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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1.
책을 읽을 때 좋은 글귀는 옮겨 적지만 책 자체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가능한 새 책 그대로를 유지한다. 내 책에 낙서한 단짝친구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기억도 갖고 있다.
[달과 게]를 읽다가 갑자기 일이 생겨 그대로 펼쳐두고 나가는데 아홉 살 조카가 내 방에서 TV를 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말하고 외출을 했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니 조카는 자신의 집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고 보니 볼펜으로 네모 박스를 그린 것이 보였다. 아마도 조카의 짓일 것이다.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른 곳도 볼펜 흔적이 있나 찾아보니 다행히 내가 처음 발견한 한 곳뿐이었다.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조카가 표시한 네모 박스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문장은 “할 수 있어요.”였다.  

며칠 후면 조카의 학교엔 과학그림대회가 열린다. 조카는 심할 정도로 그림을 못 그린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몇 시간 전, 언니는 조카에게 그림연습을 하라고 했고 조카는 자신만만하게 “잘 그릴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었다. 대답은 했지만 자신도 못 그리는 것을 아는 지라 마음이 편하질 않았던 모양이다. 추측컨대 책 속에서 “할 수 있어요.”의 문장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네모박스를 그린 것이리라.

 

2.
2011년 나오키상 수장작 [달과 게]는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로 신이치, 하루야, 나루미 초등학교 5학년 세 친구의 녹록하지 않은 인생과 특별한 우정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면 대부분은 아련하게 여겨진다. 내 생애에 그 시절만큼 아름답고 순수했던, 혹은 용감했던 시간은 없었던 듯싶다. 슬프고 아프고 두려웠던, 나의 잔인함에 놀랐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추억이 된다. 하지만 시절을 견디는 자에게 그 시간은 잔혹한 시간일 뿐이다.
신이치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아버지 회사의 도산으로 사택에서 나와 해변마을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사고로 왼쪽 다리 아래 절반을 잃고 의족을 한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근근이 버는 돈으로 살고 있다. 신이치는 전학을 온데다 10년 전 할아버지 쇼조와 관련된 사고로 인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신이치에게 친구는 전학 온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나루미와 자신처럼 전학을 온 하루야 뿐이다. 하루야하곤 학교 밖에선 같이 지냈지만 안에서는 같이 지내지 않았다. 신이치와 하루야는 계속 친구로 지내고 싶은 마음과 서로를 미워하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신이치는 우연히 엄마가 나루미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나루미의 엄마는 신이치의 할아버지 쇼조가 몰던 어선에 동승했다가 죽었다. 나루미는 쇼조에 대한 원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하루야의 아버지는 하루야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하루야에겐 가슴에 멍이 있었다. [달과 게]의 아이들은, 그리고 부모로 대변되는 어른들은 가슴에 멍 하나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신이치와 하루야는 소라게를 라이터로 지지며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 소라게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소라 속에 들어있는 신령님을 꺼내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아이들의 소원은 자신을 괴롭힌 친구, 엄마를 뺏어간 아저씨 등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다. 아버지 회사의 부도와 죽음, 할아버지의 사고 등 어른들의 생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신이치는 또다시 어른들의 생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싶지 않았다.
정의와 불의, 선악, 미추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난제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신이치의 엄마와 하루야의 아빠, 나루미의 아빠는 생의 탈출구, 혹은 새로운 생이 필요했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라이터로 소라게를 지지는 행위, 그로 인해 껍데기에서 나와 죽게 하는 행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죽이는 행위였지만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상처를 줬지만 결국은 내가 아팠던 것처럼 아이들은 조금씩 병들어가고 있었다.
시작부분에 할아버지 쇼조는 신이치에게 카니(カニ, 게)는 먹어도 가니(ガニ, )는 먹지 말라는 옛말을 들려주셨다. 가니는 게 속의 검은 부분 독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준 멍을 풀 수 없어 자신의 몸속에 독을 키웠다. 소라게에게 소원을 빌었고 소원이 이루어진(거라 믿었던) 아이들은 소라게를 죽이는 일은 반복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몸속에 게자리(cancer)를 그리며 암(cancer)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면서, 소라게를 관찰하고 아기 게가 태어나는 걸 보면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사람은 누구나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어른 소라게가 껍데기 안에서 숨을 수 있는 대신 헤엄을 칠 수 없는 것처럼 어른들의 삶도 고단하다는 것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배우면서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3.
하루야는 도망가는 놈을 밧줄로 잡는 느낌이라며 네(ね)라는 낙서를 자주 했다. 역자는 후기에서 ‘네’는 일본에서 누(ぬ)로 끝나는 단어를 명령어로 만들 때 쓰는 단어라며 누로 끝나는 단어 중 초등학교 5학년이 알만한 단어는 시누(死ぬ, 죽다) 밖에 없다며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고 적었다. 나는 집, 아버지에게서 도망가고 싶은데 막상 도망가려니 겁이 나는, 혹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부모들이 잡아주었으면 좋겠는 이중심리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할아버지 쇼조는 돌아가시면서 신이치에게 달밤의 게는 바다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추해서 몸을 움츠린다는 옛말을 남기셨다. 아이들을 보호해야하지만 어른들도 세상이 겁나고 무서워서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말로 들렸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약함을 아이들에게 들켜버렸지만 아이들이 조금은 자란 모습을 보니 위안이 되었다.
조카가 왔기에 낙서를 한 이유와 다른 곳엔 낙서를 안 했는지 물었다. 그냥 그 글이 끌렸다며 내 노트에도 표시를 했다고 했다. [달과 게]를 읽으며 메모를 하다가 ‘죽음’, ‘분노’란 단어를 옮겨 적었는데 조카는 그곳에 주황색 볼펜으로 *** 표시를 해두었다. ‘죽음’, ‘분노’란 말은 쓰면 안 되는 말인데 이모가 적어 놓은 걸 보고 놀란 마음에 표시를 해두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달과 게]의 아이들에게도,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조카에게도 나름의 인생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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