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품절



[절망의 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9년 멀티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지만 제목이 주는 호기심도 컸다. 책 표지를 보면 작은 원 안에서 두려운 표정의 사람들이 빼곡히 차 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궁금했다.


“......을 조심하게 젊은이.”

지나가는 할아버지는 남자의 어깨를 스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할아버지의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남자는 서울에 살고 있고 부모는 건강하게 살아있다. 나이는 서른두 살로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결혼을 약속한 애인과 헤어지긴 했지만 나름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남자는 담배를 사러갔다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어떤 것과 마주한다.’(13쪽) 그런데 볼링 공 같기도 하고 검은 애드벌룬 같기도 하고 금속 구슬 같은 그것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검은 구의 최초 목격자인 남자는 가족과 친구와 통화를 하고 차 안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람은 당황하면 평소 알던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남자는 같은 이유로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일까? 경찰,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신고를 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건 아닐까?


사람들은 검은 구의 특징을 알아내지만 인류의 지식으론 설명 불가능하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검은 구에 빨려 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검은 구를 피하려다 죽는다. 검은 구는 점점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지만 자꾸 말을 바꾸는 정부나 뉴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부모와 같이 행동하기로 한 남자는 부모의 집으로 향한다.


검은 구에 대한 소문은 진실과 허구가 뒤섞여 유포된다. 검은 구는 하나에서 둘로 분리된다. 검은 구는 점점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검은 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휴대폰이 끊기고 전기가 끊기고 세상은 점점 무법천지로 변해 간다. 돈을 빼앗고 먹을 것을 빼앗고 목숨을 빼앗고. 행복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며 반으로 준다고 배웠지만 절망의 순간엔 이기심만 커진다.


남자는 종교 단체로 보이는 최선생 무리를 만난다. 그들은 검은 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방법은 협력이다. 그러나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협력을 오래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아픈 아이의 약을 구해오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다구니를 부리는 아이엄마. 약을 구하러 가서 담배를 챙기는 남자. 허리가 아프다며 게으름을 피우다 약을 구하러 가서는 돈을 훔치는 사내.


남자는 사람들이 학교에 모여 있는 이유가 검은 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때문이란 걸 알게 된다. 남자는 마트에서 의문의 청년을 만난다. 이 세상엔 이제 단 두 사람만 남았다.



소설에 ‘김정수’라는 남자의 이름이 나오긴 하지만 작가는 남자의 이름을 적지 않고 ‘남자’라는 익명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자’가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리라. 검은 구가 실제로 나타날 일이야 없겠지만 이 책의 내용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비슷한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실체가 나타나야 절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요즘 부모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지 말라고, 못 본 척 지나가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고. 세상은 위험이 가득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은 진실을 감춘다. 남자와 청년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고 같이 샤워를 했지만 서로를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다가갔더라면? 그들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었을까?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다행히 사람들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죽은 사람들만 빼고. 이제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남자’와 ‘청년’이다. 책을 읽고 나니 슬픔이 밀려온다. 세상의 멸망을 다루는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들은 사랑과 가족의 힘으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절망의 구]는 사람이 희망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 살아야한다고 말한다. 진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진실이 ‘진실’이 아니라 ‘내가 사는 것’이 진실이다. 남자답게 사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건 사치다. 어쨌든 사는 것,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도망자가 되더라도. 죽음은 의미가 없다. 혼란스럽다. 절망의 구로 빠져 들어간 사람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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