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싶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고. 사람의 목소리는 그 어떤 힘보다 세서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그러나 나의 믿음은 반복된 절망 앞에 길을 잃었다. G는 가시지 않는 슬픔을 치유하고 돌아오겠다며 따뜻한 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떠남은 G의 또 하나의 일상이기에 그다지 부럽지 않았는데 오늘은 정말 부럽다.

 

1989년은 6월 4일은 톈안문 사건이 있던 날이지만 중국의 인터넷에서 금지된 날짜이기에 중국의 네티즌들은 5월 35일이란 가상의 날짜를 만들어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피했다고 한다. 정치적 탄압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회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변화는 두려움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일에서 시작하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353-354쪽)

 

체제가 다른 중국과 한국은 여러모로 다르다고 생각했다.『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기시감이었다. ‘풀뿌리’ 출신이나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부호들 이야기나 산채와 홀유, 짝퉁 같은 가짜가 판치고 헛소문이나 사기로 남을 괴롭히는 이야기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우리의 현실과 겹쳐졌다. 이 책은 중국의 고통임과 동시에 위화의 고통, 그리고 우리의 고통을 담고 있었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한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04쪽)

 

나의 대답은 하나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137쪽)

 

사람은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을 만나는 일이고, 훗날 내가 겪을 세상을 미리 만나는 일이다. 경험의 축적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그보단 내 몸의 피와 살이 되어 하인의 삶이나 벌레의 삶이 아닌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위화는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109쪽)”라고 말한 것이리라. 현실은 고통이지만 시간을 견디면 미래는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나는 책을 통해 얻는다.

 

이 중국 유학생의 한마디를 듣자 나는 몸이 떨려 왔다. 이는 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늘날 일부 중국인 집단이 내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푹 빠져 아직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214-215쪽)

 

사람들은 행복을 꿈꾼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며 행복을 원한다면 욕심을 버리라는 말을 듣는다.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하며 살았다.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이 정말로 욕심이 많아서 불행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곤 했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일자리 잘릴 걱정 없이, 월급 밀릴 걱정 없이 가족과 함께 먹고 자는 소소한 행복을 꿈꾸고 있었다. 그들에게 욕심이 많아서 불행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위화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은 톈안문 사건이 일어나기 전 5월 하순의 깊은 밤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민(人民)이 단결하여 국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인민을 이해했다고 고백했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많은 이의 고투와 분투에도 세상은 소수의 힘 있는 사람들에 움직이지만, 함께 목소리를 내면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책표지색인 노랑처럼 따뜻한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한 하위징아
빌렘 오터스페어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한 하위징아는 읽고 싶었던 책, 그러니까 아직 읽지 못한 책『중세의 가을』과 『호모 루덴스』의 작가다. 사상가이자 문화사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요한 하위징아에 관해 궁금했던 차에 『요한 하위징아』를 만났다. 원제는 『하위징아 읽기Reading Huzinga』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요한 하위징아의 삶을 통해 그가 깨달은 삶의 가치와 책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요한 하위징아의 저작을 통해 요한 하위징아의 현실 인식과 세계관 등이 어떤 방식으로 서술되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역사학 교수이자 저자인 빌렘 오터스페어는 ‘들어가는 글’에서 요한 하위징아의 고전에 대한 정의 ‘고전이라는 것은 아직도 읽히고 있는 책’을 말하며 요한 하위징아는 ‘몇 안 되는 네덜란드의 고전 작가들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빌렘 오터스페어의 판단을 따른다면 단지 읽고 싶었던 책의 저자였던 하위징아는 내 생각보다는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작가였다.

 

빌렘 오터스페어는 요한 하위징아가 대조를 통한 서술방식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은 그의 생애와 연결해 볼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태어난 도시 흐르닝언은 막 근대화가 진행 중이었던 곳으로 대립되는 도시와 농촌이 공존했던 곳이었다. 이와 더불어 목사였던 그의 할아버지와 과학의 진실을 추구하는 생리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대조적인 삶(그들은 모두 아내를 잃었지만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할아버지는 내내 혼자 살았고 아버지는 2년 만에 재혼했다는 내용 등등)은 그의 의식이 ‘대조의 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빌렘 오터스페어의 말처럼 요한 하위징아에게 “과학 대 종교, 이성 대 감성, 개인 대 공동체, 변화와 영원 등(28-29쪽)”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아내 마리의 죽음 역시 그의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일련의 번데기 과정이라고 보며, 인간의 정신이 거듭하여 새롭게 계시되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여기 세상의 가장자리에 머물면서 모든 사물의 원천을 향하여 양팔을 내뻗는다. 이 때문에 나에게 역사는 순수시이며,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그것을 획득할 수 있다.(48쪽)”

