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 커버 때문에 책 사러 들어왔는데, 커버가 일시품절일세. 어젯밤에 피곤했던지 일찍 잠이 들고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잠에서 깼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포기하고 책을 읽었다. 머리맡에는 천명관의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그리고 안도현 쌤의 <백석 평전>과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아,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도. 하지만 내 손에 잡힌 책은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책. 왜, 생각하는 여자가 위험한지, 궁금해서...라는 말은 웃기고. 아웅 산 수치의 표지 사진때문이라는 것도 웃기고, 그냥, 그냥, 끌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여자니까.

 

정치 사회적으로 활약이 대단했던(!) 여성들을 다룬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 여성들의 경우, 시대를 잘못 태어난 탓에 고생도 많이 하지만 그들 덕분에 어쩌면 여자인, 나는 좀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 읽진 못했다. 챕터1만 읽었다. 수전 손택이나, 아룬다티 로이, 마르잔 사트라피는 알고 있는 여성들. 오리아나 팔라치와 체첸의 영웅 안나 폴릿콥스키야는 잘 몰랐다. 세상엔 대단히 멋진 여성들이 많다. 그들의 손톱만큼이라도 닮았으면, 나도 뭐가 되어도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거물들 앞에서도 결코 주눅드는 일이 없었다는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런 말을 했다. "인터뷰란 싸움이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와 같은 것이다. 상대를 발가벗기고 자신도 발가벗은 채 서로가 숨기는 것 없이 인격 전부를 맞서는 싸움이어야 한다." 은밀한 저항가, 뉴욕 문단의 보물인 수전 손택 여사는 "작가는 오로지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써 존재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위험을 감행하는 것이다."고 했다. 또 체첸의 영웅 안나 폴릿콥스키야는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지만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들은 내게 러시아을 떠날 기회가 있는데 왜 떠나지 않는냐고 묻는다. 물론 나는 이곳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탐사보도를 위해 기자는 최후까지 취재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가 영영 떠난 체첸은 이제 미지의 땅이 되어 버렸다. 아무도 그곳에 대해 감히, 보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고 연약한 것들의 대변인 아룬다티 로이는 모습처럼 연약해보이지만 정신만은 그렇지 못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처한 상황을 괴로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적 없다. 내 비밀은,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희생자 중독증'을 깨닫게 해준 작가. 그리고 마르잔 사트라피,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이 시대의 역사를 그려낸 마르잔 사트라피는 "나는 예술가이기에 정치가가 아니다. 정치가들은 아주 복잡한 질문에 쉽게 대답한다. 나는 사람들이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문제들에 아주 복잡한 질문을 던지다."고 했다.

 

이들은 시대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당대를 증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대를 증언하고 '반항'이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세계 안에 존재했다. 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해야 했는가. 오늘 밤엔 제2장의 여성들을 만나보려 한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것은,

아, 마르잔 사트라피의 <바느질 수다>를 산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는 사실(=.=) 하여, 장바구니에 바로 넣었다.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읽고 나니 <작은 것들의 신>보다는 <9월이여, 오라>가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고, 모아둔(!) 수전 손택의 글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어보고 싶으면 읽어야겠지. 그래,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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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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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코엘료의 소설을 읽었다. 제목이 주는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자가 여자의 입장에서 쓴 '불륜' 이야기가 궁금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뭐지? 이 여자, 린다!! 아니, 이렇게 멋지고, 모든 걸 다 가진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여자를 두고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배가 불렀군, 불렀어!" 뭐 그러면서 곱지 않은 눈으로 그래, 니가 뭐 때문에 그러는지 한번 읽어나 보자 싶은 생각도 들어서, 끝까지 읽.었.다!

 

솔직히 난 결혼은커녕 돈 많은 남친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단순한 생각으로 보기엔 다 가진 여자가 왜 딴 생각을 품는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결혼한 친구 중에(물론 부자는 아니어도) 처음부터 무쟈게 공감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아.. 내가 모르는 그들의 세계가 있는 거로구나. 했다.

