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배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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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만나기까지 몇 개월에서 몇 년의 시간을 기다린다. 소년의 부모 역시 오랜 기다림 끝에 소년을 만났을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태어난 아기에게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숱한 밤 한자사전을 넘겼을 것이다. 그러다 큰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태봉(太峯)이라고 지었을 것이다. 한자는 다를 수 있지만 이름을 지은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배달』의 태봉은 중심의 삶에서 밀려난 아버지, 아버지가 투명인간이 되어 가는 걸 볼 수 없다며 자신까지 버리고 떠난 어머니 때문에 다양한 욕망이 몸과 마음을 충동질하는 나이임에도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소년이 되었다. 태봉의 장래희망은 큰 사람이 아닌, 쓸모없는 인간 즉 잉여인간이었다. 낮에도 어둠으로 가득한 반지하의 현실을 홀로 견디는 소년에게 꿈은 너무 멀리 있었다.

 

슬아는 태봉과는 달리 좋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태봉과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한 삶을 살았다. 입양아였던 슬아는 역시 입양아였던 동생 상하가 파양된 것을 보고 자신도 언젠가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다. 태봉과 슬아에겐 고아 의식이 있었다. 슬아는 자신의 진짜 부모가 궁금했고 태봉은 부모의 존재를 부정했다. 부모가 존재하지 않으면 아이들 역시 존재할 수 없는 법. 태봉과 슬아의 심연에는 자신들이 지금 여기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슬아는 삶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건 용기를 냈다. 그것은 불안해서 포기하는 생이 아닌 제대로 살아내고 싶은 욕망이었다. 태봉이 없었다면 용기를 내는 일은 어렸을 것이다. 태봉이 위기 앞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근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려진 생이었지만 태봉 아버지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태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재는 존재에 의해 힘을 얻는다.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모든 잘못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든 잘못이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불명확한 기억에 의지해 그릇된 믿음을 갖는 일은 더 위험하다. 슬아 엄마가 상하를 보낸 것은, 태봉 엄마가 태봉을 떠난 것은 아이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그것이 ‘바람의 아이들’을 집에서 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슬아 엄마는 상하를 보내는 것이 깊은 동굴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인 줄 알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태봉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슬아와의 특별한 배달 길에서 태봉이 만난 진실은 엄마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 아버지는 버려진 쓰레기 같은 삶이었지만 삶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슬아가 만난 진실은 동생과 자신의 삶은 엄마의 선택이 아닌 ‘자신이 키운 욕망’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태봉은 배달원 일구 아저씨와 퀵클리쌩 삼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이며 선택한 삶에 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순도 높은 금을 만들고 싶다. 버려진 것들에 오히려 순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145쪽)

 

태봉의 아버지는 쓸모없어 버려지는 생, 잊히는 생이 아닌 존재하는 생을 원했다. 태봉의 아버지는 버려지는 생은 죽은 생이 아니라는, 얼마든지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걸 자신에게, 그리고 태봉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존재하는 것 중 빛나지 않는 생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지 않아 당장은 흐리게 보일 뿐.

 

자식들은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어떤 일도 감당해야 한다고. 자신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존재하게 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자식들은 부모가 슈퍼맨이길 바라지만 부모 역시 자식 앞에선 슈퍼맨이 되고 싶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부모 역시 인간이다. 누구나 안개를 만나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부모와 자식에게 필요한 것은 원망하기보단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삶을 보내는 시간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과 달리 행동은 늘 엇나간다.

 

구불텅구불텅 길의 휘어짐에 따라 자동차는 흐름을 타고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과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다른 표정을 지으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딘가로 향하는 건 분명하다. 제각각의 정리와 다짐과 결별과 선택과 욕망과 갈등과 무수한 시행착오를 안은 채. 묵·묵·히. 어느 날 느닷없음과 맞닥뜨릴지라도.

