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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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 년 전 한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었다.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진짜같은 슬픈 이야기, 소설이란 걸 알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이야기...능소화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 불행의 이야기지만 그 불행을 사랑으로 승화한 행복한 이야기다.

능소화를 본 적이 없다. 아니 보았어도 그 꽃이 능소화인지도 몰랐으리라. '하늘의 꽃' 소화라 불리는 이 꽃은 만지는 게 아니다. 그냥 두고보아야 하는 꽃이다. 소화의 꽃송이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나 아름다운 꽃임에 꺾지말고 보라는 뜻에서 나온 소리일지도...하지만 그 꽃에 반해 꺾으면 안되는 그 꽃을 꺾은 여인이 있었다. 그것도 팔목수라라는 옥황상제의 무시무시한 신하가 버티고 있는 하늘정원에서 말이다. 그녀의 죄값은 가혹하다. 팔목수라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선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한다. 꼭꼭 숨어야 한다. 그게 그녀의 이승에서의 운명이다.

사주가 중요하다고 늘 말하던 스님이 있었다. 그 남자가 태어났을 때 그 스님은 이야기 했다. 선천운이 나쁘면 후천운으로 보하는 법이라고...남자의 아버지는 그러고 싶었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돋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의 불안은 점점 깊어만 갔다. 스님의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하늘정원에서 훔쳐 온 소화. 산 사람이 가까이하면 눈이 멀고 정신을 잃는다는 무서운 소화. 집 근처에 있는 소화는 모두 없애야 한다. 그리고 박복하고 박색인 여자를 며느리로 들여라. 부모 가슴에 묻힐 아들을 위한다면 그래야 한다. 벼슬에 대한 욕심도 접어야 하고 자신의 재능도 보이면 안 되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배필을 만나도 안 될 운명. 그 남자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운명은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토록 피하려고 했으나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피할 수 가 없다. 다만 늦어질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저런 방도를 찾는 이유는 그 운명의 시간이라도 늦추어보자는 것이다. 사람이니까, 혹시라도 하는 희망때문에. 부부가 너무 사랑하면 하늘이 샘을 낸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들의 운명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해도 그들의 사랑에 하늘은 샘을 냈을 것이다.

사람이 잊지 못할 슬픔이나 고통은 없다고 한다. 그 어떤 슬픔도 세월 앞에서는 약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고통에 못 이겨 자신의 목숨을 놓는 사람도 많고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정신을 놓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니까.


<담 안팎에 어제 심은 소화의 이름을 능소화凌霄花라 하였습니다. 하늘을 능히 이기는 꽃이라 제가 이름지었습니다. 저는 팔목수라가 가둔 우리의 운명을 거역할 것입니다. 오래전에 팔목수라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잊지 못할 추억은 없다고, 사람이 이기지 못할 슬픔은 없다고, 아물지 않은 상처 따위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은 슬픔을 잊을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거닐던 날들을 잊지 못합니다. 이제 능소화를 심어 하늘이 정한 사람의 운명을 거역하고,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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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동화 - 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폴케 테게토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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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가 담긴 아름답고 신비한 허브 이야기. 17가지의 허브들의 유쾌한 이야기다. 언젠가 꽃들의 유래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꽃들에겐 그 유래에 맞게 꽃말이란 게 있어 그 사연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가슴 짠한 이야기들이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여기 나온 허브들의 이야기엔 익살과 위트가 있다. 읽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럼 어떤 허브들이 날 그렇게 유쾌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보자.

 내가 재미있어 한 이야기는 <서양자초>에 대한 것이다. 물론 나는 여자다. 고로 남편 길들이는 법에 관심이 제일 많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신이 여자를 만들고 나서~'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깔깔거리게 만든다. 특히 신이 손가락 한 번 톡 튀기자 약초가 나타나고, 또 한 번 튀기자 어디에서난 찾을 수 있는 약초가 되고 쓰는 용도를 알더니 신부가 결혼식 전날 밤 약초 아줌마를 찾아가는 풍습까지 생겼다고 한다.(오! 이럴수가) 근데 더 웃기는 것은 그 아줌마를 찾아 간 신부의 태도다.

