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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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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헌드레즈홀을 본 것은 열 살 때였다.(첫 문장, 11쪽)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은 오랜 시간 뇌리에 남아 생을 지배한다. 『리틀 스트레인저』의 ‘나’에겐 헌드레즈홀에 대한 기억이 그랬다.

 

에어즈 부인은 스물넷이나 스물다섯쯤이었고, 남편은 그녀보다 몇 살 더 많았으며, 딸 수전은 여섯 살쯤이었을 것이다. 분명 무척 보기 좋은 가족이었겠지만, 그들에 관한 내 기억은 희미하다.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그 집 자체다. 내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완전무결한 대저택으로 보였다. 근사하게 낡은 그 집 구석구석이 생각난다. 빛바랜 붉은 벽돌, 물결 모양으로 굴곡진 창유리, 풍화된 사암 가두리. 덕분에 집은 약간 흐릿하고 불분명해 보였다. 이제 막 햇볕에 녹기 시작한 얼음 같다고 생각했다.(11-12쪽)

 

메이드가 살며시 복도 한쪽으로 사라지자 나는 대담하게 그 반대쪽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엄청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단순히 몰래 침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집 자체에 대한 전율이었다. 집의 외양 하나하나가 기가 막혔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바닥, 목제 의자와 장식장에 흐르는 고색창연한 빛, 비스듬히 뒤로 젖혀진 거울, 창들의 소용돌이 장식. 나는 먼지 하나 없는 새하얀 벽 쪽으로 뭔가에 끌리듯 나가갔다. 회반죽으로 도토리와 나뭇잎 모양을 본떠 가장자리를 장식한 벽이었다. 그런 건 교회의 외관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도토리 하나를 꽉 그러쥐고 틀에서 억지로 비틀어 떼어내려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꽉 그러쥐고 틀에서 억지로 떼어내려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주머니칼로 그 도토리를 파냈던 것이다. 망가뜨릴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짓궂거나 뭔가 때려 부수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단지 그 집을 숭배하는 마음에서 집의 일부를 갖고 싶었을 뿐이다. 아니, 그토록 숭배하니까. 물론 좀더 평범한 아이였다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내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사랑에 눈이 멀어 상대의 머리카락 몇 올을 갖고 싶어하는 남자의 심정이랄까.(13-14쪽)  

 

그 집엔 수전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지만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상은 여자아이가 아닌 집 자체였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순전히 우연’으로 에어즈 가를 방문하게 된다. 소설의 화자인 ‘나’ 패러데이는 에어즈 가의 주치의인 데이비드 그레이엄에게 응급환자가 생겨 대신 갔다고 말했다.

 

“어머님께는 제발 말하지 말아주세요. 기억 못하실 겁니다. 그때 저는 쉰 명쯤 되는 무릎까지고 지저분한 꼬마 중 하나였는걸요.”

“하지만 그때도 이 집을 좋아했던 거네요?”

“망가뜨려서라도 갖고 싶을 만큼요.”(99쪽)

 

‘나’가 우연히 헌드레즈홀를 방문했다는 말을 믿었다. 헌드레즈홀을 욕망했던 어린 시절, ‘리틀 스트레인저’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면서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왜? 그는 소설의 화자였으니까. 에어즈가에 불운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른 ‘리틀 스트레인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어린 나이에 죽은 에어즈가 무남독녀 수전이 혼령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고 다음엔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에어즈가 사람들의 나약한 마음이 환청이나 이상한 흔적들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러다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에어즈 부인의 장례를 앞둔 ‘나’의 행동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캐롤라인을 위로하지 않고 지인들에게 캐롤라인과 결혼할 사이라고 밝히는 것에 급급했다. ‘나’의 목표는 사랑하는 캐롤라인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캘롤라인과 결혼해 헌드레즈홀에 사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가졌던 헌드레즈홀에 대한 욕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결국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의 집요함이 두렵다. 그렇다면 그가 ‘리틀 스트레인저’일까? 대답은 ‘그렇다.’와 ‘아니다.’ 둘 다이다.

 

소설은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한 영국 귀족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랜 시간 안락을 보장했던 성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성 밖의 세상을 만나는 일은 두려움이다. 그들에겐 용기가 없었다. 그들을 몰락으로 이끈 ‘리틀 스트레인저’는 과거의 영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둠과 슬픔 속에 살았던 그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불안의 씨앗은 점점 커져 결국 그들을 잠식한 것이다. 어떤 면에선 친절한 의사를 조심하라, 그도 낯선 사람이다, 로 읽히기도 한다. 읽고 난 후 서늘함이 온몸을 감쌌다.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제목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인용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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