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후진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감은 우리 자신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또는 약간 후진적인 문명에서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약만적 상황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콜럼버스와 아라와크 족의 만남이 그랬고 코르테스와 아스텍이 그랬다. 라 페루스와의 만남 이후 틀리지트 족이 겪어야 했던 최후 운명이 또한 그랬다. 우리는 저들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계인의 성간 함대가 우리 하늘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들과 잘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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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 이외의 방법도 여러 장점이 있다. 성간을 항해할 수 있는 우주선, 가시광선이나 적외선 레이저, 중성미자 펄스, 중력파의 변조파등이 있다. 앞으로 1000년이나 더 지난 후에야 발견될지 모르는 다양한 송신 방법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보다 앞선 단계에 있는 외계 문명에서는 그들의 통신 수단으로 전파를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전파가 매우 뒤떨어진 통신 수단일 수 있다. 그렇지만 전파가 갖고 있는 장점들은 만만치 않다. 즉 강력한 신호를 발생시킬 수 있고 비용이 적게 들고 전달이 빛의 속도로 지극히 빨리 이루어지며 게다가 조작, 발신, 수신, 해석 등 모든 것이 간단하다. 그들이 우리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면 그들은 우리같이 후진 문명권에서는 우선적으로 전파 기술에 의존할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싶어 한다면, 당연히 전파 신호에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그들이 고대 기술 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전파 망원경을 다시 꺼내서 우리 쪽을 향해 설치하고 작동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싶다면 전파천문학은 누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최소한의 그 무엇인 것이다.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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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고대 문명으로부터의 메시지를 찾고 있다. 이것 역시 고대 이집트 문명만큼이나 진귀하고 이국적인 문명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명은 시간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깊숙이 감춰져 있다. 외계 문명으로부터 온 전파 신호는 도대체 해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외계의 지적 생물은 그 나름의 미적 기준, 복잡성, 논리성을 두루 갖추고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이질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외계인들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에는 되도록이면 알아듣기 쉽게 만들어 보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쉽게 신호화 할 수 있을까? 과연 성간 공간에도 로제타석이 있을까? 우리는 성간 로제타석이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다른 문명권들이라고 해도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공통의 언어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공통의 언어는 바로 과학과 수학이다.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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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멸종의 원인**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주적 요인의 이변을 멸종의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태양에 가까이 있던 어떤 별이 폭발했기 때문에 공룡이 전멸했다는 주장이다. 별의 폭발에 관한 증거를 우리는 게성운이라 불리는 초신성 폭발의 잔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양으로부터 10 내지 20광년 이내의 거리에서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초신성이 폭발했다면 거기로부터 막대한 양의 우주선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왔을 것이다.




그중의 일부는 지구의 대기로까지 들어오면서 당시 공기 중에 있던 질소를 산화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화질소가 태양의 자외선을 잘 막아 주던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함으로써 많은 양의 태양 자외선이 지표에까지 그대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지구에서 잘 살아오던 생물들은 급증하는 자외선 복사에 거의 전부가 타 버리거나 우주선의 피복으로 심한 돌연변이를 겪게 됐을 것이다. 이렇게 없어진 종들 중에는 당연히 공룡의 주요 먹을거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신성 폭발 때문에 지구상 공룡들은 식량 결핍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이것이 공룡의 멸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p.461


**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공료의 멸종 원인을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에서 찾으려는 연구가 지질학자인 앨버레즈 부자, 월터와 프랭크에 의해서 활발하게 개진됐다.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북쪽에 있는 칙술룹이라는 마을에서 지름 180킬로미터의 거대한 충돌 구덩이가 발견됐다. 이것이 지구에서 발견된 충돌 구덩이들 중에서 가장 큰 것들 중의 하나로서, 그 형성 시기가 대략 6500만 년 전인 것에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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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_FILMMAKER 2024-03-1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구덩이의 진흙층이 이리듐의 특정 동위 원소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지질학자와 천문학자들은 이리듐의 과다 함량에서부터 이 구덩이가 지구 바깥에서 들어온 혜성이나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생긴 구덩이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충돌이 있으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미세 고체 입자들이 비산하여 성층권으로 진입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칙술룹에서 발견된 입자와 동일한 성분의 유리질 입자가 아이티 섬에서도 발견됐다. 충돌 비산물이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날아갔던 것이다.

LIFE_FILMMAKER 2024-03-1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미세 고체 입자들은 태양 광선을 아주 효과적으로 산란 흡수한다. 그러므로 혜성이나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에 충돌했을 때 성층권으로 진입한 미세 고체 입자들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효과적으로 산란시켜 지구 밖으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지구의 기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지구의 기온 강하는 식생의 평형을 깨뜨렸고, 거구의 공룡들은 먹이의 결핍으로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혜성 또는 소행성과의 충돌이라는 우주적 대이변의 결과로 공룡들은 멸종 될 수밖에 없었다.
 
