외출한 날은 신경이 온통 두고 온 휴대폰에 집중되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휴대폰이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20여 년도 안 된다. 남녀노소랄 것 없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을 보면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삶의 편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휴대폰이건만 우리 삶은 휴대폰에 갇힌 듯하다. 소통이 쉬워졌지만 ‘제대로 된 진정한 의사소통’은 어려워졌다. 말은 넘쳐나는데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생이란, 더구나 그것이 만일 한 인간의 삶이라면, 결코 예술작품이 아닐 수는 없는 법이다. 말하자면 한 인간의 삶이라면, 곧 의지와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은 존재인 인간이라면 말이다.(375쪽)

 

외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제대로 고독하게 사는 법으로 바우만은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를 주장한다. ‘미리 완전히 결정될 수는 없지만 타인들과 함께 살기 좋은 공동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계속 고안하고 실험해나가자는 것이다.’ 진행과정은 제약 없이 자유로워야 함은 당연하다. 바우만은 말한다.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자신을 가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 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모를 것이다.(31쪽)

 

잃어버린 고독을 되찾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깊어가는 가을은 고독하기 좋은 계절이다. 삶의 위기를 겪고 있다면, 외로움에 불면의 밤을 보낸다면 작고 어두운 방으로 숨지 말고, 다른 세상으로 유랑하지 말고 이 책을 읽으며 고독을 즐겨볼 일이다. 원문 그대로의 번역인지 모르겠지만 영어투의 문장이 많아 어렵지 않은 내용인데도 잘 읽히지 않았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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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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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식은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 절대적이지 않지만, 생명 유지 측면에서 보면 절대적이다. 첨단 과학문명이 발달한 미래의 어느 날엔 SF영화에서처럼 알약만 먹고도 살 수 있겠지만, 현재는 주기적으로 음식을 먹어야 생존 혹은 생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생존을 위해 먹는 음식이 죽음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생의 모순이자 비극일 것이다.

 

뉴스나 TV고발프로를 보면 도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날것으로 먹지 않고 익혀 먹으면 괜찮다고 말하지만 신뢰하기는 어렵다. 가공식품은 합성첨가물이 들어 있어 불안하고 자연식품은 세균이 있을까 염려스럽다. 어제의 건강식품이 오늘의 건강식품이 되진 않는다.

 

하비 리벤스테인는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를 통해 오랜 시간 먹거리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해 온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식은 재료의 가공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에 누군가의 손,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다고 말한다.

 

우유가 완전식품으로 알려진 것은 1991년 미국 농무부와 전국낙농협회의 캠페인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밀가루, 설탕, 소금 등 흰색이 들어간 음식은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흰 밀가루는 통밀가루보다 단백질 함량과 비타민 함량이 떨어진다고 말했던 맥컬럼은 통밀빵만 먹는 것보단 우유 또한 녹색 채소와 함께 흰 밀가루 빵을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음식에 관한 판단은 전문가의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따라 바뀐다. 한 시절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권장되던 음식이 시간이 흐른 후엔 건강에 효과가 없는 음식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한때 완전식품으로 불렸던 우유와 달걀은 콜레스테롤과 심장병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었다. 많은 이익을 얻는 방법의 하나는 단가를 낮추는 것이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간의 몸에 해로운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에 대한 공포를 포장과 마케팅으로 감추기도 한다. 우리가 이 이야기들을 통해 만나는 건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불편한 진실이다.

 

요구르트가 결장의 박테리아를 제거해 인간의 수명을 140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메치니코프는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생명 연장의 근거로 삼았던 통계 자료는 잘못된 자료였다고 한다. 고기를 먹고 난 후 소화가 안 되면 유산균 음료를 먹곤 한다. 유산균 음료가 장에 좋다는 광고의 영향을 무의식적으로 받았을 것이다. 켈로그는 메치니코프의 ‘지나친 고기 사랑 때문에 요구르트가 자가 중독에 싸울 수 없었다며 비난했다’고 한다. 그는 요구르트를 먹는 것보다 고기를 먹지 않아 장에 부패물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요구르트가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지만 다농이란 요구르트 업체를 세웠던 다니엘 카라소는 10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다니엘 카라소가 장수한 이유는 뭘까. 요구르트? 고기를 먹지 않아서? 아니면 다른 무엇?

