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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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가 심한 날들의 연속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은 쌀쌀하지만 낮부턴 포근해진다고 한다. 해결하지 못한 어떤 일이 계속 마음을 괴롭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탄다. 모 소설가가 추천한, 블로그 이웃 분이 아낀다는, 제목이 아주 좋은 그 책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읽다가 말았다. 5분의 1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었다. 글자들이 눈으로 들어와 뇌를 거쳐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머리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 내 머리에 스프링을 박아 놓은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성실한 독서를 하지 못한 나를 변명하는 중이다. 아, 차가운 머리를 가진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작년 이맘때 그의 이름을 알았고 이번에 그의 책을 읽었다. 그의 이름은 변종모로 몇 권의 여행서를 출간한 여행작가다. 이번에 읽은 책은 어느 여행자의 기억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라는 멋진 제목의 책이다.

 

‘달다’에는 ‘맛이 있다’는 뜻의 형용사도 있지만 ‘안타깝거나 조마조마하여 마음이 몹시 조급해지다.’라는 동사도 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는 ‘나는 언제나 당신이 애달프다’로, ‘나는 언제나 당신이 그립다’로 해석된다.

 

지난겨울 추운 날씨 탓에 동면한 곰처럼 살았더니 몸이 무거워졌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꽃샘추위 탓에 몸이 추우니 따뜻한 국물이 있는 요리를 찾게 된다. 굴이 들어간 매생이 국을 먹었다. 이승우의 소설에서 매생이 국을 처음 만났었다. 상상 속의 음식은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온기가 몸을 타고 흐르니 기분이 좋아졌다.

 

변종모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다. 기존의 레시피로 만든 요리가 아닌 여행지의 특별함과 여행자와의 추억이 가미된 기존의 음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이다. 변종모에게 음식을 나누는 건 외로움과 그리움을 나누는 일이다. 음식을 먹는 일은 생을 이어가는 데 필요하지만 당신과 내가 속한 우리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데도 필요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의 길 위에서 비슷한 종류의 상처를 받았고, 어쩌면 그것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크기의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상황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 우리는 살면서 자주 그런 상황을 겪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면역되지 않는다. 그저 세월에 맡기고 그것을 흘려보내며 무뎌지지 바랄 뿐인 것이다.(19쪽)

 

그는 허전할 때마다 방향도 정하지 못한 길을 떠났다. 허전할 때마다 방향도 없이 이 책 저 책으로 여행을 떠나는 나는, 그래서 곧잘 길을 헤매는 나는 그의 여행이 부러웠다. 여행은 눈으로 보고 목소리를 듣고 향기를 맡고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그 감각적인 일들이 가능하니까. 비록 상처로 말미암은 슬픔들은 결코 면역되지 않을지라도.

 

만두가 끓어오르는 수증기에서 냄새가 났다. 따뜻한 냄새. 이미 지나간 일들의 냄새라서 따뜻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저마다 살아온 수많은 사연이 보글보글 끓는 수증기처럼 팽창해, 어느 날 그 아픔들도 기억 속에서 환하게 따뜻하게 끓어오르리란 것을 안다. 추억이란 잡히지 않는 실체지만, 이렇게 열렬하게 끓어오르는 수증기처럼 분명 서로의 입김이 맞닿아 그려내는 이야기이므로 그것이 향긋하다 생각한다. 지나간 일이므로 아픔은 웬만큼 증발되었을 것이다. 이제 뚜껑을 열고 한 김 식힌 다음, 좋은 생각만 하면서 꿀꺽 삼키고 나면 과거는 사라지고 다시 미래만 남을 것이다. 그 든든한 포만감으로 나는 또 남은 길을 가리라. 내게, 늘 당신과의 추억은 허기지지 않는다.(39쪽)

 

동생부부가 주말에 온다. 동생은 어머니표 만두를 좋아한다. 동생이 오는 주면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만두 빚을 준비를 하신다. 하루는 돼지고기와 두부와 숙주나물을 사서 속을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해 냉장고에 숙성시키시고 하루는 만두를 빚으시고 당일 날은 만두를 찌신다. 어머니가 동생을 생각하며 만두를 빚으시듯 동생은 만두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한다. 만두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의 추억은 허기지지 않을 것이다.

 

차가운 머리를 가진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 문장들을 읽다 멈추길 반복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빈 공간을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것. 결국 빈 공간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반쯤은 빈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허기질 것이다. 그래서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당신이 내 마음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풀려 당신을 밀어낸 건지도 모른다.(72쪽)

 

내가 나를 부풀려 밀어냈던, 그래서 이별이 되어 버린 그들을 생각한다. 내 미래가 허기진 날들의 연속일지 알았더라면 그들은 밀어내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살아낸 후 알게 된 것은 생의 순간 만났던 만남은 모두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것. 뒤늦은 깨달음이다.

 

그가 만난 사람들, 그가 만든 음식들을 생각하며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만든 음식들을 생각한다. 그러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게 음식을 만들어준 그들을 생각한다. 그 음식들 때문에 그날 행복했음을 떠올린다. 행복했던 날을 떠올릴 때 전혀 기억하지 않았던 시간이건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는 한 여행자의 특별한 음식 이야기이자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들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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