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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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한다, 중독이라고 할 만큼. 독서에선 소설 편독(偏讀)이 심하다. 편독(徧讀)과 편독(偏讀), 삐침이 하나 있고 없고에 따라 정반대의 뜻을 가진다. 한때는 편독(徧讀)하려 애썼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고통과 괴로움으로 가득 찬 인간 세계를 고역(苦域)이라 부른다고 한다. 즐거울 일이 별로 없는 고역의 세상, 독서마저 즐거움이 아닌 고역(苦役))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편독(徧讀)을 그만두었다. 소설 편독을 하다 보니 시시해져서 다른 분야가 읽고 싶긴 한다. 다른 분야의 책을 읽더라도 아마도 난 또다시 소설로 돌아올 것이다.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인간이란 종은 이야기 중독자라고 말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이야기하는 인간에 대한 책이다. 그에 의하면 이야기하는 인간은 ‘스토리텔링의 마음을 가진 유인원’으로 ‘네버랜드라는 상상 속 나라의 주인’이다.

 

언젠가 TV에서 『고령화가족』영화 예고편을 보다 영화가 소설을 영상화했다는 얘기에 동생은 내게 원작을 읽었느냐고 물었다. 난 읽었다고 말했고 동생은 예고편에 나온 엄마의 비밀에 관해 물었다. 엄마의 비밀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중요한 열쇠였으니 당연히 소설에도 있었을 텐데 기억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읽었다면서 기억도 못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소설 속 인물의 모습에 누군가에 들키고 싶지 않던 내가 있어 킥킥대다 우울해 빠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더불어 내가 기억하는 건 소설 속 엄마는 한 남자의 아내로만 산 내 엄마와는 달랐지만 위기에 처한 순간 자식들을 품 안으로 감쌌던 사실은 같았다는 것이었다.

 

소설을 통해 나는,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가족을 이해하게 되었다. 조너선 갓셜의 표현대로라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뿅 가기 위해서’지만 이야기는 말썽을 부리고 지옥을 헤매는 주인공들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점차 바꾼다.

 

심리학자이자 소설가 키스 오틀리는 이야기를 인간 사회생활의 모의 비행 장치라고 부른다. 모의 비행 장치가 조종사를 안전하게 훈련하듯 이야기하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안전하게 훈련한다. (중략) 우리가 이야기를 추구하는 것은 이야기를 즐기기 때문이지만, 이야기를 즐기도록 자연이 우리를 설계한 이유는 연습의 유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픽션은 인간의 문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데 특화된 아주 오래된 가상현실 기술이라는 것이다.(85쪽)

 

조너선 갓셜은 ‘픽션은 삶에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다’고 했다. 이 말은 픽션이 ‘중요한 과제들에 반응하도록 뇌를 연습시킴’으로써 인간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인간의 삶을 바꾼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야기 혹은 픽션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는 전제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어떻게’는 ‘긍정적으로’로 채울 수 있다. 조너선 갓셜은 ‘숨겨진 이야기를 읽어 내는 눈’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믿는다, 전부는 아니지만 인간 대부분은 ‘숨겨진 이야기를 읽어 내는 눈’이 있다고. 이야기꾼이 이야기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 이야기꾼 자신도 몰랐던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궁극에는 가짜 세계 혹은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사람들을 결속하는’ 이야기 말이다.

     

요즘 『개과천선』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다. 잘 나가는, 그러나 정의를 수호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로펌 변호사 김석주가 사고로 기억을 잃으면서 인간적인 변호사로 변모하는 이야기이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불의에 눈감고 때론 동참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괴물이 된 것도 모른 채. 드라마에 숨겨진 이야기는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다. 김석주처럼 실망스런 자신을 만나게 될지라도. 그래야 웃을 때 웃고 울 때 우는 진짜 삶을 살 수 있다고. 이후 이야기는 김석주가 자신이 근무했던 대형 로펌과 싸우는 이야기라고 한다. 김석주를 응원하는 건 우리에겐 아직 정의가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 자신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고 미래를 꿈꾼다. 기억은 영원하지 않다. 내 기억은 확실하다고 주장하지만 완벽한 기억은 없다. 비참했던 이야기는 낭만적인 이야기로 각색된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가짜일까? 이야기를 일부러 왜곡해 상대를 난감하게 하는 이야기라면 문제지만, 그 이야기가 현재 절망적인 내 삶을 지켜주는 힘이 된다면 미래의 꿈을 꾸게 한다면 가짜라고 몰아붙일 수만은 없지 않을까. 이 경우라면 상상의 이야기라도 내 삶의 일부일 것이다.

