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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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이란 이름은 진작 알았지만 시집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 얼굴은 몰랐었다. 어느 시인의 좋아하는 여러 시인의 시를 묶은 시집에서, 시인의 시를 인용한 모 철학자의 에세이에서 시인의 시를 몇 편을 읽었을 뿐이다. 언젠가 TV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했던 시인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인자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은 8년 만의 나온 시인의 정식 시집이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을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흔들린다」중에서

 

시인은 느리게 주변을 걷다 걸음을 멈춘 듯하다. 걸음을 멈춘 이유는 나무의 모습이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함민복이 본 자연들은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시간을 견디고 있는 줄 알았던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고 이파리를 튀우고 있었다. 희망을 꿈꾸는 삶은 결코 비참한 삶이 될 수 없다. 그것이 이루지 못할 꿈일지라도. 예고 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개는 쇠줄에 묶여 있고

사내는 전화기 줄에 묶여 있다

사내가 전화기 줄에 당겨져 외출하면

개는 쇠줄을 풀고 사내 생각에 매인다

 

집은 기다림

개의 기다림이 집을 지킨다

 

고드름 끝에 달이 맺히고

추척,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에 개가 찬 귀를 세운

 

전화기 속 세상을 떠돌다 온 사내가 놀란다

기다림에 지친 개가 제 밥을 놓아

새를 기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 바다가 보이는 그 집의 주인은 사내가 아니다

 

-「동막리 161번지 양철집」중에서

 

전화기 줄에 매달려 위태롭게 살아가지만 쓰러지지 않는 것은 기다리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떠도는 ‘나’는 기다리는 ‘너’ 때문에 비로소 균형을 잡는다. 떠날 수 있는 것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개가 떠도는 사내 대신 제 밥을 놓아 새를 기르듯, ‘나’는 새로운 ‘너’ 때문에 삶을 유지한다. 그렇게 생은 이어진다. 산다는 것은 결국 삶의 이유를 끝없이 찾는 것일지도.

 

현실은 딴전

딴전이 있어

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늘 딴전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중에서

 

탄생과 죽음은 대립하지만 탄생이 없다면 죽음도 없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단어로서는 존재한다. 사는 일은 점차 죽는 일이라는 아이러니. 드라마〈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영이의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고 또 죽어간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 「양팔저울」 중에서

 

함민복에게 삶은 ‘나’가 ‘너’를 읽어가는 시간이다. 읽어간다는 것, 그것은 제대로 안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너’는 자연이기도 사람이기도 사물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너’라는 이름의 부여가 가능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희망은 줄고 절망이 크다. 경험은 준 건 선물이 아닌 독이었다. 현실은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너’와 ‘나’가 여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는 존재를 통해 빛난다. 이것이 우리가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는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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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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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가 심한 날들의 연속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은 쌀쌀하지만 낮부턴 포근해진다고 한다. 해결하지 못한 어떤 일이 계속 마음을 괴롭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탄다. 모 소설가가 추천한, 블로그 이웃 분이 아낀다는, 제목이 아주 좋은 그 책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읽다가 말았다. 5분의 1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었다. 글자들이 눈으로 들어와 뇌를 거쳐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머리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 내 머리에 스프링을 박아 놓은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성실한 독서를 하지 못한 나를 변명하는 중이다. 아, 차가운 머리를 가진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작년 이맘때 그의 이름을 알았고 이번에 그의 책을 읽었다. 그의 이름은 변종모로 몇 권의 여행서를 출간한 여행작가다. 이번에 읽은 책은 어느 여행자의 기억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라는 멋진 제목의 책이다.

 

‘달다’에는 ‘맛이 있다’는 뜻의 형용사도 있지만 ‘안타깝거나 조마조마하여 마음이 몹시 조급해지다.’라는 동사도 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는 ‘나는 언제나 당신이 애달프다’로, ‘나는 언제나 당신이 그립다’로 해석된다.

