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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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 마음은 나오키 편이었다가 차별과 편견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는 어른이었다가 갈팡질팡했다. 다 읽고나서도 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지 모르겠다. 나오키도 처음엔 차별과 편견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오히려 차별과 편견을 조장한다고 했지만 막상 나오키의 아이가 피해자가 되니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았나? 그러니 아무런 사심없이 '용서'라는 단어를 쓰기엔 어른이라고해서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왜 아무런 죄없는 사람이 오로지 '형제'라는 이유로 그런 부당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진한 휴먼 드라마다. 살인강도란 죄명으로 교도소에 간 형으로 인해 동생인 나오키가 받는 부당한 일들은 죄를 저지른 형이 받을 죗값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형이야 죗값이란 명목으로 형을 살면서 뉘우치면 되지만 이 사회에 남아 사람들에게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야하는 나오키의 삶은 그야말로 가엾다.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가수의 꿈도 버려야 했고, 사랑하는 여자와도 헤어져야 했다. 하는 일마다 살인자 형은 나오키를 따라다녔다. 비록 형이 나오키를 위해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나오키가 선택한 것은 형을 버리는 것이다. 그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그럼으로써 나오키에게 덮힌 살인자의 동생이란 씻을 수 없는 오명이 벗겨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 책에는 결론이 없다. 비록 형을 버리겠다고 선언을 하고 그 편지를 받은 형은 그때서야 자신으로 인해 동생이 받은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되었지만 그렇다고 끝이 나는 것도 아니다. 나오키의 사장 말처럼 살인이란 죄는 자살과 똑같은 것이다. 자신은 죽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어떠한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장의 입을 통해 자기가 저지른 죄로 인해 가족들이 받아야 할 고통에 대해 모든 범죄자에게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나면 정말 범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되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작가로만 알고 있던 내게 이 가슴뭉클한 <편지>는 그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해자의 삶에 대해 포장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준 그의 글솜씨는 놀랍다.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은 사람 뿐 아니라 그의 형제들이 가족들이 결국엔 결혼해서 낳은 아무런 상관없는 아이마저 그 죗값을 치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이 책에는 동정심도 없고 용서도 없다. 차별은 당연한 것이고 죗값을 치뤘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그 죗값이 과연 정당한 죗값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 그 세상은 과연 존재하기나 할 것인가?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지옥도 없을 것이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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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 여자아이 -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레너드 삭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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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동안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어릴 때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주위의 환경이나 어떤 후천적 요인으로 인해 남자나 여자로 키워진다고 믿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남자아이니까 당연히 부모는 아이의 모든 물건의 색깔을 파란색으로 택할 것이고 장난감 하나를 고를 때도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고를 거다. 그러다보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자신을 인식할 때 '난 남자아이구나?'하고 자연스레 알게 되어 남자아이로 자라게 된다. 여자아이 역시 그렇게 자라서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되는 거라고 말이다.

 레너드 삭스의 이 책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읽기 전엔 정말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태어나자마자 뇌부터 달랐고 청력에서도 차이가 났으며 눈동자의 움직임으로도 구분이 된다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남자와 여자로 구분이 된 아이들은 자랄수록 그 차이가 점점 뚜렷해지는데 물체의 감지와 길을 찾는 방식이라든지 감정표현까지도 뚜렷한 구분을 보인다.