 

인간 세계가 존재하는 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소멸하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보인 이야기들이 증명하듯이.『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성이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삶을 지속시킬 거라고 말하면서 인간과 이야기 중 주체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지 인간이 빠져야 할 대상은 아니다.

 

이봐요! 책을 판다는 건 단지 340그램어치의 종이와 잉크와 풀을 파는 게 아니에요. 새로운 인생을 파는 거라고요. 책에는 사랑과 우정과 유머와 밤바다에 떠 있는 배, 그러니까 온 세상이 들어 있어요. 진짜 책에는 말이에요.-크리스토퍼 몰리, 『파르나소스 이동 서점』( 『스토리텔링 애니멀』재인용)

 

내가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 중 하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선택한 이야기에서 나는 내 삶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위안을 얻고, 언젠가 닥칠 일들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운다. 이야기의 가치는 넘치고 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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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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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들에게 자전거 도둑은 매력적인 소재인가 보다. 이탈리아 영화「자전거 도둑」과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 도둑」이 떠오른다. 백수린의 소설집『폴링 인 폴』에 실린「자전거 도둑」에서 ‘나’, 안나, 제이는 아웃사이더들이다. 『폴링 인 폴』의 인물들은 중심이 삶과는 거리가 있다. 세 명의 여자들은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서로를 분신처럼 여기며 무탈하게 살아갔다. 사회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안나의 남자 P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것은 균열의 시작이었다. ‘나’는 사랑에 빠진 안나로 인해 갖고 싶었으나 놓쳐버린 것들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기 시작해 급기야 P가 사온 자전거를 훔칠 생각을 하지만 체인 때문에 실패한다. 자전거엔 안나의 체인이 아닌 다른 체인이 걸려 있었다. 다른 체인의 주인은 제이였다.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는 것 중 대부분은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 신념도 그러하다.

 

「감자의 실종」의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신념’을 입력해보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무엇을 지칭할까 두려워서. 그녀에게 ‘신념’을 검색하는 일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한 일이었다. 확신했던 그것에 대해 타인들은 다른 그것이라고 말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가 한 것처럼 진심을 숨기는 것뿐이다. 진심을 숨기지 않고 내가 생각한 그것을 주장하면 일상의 균열을 만나야 한다. ‘나’는 알게 된다. 진심을 숨기고 ‘감정의 외로움이라고 불어도 되는 지조차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사는 건 자신뿐 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외로움으로 밤의 시간을 견디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의 신념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

 

이것은 폴에 관한 이야기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내가 아는 만큼의 폴에 관한 이야기. 이것이 폴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인가 하면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폴에게서 배웠다. 폴 자신은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준 일 없노라고 고개를 저을지 모르지만. 그러므로 나는 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나는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대륙의 한복판에서 한 여자의 남편이 되겠다고 서약하고 있을 폴.(「폴링 인 폴」, 첫 문단)

    

 「감자의 실종」에서 ‘신념’이란 단어를 만난 이후 모든 단편이 신념과 연관되어 읽힌다. 신념이라는 건 결국 더도 덜도 말고 딱, 내가 아는 만큼의 믿음이 아닐까. 그것이 전부라고 착각하며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폴, 왜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해준 거야? 술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폴의 대답이 그 순간 떠올랐다. 왠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줄 것 같았어요. 도대체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수많은 취객들 사이에 마주앉아, 폴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내게 실연을 안겨준 그가 더이상 원망스럽지만은 않았다. 어쩐지 그가 해준 이야기가 내 초라한 사랑에 대한 그만의 응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폴링 인 폴」85-86쪽)  

