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Imagine no possession,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비틀즈(The Beatles)의 멤버였던 존 레논(John Lennon)은 에서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는 동안 계속 이 노래가 맴돌았다.

 

아쓰야, 고헤이, 쇼타 세 명의 청춘은 도둑질하고 도망치다 쇼타가 우연히 발견한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폐가에 머문다. 우연이 아닌 필연일까. 그들은 폐가에 머물자마자 ‘달 토끼’에게 상담 편지를 받았다. 무릇 상담자는 상대의 고민을 경청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그들은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잘 살면 잘 살아서, 못 살면서 못 살아서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나만 생각하고 살기도 바빠 남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마음의 문제를 시간의 문제로 돌린다. 쇼타 일행은 40년 된 주간지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나미야 유지 씨가 나야미(悩み, 고민)을 해결해주었다는 글을 읽게 된다. 아쓰야의 말대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였지만 고헤이와 쇼타는 ‘달 토끼’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들은 선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달 토끼’의 세상은 현재가 아닌 과거였다. 아쓰야, 고헤이, 쇼타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휴대폰으로 알아낸 정보를 이용해 ‘달 토끼’, ‘생선 가게 뮤지션’, ‘길 잃은 강아지’에게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냈다. 사십 년 전 나미야 유지가 아들 나미야 다카유키에게 한 말처럼 상담 편지를 보낸 이들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었다. 다만 확신이 없었을 뿐.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내린 답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린 리버’의 불행 이후 나미야 유지는 나미야 잡화점을 닫고 편지 쓰는 일을 그만두었다. 죽음을 예감하며 마지막으로 들린 나미야 잡화점에서 나미야 유지는 미래에서 온 감사편지들을 받게 된다. 그 중엔 나미야 잡화점을 닫게 한 ‘그린 리버’의 딸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보낸 감사편지도 있었다. 어머니‘그린 리버’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던 아이에게 어머니의 진실을 알려준 이는 환광원에서 같이 자란 친구 새리였다.

 

가수 새리의 삶에 빛을 준 사람은 ‘생선 가게 뮤지션’이었다. ‘생선 가게 뮤지션’은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음악<재생>은 새리에 의해 재생되었다. 세리는 환광원 아이들의 자랑이자 희망이었다. 환광원에서 지냈던 와쿠 고스케는 그곳에서 만난 무토 하루미로부터 자신이 만들어준 목각 강아지를 보물처럼 간직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빛이 되어 있었다.

 

와쿠 고스케는 ‘나미야 잡화점’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부모에게서 달아나 후지카와 히로시라는 새 이름으로 살았다. 와쿠 고스케는 ‘Bar Fab 4’의 마담이 자신이 비틀즈 음반을 팔았던 친구 마에다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를 통해 몰랐던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다. 혼자의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엔 없다.

 

‘길 잃은 고양이’는 훗날 사업가로 성공한 무토 하루미였다. 무토 하루미는 경영파탄 위기에 놓인 환광원을 살릴 계획을 세웠지만 ‘환광원 아이들’은 그녀의 진심을 오해했다. 환광원에서 한 시절을 보냈던 사토 일행은 무토 하루미의 별장을 털려다 무토 하루미를 만났다.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편지를 보냈던, 그리고 답장을 썼던 이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미움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즈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269쪽)

 

