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인가 고정관념 Q 8
빅토르 퀘페르맹크 지음, 정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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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작품 속, 외국영화 속에서 표현된 유대인은 대부분 인색하고 별종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궁금했었다. 왜 그들은 미움을 저리도 지독하게 받고 있을까? 왜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그 어떤 민족보다도 지독하게 겪어야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 작품들 속에 드러난 유대인에 대한 표현은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던, 포장되어 있지 않던 그 표현 속에서는 경멸감이 담겨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리도 집단적으로 미움을 받을까하는 의문은 '유대인'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단 한권의 책을 읽고 유대인에 대해서, 서양인들의 뿌리 깊은 미움에 대해서 다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어떠한 이유로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에 대한 가장 오래된 편견은 수전노, 돈만 아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에서 19세기 중반 반유대주의가 극성스럽게 맹위를 떨치면서 사람들 뇌리에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대인들은 각국으로 흩어지게 되고 독립된 유대국가 건설을 사명으로 갖게 된다. 그리하여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그들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고 강대국에 의해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은 놀라운 변모를 보여주게 된다. 이스라엘이 건국 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권익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유대국가 건설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강대국들의 협조하에 점차적으로 팔레스타인들을 내몰기 시작하는 '팔레스타인' 책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어이없는 핍박과 멸시를 받으면서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점은 세계가 다 이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책을 연결해서 읽다보면 도대체 그들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나만의 고정관념이 되는 것일까 하는 우려가 생기지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강대국의 협력과 팔레스타인 정부의 무능함에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점차 살던 터전을 다 잃어가고 있고 높은 실업율과 끝이 안 보이는 난민생활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경제적으로 통제와 제재로 묶어 놓고 있어 그들의 독립된 국가의 꿈은 점차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자살테러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하려하는 점은 우려가 크다. 그들의 궁극적인 분쟁의 원인이 종교 간의 갈등으로 보이는 이면에는 영토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고통은 눈을 감는 국제적 현실이 두렵게 느껴진다. 유대인을 통해서 본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을 읽으면서 알게 된 유대인은 왜 이리도 나에겐 다르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 또한 또 다른 고정관념이 자리 잡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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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그 공존의 역사를 다시 쓴다, 비움과 나눔의 철학 3
이명권 지음 / 코나투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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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전쟁, 테러를 볼 때마다 진정 그들이 말하는 신들이 원하는 것이 이러한 믿음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매체를 통해서 본 전쟁이나 테러는 이슬람계에서 일으킨 종교전쟁이나 테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다시피해서 그런거지 사실 그리스도교에서 자행한 종교전쟁 또한 어마어마한 핍박과 상처를 남겨주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묻고 싶다. 그들의 신들이 원하는 믿음이었고 행동이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매번 그들은 무엇이 다르다고 서로를 저리도 뼈 속 깊이 원한 찬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종교의 무지했던 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리도 다르고 바라보는 지향는 점이 다른 것일까하고 말이다.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은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이다. 우선 대다수일지 모르는 나와 같이 이슬람교에 대해서 재대로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분들에게는 좋은 설명을 해주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신학을 전공하였지만 객관적으로 이슬람과 무함마드를 예수와 함께 설명해주고 있다. 우선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의 큰 차이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이슬람교는 예수를 무함마드와 같이 신이 아닌 사도일뿐이라고 하며 알라(하나님)외에는 신은 없다 이고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를 포함한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큰 차이점과 바라보는 시각차이가 환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예수 또한 그저 하나님(알라)가 사랑하신 선한 제자이자 사도였을 뿐 결코 신이 아니다라는 시각은 그후 그리스도교가 지향하는 삼위일체를 일체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기에 그리스도교의 방향과는 큰 다름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예수의 고귀한 희생, 부활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기에 두 종교는 각기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그외의 하나님과 야훼의 혈통과 사도들의 행적은 인정하고 있다. 결국은 종교적으로 밝지 못한 나는 같은 신을 향한 믿음이 이렇게까지 갈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는 부분 또한 남아있다. 그저 단순한 생각에 그칠지 모르지만 서로 공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간들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만이 남게 된다.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은 이슬람교 역사에 대해 비교적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던 세계를 이어준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성스런 계시를 받은 후 종교의 책이자 생활전반을 책임지는 꾸란, 하디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으며 그후 후계자들인 칼리프가 이어온 이슬람교와 후계자의 전통성에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시각차이로 혈통적으로 정통성이 있는 알리만을 진정한 후계자로 하는 시아파와 3대 칼리프를 모두 포함하여 선출을 통하여 칼리프를 계승하고자하는 대다수의 순니파로 이어지게 된다.  