 오늘 7살된 남자조카랑 산에 올라갔었다. 오를 때는 힘이 들어도 천천히 열심히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힘이 들었는지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했다. 우연하게도 이때 난 남자아이의 특성을 엿볼 수 있었다. 어제 읽은 이 책의 내용 중에 <모험심>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혼자있을 때보다 누군가 자기를 지켜볼 때 더 열심히 집중을 하고 모험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태도변화로 인해 '사람들이 나를 나약한 겁쟁이로 생각하는 게 싫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딱 그 케이스였다. 내려올 힘이 없어서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했지만 그건 사람들이 없는 길에서 뿐이었다. 만약 사람이 나타나면 잽싸게 등에서 내려와 씩씩하게 걸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내가 업힌 사진을 찍을려고 하자 '절대로'찍으면 안 되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자기가 아빠 등에 업혀 내려왔다는 것을 말하면 안 된다고 다짐 또 다짐을 받았다. 여기에서 만약 조카가 남자아이가 아니고 여자아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레너드 삭스는 '초등 2학년의 소녀는 또래의 소년들보다 25살된 여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여자아이라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을 때 그 결론은 달랐다. 내 몸이 힘들므로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아빠 등에서 내려오지 않았을 거다. 올라간 것만으로도 장하다라는 소릴 들었으니 그럼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경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레너드 삭스의 이론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레너드 삭스는 이 책에서 <모험심>을 대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점외에도 <공격성>과 <학교생활>에서 또 <중독>, <성생활>까지 이 모든 것에 나타난 남녀의 구별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 다른 점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 차이점에서 특히 내가 관심이었던 부분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장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아이 키우기' 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말을 잘 듣든지 안 듣든지 간에 개성이 강한 요즘 아이들을 어디에 기준을 두고 키워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부모가 뚜렷한 주관으로 아이를 키우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들이 많고 나 역시 내 성격으로 봐서 내가 아이를 주도하기보다는 아이가 나를 주도할 것이 뻔하기에 더욱 ''어떻게 키울 것인가' 라는 점이 궁금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대로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해서 아이의 성격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장이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신생아부터 청소년시기까지의 아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처법을 예를 들며 설명해 주기에 여러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결혼을 안 해 아이도 없고 더군다나 아이들을 대하는 직업도 아닌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지 조카들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덕분에 난 나름대로 남자와 여자조카들의 차이점도 알게 되었고 그들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난 아무런 힘이 없다. 아이들에겐 부모말고는 자기 자녀를 훈련시킬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잘못된 성격이나 모순된 성격을 고쳐주거나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부모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부모와 교사들이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점을 이해하면서 그 아이들의 능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계발하는가에 대해 알고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아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차이점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들의 서로 다른 욕구와 목표, 능력들이 뒤죽박죽되어 아이들은 상처만 받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번쯤 읽어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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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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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난 한국 문학을 잘 안 읽었다. 기껏 읽어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검증된(?) 혹은 소문이 날 대로 난 작가의 책이나 읽어보았을까? 그마저도 요즘은 제대로 읽은 것이 없는데 가끔 읽게되는 한국 신인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재기넘치고 기발하며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런 새로운 작가들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처음보다 더 멋진 소설들을 써 낸다면 우리 문학에도 언젠가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보다는 독자인 우리가 먼저 우리 문학을 사랑하는 일이 우선이지만 말이다.

 작가들의 상상력에 대해선 매번 이야기를 해서 지겹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또 이야기 하련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런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전혀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징후를 가진 사람들' 혹은 심토머symptomer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어찌나 능청스레 모든 것을 풀어 놓는지 깜빡하고 속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읽다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문장, 스타일, 약간 식상한 스토리도 느껴지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정신을 산란케 하지만 귀싸대기 맞을 각오로 썼다하니 그런 것 쯤이야 통과!

 심리학인지 문학인지 모호한 생각마저 갖게 한 이 책은 사법고시라도 합격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들어간 연구소에서 기껏 아침에 들어온 물건을 내리고 서류와 물건의 개수가 일치하는지 확인한 후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면 그 날의 업무가 끝나버리는 한 무료한 직장인의 기상천외한 경험담이다. 작가는 그가 말하는 심토머들의 등장이 인류의 새로운 종의 탄생이니 어쩌니 하면서 설設을 풀어 놓지만 <믿거나 말거나> 혹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만 같은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우리 주변에 각자의 집에서 심지어 우리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고,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거나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기에 이렇게 서두가 긴지 알아보자.

 어느날 우연히 회사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엿보게 된 13호 캐비닛. 텅 빈 연구실 구석자리에 처박혀 꼼짝도 안 하는 그 캐비닛의 비밀번호를 맞추기 위해 아니, 무료한 회사 생활을 0000에서 9999까지 눈 딱 감고 만번만 반복하면 될 그 일로 활기를 되찾기 위해 시작한 케비닛 열기를 한 후 그  안에 들어 있는 삼백일흔여섯 개의 파일들을 읽게 되면서 알게 된 일이다. 물론 주인공인 공대리는 그 바보같은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지만 말이다.

 그 서류엔 심토머들이 나온다. '징후를 가진 사람들'. 공대리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행동과 징후가 보이는 그들의 증세는 이러하다. 자다가 깨면 몇 시간 아니 몇 일 아니 몇 년의 시간이 사라지는<토포러Torporer>의 징후를 가진 사람들, 심호흡 한 번하면 몇 시간이 사라지고 없는<타임 스키퍼Time skipper>를 가진 여자, 자기하고 똑같은 분신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짜증난다는 <도플갱어Dopperlganger>의 여자, 사랑하는 여자 곁에 있고 싶어 고양이로 변신하고픈 남자, 홍당무보다 지우개가 더 맛있고 광고지라든가 이쑤시개 같은 것을 먹더니 이젠 달빛까지 먹어댄다는 남자.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속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상담을 맡게 된 공대리가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치 공중그네의 이라부 선생을 보는 것 같지만 그다지 쓸만한 해결책을 내세우지 않으니 꼭 그렇다고 볼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심리서도 보고서도 아니고 소설이다. 그저 심토머들의 상담 내용이 다라면 뭐가 그리 재미가 있을 것이겠냐마는 <캐비닛>엔 음모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 약간의 엽기적인 결말이지만.