일이 풀리지 않을 땐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세상을 원망한다. 하지만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 소설에서 만난 이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힘들면 도망칠 궁리부터 하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어려운 문제 앞에 도망치지 않았다. 끝없이 고민했고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타인을 향해 용기 있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아마 그것일지 모른다. 손을 내미는 것.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하나로 이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소설이었다. 소설의 세계는 존 레논의 상상이 완벽하게 실현된 세계는 아니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세계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서로를 놓지만 않는다면 세상이 하나가 되는 일은 불가능한 꿈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내겐 다시 한 번 삶의 희망을 품게 한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옥설계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인사건의 발생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그 다음엔 형사와 살인범의 쫓고 쫓기는 대결이 펼쳐진다. 아니면 탐정이 등장해 추리를 통해 범인을 찾는다. 이인화의 『지옥설계도』는 대구 리젠트 호텔에서 총기를 사용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쉰도 다 된 나이에 집도 재산도 가족도 친구도 없는’ 김호가 사건을 맡지만,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김호는 용의자로 지목된 자오얼을 심문하는데 기계 같고 괴물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자오얼은 보통의 인간이 아닌 ‘강화인간’, 지능이 강화된 인간이었다. 피해자인 이유진과 용의자 자오얼은 모두 강화인간들로 심비아틱 플래닛 파티(Symbiotic Planet Party(더불어 사는 행성당, SPP) 즉 공생당(共生黨)의 일원이었다. 역시 강화인간인 새라 워튼은 공생당 살해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김호의 딸을 납치한다.

 

이유진의 약혼녀 고은아는 대학에 가는 꿈을 위해 밑바닥 삶을 견뎠다. 그녀에게 이유진은 삶의 희망을 준 천사였다. 새라 워튼은 7개월 전 이라크에서 총에 맞아 죽음의 문턱에 갔을 때 이유진의 도움을 받고 살아났다. 새라 워튼 역시 이유진을 통해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었다. 강화인간이 되기 전까지 이유진의 삶 역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삶이었다.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날엔 게임 덕후로 살았다. 안준경은 게임 속 세계에서 이유진을 만났다. 준경은 실제 유진을 보고 “아,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병신도 저렇게 멀쩡하게 사는구나…… 아무리 슬퍼도 죽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준경이 바그다디의 열 한명의 부인 중 한 사람인 캘리에게 끌린 것은 그녀에게서 고단했던 과거 삶의 흔적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강화인간들은 강화인간이 되기 전에는 희망을 꿈꾸는 것 자체가 사치인,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강화인간이 됨으로써 그들은 밑바닥 삶에서 벗어났지만, 완벽히 행복하진 못했다. ‘강화인간에게 인간의 감정과 욕망과 가치관 같은 것은 모두 신경생리학적 구조물이었다.’

 

새라 워튼과 준경은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의식불명이었던 벤이 카마엘의 최면 공격을 받아 의식 불명되었다고 생각했다. 벤이 사로잡힌 최면은 유진이 구상했던 가상 세계 인페르노 나인(지옥 9층)인데 준경은 그 세계로 들어가기로 한다. 준경은 새라 워튼에게 이야기로 되어 있는 최면의 설계도를 찾아 달라고 말한다.

 

살인사건은 김호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은 중국과 미국이 얽혀 있는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강화인간들은 비밀리에 자체적으로 강화인간을 만들어 공생당이라는 지하 조직을 만들었는데 카마엘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강화인간들을 제거했다. ‘그들’에게 다른 생각을 품은 인간들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죠. 전쟁은 어느 일방이 이해하는 단순한 대의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서로의 이해가 상충될 때 그 상대방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자기가 설 수 없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준경이 인페르노 나인에서 만난 암호명 역천사 루아메이는 각성에서 현실로 돌아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녀에겐 28년 동안 밑바닥 삶을 전전했던 현실 세계보단 159년 동안 살았던 가상 세계가 더 현실이었다. 루아메이에겐 전쟁이 없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인생이라는 그녀의 말을 서글펐다.

 

더불어 잘 사는 일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런 꿈을 꾸지 않는 이들의 힘이 강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에서 사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삶에 대한 마지막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무력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강했던 것이 아니라 상대가 약했던 것입니다. 강화인간들은 세상의 변화를 꿈꾸지만 세상은 항상 지키자는 쪽이 더 강하고 바꿔보자는 쪽은 약하지요. 지키려는 쪽은 가진 것을 잃는다는 게 죽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바꾸려는 쪽은 뭔가를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처럼 절박하지 못해요. 수비는 쉽고 공격은 어려운 법이니까요.”(467쪽)

 