그리고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먼지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길 바라면서, 어느 날 우두커니 서서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여기 있지?(219쪽)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살고 있다. 식물들은 생동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길을 잃어버린 나는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 다시 길을 찾아 나설 엄두도 못 내고 무기력한 시간을 살고 있다. 내가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든 말든 공평하게 시간은 흐를 것이고 봄은 올 것이다. 김선영은 『특별한 배달』을 통해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택은 늘 옳은 것은 아니라서 때론 후회의 시간을 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 존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삶의 목적지는 여전히 모호하더라도. 아이들처럼 웜홀을 통과할 순 없지만(설사 있다 해도 모험을 떠날 용기는 없다. 어른이 되니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보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계절이 바뀌는 요즘 삶의 시간을 중간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시한 오늘의 삶이 당장 찬란한 내일의 삶으로 변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오랜 시간 풀지 못했던 삶의 미스터리 중 한 조각을 찾게 될 테니까. 그 한 조각으로 험난한 우리 인생길이 좀 편해질지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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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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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싱클레어’의 시절을 산다.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기도 하는 세상은 혼란이었다. 떠들고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해 문제집을 펼쳤지만, 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연히 한 친구가 교과서 밑에 『데미안』을 숨겨 두고 있는 걸 봤다. 그때 알았다. 싱클레어의 시절을 사는 아이는 나뿐이 아니라는 걸. 반가웠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른이 되면 혼란은 없고 명쾌할 줄 알았다. 수레바퀴를 통과하니 더 큰 수레바퀴가 있었다. 그다음엔 그보다 더 큰 수레바퀴가 있었다. 알을 깨뜨렸다고 생각했으나 또 다른 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른이 되었어도 나의 시간은 여전히 싱클레어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절망했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110쪽)

 

그 시절 읽었던 책들의 수많은 문장 중 망각의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문장이다. 나는 ‘한 세계’를 학교와 집이라고 해석해 내가 나답게 살려면 학교와 집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탈선으로 오인되는 가출이 아닌 당당하게 집을 나가려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다. 시간은 왜 그리 더디 가던지.

 

두 개의 세계 중 ‘밝고 올바른 세계’를 살았던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의 유혹에 넘어가 옆에서 보기만 했던 ‘금지된 세계’로 들어갔다. 싱클레어는 데미안 덕분에 ‘금지된 세계’에서 나왔지만, 데미안과는 오히려 멀어졌다. 그에겐 데미안의 ‘카인의 세계’ 역시 ‘밝고 올바른 세계’가 아닌 ‘금지된 세계’였다. 데미안은 ‘밝고 올바른 세계’도 ‘금지된 세계’도 아닌, 누군가가 정한 세계가 아닌, 선과 악의 존중 속에 스스로 허용한 세계를 살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처음 맛본 ‘금지된 세계’의 경험이 지옥이었던 싱클레어에게 한 발은 ‘밝고 올바른 세계’에, 한 발은 ‘금지된 세계’에 두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알폰스 베크를, 베아트리체를 만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금지된 세계로 들어갔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자신의 집에 있던 문장의 새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낸 것은 프란츠 크로머 때처럼 데미안이 도와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기보단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오’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날고 있는 피스토리우스가 싱클레어의 질문에 답을 했던 것은 잘 날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날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싱클레어는 질문하고 답을 고민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사이 크나우어의 데미안(또는 피스토리우스)이 되어 있었다. 추측건대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크나우어 역시 싱클레어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위태로워 보이는 세계가 파멸하지 않고 다시 생명력을 갖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태어나는 일은 언제나 어렵죠. 당신도 알죠. 새는 알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애쓴다는 걸. 돌이켜 물어보세요. 길이 그토록 어려웠던가? 오직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던가? 당신은 그보다 더 아름답고 쉬운 길을 알 수 있었을까요?(171쪽)”

 

다시 『데미안』을 읽는 동안 한 걸음 나아간 싱클레어와 달리 내가 여전히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이유, 아니 알 속에 다시 갇힌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리석은 나는 경험한 두 세계를 공평하게 기억해야 했음에도 밝음의 세계는 잊고 어둠의 세계만을 기억했던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경험은 망각하고 불행한 경험들만 기억하곤 삶을 불신했다. 타인에겐 희망을 얘기하면서 정작 나는 삶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거짓의 가면이었다.

 

“알에서 깨고 나와도 높이 날지도 멀리 날지도 못할지 몰라. 날자마자 추락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은 알보단 넓은 세계가 존재해. 그건 아주 근사하지.”

 

다시 만난 헤르만 헤세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데미안』은 많은 싱클레어들보다 먼저 ‘수레바퀴 아래서’의 시간을 통과한, 그래서 더 넓은, 더 깊은 세계를 맛본 헤르만 헤세의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희망 없이, 숨이 붙어 있으니까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 시절에 머물고 있던 것이 아니라 살고 있었다고 믿고 싶다. 알의 세계를 깨뜨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나는 계속해서 싱클레어의 시절을 살 것이다. 더 많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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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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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선과 악, 이분법으로 구분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현대처럼 복잡다단한 세상에선. 하지만 쏟아지는 인면수심 뉴스들을 보면 세상은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순 없다는 내 생각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잘못 없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키워준 노부모에게, 자신의 자식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는 인간으로 할 일이 아니기에.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 해도 용서할 수 없었다. 내게 그들은 그냥 악인이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미스터리 걸작선①인 『잠복』이다. 표제작을 포함한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카르네아스의 널』은 계획된 살인이 아닌 의도치 않은 살인이 발생하지만 7편의 단편은 모두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피해자들은 연인이나 아내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얼굴』, 『일 년 반만 기다려』) 아버지에게 죽을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귀축』).

