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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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나지 못하고 뒤돌아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녀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던 건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 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린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32쪽)

 

그녀가 떠나지 못한 것은 저 멀리 타고 있는 ‘불’때문이다. 한때는 환희였고 한때는 고통이었던 불!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형사는 도서관에 틀어 박혀 책만 읽으며 산다. 그는 자신의 삶도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책을 찾고 있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는 죽은 연인의 고향을 찾아가는 오십대 후반의 소설가와 그녀의 가이드 해피의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가슴에 불을 안고 살아간다. 연인에 대한 그리움,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이 그것이다. 한 사람은 주름은 늘고 몸은 야위어가고, 한 사람은 몸과 기미가 늘어난다. 그녀들은 삶의 즐거움(nak)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미아(迷兒)들처럼 길을 헤맨다.  



사랑은 그와 내가 세계의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장애물들은 그와 내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끝까지 함께 가는 연인도 있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연인들처럼 메타세쿼이아가 있는 곳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연인도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은 끝이 난다. 연인은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면 사랑은 끝난 것일까?

 

사랑을 할 땐 눈이 멀어 상대가 대단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명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는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며 택시기사가 된다. 9·11 테러라는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던 그 일이 이별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달로 간 코미디언], 248쪽). 낭만적인 연애는 진부함으로 끝이 난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의 종현과 ‘나’처럼. 그럼에도 사랑을 해야 할까? 답은 'YES'다. 그의 택시를 탈 확률이 적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택시 한 대 쯤 있는 건 각박한 세상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 일이니까. 우린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기억으로 산다.

 

세월은 인간의 기억을 삭제시키고 잊었던 기억을 재생시키고 새로운 기억을 삽입한다. 모든 것들은 영원히 잊히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 모든 기억은 진실이다. 그것으로 삶은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한다고 해도 연인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가족이라고 해서 부모의 마음을, 자식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깨달음은 언제나 너무 늦다.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아픔을 간직한,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77쪽)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슬픔으로만 남지 않는 건 그들에겐 ‘사랑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외로운 세상, 한 시절이라도 그 혹은 그녀가 있어 행복했다면 그걸로 연애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다. 몸이 추워서 그런지 마음도 춥다. 열렬한 연애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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