 2부 마지막 이야기에 <저도 심토머인가요?>라는 글이 있다. 사실 작가가 심토머라는 신종어를 써가며 이야기를 엮어 가는 것을 보면 처음에도 말했듯이 그 심토머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심토머의 첫 징후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겪고 있는 스트레스로 나타난다. 직장을 자주 바꾸는 사람, 쓸데없이 뭔가를 모으는데 심하게 집중하는 사람, 지하철만 타면 구토가 나는 보험판매원,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않는 핸드폰의 밧데리를 매일 바꾸는 외로운 사람, 일에 빠진 사람, 빚에 쪼달리는 사람, 또 남들이 배부른 소리라고 하지만 자긴 미칠 것만 같다는 주부. 그들은 아직 심토머의 자격이 없지만 언젠가는 그 증상이 심해지면 심토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빌미로 심토머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각자 받고 있는 스트레스와 고민들이 <캐비닛>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현실. 그 현실을 블랙유머속에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 문학도 그 다양함이 날로 발전되어 가는 듯하다. 작가의 상상력은 늘 독자보다 한 발 앞이다. 그러니 작가를 하는 것이지만 매번 감탄이다. 캐비닛. 은희경의 말처럼 능청스런 '구라'가 일품인 작품이었다.

 뭐 어쨌거나, 심토머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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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트
가쿠다 미츠요 지음, 양수현 옮김, 마쓰오 다이코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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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다' 라는 말은 어떨 때 쓰는 말일까? 사전에 찾아보면 '욕심이 없고 깨끗함'을 뜻하기도 하고 음식을 두고 '느끼하지 않고 산뜻한 맛'을 담백하다라고 한다. 하지만 난 가쿠타 미쓰요의 <프레젠트>를 읽으면서 내내 '담백하다' 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희한하게도 가쿠다 미쓰요의 책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읽은 책은 <프레젠트>가 처음이니 그 '단백함'이 내게 썩 괜찮은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해 주었다고나 할까. 가쿠다 미쓰요의 책이 내 수중에 아직 여러 권 남아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까지 하다.   

 12월, 선물이 가장 많이 오고가는 달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라서, 연말이라서 인사하고 인사 받느라 선물 장만에 정신이 없을 듯하다. 이 책을 읽고 내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다! 할 만한 선물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난 부모님이 정해 준 이름도 맘에 안 들고, 기억에 남을만한 책가방도 없었으며 첫키스의 추억은 가물가물이다. 남자친구들의 선물도, 결혼식의 기억도 없으니 그 예쁜 아이의 선물도 없다. 어쩜 이런 인생이 다 있나 싶지만 낙심하진 않는다. 아직도 내게 기억에 남을 선물을 받을 기회란 수 없이 많을 테니까 말이다. 

 가쿠다 미쓰요의 <프레젠트>에는 12가지의 선물이 나온다. 선물 하나하나 풀어 헤칠 때마다 가슴이 짠하고 마음이 벅찬다.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툴툴거리다가 자신의 아이를 낳으러 가는 순간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 하루꼬. 재혼한 엄마가 보내 준 어릴 때 할머니가 사 준 책가방을 보면서 지난 추억을 생각하는 나, 생일날 받은 료코의 너무나 멋진 첫키스, 혼자 자취하게 된 나를 위해 엄마가 사 준 냄비 세트. 그리고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는 베일, 기억, 요리, 눈물, 곰인형. 선물 하나마다 담겨 있는 마음들에 난 마치 내가 받은 선물인양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곰인형>이 나온 선물은 마지막에 눈물이 주르륵~흘렀다. 그렇게 멋진 선물이 존재한다니... 그런 선물을 기획한 마모루와 하쓰코 아니, 작가인 가쿠다 미쓰요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앞 둔 남녀에게 꼭 권하고 싶은 기획이었다.(물론 결혼한다면 나도 그러고 싶고...^^;)

 당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입니까? 가쿠다 미쓰요는 이 질문을 받고 한참을 망설였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지만 생각해보면 선물이란 그런 것 같다. 상대방에게 선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부터 그 선물에는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것이다. 그 선물이 크든 작든, 비싸든 싸든 간에 주겠다는 사람의 마음이 제일 소중한 것이고 고마운 것이리라. 그러니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겐 많은 선물들이 떠 오른다. 사랑이 내게 준 아름다운 기억의 선물, 동생들이 준 믿음의 선물, 변함없는 마음으로 날 대해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의 선물, 친구들의 우정의선물.