"아주머니, 저는 그 사람과 곧 결혼을 할 생각인데요...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이...."
"알아, 알아."
"이리 와 앉아서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럼 내 알아서 약초를 처방해줄 테니. 그러니까 신랑될 사람이 술집에 간단 말이지?"
"녜"
"가면 아주 늦게 오는데 입에서 악취가 풍기지?"
"네, 그 사람을 아세요?"
"조용, 난 남자라면 다 알아. 그러고는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해대지?"
"만날 그러는 건 아니지만......네."
"집에 있을 땐 오로지 처녀한테 비비댈 생각밖에 없지?"
"네, 그런데 그게......"
"성을 잘 내고 입에 닿는 것만 먹지?"
"아뇨,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녜"
"정말 그 남자를 사랑하나?"
"그게, 지금 제가 대답을 하다 보니 그런지 안 그런지 헷갈리지만......네, 사랑해요."

이 얼마나 익살스러운 이야기인지...아무튼 그리하여 그 처녀는 약초를 얻어 남편에게 사용을 했 다나? 그러면서 마지막에 약초아줌마는 덧 붙인다. 요즘도 여자들 속 썩이는 남자들에게 사용해 보라고...

 이런 이야기도 있다. <타라곤>이라는 약초에 대한 이야기인데...짧은 다리를 가진 용의 딸꾹질을 멈추게 해 준 약초라고 한다. 내가 용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용들은 다 다리가 짧지 않은가? 그렇다치고 원래 용들이 채식주의자였다는 상상은 너무나 재미있다. 그 용들이 덩치 값도 못한다는 사람들의 놀림에 처녀들을 제물로 받았다는 이야기에선 꺄르륵 웃음이 나왔다. 또 사랑의 꽃이라 불리는 <한련화>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감동적이기도 하다. 공주에게 반한 청년이 공주가 내세운 결혼 조건인 '사랑의 꽃'을 찾기 위해 세상을 헤매다가 페루에서 드디어 그 꽃을 찾아 가지고 오는 동안에 '사랑의 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다 보니 결국엔 빈 손으로 오게 되었는데 공주의 시종이 묻는다 "꽃은 어디 있느냐?" 과연 청년은 무엇이라 대답했을까?(궁금하면 읽어보시라~^^)

 그외에도 여러가지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라벤더>는 걸핏하면 픽!하고 기절하는 왕에게 그 효능을 보여주고 <민들레>와 요정 알라운이 만나는 장면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란 노래까지 등장한다.(놀라워라~) <서양쐐기풀>로 부자 농부의 딸 차지한 가난뱅이 왕자. 또 <라일락>이 일으킨 기적으로 공주를 차지하게 된 목동. 이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나 신비롭고 놀라워서 세상의 허브란 허브는 몽땅 가져다가 키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다.

