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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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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도망친 후 농작물을 헤치고 어부들을 위협한 하마는 포수의 총을 맞고 죽었다. 사람들은 운반을 쉽게 하려고 하마의 몸을 절단했다. 인간의 삶을 위협했으니 죽어 마땅했을까. 하마의 이야기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하마는 자유를 찾아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하마에겐 짝과 새끼가 있었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가 태어나고 평생은 아니지만, 지금도 사는 콜롬비아 보고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콜롬비아 현대사 속에서 삶이 추락한 남자와 그의 과거를 추적하는 젊은 법학 교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 얌마라(안토니오)는 하마의 이야기를 추적하다 리카르도 라베르데를 떠올렸다. 유사 이래 가장 악명 놓은 콜롬비아인 가운데 하나인 인물의 번영과 몰락을 상징하는 창고에 관한 뉴스가 나왔을 때 당구를 치고 있던 리카르도는 말했었다.

 

“동물들은 어떻게 처리하려나. 그 불쌍한 것들이 굶어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텐데.”(22쪽)

 

사십을 앞둔 ‘나’가 오래전 불과 며칠 동안 일어난 리카르도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는 건 ‘동화에서처럼 이미 과거에 일어났지만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16쪽)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당구장에서 다시 만난 리카르도는 ‘나’에게 카세트테이프를 건넸다. 둘은 문화센터로 변모한 카사데포에시아에 갔다. ‘나’가 실바의 시를 바리톤으로 말하는 걸 듣고 있을 때 자신의 테이프를 듣던 리카르도는 흐느꼈다. 그는 말했다. 엘레네가 비행기에 있었다고. 거리에 있던 ‘나’와 리카르도는 총을 맞았다. 나는 중상을 입었고 그는 죽었다.

 

훗날 ‘나’는 리카르도의 집을 찾아갔다가 리카르도가 들었던 테이프를 듣게 된다. 테이프엔 엘레네가 리카르도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탔던 비행기의 폭발 직전, 조종사들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휴가 보내시고, 1996년은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기장이 녹음테이프에서 말하고 있었다. “저희 항공편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종사들은 승객들에게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엘레나의 1996년 이후의 삶은 사라졌다. 마야는 어머니를 잃었다. 리카르도는 불법을 저질렀지만 그게 거리에서 총을 맞고 죽을 이유는 아니다. 20년 전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인데 20년 후 우리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수학여행 가던 배는 전복되고, 길을 걷다 낯선 사람에게 칼을 맞고 죽기도 한다.

 

이제 그 녹음은 라베르데가 그날 오후 부드러운 가죽소파에 앉아서 들은 것을 내가 들었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예전에는 결여되어 있던 밀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 경험은-우리는 그것을 경험이라 부른다-우리의 고통에 대한 재고 정리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배운 연민일 것이다.(112쪽)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나와 무관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도 또 겪는 것을 보면, 단체로 망각이란 병에 걸린 것 같다.

 

남자는 여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못할 짓을 할 때까지는 행복하지요. 일단 잘못을 저질러버리면 나중에 회복할 방법이 없어요. 좋아요, 그게 바로 내가 앞으로 며칠 동안 확인하고자 하는 거예요. 엘레나가 올 것이고 나는 과거를 회복하려고 애쓸 거예요. 엘레나는 내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여자요. 그런데 우리는 헤어졌어요.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헤어지고 말았어요. 삶이 우리를 헤어지게 했는데, 삶은 그런 짓들을 하곤 하지요. 내가 엘레나에게 못된 짓을 해버린 거예요. 내가 못된 짓을 해서 우리가 헤어져버린 거라고요.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못된 짓을 했다는 게 아니에요. 얌마라, 내 말 잘 들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엘레나에게 한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 실수를 보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요. 비록 세월이 흘렀다 해도, 수많은 해가 흘렀다 해도 자신이 깨뜨려버린 것을 고치기에는 결코 늦지 않는 법이오. 그게 바로 내가 하려는 것이요. (38쪽)

 

위 문장이 마음에 들어온 건 이 사회가 진심 어린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이 시작되기 팔 개월 전 ‘나’는 리카르도의 딸 마야가 남긴 전화 음성을 들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평생 떠나 산 적이 없는 보고타를 떠나 라스아카시아스로 갔다. 마야는 라베르데가 살았던 집주인 콘수에게 테이프를 받아 테이프를 듣고 그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녀는 계산서를 포함한 리카르도와 관련 있는 자료들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자료들을 수집한 것은 아빠의 삶을 재구성하고 아빠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나’에게 연락한 것은 아빠의 마지막 삶이 어땠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공간에서 부재할지라도 마음에선 존재한다.

 

‘나는 너를 보살피고 싶어, 두 사람을 보살피고 싶어, 우리는 함께 보호받을 것이고, 우리가 함께라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354쪽)

 

어머니를, 훗날 아버지를 잃은 마야는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리카르도, 엘레나, 마야 그리고 나와 나의 아내 아우라는 ‘특별한 시대’를 살았다. 그들의 도시 보고타는 너무 많은 폭력이 일어나는, 법이 무력한 위험의 도시였다. 결혼 전 엘레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여했다. 언젠가부터 세상을 바꾸는 일에 회의가 든다. 그렇다 해도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도시엔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 나를 지켜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말끔히 없애는 일은 어렵겠지만 가능한 덜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와 관심도 필요함은 당연하다. 곁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어느 곳에 살든 더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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