 

텃밭을 가꿔 직접 채소를 찾거나 유기농 채소를 사서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음식의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자연식품을 선택했다. 맥캐리슨은 우유, 달걀, 곡물, 과일, 채소 등 가공하지 않은 자연식품을 먹으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문제는 그가 바탕으로 삼은 자료가 잘못된 자료라는 데 있다.

 

저자는 ‘인간에게는 미각, 시각, 후각 그리고 간혹 겪게 되는 대재앙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식품과 그렇지 못한 식품을 충분히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두드러기가 난다. 그것은 내 몸에 맞지 않으므로 음식을 거부한다는 몸의 신호일 것이다.

 

무분별한 정보들이 넘쳐난다. 정보를 뿌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불신을 조장해 이득을 얻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두려움은 음식에 대한 각종 정보에 귀 기울이게 하고 눈을 멎게 한다. 정보는 많지만 어떤 것을 습득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악순환이 거듭된다.

 

먹거리의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저자가 인용한 마이클 폴란의 조언이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것,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되 과식하지는 말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라’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쏟아지는 정보에 현혹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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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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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된 단어를 분리하면 코뮤니스트(communist)의 ‘com-’과 공산주의자의 ‘공(共)’에는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뜻이 있다. 사람(人)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지탱해주어야 살 수 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눠 갖는 세상은 이상적이다.

 

로버트 서비스의 『코뮤니스트』는 원제 에서 보듯 공산주의의 전체 역사, 세계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 흥망사를 엿볼 수 있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시작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했던 바쿠닌, 마르크스주의를 최초로 실현한 레닌의 혁명이론,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공산당 활동 등의 이야기가 시대순으로 펼쳐진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공산주의(Communism)는 ‘일관되게 사회의 기초를 파헤쳐 재건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기존 질서에 대한 증오심에서 공산주의가 탄생했지만 공산주의는 하나의 의견으로 일치되지 않았다. 일부만이 평등주의 실현에 뜻을 두었다. 실현 방식 또한 다양했다. 대화를 통해 하나의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 없이 자신의 방식만을 실행에 옮기길 바랐다. 사상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었다.

 

볼셰비키 지도자들의 실례에서 보듯 공산주의자들은 일당, 유일 이데올로기 국가를 지향했다. 공산주의는 변화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됐지만 헝가리의 레닌을 꿈꿨던 벨러 쿤처럼 공산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함께 나눠 갖길 원했지만 내 것을 내놓는 것은 원치 않았다. 사람들은 가난과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통치자와 국민이 동상이몽이면 그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

 

나는 소련이란 나라를 기억하지만, 소련은 지금의 아이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대신 그들에겐 러시아란 나라가 존재한다. 소련 붕괴 소식을 접했을 때 믿기지 않아 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으로 기억하고 있던 소련이 그렇게 조용히 사라진, 정확히 말하면 분리된 현실이 믿기지 않았었다.

 

이 책은 공산주의의 세계사를 통해 어찌하여 공산주의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공산주의 이론들의 문제점과 통치자들을 비롯한 지도부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들의 문제 해결의 방식은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아닌 폭력에 의한 탄압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능력은 과소평가하고 공산주의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정학적 특성, 민족적 측면들을 고려하지 않고 나라마다 같은 방식을 고수했다.