 

이 글은 요한 하위징아가 가장 존경했던 “역사는 내가 볼 때 가장 높은 의미의 시詩이다.(48쪽)”라고 말한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인용문이다. 빌렘 오터스페어는 이 인용문이야말로 요한 하위징아의 저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했다. 요한 하위징아의 역사관, 그리고 글쓰기는 반복된 대조를 통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서 탄생은 없었던 것에서 새로 나오는 것이 아닌 소생, 즉 renovatio(갱신), restitutio(복구), restauratio(회복)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그에게 역사 기술이란 빌렘 오터스페어의 말처럼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발휘이며, 생생한 현실 인식을 이미지로 바꾸어놓는 창조적 행위(206쪽)’였다. 하위징아의 출발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이론인 이유는 모방은 반복된 대조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이러한 대조를 통해 조화(혹은 균형, 무드, 네덜란드어로 stemming, 통찰)를 이루어 보편적인 가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빌렘 오터스페어는 ‘모든 것을 적절히 혼합하자(198쪽)’는 것은 요한 하위징아의 인생과 저작의 일관성이라고 말했다. 대조는 삶의 집중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집중해서 본다는 것은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을 의미하기보단 자연 그대로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중심뿐 아니라 외부 세계도 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중심과 외부 세계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 또한 가능해질 것이다.

 

서두에도 적었지만 나는 아직 요한 하위징아의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요한 하위징아』를 읽는 동안 책을 먼저 읽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빌렘 오터스페어에 의하면 『중세의 가을』은 ‘대립적 글쓰기의 가장 좋은 사례’이며 『호모 루덴스』는 ‘대조라는 동일한 원칙을 축으로 집필되었다’라고 한다. 책에 실린 인용문들로도 요한 하위징아의 서술 방식 혹은 삶을 지배해 온 사고방식에 대해 알 수 있었지만,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형식적인 것만으로는 요한 하위징아의 글쓰기와 사고방식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역사를 다른 관점, 문학의 측면에서 볼 수 있게 된 점은 좋았다. 개인적으로 대조를 통한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흥미로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카바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8
미켈라 무르지아 지음, 오희 옮김 / 들녘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새해가 밝았고, 어머니들의 산고와 의료진들의 도움, 가족의 기다림 속에 새로운 생명도 태어났다. 지금은 타인의 도움이 간절하지만 언젠가는 홀로 우뚝 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시간을 살던 누군가는 이 세상과 이별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소멸한다. 예외는 없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는 건 결국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불운으로 가득 찬 삶이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희망은 있다고 믿으며 살았다. 그런데

 

더 이상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야 해야 할까?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숨만 붙어 있는 것이라면? 더는 존엄하게 살지 못한다면?

 

미켈라 무르지마의 『아카바도라』는 입양으로 가족이 된 마리아 리스트루와 보나리아 우라이의 새로운 가족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자 불구가 된 니콜라의 안락사 문제를 통해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말한다.

 

전쟁은 많은 미망인과 고아들을 만든다. 1950년대 이탈리아 사르데냐의 작은 마을 소레니에 사는 보나리아는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미망인이 되었고, 안나 테레사 리스투르는 전쟁에서 부상으로 퇴역한 남편이 소작농으로 일하던 주인의 트랙터에 깔려 죽자 홀로 네 딸을 키워야 했다. 당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가난한 여인의 아기를 영혼의 자식으로 부르며 기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보나리아는 여섯 살 마리아를 영혼의 딸로 삼고 키웠다.

 

프란네 보에의 ‘경계선 사건’을 복수하려다 불구가 된 니콜라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며 보나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보나리아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안락한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죽음의 어머니’ 아카바도라였다. 유년 시절 마리아는 도둑질과 거짓말을 하고도 죄악조차 느끼지 못했었다. 마리아는 낳아준 어머니가 있어 보나리아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실수로 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존엄한 대상임을 알게 해준 진짜 어머니였다. 마리아는 보나리아가 아카바도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녀 곁을 떠났다.