 

지난겨울 추운 날씨 탓에 동면한 곰처럼 살았더니 몸이 무거워졌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꽃샘추위 탓에 몸이 추우니 따뜻한 국물이 있는 요리를 찾게 된다. 굴이 들어간 매생이 국을 먹었다. 이승우의 소설에서 매생이 국을 처음 만났었다. 상상 속의 음식은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온기가 몸을 타고 흐르니 기분이 좋아졌다.

 

변종모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다. 기존의 레시피로 만든 요리가 아닌 여행지의 특별함과 여행자와의 추억이 가미된 기존의 음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이다. 변종모에게 음식을 나누는 건 외로움과 그리움을 나누는 일이다. 음식을 먹는 일은 생을 이어가는 데 필요하지만 당신과 내가 속한 우리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데도 필요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의 길 위에서 비슷한 종류의 상처를 받았고, 어쩌면 그것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크기의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상황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 우리는 살면서 자주 그런 상황을 겪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면역되지 않는다. 그저 세월에 맡기고 그것을 흘려보내며 무뎌지지 바랄 뿐인 것이다.(19쪽)

 

그는 허전할 때마다 방향도 정하지 못한 길을 떠났다. 허전할 때마다 방향도 없이 이 책 저 책으로 여행을 떠나는 나는, 그래서 곧잘 길을 헤매는 나는 그의 여행이 부러웠다. 여행은 눈으로 보고 목소리를 듣고 향기를 맡고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그 감각적인 일들이 가능하니까. 비록 상처로 말미암은 슬픔들은 결코 면역되지 않을지라도.

 

만두가 끓어오르는 수증기에서 냄새가 났다. 따뜻한 냄새. 이미 지나간 일들의 냄새라서 따뜻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저마다 살아온 수많은 사연이 보글보글 끓는 수증기처럼 팽창해, 어느 날 그 아픔들도 기억 속에서 환하게 따뜻하게 끓어오르리란 것을 안다. 추억이란 잡히지 않는 실체지만, 이렇게 열렬하게 끓어오르는 수증기처럼 분명 서로의 입김이 맞닿아 그려내는 이야기이므로 그것이 향긋하다 생각한다. 지나간 일이므로 아픔은 웬만큼 증발되었을 것이다. 이제 뚜껑을 열고 한 김 식힌 다음, 좋은 생각만 하면서 꿀꺽 삼키고 나면 과거는 사라지고 다시 미래만 남을 것이다. 그 든든한 포만감으로 나는 또 남은 길을 가리라. 내게, 늘 당신과의 추억은 허기지지 않는다.(39쪽)

 

동생부부가 주말에 온다. 동생은 어머니표 만두를 좋아한다. 동생이 오는 주면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만두 빚을 준비를 하신다. 하루는 돼지고기와 두부와 숙주나물을 사서 속을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해 냉장고에 숙성시키시고 하루는 만두를 빚으시고 당일 날은 만두를 찌신다. 어머니가 동생을 생각하며 만두를 빚으시듯 동생은 만두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한다. 만두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의 추억은 허기지지 않을 것이다.

 

차가운 머리를 가진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문장들을 읽다 멈추길 반복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빈 공간을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것. 결국 빈 공간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반쯤은 빈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허기질 것이다. 그래서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당신이 내 마음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풀려 당신을 밀어낸 건지도 모른다.(72쪽)

 

내가 나를 부풀려 밀어냈던, 그래서 이별이 되어 버린 그들을 생각한다. 내 미래가 허기진 날들의 연속일지 알았더라면 그들은 밀어내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살아낸 후 알게 된 것은 생의 순간 만났던 만남은 모두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것. 뒤늦은 깨달음이다.

 

그가 만난 사람들, 그가 만든 음식들을 생각하며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만든 음식들을 생각한다. 그러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게 음식을 만들어준 그들을 생각한다. 그 음식들 때문에 그날 행복했음을 떠올린다. 행복했던 날을 떠올릴 때 전혀 기억하지 않았던 시간이건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는 한 여행자의 특별한 음식 이야기이자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들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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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강 -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Dear 그림책
마저리 키넌 롤링스 지음, 김영욱 옮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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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길을 나서는 일은 두려움과 설렘을 동반한다. 소년(또는 소녀)는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며, 멈추고 나아가길 반복하며 어른이 된다. 험난한 길을 통과해 어른이 되었으나 길의 끝은 아득하다.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고 용기는 무모해 보인다. 찬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안주하고 싶다. 소년의 마음이 사라진 어른으로 사는 일은 슬픈 일이다.