꾸란의 도덕적 가르침에 따라 그들은 갈등과 투쟁 속에서 발전해왔고 개혁을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성에 대한 차별성은 큰 문제로 남아있고 그리스교의 지탄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슬람교, 그리스도교는 서로 공존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은 분명 열려있다고 본다. 신을 향한 마음이라면 화합을 바라는 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까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저자역시 공존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진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생각을 바꾸어 본다면, 종교 간의 이질적인 혐오감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한다.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서로를 편견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진리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새로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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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식채널 -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
조양욱 지음, 김민하 그림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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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식채널'은 일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전통, 생활, 언어.문학, 정치.역사, 사회로 나누어 간단하게 유래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기모노부터 닌텐도, 이지메(따돌림), 후리타 등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편하게 관심이 가는 주제를 찾아 읽어보기 쉽게 되어있어 처음부터 읽어야하는 부담감이 없게 가볍게 일본잡학사전처럼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어 이점이 장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에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후리타에 대해서는 흥미로웠다. <신어사전> 설명에 의하면"영어 free 와 독일어 arbeiter 의 합성어. 정해진 직장에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 의식의 변화에 따라 일하는 방식의 하나로 정착됨. 이라고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정해진 직장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지 않고 생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이 오랫동안 갖고 있던 직장에 대한 고정관념이 변화하기 시작한 부분인 것 같다. 평생직장에 대한 희망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상황에 맞추어진 새로운 직업형태로 보인다. 우리 주위에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라 관심 있게 보았다. 더불어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며 직업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의 뜻인 니트가 있다. 이들의 숫자도 또한 증가추세여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라 마음이 무거워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듯 '일본지식채널'은 요즘 우리가 가질 만한 주제들과 일본 전반적인 문화와 생활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많은 주제를 다루어 이야기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제를 설명하는 부분도 어렵지 않고 쉽게 풀어낸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친밀하게 풀어냈다고나 할까... 그저 친구한테 설명해주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은 사실 거슬린다. 독자와의 친밀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개인적인 느낌일지 모르지만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풀어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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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역사 -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
올레 회스타 지음, 안기순 옮김 / 도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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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역사'는 5천년이 넘는 마음의 역사이며 인류의 문화사와 함께하고 있다. 시대마다 각기 다른 마음(하트)의 역사가 존재해왔고 때로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이해하기에는 벅찬 심장이야기가 있고 때론 현대인들의 사고와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은 하트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고대 수메르, 바빌로니아의<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시작하여 이집트, 그리스, 그리스도교의 심장, 이슬람의 심장, 아스텍인의 냉혹한 심장, 노르웨이 신화에 나타난 심장, 아시아의 심장과 마음을 제 1부로 다양한 문화사에 남긴 심장(마음)이 어떻게 그 시대에 인식되어왔고 전해져 오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모든 심장문화사가 흥미로웠는데, 그중 특히 그리스인들의 심장에 대한 생각과 아즈텍인의 냉혹한 인신공양으로의 심장이야기가 시선을 끈다.
그리스인들은 심장(마음)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결정체로 보았고 그 신체 대부분을 나와 분리시켜서 대화를 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장면에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와보니, 뻔뻔한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숙한 아내의 처지를 보면서 마음의 분노에 들끓게 된다. 그 장면을 옮겨보면,
'하지만 그는 자기 가슴을 치면서 심장을 호되게 꾸짖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참아라, 심장아, 너는 이보다 더 기막힌 일도 참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는 가슴 속에 있는 심장을 꾸짖고, 그의 심장을 계속 벌렁거리면서도 굳건히 참았다.'
(오디세이아 20편,17~22행)
그리스인들의 심장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고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이원론을 믿었던 그들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아즈텍인은 태양중심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생리적, 종교적 관점에서 심장을 인간으리 중심으로 보았다. 그들은 인신공양이 없다면 나라와 백성모두가 멸망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신과 인간 모두가 희생을 치러야만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악에 물든 사람들이 아니라(스페인정복자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심장을 희생을 함으로 구원받고 싶었던 것이다.