 

보나리아는 마리아에게 “내가 마시지 않는 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라.”라고 했다. 마리아는 보나리아에게 실망했지만, 보나리아에게 환자들을 편안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일은 아기가 태어날 때 사람들이 도와주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낯모르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수풀 속으로 사라진 이후 누구도 믿지 못하는 아이가 된 피에르조르지오는 10여 년 만에 마리아에게 털어놓았고 위로받았다. 보나리아가 행한 일도 마리아가 행한 일도 인간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죽어간다.

 

여자와 남자들은 시신 주변을 계속해서 지켰다. 의식에 따라 번갈아 울음과 기도, 회상이 이어졌다. 그런 과정은 생략할 수도 없었고, 공동체 사회에서 부재와 존재 사이의 파열을 방지하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각자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 행위를 통해서 각자가 지닌 삶의 본질적 비극과 화해하게 되는 것이다.(158쪽)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이었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들여다보면 내 선택이라기보단 타인의 선택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내 선택이든 타인의 선택이든 죽음은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숨만 붙어 있는, 더 이상 존엄하지 않은 상태라면, 스스로 비극을 끝내고 싶어 한다면 ‘그래도 무조건 살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한지는 모르겠다. 보나리아가 마리아에게 아카바도라의 일을 부탁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 살았던 것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일을 했으니 자신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단 그렇게 사는 것은 절대 존엄하지 않다는 것을 마리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함께 불행하지 않고 혼자만 살아남는 것은 이기적인 사고일까? 죽음은 신의 권리이니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것은 부리지 말아야 할 욕심일까?

 

니콜라의 선택에 대해, 보나리아의 동조에 대해, 아카바도라의 길을 시작한 마리아에 대해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아야 할 듯싶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죽은 거와 다름없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은 아름답기보단 고통으로 가득할지라도. 보고 말하고 손을 움직이고 걸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해당 리뷰는 ‘오페라의 유령’ 에릭에게 쓰는 편지로 대신합니다.

 

 

To. 에릭

 

오랜만입니다.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모래 한 줌도 안 될 만큼 아주 조금이지만. 오래전 나는 『오페라의 유령』속 당신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랑만이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그 시절, 이루어지지 않은 당신의 사랑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기록자인 ‘나’는 몽샤르맹 감독의 회고록과 페르시아인의 기록을 토대로 당신은 유령이 아닌 실존 인물이라고 확신했지만, 내겐 당신이 유령이든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내가 만난 당신은 평범한 사랑을 꿈꿨던 한 남자였습니다. 그때의 나는 당신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 크리스틴 다에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내가 당신 편일 줄 알았다고요? 미안해요, 에릭. 당신은 상처받겠지만, 지금의 나는 당신 편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머니와 여자들은 당신이 다가가면 달아나버리거나 가면을 쓰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추한 외모 때문에 부모에게조차 거부당했는데 누가 당신을 이해하겠느냐며 자책하고 있나요? 내가 당신 편이 아닌 건 당신의 추한 외모가 끔찍해서가 아니라(그래요. 난 아직 당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절대 외모 때문에 당신 편이 아닌 건 아니에요. 이건 당신이 믿어야 해요.) 당신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나는 당신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빠져 당신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삶의 경험이 쌓이고 나니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의 삶이 보이더군요. 내가 더 이상 당신 편에 설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자신을 존재하게 한 부모에게, 재능을 이용했던 술탄들에게 버림받은 당신의 절망은 세상에 존재하는 자로는 결코 잴 수 없을 만큼 깊었을 겁니다. 당신은 충분히 빛나는 존재였지만 어둠 속에 숨어 가면을 쓰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기록처럼 실존인물이었다 해도 당신의 삶은 유령의 그것이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자신의 삶 혹은 욕망을 위해 누군가의 삶을 망치는 건 옳은 일이 아닙니다. 타인의 목숨을 함부로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설사 가련한 당신이라도.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사랑에 눈이 먼 남자이니 이해하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에릭,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입니다. 어둠 속에서 사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내가 책 속에서 만난 당신은 아주 똑똑한 사람입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현명한 당신은 ‘장난’이 아닌 다른 근사한 방법을 찾았을 거라고.