 

우리가 늘 보던 '사랑과 전쟁'의 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버전이 초 상류층이라는 것만 다르다. 하지만 스토리만 생각하고 책을 덮어버린다면 코엘료는 무척 상심하고 아쉬워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 난 작가가 이제와서 사랑과 전쟁 류의 흔하고 흔한 사랑, 그것도 뜬금없이 뭐가 아쉬워서 불륜에 관한 글을 쓰겠는가? 아마 코엘료를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알 것이다.  아니, 나처럼 코엘료빠(!)가 아닌 사람도 아는 사실. 그래도 소설은 스토리만 알면 되는 거지, 라고 생각하고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만 읽는다면, 뭐 어쩔 수 없고. 재미있자고 읽는 소설인데 주인공의 속마음까지 이해하면서 읽어야 한다면, 피곤해서 책을 어떻게 읽겠냐마는, 적어도 코엘료, 라는 작가가 이런 뻔한 글을 썼다면, 왜 그런지 정도는 알고 넘어가야 읽은 시간이 덜 아깝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살면서 한번쯤은 그런 상황에 부딪힌다. 삶의 무의미, 내가 왜 살고 있지? 난 뭐 때문에 살아가나. 이게 내 삶의 끝인가? 뭐 이런 심정의 변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맘 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흔들어놓는 순간(어쩌면 내가 원했기에 일어나는 일일지도 몰라). 그 무의미에서 벗어나고자 닥치는 대로 어떤(!) 일에 빠지게 된다. 누군가는 무절제한 쇼핑으로 명품을 사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우연히 도박에 빠져 돈을 탕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따라 춤바람이 나는 우리 앞 세대의 엄마들도 있었는데, 린다는 남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한데 이런 상황이 내 앞에 닥쳤을 때,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나가서 어떤 식의 결론을 지을 지는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본인만 할 수 있는 일. 내 마음의 지옥을 털어내고자 친구에게,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해봐야 허무해질 뿐이고, (불륜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는 일은 더더욱 안 될 일이겠지. 그럼 린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할까? 코엘료는 그걸 우리에게 보여준다. 린다가 겪는 그 내면의 갈등을. 린다는 열심히 고민한다. 자신의 내면과 싸우고 또 싸운다. 고백을 하겠노라, 마음도 먹는다. 그런 과정들을 겪은 후(이 과정엔 얼토당토하지 않는 상황들도 있다. 질투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빠졌다고 생각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자. '상실된 낭만'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는), 린다는 나름의 (어쩌면 최선의) 결론을 내리는데……

 

그게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린다를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해, 이해라고는 말했지만 모르는 게 약이다, 혹은 알지만 안 듣겠다, 는 어쩌면 상당히 '성인군자' 같은 스타일, 아니 나중에 자기도 똑같이 해보겠다는 음험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를(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남편 덕분?!)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고 남편인 친구들에게 권했다. 읽어보라고. 

 

뻔한 스토리, 뻔하지 않은 결론. 부부로 살면서 어느 순간, 한번쯤 딴 생각을 품은 적이 있다면 공감이 갈 것이라는 것. 린다가 겪는 마음의 갈등을 백배 이해는 못해도 어느 정도 수긍은 할 것이라는 생각.  

 

코엘료는 아마도 '불륜'이라는 주제로 사랑과 믿음을 전해주려고 한 것 같다.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사랑과 믿음이니까. 사랑을 향해 갈등하며 고민해가는 린다의 마음과 (물론 설마 눈치를 못 챘겠냐마는) 린다를 이해하고 믿어준 남편. 결국엔 그것. 그리고 코엘료답게 그가 전해주는 그 아름다운 문장들은 뻔한(!) 스토리를 상쇄시키고도 남았다고나 할까.

 

안타까운 것은, 결혼10년 차, 이제 겨우 삼십대 부부의 삶의 이유가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것이 결혼도 안 해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될 뿐. 내 기준으로 그들은 어려도 너무 어..린데..왜 '아이들을 위해서' 삶을 살려고 하는 걸까?(앗, 내가 너무 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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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 집 근처 공립중학교 앞을 산책하던 '나'는 중학생들이 체조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십사오년 전, 그 중학생들의 나이보다 조금 더 많았던 그때, '내'가 잔디를 깎던 그 무렵. 