노자 도덕경 - 비움의 길, 다스림의 길 이용주의 고전 강독 2
이용주 지음 / 이학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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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장의 도와 덕을 읽고 수행론을 읽다

본문만을 읽는다면 5000자 정도 가량의 내용이라 읽는게 문제는 아니지만.

각장의 문장에 대해 해석이 갖는 의미를 찾아가는 부분이 지금까지 나온

서로다른 책들의 번역이 만드는 제2의 창작의 세계가 아닌가.

서점에 가도 옮긴이의 책들이 여러권이 있는데

노자의 도덕경 원본도 판본이 여러개로 있다고 한다

기존에 《노자》에는 3개의 주요 판본이 있었다. 하나는 한대漢代에 성립된 하상공본(河上公本),[1] 또 하나는 삼국三國 시대의 왕필이 주석한 왕필본(王弼本), 그리고 당대唐代의 학자 부혁이 전한 부혁본(傅奕本)이 그것이다. 이 중 왕필본의 권위가 가장 인정되어 후대에 나온 대부분 《노자》 텍스트들은 대부분 왕필본을 따랐다.[2]

나무위키 발췌

삼국시대의 왕필본을 대부분 사용해오다.

1973년 12월 중국 호남성 장사의 마왕퇴 3호 고분에서 백서(비단) 도덕경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백서본이라고 하는데 왕필본과 도경과 덕경의 순서가 배치만 바뀌었다는 부분을 빼고는 거의 같다고 하였고.

일부 순서가 바뀐것도 있다는 부분을 빼고 지금까지는 왕필본을 따라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또 재미있는 건.

1993년 호북성 형문시 곽점의 전국시대 고분에서 죽간 노자가 발견 되었는데.

곽점초간본 노자라 불리는 이 판본이 가장 오래전의 원본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체 81장인 왕필본과는 다르게 세개의 죽간에 20장,8장,5장 으로 구성되어 총 33장만 보여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학자들의 이견이 있는 주장들이 있다고 한다.

이용주 작가가 머리말 앞의 일러두기 남긴 도덕경의 원문은

왕필본을 기본으로 간본, 백서본, 하상공본, 부혁본, 범응원본, 도장본 등

여러 판본을 교감하여 확정하였다고 정리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몇몇 도덕경중에 최근에 구입만 하고 소장으로만 가지고 있는 책이 있는데

러시아 작가인 톨스토이가 번역한 러시아 완역본을 번역하여 한국에 낸것도 있다는 것에서

대문호 톨스토이도 노자 도덕경의 영향을 받았고

헤겔의 대논리학에서 다루는 변증법 역시 도덕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책에는 안나옴)

81장의 그 원본은 분명히 짧지만 그 해석의 부분은 옮긴이들에게

여러모로 각 나라에서 자기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고난이였을것같다.

한자의 해석이 번역가마다 달라 그 해석을 달리하는데.

나 역시 옮긴이의 언어가 다르니 번역이 틀리다고만 생각 했다가.

다른 책에서 그것에 관하여 명쾌한 답을 준게 있었다.

소(疏):

중국 고전은 어렵기 때문에

중국인도 설명을 참고하지 않으면 해독하기 힘들다.

여기서 어렵다는 의미는 시대가 흘러 제도도 바뀌었고, 예전에는 사용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고, 완전히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예전과 지금의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역대로 고적(古籍) 해석 작업이 정부 주도하에 혹은 개인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해석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주(注, 註)가 있으며

그 밖에도 소(疏), 전(箋), 해(解), 석(釋), 정의(正義), 집해(集解), 집주(集註), 전(傳), 색은(索隱) 등등

매우 다양하다.

명칭은 번잡하지만 모두 원문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단지 어느 해석이 오래된 경우라면

그 해석을 다시 해석하는 설명이 있는데

이를 '소'(疏)라고 한다.

같은 해석이지만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명칭을 달리한 것이다.

유유출판, 책벌레의 공부중.

노자 도덕경 각 장을 읽다보면 연관 된 파트와 장을 안내하는 부분이 있고

읽다보면 앞에서 본것같은 내용들의 연결성에 이걸 순서대로 보다가

어떻게 파트를 정리할까 고민을 했지만.

책의 마지막 후서에 들어가면 도론, 덕론, 수행론으로 파트가 묶여서

어쩌면 관련된 파트끼리 읽어가는게 훨씬 쉬이 읽혀지게 되는 수 있겠다.


한번에 이해할수 없겠지만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거듭해야 완전해질수 있으리라 본다.

몇가지 파트들 추려본다

도는 도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제1장 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총제성의 다른 이름이다.