 

백수린의 단편은 말해질 수밖에 없는 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감자의 실종」에서 ‘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말(단어)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혼란을 겪었고 「자전거 도둑」의 그녀들은 어느 순간 말을 공유하지 않았다.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의 첫 문장은 “이젠 어디로 갈까?”(91쪽)이다. 어디로 갈까?, 라는 질문은 이 단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악기를 연주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베를린에 왔고 음악사를 공부하기로 했지만 그녀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비참한 현실 앞에 신념들은 점점 길을 잃는다. 길을 잃는 것은 신념뿐이 아니다. 기억도 그러하다. 『밤의 수족관』은 아이를 잃어버린 유명 스타의 숨은 여자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스타가 한때는 존재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란다. 기억의 왜곡일까?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2.

신념과 기억, 말 그리고 문장에 관한 리뷰를 쓰고 싶었다. 책을 읽었을 때 다음의 문장들을 읽다 멈췄는데 리뷰를 쓰는 동안 자꾸 떠올랐다.

    

물에 빠진 적 있니? 당신이 내게 물었다. 나는 빠져본 적이 있어. 당신은 이어 말했다. 어렸을 때라 다른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물에 빠졌을 때 느꼈던 그 공포심만은 지금도 생생해. 그때부터 나는 막연히 언젠가 내 눈앞에 죽음이 당도한다면 아마 그때의 그 감정들을 다시 느낄 거라고 예감하며 사는 것 같아. 그리고 당신은 말했다. 그래서인지 사는 게 꼭 물속을 걷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노라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로운데 힘겹게 발걸음을 떼야만 하는 날들이 너무 많았노라고. 그래서 바다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말했다. 네가 같이 간다고 하지 않았다면 바다 같은 데 오지 않았을 거야. 바닷바람 탓에 입술이 짰다.(「꽃피는 밤이 오면」 240쪽)

 

말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듣고 싶은 이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마음의 공허가 채워지지 않는다.「꽃피는 밤이 오면」의 마지막 문단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균열 없는 견고한 생은 불가능한 꿈일까.

 

물이 바로 목 아래까지 차올랐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리를 쭉 뻗으며 당신이 그 언젠가 느꼈다던 어둠과, 차가움, 무력감이 바로 이것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내 삶에 와닿는 젖은 셔츠의 차가움만을, 자꾸만 떠오르려는 나의 몸의 무게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오래전의 당신이 그리했을 것처럼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겨우 발끝으로만 바닥에 닿을 뿐이지만. 저멀리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지고 있으므로. 그것이 어디로 인도할지는 모르지만, 빛인 까닭에. 다리가 물속에서 꺾였다. 바닥을 겨우 딛고 있던 발끝이 물속에서 미끄러졌다. 더 많은 양의 물이 쏟아졌다. 물은 곧 머리 위로 차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 빛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물속으로 내 몸이 고꾸라지는 순간 비로소 당신이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리케이드 뒤 그녀의 얼굴도 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달싹이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랫소리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 저 노래를 내가 받아적어야 하는데, 나는 물속으로 떨어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어둠 속. 차갑다. 그러나 나는 수영을 익혀두었다. 물살을 헤치기 위해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꽃피는 밤이 오면」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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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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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 작가와 제목은 중요한 결정 요소이다.『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책이었다.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로 만난 정유정의 소설은 묵직한 주제의식과 흡인력 있는 서사, 간결하면서 단단한 문장들이 매력이었다. 최근 『이인』을 다시 읽었다. 『이방인』의 문학동네 판이다. 김화영도 이정서도 아닌 이기언의 번역이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천천히 가면 일사병에 걸릴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빨리 가면 땀에 흠뻑 젖거든요. 그래서 교회 안에 들어서면 오한이 나지요.” 간호사의 말이 옳았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23쪽) 

 

‘총체적 난국’이란 문장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라는 단어가 아프게 찔렀다. 더불어 개인적인 사정도 좋지 않아 비상구가 있다면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히말라야’와 ‘환상’은 먹먹한 현실을 위로할 단어들로 읽혔다. 심지어 ‘방황’이란 단어까지도.