 

'나'는 열아홉살 쯤이었고 애인이 있었지만 먼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녀를 정말로 좋아했는지, 잘 모르지만 그녀와 식사하는 것을 좋아했고 섹스 뒤에 '내' 가슴에 얼굴을 대고 재잘거리거나 잠드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긴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고 그 편지엔 헤어지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너를 항상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새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녀의 편지에 딱히 화가 난 것은 아니었고 다만 한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요즘 아주 명랑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해 '나'는 잔디를 깎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이 힘들었지만 보수는 나쁘지 않았고 남들과 말을 나눌 필요가 별로 없는 일이었다. '내'게 딱이었다. 상당한 목돈을 마련했고 여름에 애인과 어딘가로 여행을 갈 수 있었지만 그녀와 헤어져버린 지금은 여행이고 뭐고 없었다.

 

돈을 벌어도 쓸 데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잔디 깎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사장의 부탁으로 일주일만 더하기로 했고 마침내 마지막 일을 하는 날이었다. (…) _「오후의 마지막 잔디」

 

오래 전에 읽었던 단편을 다시 읽었습니다. 분명 읽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몇 페이지만 넘기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왜냐, 하루키니까요.^^ 

이 소설도 그랬어요. 제목부터 하루키, 느낌이 바로 오지요~! 

읽어보니 역시, 짐 모리슨과 폴 매카트니, 일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 더구나 같은 동양권인데, 잔디깎기라니. 낯설면서도 묘하게 흥미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성격도 딱, 제 취향이네요.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여름의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꼭 데쟈뷰를 느끼듯이,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지가 않았지요. 

기억이라는 건 소설과 비슷하다고 하루키는 말했는데,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느끼는 데쟈뷰와 같은 감정이 소설인지 기억인지... 

 

 

 

그녀는 열여덟, 고등학교 3학년. 가족이 함께 여행을 왔다. 엄마는 말한다. "여기서만은 네가 고3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려도 좋아." 하지만 그녀는 재미가 없다. 마치 정략결혼이라도 시키겠다는 듯이 두 집안은 그녀와 현을 묶었지만 그녀는 모든 게 싫다. 자신의 몸을 탐하는 현도, 한 번도 그녀에게 착한 딸이 되라고 말한 적도 없는 엄마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엄마의 유난스런 가정 교육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엄마는 착한 여자였기 때문에 인생에 실패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인생에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녀는 감미로운 고통에 점점 매혹을 느끼며 언젠가는 자신의 인생도 엄마처럼 실패했다고 여기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한 남자가 들려주는 자기 대신 '바다를 바라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찾아나선 고통. 그 이유에는 가족들의 세계가 싫다거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거나 하는 것이 있진 않다. 그저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절히 원하는 게 하나씩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단순한 욕정에서든 사회적인 분노에서든 간에.

 
그렇게 그녀의 한 세계는 끝이 났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_「기억할 만한 지나침」
  
이 단편은 한 소녀의 성장담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녀가 결국 그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다는 이야기이죠. 누구에게나 한 세계의 끝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누군가에겐 소녀 시절에 오고, 또 다른 이에겐 나이가 들어서 오거나 결코 한번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어쩌면 이 소녀는 더 늦거나 한번도 오지 않을까봐, 그게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 휴양지의 벨보이처럼 따분하고 놀랄 일이 없는 삶이나 현과 결혼해서 고통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이 될까봐. 당찬 소녀라고나 할까요? 마치 남의 나라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러고 보니 어제 읽은 하루키의 단편도 그랬지만 이 작품 역시(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번역투'의 글들 같습니다. 음, 이게 우리나라 이야기야? 할 정도로 조금은 낯설지만 소녀의 마음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국적인 소설?! 해설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말을 했어요. "프랑수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나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유려한 번역투(표현이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를 우선 즐길 만한 작품이지만,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붕괴를 시적으로 표착해낸 아름다운 마지막 단락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요.
문득, 나의 첫 세계는 언제였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첫 세계는 언제 끝이 났나요?

