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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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고 내 인생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내 삶의 주인공이 정말 내가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존재이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1,2]는 1998년 여름 미국 대통령이 부적절한 관계로 위기에 처했던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버크셔 산악지대의 오두막에서 세상과 결별한 채 글을 쓰는 ‘나’ 네이선은 콜먼을 만나면서 콜먼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콜먼은 일흔일곱 살의 은퇴한 전직 아테나대학의 교수다. 드러난 정보만 보면 그는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정보에는 그가 학생들에게 유령들(spooks)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학생들은 흑인들(spooks)로 잘못 들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받고 투쟁하다 사퇴했다는 사실이 삭제되어 있다. 포니아는 서른네 살로 아테나대학의 청소부이자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여자다.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이 된 남편 레스터와 이혼하고 아이들을 질식사로 잃은, 글을 쓸 줄 모르는 여자다. ‘삶의 종착점’에 선 두 남녀는 서로에게 끌리고 ‘마지막 연애’를 한다.  


내 눈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장점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어떤 사람은 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와 ‘나’는 각자의 비밀이 존재하지만 비밀을 애써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이는 그대로의 서로를 사랑할 뿐이다. 운명을 바꾸려고 했으나 운명 앞에 무너진 남자와 열네 살 이후 삶에서 도망치는 인생을 살아온 여자는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이 ‘가까스로 빠져 나온 세계’는 계속 그들의 뒤를 따라다닌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이, 사회적 지위 등의 차이가 존재하는 그들의 연애는 로맨스가 아니라 스캔들, 더럽고 추잡한 스캔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는, 오점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달의 반만 보고 달을 전부 봤다’고 말한다. 앞에선 평등을 말하고 뒤에선 차별적 행동을 일삼는다. 사람들은 내 잘못에 관대하며 남의 잘못엔 가혹하다. 사람들은 세상을 공정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중의 잣대로 본다.  


콜먼과 포니아, 콜먼의 동료 교수이자 콜먼에게 협박편지를 보냈던 델핀 루는 타향살이를 하고 포니아의 전남편 레스터는 고향을 떠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운명을 위조하고, 가족을 버리고, 고향에서 도망쳤다. 분명 이치에 맞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삶의 얼룩의 1차적 책임은 진실보단 허영을 선택한 그들에게 있지만 온전히 그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는 일정 부분은 사회(작게는 가족)의 오만과 편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은 ‘나’가 아니라 ‘사회’이다.  


세상은 흑과 백, 좌와 우, 스캔들 아니면 로맨스다. 사회는 중간에 선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두 가지다. 사회의 오만과 편견에 맞서 싸워 세상을 바꾸거나 비밀을 싹 감추고 사는 것!  


필립 로스의 작품을 읽는 것은 [휴먼 스테인1,2]가 처음이다. 처음엔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젠가 퍼질 치명적 독을 몸에 품고 살아야했던 그들의 삶에 가슴이 아팠다. 타인과 함께 사는 사회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일은 어렵지만 ‘가짜의 나’로 살기 보단 많이 갖지 못해도 ‘진짜의 나’, ‘존재감이 있는 나’로 살고 싶다.  


어떤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을 보여줘선 안 되고,
어떤 것을 말해서는 안 되고,
어떤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런 모든 것이 아니라,
싫건 좋건 있는 그대로의 나로 행동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생각하는 것.
(2권,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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