도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자의 의미로 부를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를 알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손글씨를 쓰면서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다.

도의 크기는 코스모스가 말하는 우주보다 거 크게 다가왔다.

오히려 우주 그리고 코스모스가 더 작은 것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랄까.

마침.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의 각장마다 여러나라의 신화나 문학 과학으로 챕터를

여는데 10장 영원의 벼랑 끝을 여는 3권의 책이 있는데

그중 한권의 도덕경의 제25장의 해석인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혼돈으로 존재한느 무엇이 있으니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아득하지만 스스로 우뚝 서서 변하지 않는다.

가지 않는 곳이 없지만 죽지 않고, 세상의 어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의 이름을 모르니 단지 도라고 부를 뿐이다.

억지로 이름을 붙여 크다고 한다.

크니까 가고, 가니까 멀고, 머니까 돌아온다.

따라서 도는 크고, 하늘은 크고, 땅은 크고, 왕 역시 크다

세상에는 네가지 큰 것이 있으니

왕은 그중의 하나다.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제25장 천지에 앞서 있는 도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다.

해당 파트에 가면 도가 무엇인지 대략적인 추측은 할수 있다.

딱 이거다 라는 표현과 말은 갖지 못하는게 도가 된다.

도덕경 중에 아마 거의 가장 개인적인것으로 읽혀지는 파트가 있다.

읽다보면 도덕경은 겹겹히 도와 덕을 통해 수양을 쌓아가는 과정인데

내적 고민을 포함하는 파트가 있어서 추천해본다.

칭찬과 책망의 거리는 얼마인가? 선과 악의 거리는 어떤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넓구나, 끝없이 크구나! 사람들은 희희낙락 즐겁다.

마치 큰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마치 봄에 누각에 오르는 것처럼.

나는 홀로 담담하고 욕망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웃지 못하는 갓난아이처럼.

심심이 피곤하구나, 마치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세상 사람은 다 여유로운데 나만 홀로 다 잃은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졌구나! 혼란에 빠져 있구나!

세상 사람은 밝고 밝은데 나만 홀로 어둡다.

세상 사람은 계산이 빠른데 나만 홀로 멍청하다.

마치 바다처럼 넓고, 마치 바람처럼 그치지 않는다.

세상 사람은 모두 유용성을 좇지만 나만 홀로 어리석고 고루하다.

나만 홀로 다른 사람과 달라서

오직 먹여주는 어머니를 귀하게 여긴다.

제20장 도를 실천하려면 세상 가치를 거스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도경의 제20장이 가지는 가장 개인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어떤

득경에서 찾아지는 하늘의 이치를 73장은 담았다

감히 하는데 용기 있는 사람은 죽고,

감히 하지 않는데 용기 있는 사람은 산다.

이 두 경우 하나는 이익이고 또 하나는 손해다.

하늘이 미워하는 이유를 누가 아는가?

하늘의 도를 아는 사람은 다투지 않아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호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느슨해도 잘 기획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서

숭숭 뚫린 것 같지만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

제73장 천도는 성글지만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

성근듯이 보이지만 천지만물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비유는

감정을 해소하는 억울함을 풀게하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어떤 믿음과 결과에 대한 천망..하늘의 그물이 있다하니.

이 도덕경이 씌여진 기원전의 세계와 기원후 여러 국가들에게 읽혀지던 시대와 배경을 생각하면.

군주를 가르키는 방법이 되고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도 읽혀지더라.

지금의 세대에서 읽다보면 정치와 맞닿아 있는 부분들도 있다

최근에 중고 서점을 가서 산책중에

어린시절 표지가 닳아서 없어질 정도로 오래동안 보고 메모하고 지금도 최고의 책으로 꼽는 한권이 있다

그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인데.

아버지가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과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마음을 담았던 내용임에도

성장을 돕는 어떤 용기와 동기부여를 주는 큰 사랑이 담겨 있었다.

한자로 쓰인 문장과 발음을 포함하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문장을 한글로 해석한 부분들만 인용구로 남겨 보았다.

번역이 옮긴 작가들마다 다르겠지만.

이 노자 도덕경이 함의 하는 내용은 하나의 격언이다.

삶에 어느 시기에 마주칠때 하나의 실마리가 될수 있고

생각을 좀 더 심원하게 만드는 통찰을 생각을 연결시키는 읽기와 생각을 남기는

책이자 사상과 철학이다.

한 권의 책을 여러번 자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해마다 다시 읽게 되면 조금 다르게 이해가 되는 부분을 어렴풋이 알것 같다.

요즘 읽으면서 느낀것은 내 자신의 생각이 마음이 좀 더 확장되어가는 마음이였다랄까.

생각을 바꾸는 그런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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