 

내게 ‘히말라야’ 특히 ‘안나푸르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아득히 멀리 있는 곳이었다.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단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곳이었다.

 

정유정에게 안나푸르나는 ‘꿈속의 땅’이자 ‘성역의 산’, 엄홍길이나 오은선 등 ‘대장들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정유정은 네팔정부가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대중적인 트레킹 코스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환상종주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태어나 한 번도 대한민국을 벗어난 적이 없는, 일이 아니고서는 고향이자 주거지인 전라도 땅조차 벗어나보지 않았다고 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에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했던 세상’, ‘눈멀어가던 순간까지 그리워하던 신들의 땅’이었듯이 작가에게도 그랬다고 한다. 정유정은 지친 삶의 엔진들을 가동시키기 위해 그곳으로 떠나야 했다.

 

저질 체력의 소유자이기에 대중적인 트레킹 코스를 종주하는 일도 엄두가 나지 않는 나로서는 ‘갈 수 있을까’에서 ‘갈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자’로 실행에 옮기는 작가의 용감무쌍함이 부러웠다.

 

‘최선을 기대하며 최악에 대비하라’는 스티븐 킹의 말을 인용하며 여행 떠나기 전 고산병 예방약과 응급약 목록을 만들었다는 글이 있었다. 이 말은 세월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그들은 최선도, 최악에 대한 대비도 없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정유정이 소설가 김혜나와 함께 떠난 좌충우돌 히말라야 생존기이다. 여행기가 아니라 생존기인 이유는 여행에서 만난 인연에 관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감상보단 여행 초보가 겪는 어려움과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못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토록 시시콜콜하고 솔직한 여행기라니. 나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나왔다.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 속에 실린 히말라야 사진은 김혜나가 찍었다. 다른 여행 에세이에 비해 사진이 적은 건 ‘고민’하느라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책을 읽으며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여행에서 평화를 얻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삶의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사랑을 깨닫고, 어떤 이는 자신과 화해하기도 한다. 드물게 피안에 이르는 이도 있다. 나로 말하면 확신 하나를 얻었다. 나를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닭이요, 시끄러운 뻐꾸기였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결론적으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는 다르지 않았다. 달갑잖은 확신을 얻었고, 힘이 남아돌아 미칠 지경이라는 게 그때와 다를 뿐. 몇 년 후, 어쩌면 몇 달 후, 가까스로 얻은 힘을 전력질주로 써버리고 다시 히말라야를 찾아 올 테지.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288쪽)

 

함께 있어 즐거웠지만 외롭기도 했고, 행복했지만 안녕하지 못한 날들도 많았지만 정유정은 ‘가자’를 멈추지 않았다. 작가는 히말라야 여행을 통해 몰랐던 자신을 발견했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자신과 싸울 힘을 얻었다. 책을 읽으며 떠남은 역시 옳구나, 생각했다.

 

한달음에 읽었다. 그 시간 동안 현실의 슬픔과 분노를 잊었다. 책을 덮자마자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나 역시 정유정처럼 몸과 마음이 정전상태다. 아침, 자는 데 문자가 울렸다. 시간이 되면 내일 남한산성을 돌자는 친구의 문자였다. 히말라야는 여전히 아득한 나는 남한산성이나 돌아야겠다. 길목에서 아름다운 야생화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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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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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머리 가득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서글프다. 가족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은 있지만 시간 속에 허물어지는 아버지는 더 맘에 들지 않는다.