 

스탈린은 사람들은 믿지 못했다. 자신에게 맞설 위험이 보이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제거했다. 공산주의 통치자들에게 ‘인민’은 함께 걸어야 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통제해야 할 혹은 전쟁이나 노동에 동원해야 할 대상, 혹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통치자들의 의식 속에 ‘함께’라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을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그들의 소유로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통제와 격리 때문에 인민들은 알지 못했지만, 통치자들의 삶과 인민의 삶의 질 사이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된 인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 책은 공산주의의 세계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12월 대선 탓에 통치자의 태도에 관한 책으로도 읽혔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실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당선되길 바란다.

 

올해 읽은 책 중 단 권 기준으로 가장 두꺼웠다. 읽는 시간도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많이 걸렸다. 읽고 싶은 책이라기보단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던 책인데 내겐 좀 어려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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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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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의 가족은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이다. 현재는 입양 등의 방식으로 가족이 되기도 한다.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은 혼인이 깨짐과 동시에 해체되고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서로 보지 않고 살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기본적으로 가족주의 정서가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가족이라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무조건 감싸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쏟아지는 패륜 관련 뉴스들,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자식은 부모를 해하는 패륜 관련 뉴스들을 보면 그들이 가족이라는 사실이 의심스럽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 문제로 인식되지만, 오늘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현상만은 아니다.

 

『가족기담』은 가족이야기가 담긴 고전을 재해석한 책으로 가족이란 이름에 감춰진 잔혹한 진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총 9장으로 되어 있는데 나에게는 1장의 제목 ‘우리 이 애를 묻어버립시다’가 가장 충격이었다. 아이에게 부모는 어떤 경우에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지만 고전<손순매아> 속 부모에게 아이는 ‘언제든지 버려지고 희생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손순매아>의 부모가 아이를 묻어버릴 충격적인 생각을 한 이유는 아이가 늙은 어머니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부모의 행동 원인을 노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아닌 지독한 가난에서 찾았다. 자기 몸만 아는 이기적인 조부모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조부모라면 손자의 죽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효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발생할 수 있다.

 

옛이야기나 현재 이야기에서 가족이 가족에게 해를 끼친 이야기를 접하면 그들의 관계는 친자 관계가 아닐 거라고 먼저 생각하게 된다. 진실은 믿음을 배반하는 법! <손순매아>와 같은 장에 실린 <장화홍련전>에선 장화를 결혼시키면 해결될 문제를 결혼시키지 않음으로써 불씨를 남긴 아버지 배좌수의 모호했던 행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자식은 오직 부모만을 믿고 세상에 나왔다. 자식의 처지에서 부모마저 믿을 수 없는 공포만큼 더한 공포가 있을까?

 

물론 <손순매아>나 <장화홍련전>의 부모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지나치리만큼 사랑을 베풀기도 한다. <여우누이>의 부모처럼 자식을 편애하다 여우로 만들기도 한다. <여우누이>의 이야기 또한 현실에서 존재하는 이야기였다.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들, 아이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는 부모들은 자식을 괴물로 만들지 않던가.

 

부모와 자식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면 부부는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이다. 부부 관계는 두 인격체의 동등한 만남이어야 하지만 고전에선 그리고 과거에는 남성 중심의 일방적인 관계였다.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대상의 불과했다. 저자는 제2부인이긴 하지만 처였던 <옥루몽>의 황부인이 첩인 벽성선을 투기했던 것을 단지 ‘처’가 되고 싶었던 것으로 보았다. 그녀에게 ‘진짜’ 처가 되는 것은 한 인간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열녀함양박씨전> 역시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희생당한 여성의 이야기로 읽힌다.

 

많이 다양해졌지만, 드라마는 가족이야기와 연애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소설가들은 가족이야기를 적어도 한 번쯤은 다룬다. 우리가 각박한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건 미래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저 하늘의 별처럼 너무 멀다. 삶을 놓고 싶은 순간이라도 내 곁에 무조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아마도 이것이 작가들이 가족이야기를 쓰고, 대부분 가족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유가 아닐까.

