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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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로 남기지 않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읽다 만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독서가 어렵다. 심신의 부조화, 안에 머물고 싶은 몸과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의 부조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이 얇다고 해서 독서가 쉬운 건 아닌데 얇은 책들에 눈이 간다. 읽지 않은 책들을 모아놓은 책장에서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를 발견했다.

 

죽는구나, 생각했어. 열이 올라서 몸이 타는 것 같고, 하지만 추워서, 의식이 희미해져서, 벌렁 누워버렸어. 자꾸 눈앞이 흐려지고, 뭔가 말을 하고 싶었어. 그때, 자동차 너머에, 달이 있었어.

 

책을 꺼냈지만 제목 때문에 독서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다시 꽂아두려다 뒤표지에서 윗글을 읽었다. ‘그때, 자동차 너머에, 달이 있었어.’의 문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가 처음으로 의식했던 죽음은 어린 시절 길렀던 붉은 새가 새장으로 들어온 뱀에게 물려 죽은 것이었다. 새는 뱀을 감당하기엔 어렸고(어미새였다 해도 갇힌 새장에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새를 가뒀음에도 새장을 관리하지 못했고, 뱀은 생존하기 위해 새가 필요했다. 다른 목숨을 탐했으니, 그것도 어리고 약한 생명을 탐했으니 뱀의 징벌은 마땅한 것일까? 뱀은 애초 그렇게 살아가도록 태어난 존재 아니던가. 그렇다면 잘못은 뱀이 아니라 뱀을 이 세상에 있게 한 신의 잘못 아닐까? 새를 보호하지 못한 인간이 뱀을 벌할 자격이 있을까? 뱀이 악하다면 인간은 선할까? 어리고 약하게 태어난 새를 닮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는 숱한 질문들이 쏟아지는 소설이었다.

 

그 사람, 보육원 원장은 그 시절 ‘나’에게 “자살과 범죄는, 이 세상에 지는 거라고!”, “보란 듯이 성공해서 이 세상에 되갚아주면 돼. 순수한 사람 같은 건 안 돼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곧 서른 살을 앞둔 ‘나’가 교도관으로 근무하는 구치소엔 스무 살로 항소하지 않으면 사형이 확정되는 야마이가 있었다. 악한 것과 약한 것은 발음은 비슷해도 의미는 대조적인데 ‘나’와 친구들, 야마이를 보며 약한 존재로 태어난 것을 감추기 위해 악에 기대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둘 중 누군가가 저지른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용서할 수 없어도 끝까지 한편이 되어주기로 한다면……. 누군가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가기가 쉽거든.(92쪽)

 

‘나’는 “나 같은 사람도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던 사쿠마를 신뢰했지만, 사쿠마는 ‘나’를 배반했다. 예전에는 모든 인간은 선을 갖고 태어나는데 환경이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선은 없고 악만 갖고 태어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적어도 사람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누군가 때문에 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육원에서 자랐던 ‘나’가 혼란 속에서도 같은 고아였던 야마이와 달리 범죄자가 되지 않았던 건 ‘나’의 선택을 존중한 원장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도망친 야마다가 어둠과 추위 속에 혼자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야마이가 ‘나’처럼 어린 시절 원장을 만났더라면, 우울한 밤의 시간은 계속됐을지라도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야마이에게 달은 너무 멀리 있었다.

 

사형제는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자가 아닌 사람을 범죄자로 만든 경우와 사형으로 범죄를 확정할 범위를 어디까지 두느냐가 남는다. 소설 속 주임의 대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지만,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처지에서 가해자는 모두 뿌리 뽑아야 할 악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현재라는 건 어떤 과거도 다 이겨버리는 거야. 그 아메바와 너를 잇는 무수한 생물의 연속은, 그 수십억 년의 끈이라는 엄청난 기적의 연속은, 알겠냐, 모조리 바로 지금의 너를 위해 있었단 말이야.(157쪽)

 

어지러운 세상이 악을 가져온 것이지 애초 나라는 존재가 원래 악을 갖고 태어난 것인지 혼란스럽다. 나라는 존재는 분명 존재하는데 이게 정말 나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존재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린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부모가 나를 길렀든 버렸든. 부모가 나를 사랑했든 사랑하지 않았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족과 사회에 대한 불만은 자살이나 범죄로 나타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거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다. 욕심이 많아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울한 밤만 계속되지만 그렇다고 분노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상투적인 충고일지 모르지만 아래 인용문을 믿으며 살고 싶다. 자동차 너머의 달은 잡을 수 없지만, 해가 지면 눈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대부분 볼 수 있다.

 

“생각하는 것으로 인간은 어떻게든 될 수 있어. 이 세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인간은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야.”(161-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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