 

레오 딜런과 다이앤 딜런 부부의 아름다운 그림이 인상적인 마저리 키넌 롤링스의 동화『비밀의 강』은 소녀 칼포니아와 강아지 버기 호스의 ‘비밀의 강’ 여행을 통해 퍽퍽한 삶을 견디는 힘은 ‘용기’와 ‘이타주의’라고, 그렇게 살다 보면 좋은 시절이 온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숲 속에서 이웃들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생은 한 번쯤은 꿈꾸는 삶일 것이다. 칼포니아가 사는 플로리다의 숲 마을은 우리가 꿈꾸던 곳이었다. 불경기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칼포니아는 예쁜 얼굴만큼이나 생각도 예쁜 아이다. 텅 빈 생선가게 때문에 근심에 쌓인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이이자 꽃과 벌이 있는 자연에서 사람들과 북적북적 살고 싶어 하는 아이이다. 소박한 꿈이지만 잔인한 세상은 그 꿈도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꿈이지만 긍정 소녀 칼포니아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소녀는 강아지 버기 호스와 함께 알버타 아주버니가 알려준 ‘비밀의 강’으로 길을 떠났다. 칼포니아가 길을 떠난 것은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부모님과 마을 사람을 돕고 싶어서였다. 현실적으론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길을 나선 일은 야단맞을 일이지만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돕기 위해 용기를 낸 모습은 기특했다. 비밀의 강에서 얻은 물고기들은 칼포니아의 부모와 이웃 사람들에게 다시 삶을 시작할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비밀의 강은 부모와 이웃을 위해 용기를 낸 칼포니아에게 자연이 준 기적이었다.

 

 

 

 

누군가 널 겁주려 할 때,

가장 먼저 마음을 읽어 줘야 해.

그럼 절대로 더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가끔씩 어떤 누군가는 “고마워.”라며 인사말도 건넬 테니까.(33쪽)

 

부자는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에, 가난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로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해야 세상도 존재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세상이 없다면 내 삶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역사를 보면 세상은 힘이 지배해 왔다. 자의 비위를 맞추고 약자 위에 군림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칼포니아는 힘센 동물을 겁내지 않았고 약한 동물을 압제하지 않았다. 동물들을 만났을 때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자신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상대와 나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필요함을 알지만 이기심 앞에 실천은 쉽지 않다. 내가 좋으면 상대도 좋고 내가 싫으면 상대도 싫을 거라는 생각은 온전히 상대를 이해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현명한 칼포니아는 머지않아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길을 떠나는 일은 두렵지만 길을 떠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칼포니아가 비밀의 강에 가지 않았다면 칼포니아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칼포니아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비밀의 강은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칼포니아만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비밀의 강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의 마음에 흐르는 강이라 우리도 마음먹기에 따라 만날 수 있는 강이었다.

 

