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로 부분의 기억은 전체로 인식된다. 오에 겐자부로 하면 ‘죽음’과 ‘개인적 체험’이 떠오른다. 그동안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와 『익사』를 읽었다. 제목에서 보듯 모두 ‘죽음’이란 단어와 관련이 있다. 두 권의 책 모두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녹아 있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을 경외한다. 개인적 체험을 쓰는 일은 어설프게나마 봉합했던 고통의 시간을 다시 통과해야 하는 작업이고, 다른 사람에게 내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초기, 중기, 후기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다. 중기 편에 실린 작품들은 연작 형태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 역시 ‘죽음’과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쓴 것을 계속 고쳐 나가며 내용이나 문체를 확정 지어 가는 일은 소설가로서의 습관’이라고 했다. 「사자의 잘난 척」은 「기묘한 아르바이트」를 다시 쓴 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기묘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개백정을 도와 개를 처리하거나 해부용 시체를 처리하는 것으로 평범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공중 괴물 아구이」의 ‘나’는 괴물에 씌었다는 작곡가D의 시중을 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역시나 평범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의 대학원생은 자신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무자비하게 개를 죽이려는 개백정의 행위는 비열하다고 몰아친다. 개백정은 개를 죽이면서도 개를 굶겨 죽이는 것은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은 타당하며 타인의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다. 초기 단편은 인간의 이중성과 삶의 역습을 그렸다. 개를 죽이려다 개에게 물려 사느냐 죽느냐에 처하고, 검둥이 군인을 가두지만 오히려 그에게 갇히는 상황에 부닥친다. 나는 상대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을 보면 오십보백보다. 인간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일까.     

 

「사자의 잘난 척」의 여학생이 아르바이트하는 이유는 ‘병원 가서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관점에서 낙태는 한 인간을 말살하는 책임을, 그대로 두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애매한 기분인데 새롭게 그 위에 또 하나의 애매함을 창출해 내는’ ‘살인 못지않은 중대한 일’이다. 초기 단편의 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나’이거나 대학원생, 여학생, 학생, 소년, 동생으로 불린다. 이들에겐 삶의 희망이 없다. 노년이 아닌 청년인데도 그렇다. 전쟁의 경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분노를 억누르며 이젠 불안하지 않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슬기로운 ‘레인트리’」(연작「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1)에서 세미나에 참석한 ‘나’는 궁금해 하던 나무에 대해 중년의 미국 여자 아가테로부터 슬기로운 ‘레인트리’라는 말을 듣는다. 레인트리는 밤에 소나기가 내리면 모조리 흡수하지 않고(혹은 흘려보내지 않고) 잎사귀에 물을 저장해 두는 나무다. 레인트리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그가 알게 된 진실은 참혹함이었다. 초기에 비해 연작소설로 이루어진 중기 작품들은 읽기가 버거웠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와 『익사』의 주인공 ‘나’에겐 장애인 아들이 있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중기 연작소설에도 장애인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에 겐자부로에게 장애인 아들은 평생 안고 가야하는 삶의 무게였다. 연작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와 연작 「조용한 생활」은 ‘나’의 장애인 아들 이요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작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의 화자는 이요의 아버지‘나’이고, 연작 「조용한 생활」의 화자는 이요의 여동생이다.

 

내가 여기서 기술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내가 논전을 재구성했던 것에 다시 한 번 기억의 변형이 주어지고, 시간이 가져오는 어긋남에 영향을 받으며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하고 지루한 요약이 되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느꼈던 시각적인 풍경도 곁들려 기록하려 한다.(「슬기로운 ‘레인트리’」(연작「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1), 370-371쪽)

 

연작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에는 소설가 ‘나’가 연작 「레인트리」를 쓰게 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연작「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를 포함한 중기 연작들과 후기 단편은 각자의 단편 속에서, 다른 작품과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기억의 변형이 주어지고, 시간이 가져오는 어긋남에 영향을 받으며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이요, 왜 그랬어? 아직도 괴롭니?”하고 묻자

“아닙니다, 완전히 나았습니다!”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나는 물에 가라앉았습니다. 앞으로는 헤엄을 치겠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헤엄을 치기로 했습니!(「떨어진다, 떨어진다, 절규하며……」(연작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3), 511쪽)

 

‘나’는 자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 아들에 대해 걱정했지만 오히려 아들의 순수한 모습을 통해 삶의 비밀, 삶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배우게 된다. 그는 아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알게 된다. 이요는 알려 주었다.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행보지만 ‘매우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라는 것이라고.

 

‘1년쯤 전에 나는 10년이 넘도록 손대는 일이 없던 단편소설을 하나 발표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 장르를 멀리 했던 것이나 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 분야의 일을 하려고 하는 건 요컨대 나의 작가로서의 삶이 내부에서 새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제부터 되는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의 인생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아무튼 그 오랜만의 단편의 주제는 ‘레인트리’였다.‘(거꾸로 선 ‘레인트리’(연작「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4), 370-371쪽)

 

인생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면 삶을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삶에 희망이 없다면 묵묵히 현실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때로는 분노가 뚝뚝 떨어지겠지만.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과 같은 순수한 용기를 가진 이를 만나고 싶다. 그가 잠자고 있는 내 순수한 용기를 깨워주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