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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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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두려움에서 생긴다. 가진 것을 잃게 될까 두렵고 갖고 싶은 걸 영원히 갖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어떤 것들은 애초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최정화는 단편집『지극히 내성적인』을 통해 일상의 불안을 감지해 바깥으로 꺼냈다.

 

「구두」에서 삼 주간 집을 비워야 하는 ‘나’는 가족들을 위해 가사도우미가 필요했다.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는 ‘오래되어 모서리가 다 닳아빠진 검정색 가죽 구두’를 신고 ‘뒤축의 굽이 다 닳아서 현관 바닥의 타일과 부딪치며 울리는 짜랑짜랑한 마찰음이 귀에 거슬리’(9쪽)게 걸었다. ‘나’는 여자가 ‘타인의 집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의 머뭇거림이나 위축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9쪽)고 남편, 아이들과도 스스럼없는 지내자 자신의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여자는 자신의 구두를 두고 ‘나’의 구두를 신고 돌아갔다. 여자는 남의 구두를 신고 돌아가는 내내 불안했을 것이다. 신고 나가지 못하고 내내 신발장에 모셔둘지도 모른다.

 

「홍로」의 ‘그녀’는 ‘그’의 아내 역할을 하고 돈을 받으며 살고 있다. 친구들이 독신생활에 염려하자 평범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데리고 모임에 갔다. 그녀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친구들에게 작은 거짓말을 했는데, 친구의 질문세례에 그녀의 거짓말은 점점 커졌다. 그녀는 처음에 들킬까 불안했지만 점차 흥분했다. 급기야 그의 진짜 아내인 것처럼 행동했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의 ‘나’에겐 아무도 없었다. 경선이란 말동무가 있지만 요즘 연애 중이었다. 세 들어 온 작가 오난영에게 동질감을 느낀 ‘나’는 그녀와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밀당을 했는데 그녀는 달아나 버렸다. 난영에게 ‘나’는 불편한 존재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힐 존재였다.           

 

열정적인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팜비치」의 ‘그’는 삼십대 중반의 회사원으로 아내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떠난 팜비치 호텔에서 그가 만난 진실은 짐작대로 흐르지 않는 삶에서 인간은 얻는 건 상처뿐 이라는 것이다..

 

이혼한 후 혼자 딸을 키우며 사는「타투」의 ‘그’에게 고등학생 딸의 임신 소식은 충격이었다. 딸의 임신은 그가 다른 일상에 천착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구두」의 ‘나’가 삼 주 동안 집을 비우지 않았다면,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의 ‘나’가 오난영을 세입자로 받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불안한 일상은 달라졌을까. 딸의 허리에 그려진 타투는 나뭇가지가 새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닌 뱀이 새의 목을 조르는 그림이었다. 나뭇가지가 새의 목을 조르는 것은 주변을 살피지 않고 날아든 새의 실수지만 뱀이 새의 목을 조르는 건 방심한 새와 노려보고 있던 뱀 모두의 잘못이다. 그런데 예민하게 주변을 살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그녀’는 불안 혹은 불행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불안은 다른 불안으로 대체되었다. 그럴 바엔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파란 책」의 ‘그녀’에게 파란 책이 필요했던 건 새 책장을 장식하기 위해서였다. 그 책이 하이데거의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철학을 전공한 남편의 회사 동료가 책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면 파란 책은 장식용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어떤 세상으로 들어간 것은 그 세상에 적응했음을 뜻하진 않는다. ‘그녀’의 미래는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그녀’의 미래와 같을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너무 쉽게 과거의 불행을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더 낫거나 덜한 것이 있을까.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그때 충족되지 못했던 것과 지금 충족되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대머리」, 205쪽)

 

「대머리」에서 실패한 인생인 ‘나’는 여자를 꾀어 인생 역전을 꿈꾸려고 하는데 여자의 사촌이 그들을 방해했다. ‘나’는 술김에 사촌에게 대머리라고 불렀는데, 부르고 나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타인의 약점 혹은 불안은 다른 사람에겐 웃음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알지만 너는 모르는 비밀이든,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너의 비밀이든, 비밀의 누설은 당사자에겐 절망이다.

 

어머니는 틀니를 하셨다. 지병도 있고 잇몸의 상태도 좋질 않아 임플란트가 어려웠다. 틀니를 뺀 어머니의 모습은 15년 정도 이후로 건너뛴다. 거울을 본 어머니는 한동안 상실감을 느끼셨다. 「틀니」는 교통사고로 삼십 대 후반에 틀니를 하게 된 남자와 한때는 완전무결했던 남편이 틀니를 안 끼우면 해괴망측한 모습이 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밀을 지키려면 치밀해야 하거늘 부부는 결정적인 순간 깜박 잊었다. 때때로 비밀의 누설은 삶의 끝을 가져오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삶은 이어진다.

 

집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우리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현재 분양신청을 받고 있다. 분양신청을 하든, 현금청산을 하든 동네를 떠나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동네를 떠나야 하는 일은 슬픔이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곳은 내 동네가 아니다. 세를 살다 몇 년 후 새 아파트로 들어갈 경우 지금 집과 같은 평수로 가려면 많은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 낮게 나온 감정가론 같은 규모의 집을 살 수도 없다. 어떤 경우든 집은 좁아진다.「집이 넓어지고 있어」의 사연이 있는 세입자 ‘나’는 집이 점점 넓어지는 행운을 얻자, 좁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나’는 다섯 식구가 여섯 평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려다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 『지극히 내성적인』에 실린 단편 중 가장 비현실적인 소설로 유일하게 주인공과 주변 사람이 행복한 소설이었다. 자신의 불안과 불행에 천착한 다른 작품과 달리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기울인 작품이기도 했다. 비현실에서 행복한 것은 현실에서 행복하긴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불안은 그들만의 불안이 아닌 우리도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불안이다. 어느 날, 불안이 내 앞에 서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려움이 아닌 침착함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삶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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