그동안 비밀의 강을 만나지 못했던 것은 현실에 지쳐 비밀의 강 존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비밀의 강』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쓰인 판타지 동화지만 어른이 된 나에게 잃어버린 순수와 용기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아직은 바람이 차지만 곳곳에 보이는 봄의 흔적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 계절,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다 보면 좋은 시절이 올 거라는 비밀의 강 판타지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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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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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초입처럼 반짝 화창했던 날씨는 다시 3월의 쌀쌀한 봄날로 돌아왔다. 내가 그리워했던 화사한 봄을 만나진 못했지만 봄의 소리를 들은 것으로도 아주 좋았다. 변덕스런 봄 날씨 탓에 감기 선물을 받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완벽한 날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와 산문이 담겨 있는 책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내게 자연은 휴(休)의 공간이지 삶의 공간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낭만적인 환상이지 불편한 현실을 감당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산이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는 짧은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내장산으로 유명한 정읍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 역시 잠시 서울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정읍에서 살고 있다. 인제가 고향인 M 역시 지금은 인제로 돌아가 살고 있다. 그녀들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우연일까. 도시의 삶을 꿈꿨던 그녀들은 도시의 삶을 살지 못했다.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모두 잘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그녀들의 얼굴은 서울에서보다 훨씬 편해 보였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항구도시이자 예술가들의 도시 프로빈스타운에서 바닷가를 거닐며 시를 쓰고 살고 있다. 3G보다 빠른 LTE의 시대지만 그녀는 자연과 소통하며 느리게 살고 있다. 메리 올리버는 『완벽한 날들』을 통해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녀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것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애정을 갖고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고립된 아귀다. 아, 너무나도 그로테스크한 몸, 지독히도 불쾌한 입. 몸 전체의 크기만큼 거대한 어둠의 문! 아귀의 대부분이 입이다. 그런데도 그 초록 눈의 색깔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에메랄드보다, 젖은 이끼보다, 제비꽃 잎사귀보다 더 순전한 초록이고 생기에 차서 반짝인다.(22쪽)

 

아귀는 입만 큰 생선, 찜이나 탕으로 먹는 생선으로 알고 있던 내게 아귀의 눈 색깔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메리 올리버는 ‘혹등고래의 눈은 코끼리 눈에서 볼 수 있는 어둠과 희망과 고통을 담고 있다(23쪽)’고, ‘깊은 우물보다 깊다(24쪽)’고 말한다. ‘에메랄드보다, 젖은 이끼보다, 제비꽃 잎사귀보다 더 순전한 초록이고 생기에 차 반짝이’는 눈은, ‘어둠과 희망과 고통을 담’은 눈은 대체 어떤 눈이란 말인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녀가 바닷가와 숲 속을 걸으며 만난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인간과 문명의 이기로 훼손된 자연을 만나기도 했다. 동물도 사람과 다르지 않게 어둠과 고통의 시간을 희망으로 견뎌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어둠과 고통의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강요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주변의 사람들과의 삶이 감사한 것은 그녀에게만 유독 세상이 아름다워서도, 그녀의 주변에만 유독 좋은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녀에겐 세상을 보는 따뜻한 눈과 타인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친구 역시 그녀와 같은 사고가 있었다. 책 속에 ‘아침마다 소란과 고요가 결혼하여 빛을 만든다.(33쪽)’라는 문장이 있다. 둘은 달랐지만 서로 존중하며 함께하는 생을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이든, 자연과 사람이든 공존하는 삶은 서로에 대한 감탄 혹은 존중해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현재 내가 쓰는 글은 리뷰뿐이지만 점점 쓰기가 쉽지 않다. 시「가자미, 일곱」에서 ‘마음의 무기력함은 글의 무기력함이 되지.(125쪽)’라는 시구를 만났다. 그러니까 난 마음이 무기력했던 것이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나만 그런 건 아니군. 어서 기운을 내야지.’, '피가 혈관을 흐르는 것처럼(127쪽)’ 일단은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그녀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 수는 없을지라도. 그녀의 글들은 무기력증에 빠진 나를 꺼냈다.

 

이 책은 두 번 읽었다. 처음보다 두 번째 읽을 때가 더 좋았다. 메리 올리버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아름다운 작가였다. 세 번째 읽을 때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가 김연수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란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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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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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로 남기지 않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읽다 만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독서가 어렵다. 심신의 부조화, 안에 머물고 싶은 몸과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의 부조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이 얇다고 해서 독서가 쉬운 건 아닌데 얇은 책들에 눈이 간다. 읽지 않은 책들을 모아놓은 책장에서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를 발견했다.

 

죽는구나, 생각했어. 열이 올라서 몸이 타는 것 같고, 하지만 추워서, 의식이 희미해져서, 벌렁 누워버렸어. 자꾸 눈앞이 흐려지고, 뭔가 말을 하고 싶었어. 그때, 자동차 너머에, 달이 있었어.