 

김윤식! 그는 국문학, 특히 현대문학에선 아버지 같은 존재다. 창씨개명으로 다른 이름을 가지셨지만 내 아버지의 원이름과도 비슷하다. 딱 한 번, 아버지의 행동에 화가 나 대들었던 적이 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나는 밤새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그 밤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다면 지금 아버지와 나 사이엔 강이 놓였을 것이고 어머니는 두 사람 사이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셨을 것이다. 이제는 아버지 역시 부족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2000년에 있었던 대학원생이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고발해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명원 사태’를 소설화한 소설이다. 김윤식 교수가 표절을 인정했음에도 이명원은 20대의 전부를 보냈던, 그만큼 사랑했던 자신의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던 사건이었다. 예전에 같은 소재로 쓰인 소설이 있다는 얘기 들은 기억이 나 찾아보니 같은 제목에 다른 작가의 책이 있었다. 작가가 이름을 바꿔 다시 출간한 모양이다. 14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다시 출간된 이유를 생각한다. 아직도 학계가 학문 연구보단 권위를 중시하는 집단이라는 뜻일 것이다.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과 명예만 중시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학계마저 순수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소설은 실명과 허구의 이름이 동시에 쓰였다. 주인공의 이름은 이명원이 아닌 작가 이정서의 이름과 비슷한 이인서이다. 들어본 적 있는 작가와 평론가들의 이름도 여럿 등장한다. 작가에 의하면 ‘재미와 효과’를 위해 다소 과장된 인물들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다소 거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고 할 때 그 이야기를 통해 느끼는 감동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이번 소설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젊은 대학원생의 용기에 박수를 칠 수도 있을 것이고 무모한 짓을 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계나 출판사의 행태를 보고 이 사회는 썩었어, 하고 자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는 전제가 깔리고 실제 사건들이 나열되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다양한 생각과 감동하기엔 무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이인서와 같은 집단에 발을 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100퍼센트 공감하지만 말이다.

 

김수현은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드라마작가다.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드라마작가는 아니지만 그녀를 존경한다. 언젠가 그녀의 특강을 들었던 적이 있다.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 P작가가 작가의 제자인지 물었다. 김수현은 말했다. 자신에겐 제자가 없다고. P작가는 동료작가이자 후배작가일 뿐이라고. 김수현의 말이 단지 말 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직간접적으로 가르침을 줬다고 해서 스승 나아가 아버지 존재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교수들을 겪다 보니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베스트셀러는 의도적으로 피하려 하지만, 누군가 “그 책 아직 안 읽었어, 베스트셀런데?” 하면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흔들린다.『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에서도 다뤄지고 있지만 작가도, 베스트셀러도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작년에 출판사의 사재기로 황석영, 김연수, 백영옥 작가가 작가인생의 모독이라면 절판을 선언한 일이 있었다. 사재기는 오랜 시간 행해진 일이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학계가 학문 연구 집단이 되는 일만큼이나 좋은 책이 많이 읽히는 세상이 되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모든 관계를 가족의 틀에 가두려는 생각에 반대한다. 가족주의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무조건 배척하고 가족은 무조건 감싸는 것이다. 옮고 그름의 판단은 개에게나 갖다 줘야 하는 일이다. 소설에서 인서는 대학원 자퇴이유서에 체 게바라의 말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를 인용하며 이 말이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날카로운 파문을 잊지 않겠다, 고 했다. 학문하는 자의 자세를 생각한다. 학문(學問)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배우고 묻는 것’이다. 배우고 묻는 일에 스승과 제자가 따로 없다. 스승과 제자가 따로 없는데 어찌 아버지가 있을 수 있을까. 먼저 길을 나선 선배와 조금 늦게 길을 나선 후배가 있을 뿐이다. 같은 길을 가는 동료가 있을 뿐이다. 그러려면 먼저 길을 가는 이들의 내려놓음이 필요한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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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직전의 우리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4
김나정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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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은 전부가 아니다. 내가 본 것이 전부이기를 바라는 건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나의 신념이 잘못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만나게 되는 건 ‘나’와 ‘너’의 소멸이다. 우리의 멸종이다.

 

김나정의 『멸종 직전의 우리』는 멸종 직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그들의 삶은 산소호흡기에 의지에 삶을 연명하는 중환자와 비슷하다. 스무 해 전, 초등학교 5학년인 열두 살 선주는 친구 나림을 죽였다(고 알려졌다). 이 사건은 두 소녀 가족의 삶을 폐허로 만들었다. 불행의 시간을 지나 이젠 행복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바로 그즈음에.