가져보지 않았기에 절박하지 않다는 카미엘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지만, 그 세상은 사실 막연하다. 변화를 꿈꾸는 자들은 변화 이후의 세상을 알지 못하기에 망설이지만, 지키려는 자는 부재한 삶의 고통을 알기에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저희는 이 나라가 걷게 될 운명입니다. 이 땅의 가장 약하고, 어리석고, 못 가진 사람들 속에서 나타난 저희들은 반란에 나설 것이고 그것은 혁명이 될 것입니다.……”(475쪽)

 

게임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 세상을 알면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현실을 사는 우리가 가상 세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인정하고 그 세상에서 배운 것을 현실에 응용해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닥으로 떨어진 생, 더 이상 내려갈 것도 없는 생이지만 아직은 지옥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약하고, 어리석고, 못 가졌지만. 현실이든 가상 세계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울물소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이 만든 필연일까.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들은 ‘이야기’ 혹은 ‘이야기를 만들거나 들려주는 사람, 즉 이야기꾼’에 관한 이야기였다.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이야기(문학)가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말했고, ‘8년을 기다려 온 이야기꾼의 귀환’이라는 띠지 문구를 내세운 장편소설 『지옥설계도』의 소설가 이인화는 최면 세계로 들어간 강화인간이 죽어도 소멸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깨어나려면 이야기로 된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통해 이야기의 가치에 대해 말했다.

 

나는 추석이 지나자마자 길을 떠날 작정을 했다. 건어물과 소금 지게를 지고 열두 고개를 넘어 산간 마을을 다녀온 장돌뱅이 안 서방이 그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소식이랬자 별로 시원한 내용은 아니었다. 안 서방이 들었다는 소문은 그 원수가 덕유산 자락 어딘가에 자리를 틀고 앉아 도를 닦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위인이 한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다는 소리도 어딘가 걸맞지 않건마는 더구나 도를 닦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도라면 재작년 그저께 온 세상을 들었다 놓고 도처에서 피박살이 나버린 ‘천지도’란 요물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겐가. 애고, 복도 없고 가련한 이내 팔자.(9쪽)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에 나오는 첫 문단이다. 첫 문단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소설은 ‘나’ 연옥이 ‘그’ 이신통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연옥은 월선이라 불리던 관기가 선전관과 눈 맞아 구례댁이 된 이후에 태어난 아이다. 이별전을 받고 돌아온 엄마 구례댁과 같이 살다 오동지의 재취로 갔지만, 그는 투전판을 집으로 아는 남자였다. 시할머니의 소망이었던 아들을 낳아 대를 이었다면 달라졌을까? 연옥은 남편이 없을 때 집에 화적이 들자 이후 친정으로 돌아왔다. 딸은 어미 팔자를 닮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결혼 전 자신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 신통을 다시 만난 연옥은 살림을 차렸지만, 그는 천지도 일을 다시 해보겠다며 길을 떠났다. 서자였던 아버지의 얼자인 신은 글 읽는 선비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어 한양에 갔다가 서일수를 만나 이신통이란 이름의 전기수가 되고 천지도에 들어가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천지도는 동학을 발전시킨 종교, 천도교를 소설화한 이름이다. 『여울물 소리』는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등으로 표기되는 동학혁명과 갑오개혁 등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허구와 사실이 혼재하는 소설이다. 천지도인들은 ‘주어진 환경에 휘둘리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석영은 21세기에 천도교를 내세운 이유는 당시보다 100년 넘게 흘렀음에도 이 세상이 여전히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특별한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믿고 싶지 않은 진실 때문일 것이다.

 

계급으로 친다면 가장 밑바탕인 천한 신분의 여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은 좋은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것인데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신통이 여자들에겐 새로운 세상을 주지 않았던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는 자고로 바깥에서 큰일을 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말해지던 세상이니 이해는 하지만.