 

살인자들에겐 범죄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현재 그리고 앞날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얼굴』의 이노 료키치가 호스티스 야마다 미야코를 죽인 것도, 『귀축』에서 소키치가 아이를 익사시키려 했던 것도, 『잠복』에서 시의원 이시이 엔키치가 미나미 토목과장을 죽인 것도, 『일 년 반만 기다려』에서 스무라 사토코가 남편을 죽인 것도,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에서 요시코가 살인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비약하자면 그들에겐 내 삶만 소중하고 타인의 삶은 하찮게 여기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었다.

 

완벽해 보였던 계획이 완전범죄가 되지 못한 이유는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얼굴과 독특한 목소리, 그것을 기억하는 특별한 목격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거나(『얼굴』, 『목소리』), 자신의 범죄가 완벽한지 확인하고 싶어 스스로(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흔적을 남겼기 때문이거나(『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귀축』) 사소한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의심부터 하고 보는 기자나 소설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잠복』,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일 년 반만 기다려』에서 여성 평론가 다카모리 다키코가 본 모습은 스무라 사토코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단편만 보고 그 사람을 전부 안다고 말하는 건 오만이다. 형사가 아닌 이상 사람에 대해 의심부터 하는 일은 서글픈 일이지만 누군가의 처지를 대변하거나 변호할 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스무라 사토의 인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흐르지 않았다.

 

범죄자 중 가장 동정의 여지가 컸던 인물은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의 요시코였다. 그녀는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 파병에서 돌아오는 남편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스기모토 류지에게 범죄 사실이 들통 난 그녀는 증거가 없어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지만 도망치길 멈췄다. 『카르네아스의 널』의 구무라 다케지는 스승이자 동료교수인 오쓰루 게이노쓰게를 파멸시키기 위해 호스티스 애인을 이용했지만 오쓰루와 애인이 함께 있는 시간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잠복』은 『점과 선』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자 첫 번째 단편집이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는 사람에 대한 불신과 세상에 대한 공포가 가득하다. 『잠복』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그린 소설집이지만 읽고 나서 처음 느낀 건 공포가 아닌 안도감이다. 잠복하고 있던 그들의 양심은 마지막 순간 세상으로 나왔다. 그들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이지만(그 점에선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엔 잔인함과 뻔뻔함이 아닌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 있었다. 아직은 짐승이 아닌 인간이었다. 내게 『잠복』은 삶은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아직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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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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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고 설도 지났으니 곧 봄도 오겠지요?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겨울은 길 것이고, 봄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 겨울은 아주 짧을 것입니다. 삶의 시간은 사람에 따라 아주 길 수도 너무 짧을 수도 있지만, 하루의 길이는 모두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날은 긴 하루를, 어느 날은 짧은 하루를 살아갑니다. 물론 실제 시간이 아닌 체감의 시간입니다. 긴 하루를 보냈다고 해서 잘못 산 것도 아니고 짧은 하루를 보냈다고 해서 잘 산 것도 아닐 겁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시간을 귀중하게 썼느냐일 것입니다.

 

『시간 가게』는 시간과 기억을 연결하여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입니다. 윤아 엄마는 보험 설계사를 하며 윤아를 홀로 키우고 있습니다. 윤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엄마는 부지런히 윤아를 위한 ‘보험’을 들었습니다. 교육열이 센 곳으로 이사하고 유명학원에 보내고 특별 과외를 받게 했습니다. ‘보통’의 많은 부모가 하는 일, 혹은 능력 부족으로 해주지 못하지만 해주고 싶은 일일 것입니다.

 

윤아는 원하는 삶이 없었습니다. 그저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윤아가 좋은 성적을 맞고 싶어 하는 것은, 학원에 늦지 않으려는 것은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해주거나 엄마에게 야단을 맞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윤아는 교실 대청소를 하다 학원 버스를 타지 못해 다른 버스를 타고 내려서 걸어가다 시간 가게를 보게 됩니다. 윤아는 시간 가게의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진심으로 행복했던 때의 기억’을 팔아 바늘이 하나뿐인 초록색 손목시계를 삽니다. 버튼을 누르면 십 분 동안 윤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시간이 멎게 되는 것입니다. 십 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분초를 다투는 사람들에겐 긴 시간입니다. 학생들에겐 수학 몇 문제, 영어 몇 문제를 풀 수 있는 시간입니다.