 

 

어둠 속에 있으면 빛을 갈망하기 마련입니다. 당신의 몸과 마음이 머문 곳은 아르놀트 뵈클린의 <망자의 섬>과 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들어갈 순 있어도 나오는 일은 불가능한 세계. 당신에게 크리스틴은 바깥세상으로 인도해줄 유일한 빛이었을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크리스틴의 빛이었고 말하고 싶은가요? 그래요. 당신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크리스틴은 단 한 번의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명의 오페라 가수로 살다 죽었겠지요.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같은 길을 가는, 그야말로 환상의 커플이 될 가능성이 있었군요.

 

당신이 정정당당하게 라울에게 결투를 신청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크리스틴이라면 마음이 돌아설 것 같거든요. 자주 흔들리는 라울은 그다지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라울은 결투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뛰어난 마술사이자 펀자브 올가미 던지기 명수이자 세계 최고의 복화술사이자 또……. 그에 비해 라울은 애송이 귀족이죠. 페르시아인이 안내해주지 않았더라면 당신의 머물고 있는 세계는 찾지도 못했을 거예요. 운이 좋아 당신의 세계로 들어갔어도 고문실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환영에 시달리다 죽었겠죠.

 

당신이 크리스틴을 향한 마음은 정말 사랑, 이었을까요? 오페라 가수로서 사랑받지 못한 그녀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던 건 아닌가요? 그녀라면 당신을 버리지 않을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닌가요? 어쩌면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랬다면 공포를 통해 사랑을 얻을 것이 아니라 천천히 다가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야말로 그녀의 친구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랬다면 당신이 바라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 가능성이 훨씬 높았을 것 같아요.

 

기다림은 고통이지만 기다림 없는 사랑은 쉽게 부서지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좀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강요가 아닌 크리스틴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당신이 유령이었든 실존 인물이었든 이제 당신은 이 세상엔 없는 존재입니다. 내게 당신은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라 간절히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아픔을 안고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합니다.

 

다음 생엔, 지금 어딘가에서 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이번 생에 만나는 당신의 사랑은 한파 속에도 절대 얼지 않는 사랑이길, 아프지 않은 사랑이길 바랍니다. 당신이 들려줄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From. 한파가 계속되는 어느 겨울밤,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드는 이로부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행 중 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먹을거리 약간 외엔 산행을 위한 특별한 준비도 없었다. 남원의 숙소에서 이른 아침 출발해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고, 칠선계곡으로 내려왔다. 주위는 어두웠고 배는 고팠으며 풀린 다리는 걷기조차 어려웠다. 대화가 사라진 지는 오래였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누군가 말했다. “하늘 좀 봐.” 일행은 일제히 하늘을 봤다.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그렇게 많은 별을 봤던 건 처음이었다. 위기의 순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때 내가 한 생각은 ‘여기서 무너지면 저 별들을 다신 못 보겠구나.’였다.

 

 

『노랑무늬영원』은 한강의 세 번째 단편집이자 십이 년 만에 나온 소설집이다. 청춘도 아프고 마흔도 아픈 시대, 한강의 인물들 역시 아팠다. 「회복하는 인간」의 ‘당신’은 왼쪽 발목을 겹질린 다음 날, 두 발목에 화상을 입었고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 세균까지 감염된 상태다. ‘당신’이 왼쪽 발목을 겹질린 날은 하나뿐인 언니의 장례식 날이었다. 마음의 슬픔이 몸의 아픔으로 이어진 경우였다.「훈자」의 ‘그 여자’는 남편이 있지만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여자’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아이를 보살펴야 했다.「에우로파」의 ‘나’는 여자처럼 살고 싶었지만 남자의 몸으로 살아야 했고, 인아는 매일 요리를 했던 결혼 생활이 끝난 이후 최소한의 음식만으로 살았다.「밝아지기 전에」의 ‘은희 언니’는 남동생의 죽음 이후 일 년의 절반 이상을 국외로 떠도는 여행자가 되었고, 뜻밖의 투병을 시작하게 된 ‘나’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 윤과 단둘만 남았다.「왼손」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왼손이 맘대로 움직이는 일을 겪었다. 내 삶이 타인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 앞에 왼손은 그의 무의식 속 감췄던 욕망을 실현했다.「노랑무늬영원」의 ‘나’는 개를 피하려다 왼손의 신경이 손상됐고 일 년 후엔 오른손마저 망가졌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손을 다친 일은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듯(91쪽)’ 살았다.