 

『가족기담』에서 만난 고전 속 가족은 현실 속 가족만큼이나 잔혹했다. 『가족기담』 속 고전들은 저자의 해석이 아닌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가족의 진실을 만나는 일은 무섭고 불편했지만, 저자의 해석은 흥미로웠다. 고전 속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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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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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예스럽게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다. 어제 뉴스에서 자살률의 증가만큼 흉악범죄 사건도 증가했다는 보도를 봤다. 영국 런던 대학은 세계 32개 도시의 자살률과 타살률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자살률이 높은 사회는 타살률도 높았다고 한다. 자살의 원인 중 70~80%를 실직과 빚 등 경제문제이고, 자신의 절망적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타살을 저지른다고 한다.

 

노동(勞動)이란 움직여 일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신을, 누군가는 육체를 움직여 일한다. 노동하면 보통은 육체,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말한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적어도 굶지 않던 시대가 있었다. 내 부모님은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지금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굶는 시대다.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밖의 다른 것들, 아이들의 교육, 자기 발전을 위한 투자, 문화생활, 미래의 삶을 위한 예금은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게으름과는 무관한 문제다.

 

『노동의 배신』은 『긍정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저임금 노동자로 살면서 몸소 겪었던 ‘워킹 푸어((Working poor) 생존기’이자 노동자들의 빈곤문제를 비판한 책이다. 바버라는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은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품고 웨이트리스, 청소부, 판매원 등 실제 저임금 노동현장에 끼어들었다. 끼어들었다는 말을 썼지만, 그녀의 표현대로 그 일은 실제 수백만 명 미국인이 매일 사는 일, 일상이었다. 그녀는 쉬지 않고 일하고 먹을 것을 아끼고 집세를 아껴 트레일러에 살았지만, 빈곤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녀는 알게 되었다, 가난할수록 더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부양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녀의 삶은 빈곤했다. 하나의 직장으론 해결할 수 없는 가난이었다. 적어도 급여는 최소한 한 사람이 의식주는 해결될 만큼은 지급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정규직으로 대기업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E는 소주 한 잔 마실 친한 동료가 없다고 했다. 그는 관리자들은 직원들이 모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퇴근 후엔 몸도 피곤하고 관리자들에게 말이 새어 들어갈까 봐 별도의 만남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버라는 돌아갈 곳이 있었지만, 나이가 많은 E는 그곳에서 해고되면 돌아갈 곳이 없었다. 공장도 힘들게 들어간 자리였다. 청소부의 삶을 살았던 바버라는 삶의 모든 순간 중 그때가 가장 암울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어려운 이유는 급여는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고용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금상승 막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소위 부하직원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던 나의 상사는, 좋은 고용주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상사는 정작 자신이 사업주가 되니 우리 고용주였던 대표의 장점은 버리고 나쁜 점만 그대로 답습했다. 신규 업체였으니 회사 사정이 어려웠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상사의 태도는 나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나는 다른 고용주들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저임금으로 더 많이 일을 시켜 많은 돈을 벌까 일 것이다.

 

『노동의 배신』은 2001년 출간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현대의 고전’이라고 한다. 출간 이후 10여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책이 유효한 이유는 그때 이후 노동자들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체감으론 더 나빠진 것 같다.

 

워킹 푸어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저임금에 무시를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많기에 워킹 푸어에게 무작정 복지혜택을 늘릴 수도 없다. 길을 가다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한결같이 단기간에 배우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 과정을 수료해도 취직이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설사 취직을 했다 해도 저임금을 받는 노동일이나 유료봉사 관련 복지일 뿐이다. 공공 일자리도 생색내기용이 많다. 예산 문제가 있겠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 프로그램과 일자리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용주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책이 출간된 지 10여 년이 지났고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절망 너머의 희망을 꿈꿔본다. 10여 년이 흐른 후에 이 책이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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