 더구나 이야기의 방식이 여느 동화들과 다르게 유쾌하고 즐거워 다 읽어버린 것이 아쉬울 정도이니 잘 기억해 두었다가 이야기 해 달라고 조르는 조카들에게 두고두고 써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초>로 쌈 싸 먹을땐 '안젤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바질>이 뿌려진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왕들의 만찬'에 대한 이야기를, <페파민트>차를 마시면서는 '차 한 잔에 담긴 행운'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정말 인기있는 고모가 되지 않을까?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나의 기억력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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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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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틈틈히 읽는 책 중에 폴오스터가 엮은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인줄 알았다>라는 책이 있다. 워낙 소설류만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그 편협한 습관을 바꾸어 보려고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는다. 예전 같았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소설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이야기가 많아 '이게 사실이야?' 하고 의심이 갈 정도였다. 이제야 나는 조금씩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글은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프라하의 소녀시대> 역시 소설 같은 실제의 이야기다. 논픽션. 1960년 각 나라 공산당의 이론 정보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일본 공산당 대표로 체코의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에 입학한 열 살 된 소녀 마리가 그곳에서 보낸 5년을 회상하며 '추억의 노트'에 적힌 그때의 친구들을 찾아가는 감동의 다큐멘터리다. 이제는 해체되어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였는지조차 헷갈리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동유럽의 현대사를 마리가 찾아가는 친구들의 인생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소비에트 학교란 소련 외교부가 직접 운영하는 외국 공산당 간부자제의 전용학교로 50여 개국의 아이들이 다녔다. 소련 본국에서 우수한 선생들이 파견되었고 섬세한 보살핌 속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공산당이라는 하나의 중심점을 놓고 모인 아이들에게도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도 달라 소련과 중공의 태도에 따라 서로를 감싸기도 하고 헐뜯기도 했다. 겨우 열 살 된 아이들이 그런 사상에 대해 뭘 알았겠냐마는 자기나라를 떠나 온 아이들이었기에 보통의 아이들보다 성숙했고 고국에 대한 사랑 또한 그만큼 깊었다. 열 살의 마리 역시 누군가 일본에 대한 흉만 보아도 눈물이 나는 아이였다. 

 이 책엔 마리가 만난 소비에트 학교 시절의 친구 세 명이 있다. 리차, 아냐, 야스나. 우연하게도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리의 그리움의 색깔은 파랑, 빨강, 하양 이었다. 자유, 박애, 평등...그리스가 고향이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리차는 레닌의 영화를 보면서 레닌의 생활수준이 일반 시민보다 높은 것을 눈치챌 만큼 본질을 꿰뜷어본 냉철한 리얼리즘을 지닌 소녀였다. 또 루마니아가 고향이지만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아냐는 고국에 대한 사랑이 누구보다 특별하다. 그러나 특권층의 자제로서 엄청난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아냐는 이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21세기에는 없어져야 할 것이 국적이며 이미 영국인 국적을 가진 아냐에게 루마니아는 겨우 10퍼센트의 존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열 살 때 그렇게 감쌌던 루마니아에 대한 사랑이 살아오면서 없어져 버린 것. 마리는 나름대로 합리화 시키며 살고 있는 아냐의 새빨간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야스나. 그림을 잘 그리던 그녀는 베오그라드의 매력을 가르쳐준 장본인이면서 유고슬라비아 연방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마지막 대통령의 딸이다. 아냐를 만나고서 찝찝했던 마음이 야스나를 만나면서 풀렸다고나 해야 할까? 소박하고 검소한 그녀의 생활에서 변하지 않은 소녀시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개방되는 세상에서 공산당이 체제하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고 공산당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나라는 일본과 이탈리아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역사의 변화 속에서 늦게나마 개방의 물결에 합류한 동유럽. 그 덕분에 마리는 친구들을 찾아 나설 수 있었고 만날 수 있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어릴 때 친구인 동급생 세 명을 30년이 지나 찾아가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어디사는 지도 모르는 친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또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책 한 권에 그녀들의 우정과 동유럽의 역사, 더불어 감동까지 안겨주니 말이다. 나도 빛바랜 앨범을 뒤적이며 소녀시대로 잠시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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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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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열여덟 살까지의 소녀들에게는 부모가 있어야 하고
열여덟에서 서른다섯 살의 여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외모가 필요하다
서른다섯에서 마흔다섯 살의 여자들은 성격이 좋아야 하고
쉰다섯 살부터의 여자들에게는 풍족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돈을 모으고 있다.
-소피 터커Sophie Tucker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목이 그럴싸하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의 부제는 '여자,돈,행복의 삼각관계'이다. 저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하고 수중에 남은 돈이라곤 겨우 1500달러와 어린 아들 뿐이었을 때의 막막함을 예를 들며 여자들이 과연 추구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로한다. 사람들마다 다 다른 생각을 가지겠지만 읽다보니 어쩜 세상 여자들의 생각이란 이리도 비슷한가?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럼 행복을 준다는 그 '돈'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우리가 인정하든 말든 결코 단순한 돈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돈은 우리가 꿈꾸었지만 결코 충족될 수 없었던 정체성과 사랑, 희망,약속의 대리인이며 돈에 의해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고 돈은 꿈을 이루는 티켓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여자와 남자의 '돈'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남자에게서 돈은 사랑과 권력의 상호작용하에서 꼭 필요하며 역사적으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들의 정체성과 권력은 생존에 근거하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비롯된 방면 여자에게 돈은 보살핌과 부양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사랑과 돈을 분리하지 못하고 남자의 성공에 따라 자신의 지위나 생활 혜택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이렇듯 우리는 돈에 대해 남들에게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내심 돈이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말이다. 

