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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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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구멍이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 코너에 있는 채소가게 좌판과 가까웠다. 구멍의 크기는 예닐곱 살 아이의 발 크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멍은 점점 커졌다. 사람들은 구멍을 흘낏 보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갔다. 구멍 아래를 봤는데 아득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에 민원을 넣었다. 알게 됐다. 아무도 민원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구멍이 두려웠던 건 나뿐이었다. 구멍은 채워졌고 사람들은 그곳을 밟고 다녔다.

 

『홀』의 오기 씨는 아내와 짧은 여행을 떠났다가 화난 아내의 돌발 행동으로 사고를 당했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그는 의식만 깨어있는, 회복을 ‘의학이 아닌 의지’에서 찾아야 하는 상태에 놓였다. 오기 씨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그의 나이 열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자살했다. 어머니는 커져 버린 마음의 구멍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녀의 나이 마흔이었다.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고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78쪽) 나이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십 대가 돼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린 오기 씨의 마음에 첫 번째 구멍을 남겼다.

 

오기 씨는 훗날 자신과 제이의 관계로 인해 아내에게 공동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기 씨는 제이와의 이별로 생긴 공동과 상관없이 그럭저럭 굴러가리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현실의 구멍은 보수할 수 있지만, 마음의 구멍은 보수가 어렵다. 아내의 구멍은 오기 씨의 생각보다 더 컸다. 그것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다. 오기 씨가 아내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홀』은 오기와 장모의 불안한 동거를 다룬 이야기이다. 오기 씨는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지만 ‘삶은 실패가 쌓일 분,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았’다(78쪽)고 했다. 오기의 삶은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 않았지만, 장모 역시 살수록 홀에 더 깊이 빠지는 삶이었다. 장모는 전부(whole)였던 딸을 잃었다. 그녀는 갑자기 생긴 구멍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위의 보호자가 되었다. 오기 씨가 아동기에 엄마가 없었다면 장모는 청소년기에 부모의 이혼으로 친엄마와 헤어져 살았다. 그녀는 친척에게 받은 어머니의 유골함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구멍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다른 구멍이 생겨 시선이 옮겨간다. 장모의 삶이 그랬다. 오기가 궁금해했던 장모의 중얼거림 “다스케테쿠다시이”는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뜻의 일본어였다.

 

장모의 친척이 서울에 온 건 장모에게 어머니 유골함을 전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욘사마 때문이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삶의 묘미이자 슬픔이다. 누워 있는 오기 씨는 예전엔 유혹되지 않은 것들에 매혹되었다. 예를 들면 구불거리는 숱 적은 머리가 닿아 땀이 맺힌 여자의 목선 혹은 늘어지고 아무렇게나 부풀어 오른 육덕진 살집. 관심조차 두지 않은 것에 흥분하게 된다면, 그래서 낯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슬플 것 같다. 그보다 더 슬픈 건 찬란한 봄꽃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않은 날이 현실이 되는 일은 슬프다.

 

장모는 후배 에스에게 해도 잘 들고 통풍도 잘 드는 곳에 구멍을 내는 이유에 대해 물고기들이 악착같이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다른 뜻이 있었다. 구멍에서 태어나 구멍 난 가슴으로 살다 구멍으로 들어가 죽는 것, 그것은 생의 비밀 아닌 비밀이다. 삶은 그렇게 과거가 된다.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 않았다는 글에 맞다고 끄덕이다가 이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구멍(hole)과 전체(whole)의 영어발음은 같다. 알파벳 하나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한편으론 구멍을 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십 대이든 그렇지 않든 살아있다면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살아볼 일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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