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해파랑길 - 걷는 자의 행복
이영철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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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침, 저녁으로 아주 선선해졌다. 긴 소매 옷과 긴 바지가 좋을 만큼. 덕분에 코감기에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여행 가기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행 가기 좋다는 건 다른 일을 하기에도 좋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 여행이란 단어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해파랑의 의미는 ‘해’라는 글자는 ‘뜨는 해’ 또는 ‘바다 해(海)’를 연상시키고, ‘파’는 ‘파란 바다’ 또는 ‘파도’를, ‘랑’은 누구누구 ‘랑’을 의미하는 작명이다. 동래의 떠오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15쪽)

 

‘걷는 자의 행복’이란 부제를 단 『동해안 해파랑길』을 읽었다. 해파랑길! 길 이름이 참 예쁘다. 해파랑길은 ‘동해와 남해의 분기점인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770km의 길’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782km)과 거리가 비슷하다.

 

저자 김영철은 대학 졸업 후 30년간 다닌 직장을 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고, 해파랑길은 산티아고로 가기 위한 전지훈련으로 걸었다고 한다. 이후 산티아고를 다녀와 다시 걸었는데 오랜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끼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다.

 

해파랑길은 ‘영남과 강원 지역의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동해, 강릉, 양양-속초, 고성의 10개 구간에 총 50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구간별 간략한 소개를 읽었을 땐 경주, 울진, 강릉, 고성 구간에 관심이 갔다. 내겐 ‘비밀’이란 단어를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역사와 자연, 삶의 비밀이 있었다.

 

20개 단기 추천 코스와 1박 2일, 2박 3일, 3박 4일, 일주일의 다양한 코스 여행을 소개한다.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50개 코스별 지도와 정보(길 찾기, 포인트, 맛집, 숙박, 교통편)가 실려 있다. 처음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상세하고 정확한 설명이 가득한 여행서적이다. 이 책에는 여행지에 대한 설명과 음식과 숙소, 교통의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들이 실려 있다.

 

보름달 밤에 경포대에 오르면 모두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밤하늘 달과 함께 멀리 동해 바다에 비친 달, 경포호수에 비친 달, 술잔에 비친 달, 그리고 앞에 앉은 연인의 눈동자에 비친 달…(290쪽)

 

부산 2코스는 저자가 소개하는 20개 코스 중 한 곳으로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다. 달(moon)이 들어가는 길 이름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강릉 구간 39코스도 궁금하다. 예전에 간 적 있는데 그땐 '다섯 개의 달'을 몰랐다. 다섯 개의 달을 보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해야 한다. 보름달이 떠야 하고 연인이 있어야 하고.

 

2코스에서 만나는 일출암은 ‘파도와 마주한 국내 사찰 중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위치’라고 한다. 지리산 천왕봉과 제주도 성산 일출봉, 경주 감포, 정동진 등에서 일출을 본 적이 있다. 일출암에서 만나게 될 일출은 어떤 장관일까. 만나고 싶다. 못 이룬 소원 한 가지쯤 빌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동해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한반도 동쪽 땅끝마을’은 호미곶인 줄 알았는데 따로 있었다. 그곳은 625번 국도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석병리’라는 마을이었다. 좋은 길, ‘블루로드’로 유명한 영덕 구간은 7번 국도에 있다. 새 책 그대로 책장에 잠자고 있는 김연수의 소설『7번 국도』가 궁금해졌다. 동해안 해파랑길을 걷다 잠시 쉴 때마다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파도 소리를 듣고 커피 향을 맡으며.

 

영덕 구간 중 하나인 19코스엔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 안내판이 보인다고 한다. 지난봄 <강구 이야기>라는 2부작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세계 최소 3D 드라마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던 드라마였다. 강구항을 배경으로 강구라는 아이를 키우고 사는, 거기다 불치병까지 걸린 싱글맘과 친구의 유언으로 그의 누이인 그녀를 지키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깡패 신분의 남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내용만 보면 신파로 보이긴 하는데 강구항을 배경으로 한 때문인지 꽤 서정적으로 다가왔던 드라마였다. 지난봄에 방영되었지만 쓸쓸함이 물들어가는 이 계절에도 잘 어울리는 드라마라는 생각이다. 지금은 이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소개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영덕 구간 중 관심이 가는 또 다른 코스는 20코스(강구항→영덕 해맞이 공원) ‘빛과 바람의 길’이다. 가고 싶은 건 길 이름이 근사한 이유가 절반이다. 이 책에도 소개하고 있는데 『젊은 날의 초상』을 읽은 사람은 이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주인공이 도착한 그곳은 대진해변이었다. 대진해변에서 고래불해변까지의 백사장은 해안 절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영화<내가 고백을 하면>을 보면서 강릉에 가서 커피를 마셔야지, 하곤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시 마시고 싶어졌다.      

 

사람들은 이렇게 길에다 의미를 부여하고 길 위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안간힘일 것이다.(296쪽)

 

책 뒤표지를 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걷기 좋은 낭만적인 트레킹 코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책에 실린 가장 짧은 코스는 3시간 20분의 시간이 소요되는 36코스(강릉구간, 정동진역→안인해변)고 가장 긴 코스는 7시간 30분이 소요되는 25코스(울진 구간, 기성버스터미널→수산교)이다. 보통은 5~6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다. 해파랑길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게스트하우스 혹은 저렴한 도미토리룸이 많이 부족하다. 아쉬운 점이다. 여행자가 많아지면 나아지겠지, 생각한다. 많이 걸어야 하고 숙박시설도 많지 않아 혼자보단 둘이, 혹은 셋이 떠나면 좋을 것 같다. <꽃보다 청춘-라오스 편>을 보고 친구 셋이 떠나는 여행이 부러웠던 것도 한 이유다.

 

어느 시절 부산, 경주, 인제, 정동진을 함께 했던 이들이 떠오른다. 이번 가을, 그들 중 누군가와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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