 나는 '돈'에 대한 개념이 사실 부족한 편이다. 그 이유는 저자가 말하듯이 대학을 나오고 나서도 자립하기 보다는 부모에게 기대어 경제적 도움 바랐으며 자식에 대한 걱정과 사랑으로 주는 그 도움이 나에게 자립할 수 있는 의지를 방해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드디어 내가 자립하여 일을 갖고 '돈'이라는 것을 벌었을 때도 돈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아이러니했다.

 그 모순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인 <정서적 중산층>이라는 부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자는 결혼한 사람들이고, 40대의 여자들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돈에 대한 개념이 거의 나랑 흡사하다는 것에 주목한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생기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필요한 물건 사재기'였다. 그 물건들은 집에 분명히 있었으며 그다지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사치품' 을 가질 수 있다는 상류층 욕구로 신용카드든 현금이든 써 대었던 것이다. 난 겨우 정서적으로도 중산층에 낄까말까 한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저축이든(물론 저축은 했다.조금) 미래든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지금 나의 문화적 생활에 몸바쳤던 것이다. 지금은 물론 그 사재기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도 '돈'에 대한 개념은 부족한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제대로 펑펑 쓸 기회로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긴가?민가? - -;;;)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자는 남편을 두고 남편에 의해 지출이 가능한 여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정서적 중산층이라는 울타리 속에 머물기 위해 기꺼이 빚을 지고 충동적 구매를 하여 후회를 하며 밤잠을 설친다. 저축은 거의 하지 않고 보험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광고 효과에 이끌려 충동구매를 하고 나면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퇴직연금보다는 집안 장식에 더 투자하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외식을 좋아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꼭 누려야 하며 남편에게 지출에 대한 비난을 받기 싫어 가끔은 거짓말도 해야 한다.

 물론 세상의 여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경제 관념을 가지고 쳬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저축을 하며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 알뜰히 하는 여자들도 많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미국 여성의 반 이상이 연금을 받지 못하며(남湄湧?1/4) 네 명 가운데 한 명의 여성이 남편 사망 후 두 달 안에 파산한단다. 또 평균적으로 여자들이 남편보다 7년 이상 더 오래 살며 4분의 3의 여성들이 평균 쉰여섯에 미망인이 된다고 한다. 그 결과 빈곤층 노인의 87%가 여성이라고 하니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중산층이든 상류층이든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릴 일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20대부터 미래를 생각하고 돈을 모은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 주요한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그저 손놓고 기다린다고 한다. 여자들은 결혼을 하고(혹은 하지 않고) 집을 사고 싶어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본인이 일자리를 잃거나 남편이 일자리를 잃거나 또는 남편을 잃기도 한다. 이런 시점에서 '돈'은 진가를 발휘하고 우리는 비판적인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는 거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돈'은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생각은 깊어진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돈을 어떤 식으로 어떤 방법으로 지출하며 저축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따라오는 것이다. 적은 돈으로 살고 있지만 행복한 가정이 있고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한 부자들이 많다. 마크 트웨인이 이야기 한다. <행복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원하는 것을 갖는 게 아니다> 그러니 돈에게 지배당하지 말고 돈을 지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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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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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케이블에서 '왓 위민 원트'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이름있는 광고회사의 잘나가는 기획자 멜깁슨이 해고 당하긴 직전 감전으로 여자들의 마음을 읽게 되어 벌어지는 나름 코믹한 영화다.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고 황당한 일인지...