 

드라마<신의 선물>에서 딸을 잃은 엄마는 14일 전으로 다시 돌아가 아이를 살릴 기회를 얻었지만 현실에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남은 건 세상에 대한 분노뿐이다.

 

아이가 사라졌다. 이름은 안도, 수인의 아들이었다. 안도를 잃어버린 수인에게 희자가 찾아왔다. 나림의 엄마이자 자신의 과거 이름 김선주를 아는 여자. 선주는 몇 가지 이름을 거친 뒤 수인이라 이름 짓고 수인(囚人)처럼 살았다.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낸 선주는 안도와 함께 안도(安堵)의 삶을 살아갔지만 희자에게 딸의 날개를 꺾은 선주는 절대 행복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희자는 선주가 자신처럼 아이를 잃어버리는 고통을 맛보는 복수를 결심했다.

 

소설은 안도엄마 수인이 된 선주, 피해자의 부모, 선주의 가족, 사만다가 된 선주, 엄마의 희망이었던 어린 나림, 미혼모 윤숙이 된 선주, 희자를 만난 아빠 없는 안도의 이야기와 희자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수인, 안도 때문에 모처럼의 가족 여행을 망친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진실은 희자가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희자는 몰랐다. 어린 나림에게 분노가 있었다는 것을. 나림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던 행동이 어린 나림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어린 선주는 몰랐다. 선의로 한 말이 어린 나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가두게 되리라는 것을.

 

시베리아 원주민은 매머드를 ‘얼음 아래 사는 쥐’라고 불렀다.

그 거대한 쥐는 흡혈귀처럼 한밤에만 기어 나와 엄니로 무덤을 파서 시체를 뜯는다고 했다. 그것이 울음소리로 아이를 숲으로 꾀어낸다니.(6쪽)

 

한밤중 아이가 나가는 동안 자고 있던 엄마에게 책임은 없을까? 피곤한 일상을 보낸 엄마가 잠을 자느라 아이가 나가는 걸 몰랐다면 그래도 엄마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판단하기 어렵다. 희자가 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더라면, 선주네 집이 좀 더 여유로웠더라면 어땠을까. 불행히도 삶에 가정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부모가 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가끔 세상이 선과 악, 이분법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원망할 대상이 분명해질 테니 말이다.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용서할 수도 없다. 그 사람도, ‘나’도. 짐을 내려놓으면 좀 편해지련만 미안함에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들이 웅성거렸다. 불꽃은 나무를 감싸 하늘로 끌어당겼다. 잎사귀를 들은 수런수런 몸을 뒤집었다. 줄기 속 수액이 뜨거워지고, 껍질이 툭툭 터졌다. 이글거리는 나무 사이로 아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은 술 바깥쪽으로 밀려나가고, 숲과 하늘의 경계가 울렁거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 붉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8쪽)

 

멸종 직전이라는 건 아직은 멸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그래서 딸을 살릴 어떤 노력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딸은 잃은 엄마의 시간은 멈췄다가 가다 다시 멈췄고, 친구와의 일로 시간이 멈춘 소녀는 엄마가 됨으로써 조금씩 시간이 흘렀다. 엄마는 생명을 만드는 존재이다. 엄마들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의 분노가 너무 커져서는 곤란하다. 프롤로그의 이야기처럼 아이를 잃은 엄마의 분노는 세상을 화염으로 뒤덮을 것이기에.

 

음표가 끝나고 긴 쉼표가 이어졌다. 꽃잎 한 장 사뿐, 건반에 내려앉았다. 꽃잎은 소리 없이 건반 위로 굴러갔다. 악보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평화로운 침묵이 이어졌다.(195쪽)

 

소설을 쓴 김나정은 말한다. 용서할 순 없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것은 멸망 직전의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그것이라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 침묵은 평화가 아니다. 평화를 가장한 것일 뿐. 긴 쉼표는 마침표가 아니다. 마침표를 찍기까지, 멸망하는 그 날까지 살아야 한다. 그것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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