 

연옥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이신통의 삶과 그가 천지도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퍼즐 조각처럼 작은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커다란 퍼즐 판, 이야기를 완성했다. 신통의 이야기를 들은 연옥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혹은 남기는 이야기이자 ‘비행운’의 날 속에서 좋은 날을 기다리는 이들의 간절함이 담겨 있는 이야기였다.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488쪽)

 

『여울물 소리』는 얇고 폭이 좁지만 세차게 흘러가는 여울처럼 사람들 역시 그렇게 살아갈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 소설이었다. 목수이자 전시 기획자인 김진송은 최근 저서『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에서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 세상은 살아 있는 세계가 아니다’고 했다. 이야기가 아닌 말이 범람하는 세상, 이야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진짜 이야기에 관한 갈급함이 황석영으로 하여금 판소리와 민요 등 옛이야기를 복원하게 했고 이 소설을 쓰게 했을 것이다. 황석영은 『여울물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들에 의해 삶은 소멸하지 않고 이어진다고 말했다. 우리가 꿈꿔야 할 세상은 바로 이야기가 흐르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은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는 세상,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얽힘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
루이자 길더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얽힘의 시대(THE AGE OF ENTANGLEMENT)』라는 책 제목을 보고 복잡한 이 시대를 상징하기에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얽힘의 시대』의 부제는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물리학의 역사’이다. 제목에 나온 ‘얽힘’은 양자물리학의 현상 중 하나로 ‘얽힘의 시대’는 양자물리학의 역사를 의미한다. 내가 생각했던 얽힘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양자물리학의 얽힘은 필요한 현상으로 읽힌다. 양자물리학이든 얽힘이든 내겐 단어만으로도 낯설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물리학 이론은-수학은 제쳐 놓고-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네.”라고 말했다지만 여전히 물리학은 높다. 애초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산처럼. 그런데 그냥 물리학도 아니고 양자물리학이라니!

 

양자물리학은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하는 물리학으로 ‘입자가 가지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측정에서의 불확정 관계 따위를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태동기에 얽힘이라는 현상이 어렴풋이 알려졌고 벨에 의해 본격적인 파헤쳐졌다고 한다.

 

대화로 인해 우리가 살면서 매일 경험하는 세계가 미묘하고 극적으로 바뀌는 것처럼 물리학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가 어떻게 양자물리학이 전개되는 방향을 바꾸었는지 말해 준다.(12쪽)

 

저자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책에는 아인슈타인, 파인만 등 많은 물리학자가 등장하며 그들이 했던 말들이 등장한다. 물리학은 말들의 향연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이 말이 전부 맞지는 않지만, 일부는 맞다. 부제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물리학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중심은 ‘양자물리학의 역사’ 이전에 ‘대화’에 있다.

 

하이젠 베르크는 “과학은 실험에 의존하긴 한다. 하지만 과학의 뿌리는 대화다.”라며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화’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을 푸는 열쇠인 줄 알았더니 과학에도 유효한 모양이다.

 

스승이었던 루돌포 파이얼스 경에 의하면 벨은 “누구나 그렇다고 여기는 견해를 당연시하지 않고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라고 묻고 했다고 한다. 과학은 실험에 의존하지만, 추론 후 오류를 찾는 과정의 반복에 의존하기도 한다. 추론하고 오류를 찾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과학이든, 우리 삶이든 혼자만의 세계에선 발전할 수 없다. ‘두 실체는 늘 상호작용을 하며 얽힌다.(19쪽)’ 양자물리학의 발전에는 양자물리학자들의 얽힘이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양자물리학은 양자물리학자들의 논쟁과 더불어 서로의 존재 때문에 발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의 20년 전에 내가 무얼 연구하는지 플랑크가 물었던 적이 있네. 그래서 내 마음속에 막 떠오르기 시작했던 일반상대성이론의 뼈대를 설명해주었네.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 ‘선배로서 하는 말인데 그런 연구는 하지 말게나.’” 아인슈타인은 플랑크 흉내를 내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검지를 흔들었다. “‘왜냐하면 우선 자네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설령 성공하더라도 아무도 자네를 믿지 않을 걸세.” 아인슈타인의 눈이 반짝였다. “마찬가지로 선배로서 하는 말인데, 나도 자네가 하는 연구에 반대하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 다음 드 브로이를 향해 어정쩡하게 웃었다. “우선 자네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설령 성공하더라도…….”