잠자리에 들면서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을 읽었다. 이제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멋내기 좋아하는 조카를 떠올리며 읽는데 오호~여기선 옷들이 말을 한다. 이런 기발한 상상력이 있나! 다 귀찮아 다 귀찮아 하다가 그냥 잠이 들어 깬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아인 화들짝 놀라면서 외친다. "이런, 세상에! 교복이 나를 입고 있잖아" 물론 제 말에 멋쩍어 머리나 긁적이고 말았지만 그 후로 아이 귀엔 옷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신통해라.

" 그래, 맞아. 확실히 교복이 널 입고 있어."라고 속삭이는 녀석을 무시하기로 하는데 친구의 연락으로 쇼핑을 가게 된다. 비록 엄마에게는 시내에 나가 문제집을 산다고 거짓말했지만 친구들과의 쇼핑은 즐거움이고 일탈이다. 이제 한창 멋을 부리는 아이에게 옷장의 옷이란 하나같이 입을 만한 옷이 아니다. 더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엄마 스타일의 옷이란 죄다 구시대적인 옷들. 그래서 아인 친구네 집에 자신만의 스타일이 담긴 옷을 맡겨두고 쇼핑이나 친구들 만날 때는 옷을 바꿔 입는다. 약간 나이들어보이고 살짝 여성스러운 옷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인 변신한다고 믿는다. 어릴 때 본 <세일러 문>처럼. 이제 세일러 문 변신을 한 아인 친구들과 동대문을 훑는다.

그 또래 아이들답게 질투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자기들만의 스타일을 찾기에 바쁘다. 그런데 무시했던 그 녀석이 동대문가지 따라와서 아인 귀찮게 하더니 이젠 동대문의 옷들이 아이에게 속삭인다. 날개옷이라 불리는 친구가 망사 레깅스와 리본 레깅스 사이에서 망설이자 " 유모~,난 저 애의 통통한 허벅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딱딱하고 미끈한 마네킹 다리는 질렸어. 저 허벅지를 입는다면 고귀한 광택이 흐르는 나, 리본 레깅스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저 허벅지를 천박한 망사나 밋밋한 단추 레깅스 따위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레깅스가 사람의 허벅지를 입는다니...사람이 레깅스를 입는 것이 아니고?

그 뿐이 아니다. 모자를 고르는 친구 요원K를 두고 모자들이 불평을 늘어 놓는다. 네모인 머리엔 벙거지가 안 어울린다는 둥, 카우보이 모자는 자기에게 머리를 들이댄다고 소릴 지르고 비니는 아이에게 부탁까지 한다. 요원K에게 자긴 안 어울리니 쓰지 않도록 해 달라고...또 친구들은 왜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다투는지..아인 왜 맘에 안드는 옷을 친구가 좋다고 한다는 이유로 거금을 주고 사는지 좌충우돌, 뒤죽박죽 정신은 없었지만 쇼핑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인 자신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묻는다. '어느 게 진짜 나일까?'

옷이 내게 말을 하고 내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이 나를 입는 기발한 상상력이 흥미롭다. 이제는 너무나 까마득하여 알 수 없었던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가 추억을 불러 일으키며 향수를 자극한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면서 나도 한번 외쳐 봐야겠다. "이런, 세상에 옷이 나를 입고 있잖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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