아시아의 심장과 마음은 서양인들의 냉혹한 심장이 아닌 마음의 평정을 위해서 많은 수행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 2부에서는 다시 태어난 하트 라는 제목아래 중세기사도 문화저변에 깔린 낭만주의와 데카르트의 이원론(영혼과 심장분리), 몽테뉴의 정신이 깃든 심장, 신에서 인간으로 인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르네상스시대의 심장과 셰익스피어와 조셉콘래드, 루소, 헤르더, 괴테, 니체와 푸코에 이어 현대인들에게 마음(하트)가 밸런타인데이의 상업적 물결로 빠져버리게 된 하트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플라톤, 소크라테스로 시작하여 데카르트의 이원론(영혼과 심장)에 이르기까지 영혼은 고귀하고 그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는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 생각은 그리스도교들에 의해 더 확고해진다. 그래서 심장(마음)의 역사도 초기의 하트의 생각에서 변화를 갖게 되고 자연스러웠던 육체적인 사랑은 경시되고 비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중세기사도 문화와 낭만주의가 결합되면서 하트는 다시금 재조명을 받게 되고 르네상스를 걸쳐 괴테, 니체에 이르러 영혼과 심장을 담고 있는 육체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하트(심장)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트의 역사'는 문화, 철학, 종교를 아우르며 심장(마음)의 역사의 여정을 담고 있다.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심장이 아닌 뇌에서 모든 감정을 주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심장을 소중한 감정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증후로 본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 정신, 이성의 총체를 이룬 존재이므로 심장의 역사는 앞으로도 변화하고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하트의 역사'는 나에게 철학, 종교, 문화사를 아우르고 있기에 읽기에 만만한 책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여러 문화의 하트(마음)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더구나 자신의 관심도에 따라 1, 2부로 나뉜 글을 읽어도 좋고 각 나라의 문화사만을 읽어도 좋은 책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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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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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읽기 전에는 카이사르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수많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외쳤다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였고 친아들처럼 여겼다는 브루투스에게 마지막 일격을 당해 죽었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렇게 단순하게 이야기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수많은 세기마다 이야기 되어 오고 책, 연극, 영화, 만화 등에서 전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는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 역시 카이사르를 다룬 자신의 책이 끝이 아닐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만큼 '카이사르'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카리스마와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관용과 자비를 베풀고 한번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그가 자신을 배신했더라고 한번은 용서하고 넘어가고 면을 가진 반면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야하는 부분에서 가장 냉혹해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자신이 이끌던 군단의 놀라울 정도의 충성심과 그들과의 끈끈하게 얽혀있는 믿음과 신뢰에 대해서는 읽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나오게끔한다. 군중과 군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카이사르는 전쟁의 천재이라 불리우고 전쟁을 통해서 최고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허나 그는 놀라운 매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모습 이면에 천하의 바람둥이에 멋부리기를 좋아하는 마른 몸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같은 원로원 부인들과의 끊임없는 스캔들과 인해 정적을 만들고 그로 인해 평생을 정적들에 의해 지탄과 시기를 받아야만 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전쟁터에 더욱 더 빛이 나는 심리전술의 대가이기도 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원로원에서의 카이사르, 집정관으로서의 카이사르, 전쟁터에서 군단과 함께하는 카이사르, 독재관이 되어 로마의 실질적인 황제를 했던 카이사르의 모든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평생을 쉼없이 앞으로 나아갔고 동시대의 지배자들이 하지 못했던 '관용'의 정치를 했고 귀족들만을 위한 정치가 아닌 평민들에게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군인들을 위해서도 최선의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대에서도 극단으로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라고들 한다. 다 무너져가던 공화정을 허물고 새로운 시대를 열은 인물이며 군중과 군인들의 절대적인 존경심과 신뢰를 받았던 전쟁의 천재로 숭배하고 또 한편에서는 법과 관습을 무시하고 황제로 되려고 했던 욕심많은 정치가로 비판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각자는 자신만의 카이사를 기억에 담으라고 한다. 숭배하건 혐오하건, 아니면 그 둘이 섞여 있건 간에.
나 역시 그를 나름의 기억으로 담으려 한다. 평생을 열정을 갖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기억하려한다.
그는 멋진 삶을 살았다.

처음에 850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세상에 이 책을 언제 읽나하는 부담감이 컸었다. 하지만 읽어 나갈수록 카이사르와 로마 전쟁사에 대해 관심이 커졌고 비교적 빠른 시간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글이 주는 매력이 컸다. 대부분의 인문서에서 한 인물을 다룰 때 한쪽에 치우쳐서 글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카이사르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다룰 때에도 양쪽의 이야기를 다 다루고 있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카이사르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해주었다.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카이사르에 대해 알아가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저자는 중간지대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방대한 분량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더불어 로마 귀족사회 모습과 풍습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로마 전쟁사의 배경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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