 

책을 꺼냈지만 제목 때문에 독서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다시 꽂아두려다 뒤표지에서 윗글을 읽었다. ‘그때, 자동차 너머에, 달이 있었어.’의 문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가 처음으로 의식했던 죽음은 어린 시절 길렀던 붉은 새가 새장으로 들어온 뱀에게 물려 죽은 것이었다. 새는 뱀을 감당하기엔 어렸고(어미새였다 해도 갇힌 새장에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새를 가뒀음에도 새장을 관리하지 못했고, 뱀은 생존하기 위해 새가 필요했다. 다른 목숨을 탐했으니, 그것도 어리고 약한 생명을 탐했으니 뱀의 징벌은 마땅한 것일까? 뱀은 애초 그렇게 살아가도록 태어난 존재 아니던가. 그렇다면 잘못은 뱀이 아니라 뱀을 이 세상에 있게 한 신의 잘못 아닐까? 새를 보호하지 못한 인간이 뱀을 벌할 자격이 있을까? 뱀이 악하다면 인간은 선할까? 어리고 약하게 태어난 새를 닮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는 숱한 질문들이 쏟아지는 소설이었다.

 

그 사람, 보육원 원장은 그 시절 ‘나’에게 “자살과 범죄는, 이 세상에 지는 거라고!”, “보란 듯이 성공해서 이 세상에 되갚아주면 돼. 순수한 사람 같은 건 안 돼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곧 서른 살을 앞둔 ‘나’가 교도관으로 근무하는 구치소엔 스무 살로 항소하지 않으면 사형이 확정되는 야마이가 있었다. 악한 것과 약한 것은 발음은 비슷해도 의미는 대조적인데 ‘나’와 친구들, 야마이를 보며 약한 존재로 태어난 것을 감추기 위해 악에 기대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둘 중 누군가가 저지른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용서할 수 없어도 끝까지 한편이 되어주기로 한다면……. 누군가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가기가 쉽거든.(92쪽)

 

‘나’는 “나 같은 사람도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던 사쿠마를 신뢰했지만, 사쿠마는 ‘나’를 배반했다. 예전에는 모든 인간은 선을 갖고 태어나는데 환경이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선은 없고 악만 갖고 태어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적어도 사람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누군가 때문에 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육원에서 자랐던 ‘나’가 혼란 속에서도 같은 고아였던 야마이와 달리 범죄자가 되지 않았던 건 ‘나’의 선택을 존중한 원장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도망친 야마다가 어둠과 추위 속에 혼자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야마이가 ‘나’처럼 어린 시절 원장을 만났더라면, 우울한 밤의 시간은 계속됐을지라도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야마이에게 달은 너무 멀리 있었다.

 

사형제는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자가 아닌 사람을 범죄자로 만든 경우와 사형으로 범죄를 확정할 범위를 어디까지 두느냐가 남는다. 소설 속 주임의 대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지만,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처지에서 가해자는 모두 뿌리 뽑아야 할 악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현재라는 건 어떤 과거도 다 이겨버리는 거야. 그 아메바와 너를 잇는 무수한 생물의 연속은, 그 수십억 년의 끈이라는 엄청난 기적의 연속은, 알겠냐, 모조리 바로 지금의 너를 위해 있었단 말이야.(157쪽)

 

어지러운 세상이 악을 가져온 것이지 애초 나라는 존재가 원래 악을 갖고 태어난 것인지 혼란스럽다. 나라는 존재는 분명 존재하는데 이게 정말 나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존재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린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부모가 나를 길렀든 버렸든. 부모가 나를 사랑했든 사랑하지 않았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족과 사회에 대한 불만은 자살이나 범죄로 나타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거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다. 욕심이 많아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울한 밤만 계속되지만 그렇다고 분노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상투적인 충고일지 모르지만 아래 인용문을 믿으며 살고 싶다. 자동차 너머의 달은 잡을 수 없지만, 해가 지면 눈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대부분 볼 수 있다.

 

“생각하는 것으로 인간은 어떻게든 될 수 있어. 이 세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인간은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야.”(161-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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