 그리고 한 해가 끝나는 이 무렵, 이 아름다운 책을 읽게 되어 난 참 행운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이냐고...

 당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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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30년 만의 휴가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공경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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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일에 얽매어 사는 현대인 누구나 <여행>에 대한 환상은 가득할 것이다. 그게 휴가로든 말년의 퇴직으로 인한 것이든 삶에 또 다른 활력소가 될 테니까 말이다. 나도 늘 <여행>을 꿈꾼다. 시간이 난다면 세계 일주를 하리라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야지. 프루스트가 보랏빛 장갑을 늘 끼고 찾았던 파리의 리츠호텔, 오드리 토투가 나왔던 그 물랑 드 카페, 냉정과 열정사이의 두오모, 요즘 들어 가장 가고 싶은 곳 프라하 등등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다 다녀 볼거야. 언젠가는 나도 꼭!!! 하면서...

 앨리스 스타인바흐, <볼티모어 선>지에 근무하며 1985년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이 멋진 여자가 어느 날 휴가를 계획한다. 매번 계획만 세우고 실천을 못하던 그녀가 15년간 남의 이야기만 써다가  이제야 그녀 자신의 사연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여행을 방해했던 많은 장애들(집은? 고양이는? 병이 나면 어떡하지? 휴직이 받아 들여지기나 할까? 등등)을 어느 순간 극복하자 앨리스의 휴가는 꿈처럼 이루어졌다. 30년 만에 이루어진 멋진 휴가가 말이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들어 있지 않은 이 특별한 여행서는 젊은 여자가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아이도 다 키우고, 남편도 없는 싱글인 장년長年의 여자가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파리와 런던 이태리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 갔다. 구경만 하고 바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 머물러서 보내는 여행. 이런 여행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여행일 것이다. 

 파리에서는 차가 아닌 도보로 다니며 파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카페 뒤 마고, 카페 드 플로르, 또 가슴을 셀레게하고 소녀의 마음을 갖게 해 준 한 남자를 만났다. 그들은 생트 샤펠의 색유리 사이에서 영혼이 만난 느낌을 받았고 생 루이 섬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느릿느릿 자콥 거리를 산책했다. 그들의 산책 모습에서 <비포선셋>의 장면이 떠올랐다. 여행에서 만난 남녀의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런던에서 그녀는 좋은 친구 셋을 만났다. 갑자기 아픈 그녀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아끼지 않고 돌봐주었고 그들과 같이 찾아 간 시싱허스트의 정원은 각자의 마음 속 열정을 이야기 해 주었다. 앨리스의 시싱허스트는 글쓰기였다. 뭔가를 언어로 우아하게 표현하려는 욕망. 킹스 로드에서 아침을 먹고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에서 전시한 러브레터를 읽으며 그들의 모습을 상상했고, 브레즈노즈 칼리지에 숙박하면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마지막 여행의 종착지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대형 웨딩 케익처럼 생긴 밀라노의 두오모를 보았다. 보헤미안 라이프의 중심지이기도 한 브레라라는 곳에 반하면서 밀라노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딸아이 같은 캐롤린을 만났고 베니스에서 그녀는 삶이 자신을 재단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삶을 재단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앞으로도 또 그럴 수 있을 지 궁금해했다. 또 중세마을 라벨로에서는 사람이 아닌 도시에 대해 첫눈에 반하는 멋진 경험을 한다. 그리고 시에나의 서점, 아솔로의 묘지를 끝으로 앨리스의 여행은 막을 내린다.

 지금껏 읽어 본 여행서와 많이 다른 이 책을 읽으며 <여행>에 대한 매력을 또 한번 강렬하게 느꼈다. 패키지 여행에서도 맛 볼 수 없고 친구들과 같이 떠나는 여행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여행서였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여행을 맛 보리라 다짐하게 하는...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거야. 내가 영원히 지닐 거야.
이 순간의 기억을...베니스에 내리는 비의 기억을.
영원히 내 것이 될, 비 내리는 다른 곳을 상상하기시작했다.
스페인 계단에 쏟아지던 비, 파리에서 카페의 차양으로 들이치던 빗줄기,
시에나 광장에 내리던 비, 슬론 거리에 있는 숍들의 진열장에 튀기던 빗방울.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안개에 싸인 베니스를 바라보고, 서둘러 비행기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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