드 브로이가 웃으며 말을 맺었다. “누구도 절 믿지 않겠지요.”

둘이 역의 정문을 나와 서로 제 갈 길을 가려던 참에 아인슈타인이 외쳤다. “하지만 계속하게! 자네가 가는 길이 옳으니 말일세.”(199쪽)

 

젊은 날의 우상이었던 아인슈타인에게 계속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브로이는 많이 기뻤을 것이다. 그는 훗날 지쳐서 마음을 바꿨지만, 과학이든 예술이든 한 길을 가는 사람들에겐 자신이 가는 길이 옳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더불어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이 책의 물리학자들은 증명한 것처럼.

 

나는 여전히 양자물리학이 어떤 학문인지 모른다. 물리학자들의 논쟁 차이도 잘 모르지만 어떤 발전에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것 같다. 책도 두껍고 내용도 만만치 않아 내겐 버거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WHAT IS MADNESS?’는 정신분석가 대니언 리더가 쓴 『광기』의 원제이다. 우선 ‘미치다’를 사전에서 찾으면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미치다1

1-1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1-2 (낮잡는 뜻으로)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다.

1-3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매우 괴로워하다

2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열중하다.

 

미치다2

1 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

2 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또는 그것을 가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광기’는 ‘미치다1’의 1-1의 뜻이다. 『광기』에선 ‘정신병’과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 보통의 치료사들, 혹은 우리는 정신병자들을 ‘치료해야 할 대상’ 혹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본다. 저자는 피에라 올라니의 말을 인용하며 정상화의 집착은 ‘정신병자들을 향한 폭력’이라고 보았다.

 

평범한 삶이란 우리가 실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실재를 길들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290쪽)

 

정신병자들의 정상화는 우리의 세계는 정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치료사들은 ‘그들’의 세계를 비정상으로 판단하고 우리의 세계로 편입하려 한다. "이 세계는 정상일까?"라는 질문에 "Yes."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음에도. 

 

정상과 비정상(혹은 이상異常)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정신병원에 가면 한두 가지 정신병 진단을 받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신병의 범주는 넓고 다양하다. 저자가 인용한 것을 재인용하면 라캉은 ‘정신병의 촉발은 어떤 생각과 분명하게 상관이 있다’고 했다. 상징계에서 폐제되어 조용한 광기(quiet madness)로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정신병으로 나오는 것이다.

 

정신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우선 정신병을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신경증과 정신병은 ‘답을 주입하는 방법’에 따라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정신병은 리비도가 바로 여기에 있는 데 비해 신경증은 리비도가 언제나 결여감과 연결된다고 한다. 편집증은 리비도가 타자의 영역에 자리해 박해자에 집중하고, 정신분열증은 리비도가 바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몸으로 침투, 즉 바깥의 힘이 자신을 누른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정신병 진단에 중요한 것은 ‘환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데, 말하는 내용이 아닌 환자가 대상(사람 혹은 사물)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살펴봐야 한다.

    

관계 맺는 방식을 살피기 전에 할 일은 환자와 치료사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치료사와 환자는 전달자(청취자)와 청취자(전달자)가 아닌 소통하는 관계여야 한다. 우리가 대화하다 갑자기 침묵하는 건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치료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음을 수시로 표현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프로 라이히만의 말은 진리다. 치료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해도 안 되고, 내 시선 혹은 사회적 잣대로 그를 바라보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친구에게 마음을 터놓은 이유를 생각해 보자. 무조건 내 편이고 나를 도와주기 때문 아니던가.

 

개인적인 관심으로 잠깐 미술치료를 공부한 적이 있다. 당시 마음이 힘들었던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힘들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치료사는 세상을 보는 열린 시각과 견고한 자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미친 것(being psychotic )과 미치는 것(going psychotic)은 다르다.’ 『광기』는 광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정신병자들을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정신에 이상이 생겨 미친 사람이 아닌 삶의 열정으로 미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치료사뿐 아니라 우리들의 노력에도 달려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