 

주어진 십 분 동안 윤아는 높은 성적을 위해 타인의 답을 베꼈고 남의 준비물을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양심을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이 단짝 친구 다현과의 기억,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사라졌습니다. 높은 성적을 받아 엄마에게 칭찬을 들었지만, 행복하기보단 더 나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겼습니다. 윤아는 시간을 팔아 행복한 기억을 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짜 기억이었습니다. 행복한 기억은 함께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시간을 팔아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의 주인이 자신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냐고 반문한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어른들은 좀 나은 편이지만 아이들은 더욱 곤란합니다. 아이들 시간의 주인은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덜 자란 아이들에게 시간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신과는 다른 생을, 자신보다는 훨씬 나은 생을 살기 바라는 마음이지만 아이들에게 부모의 바람은 버겁기만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 부모도 아이도 행복하지 않은 모순이 발생합니다. 다행히도 똑똑한 윤아는 시간을 사고판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아이가 되었고, 한 뼘 더 성장했습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바쁘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 느리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 바쁘게 살기보단 느리게 살며 산뜻한 바람을 느끼고 싶지만 ‘빠름’을 강조하는 세상을 살다 보니 느린 삶은 패배자의 삶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답을 몰라 헤매고 살아가지만, 내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부모와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대화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시간 가게』에서 

 

사람을 알려면 앞모습보단 뒷모습을 보라고 했던가요? 앞모습은 치장할 수 있지만, 뒷모습은 꾸밀 수가 없습니다. 윤아의 뒷모습은 참 쓸쓸합니다. 자신의 시간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며칠 전 제 뒷모습을 보고 왜 그렇게 지쳐있느냐고 기운 내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윤아보다 한참 나이를 먹은 어른인데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윤아의 뒷모습을 봐줄 사람은 부모를 비롯한 우리 어른들일 것입니다. 제 어머니가 제 뒷모습을 봐주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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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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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소년에겐 ‘여행’이었으나 아직 ‘소년’이었기에 시선에 따라 가출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른을 스무 살부터라고 친다면 스무 살이 되려면 얼마 남지 않은 열아홉 살이니 ‘동안’만 아니었어도 가출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소년은 제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작인 오문세의 장편소설『그치지 않는 비』의 ‘나’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소설가에 대해 언젠가는 한국어로 씌어진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지 못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떠남은 고생이지만 떠나기만 하면 뭐든 얻는 게 있다는 조금은 뻔한 설정임에도 어느새 빠져 읽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 소설이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지 한참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 시절’ 집을 나가고 싶다는, 그야말로 가출을 생각한 적이 있다. 딱히 갈 데도 없고 돈도 없어 실행할 순 없었지만. ‘그 시절’을 한참 지나왔고 ‘가출’이란 단어가 어색한 나이가 되었지만 가끔은 가출을 생각한다. 여행이 아니고 가출인 이유는 여행은 기다려주든 그렇지 않든 돌아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가출은 나를 걱정하며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출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올 수 있다.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비가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요.(100쪽)

너에겐 무너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어. 멈춰 서기 전까지는 걸어야 하는 거야. 멈추지도 않고 걷지도 않을 수는 없어.(199쪽)

 

여행을 하다 뜻하지 않게 고생을 해도 이것도 다 추억이야, 하며 웃어넘길 수 있다. 마음 한구석은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아득할지라도. 인생의 길을 걸을 때 비가 오면 왜 그렇게 겁이 나는지.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건 거짓말처럼 여겨진다. 책을 읽고 밑줄을 쳤는데 나중에 보니 뒷표지와 띠지 뒤쪽에 나온 문장과 겹쳤다. 위 문장과 같은 말을 듣기보단 해주어야 할 나이임에도 내 마음은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형과 짧은 여행을 하며 ‘겸손한 예술가’를 만나고, ‘미세스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케세라세라’를 만나고 ‘우울한 광대’에게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라는 풍선을 받고, ‘19번’을 만나고 ‘대장’을 만나며 핸디캡은 누구나 있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들을 만나며 ‘조금은 이 세계를 좋아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와의 ‘재회’의 가능성이 생겼고 형과의 ‘이별’이 가능해졌다.

 

‘나’가 여행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떠나지 않으면 몰랐던 세상을 만나게 되었기에. 떠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공간’만 알았을 것이고 ‘그저 그런 인생’만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떠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돌아온 세상이 그다지 많이 달라져 있지 않고 살아갈 세상은 여전히 안갯속이라 할지라도. 대장의 말처럼 그래도 그게 인생이므로.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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