 

 

 

 Hope , Gustav Klimt, 1907~1908, Oil and gold on canvas

 

 

부질없는 심문과 대답 사이, 체념과 환멸과 적의를 담아, 서늘하게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는 시간.

눈이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시간.

내 죽음 속으로 그가 결코 들어올 수 없고, 내가 그의 생명 속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시간.

오직 삶을, 삶만을 달라고,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기어가 구걸하고 싶던 시간.

 

그 시간들이 충분히 멀어지지 않았다. (121쪽, 「밝아지기 전에」)

 

 

그녀에게 말해보고 싶었다.

 

새벽까지 타는 심장을 그녀가 지켜보았던 그해,

생각 속의 미로 속에서 더듬더듬 내가 움켜쥐려 한 생각들을.

 

시간이 정말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짐승처럼 죽지 않도록,

다음번엔 두려워하지 않을 준비를 하겠다고.

내 안에 있는 가장 뜨겁고 진실하고 명징한 것,

그것만 꺼내놓겠다고.

무섭도록 무정한 세계,

언제든 무심코 나를 버릴 수 있는 삶을 향해서.(124쪽, 「밝아지기 전에」)  

 

 

‘밤과 낮들이 뒤엉켜 날짜도 확실하지 않은 지난해 그날, 파르스름한 새벽이 점점 밝아지며 나무들이 연둣빛을 되찾는 찰나(203쪽)’「파란 돌」의 ‘나’는 소아천식에 걸린 아이에게 약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가 그런 생각하게 된 건 ‘당신’이 피를 흘리며 아이를 낳는 여자들을 보면 경이롭다는 말 때문이었다. 피가 응고되지 않아서 코피만 흘려도 수혈을 받아야 했던 ‘당신’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꿈속 개울에서 파란 돌을 만난 찰나였다.「노랑무늬영원」의 ‘나’는 어느 날 친구 소진으로부터 사진이 소진의 동네 사진관에 걸려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십 년 전 단 하루, 몇 시간의 기억뿐인 사람(265쪽)’을 수소문한다. ‘나’는 그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사고 이전의 시간을 만났고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 찰나의 빛과 소리는 삶의 기적을 만들었다.

 

 

노랑은 태양입니다. 아침이나 어스름 저녁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태양이에요. 신비도 그윽함도 벗어던져 버린, 가장 생생한 빛의 입자들로 이뤄진, 가장 가벼운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보려면 대낮 안에 있어야지요. 그것을 겪으려면. 그것을 견디려면. 그것으로 들어 올려지려면…… 그것이, 되려면 말입니다.(305쪽, 「노랑무늬영원」)

 

 

노랑무늬영원’은 「노랑무늬영원」의 ‘나’의 친구 소진의 아들 진욱이 키우는 도마뱀의 이름이다. 재생력을 지닌 도마뱀처럼 한강의 인물들은 아주 더디지만 회복하고 있었고 회복되고 있었다. 회복은 ‘나’의 의지이기도 했고 ‘당신’이 주고 간 선물이기도 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보듯 애초 죽음은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에게 고통은 평생의 과제일지 모르겠다. 「에우로파」는 인아가 만든 노래 제목인데 ‘그들은 나에게/죽음을 요구한다./하지만 나는 죽지 않겠다.(85-86쪽)’라는 가사가 나온다. 한강의 인물들은 고통이 가득한 생일지라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 해가 저무는 시간,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다가오는 새해에 대해 어떤 기대도 없었는데 이 책 덕분에 다시 한 번 기대를 품고 싶어졌다. 예측 불가한 일로 가득한 삶, 또다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지만 말이다.「밝아지기 전에」의 마지막 문장은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쓴다.(129쪽)’이다. 아직은 쓰지 못하지만, 내년의 마지막 즈음엔 ‘우리가 회복되었다.’라는 문장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