 

슈타인은 헤어진 지 2년 만에 뜬금없는 전화를 해서는 말한다. "그거 찾았다. 집! 그 집을 찾았다고" 그를 만나지 않게 되면서 그를 잊었던 것처럼 그가 했던 말도 잊은 '나'에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랑이다. 그 집을 찾았다고 해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사랑이다. 폐가가 되어 언제 무너질 지도 모르는 그 집을 보고 나서도 '나'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내 생활을 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슈타인의 엽서가 날아온다. "네가 온다면……." 유디트 헤르만의 문장은 무심하다. 뭔가 어긋나 있고, 애정 결핍이다. 제대로 된 결론은 없지만 그래서 읽고나면 안개속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슬프면 슬프다고, 쓸쓸하면 쓸쓸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헤르만 그러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 상황을. 그러곤 독자에게 맡겨버린다. 생각을 해 봐! 너라면? '나'는 마지막에 슈타인의 편지를 받는다. 그러고선 잠시 생각했다. "나중에……." (오래 전에 쓴 리뷰를 가져옴) _「여름 별장, 그 후」

 

 

하루키의 단편 「오후의 마지막 잔디」를 시작으로, 김연수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거쳐 문득 생각이 났던 유디트 헤르만의 「여름 별장, 그 후」 이런 식의 이어지는 독서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유디트 헤르만의 글은 여전히 무심하다. 

이 책을 읽은 지 5년이 지났음에도 그랬다. 쉽지 않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해가 된다. 모든 상황이. 슈타인이, '나'의 행동들이.

단편의 재미는 이런 데 있다. 길지 않은 글, 친절하지 않은 스토리, 이해가 되지 않는 끝마침.
이야기의 끝은 독자의 상상에.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둔다.
나는 상상하지. 어느 날 우연히 '나'는 서랍 속에 넣어둔 편지를 발견할 테고 그때를 떠올리겠지.
잠시 슈타인을 생각할 테고, 어쩌면 그곳으로 그 잔해를 찾아갈지도 몰라. 갔는데 실종된 슈타인을 보게 되는 거야. 그리고…….

 

늦은 휴가로 케이프 코드로 떠난 리처드는 그곳에서 예쁘진 않지만 쾌활해보이는 수전을 만난다. 플루트를 불며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리처드와 유산으로 받은 집이 케이프 코드에 있는 수전. 리처드는 그녀가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부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랬다면 수전에게 말도 걸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너무나 다른 삶, 다른 세계. 어울릴 수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뿐. 

 

둘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수전의 제안으로 그 곳의 집을 둘만의 집으로 꾸민다. 하지만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수전과 뉴욕에 사는 리처드. 둘의 삶의 극과 극에 있었다. 마지막 날, 수전과 리처드는 서로서로 자신의 삶으로 상대를 유도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리고 집 동네로 돌아온 리처드는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다. 케이프 코드에서의 짧았지만 강렬했던 삶과 뉴욕에서의 현실적인 삶이 부딪힌 것. 그는 수전을 사랑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수전과의 삶은 사라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에게로 당장 날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 그녀에게 이곳으로 와 달라고 같이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_「성수기가 끝나고」

 

순전히 제목 때문에, 사고선 읽지 않은 『여름, 거짓말』의 첫 단편을 읽었습니다.
여름, 사랑, 거짓과 진실, 행복.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의 주제는 이러했고, 연이어 읽고 있는 책들과 잘 맞았지요.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지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는 꿈을 꿉니다. 
저도 그렇고 아마 다들 그럴 거예요.
아니, 한번이 아니라 어쩌면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런 만남을 기대할 지도 모르죠..
여기 그렇게 만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미래도 계획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제 이곳에서의 일은 꿈속의 일이 되어 버릴 테니까요.
같은 도시, 가까운 곳에 둘의 '현실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휴가지에서의 일은,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한사람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만 할 거예요.
아님, 둘 다 포기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때요?
이런 사랑에 빠진다면,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전, 저는... 아마도...

 

 

 

친구의 생각이었던 단편 이어 읽기.

하다보니 재미 있어서 매일 열심히 읽었다.

원래는 하나씩, 올려야 하는 포스팅이나, 밑줄 긋기 빼고 이렇게 묶어봤다.

나름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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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판 서문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내고 4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서점으로 갈 거라는 제 바람과는 달리) 대부분 읽다 말고 횟집으로 달려갔다고들 합니다. 영세한 동네 횟집과 수산물시장 영업에 약간의 도움은 되었다면 제 나름의 보람이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그저 회나 사먹고 돌아가곤 했던’ 바다와 가까워지고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 들었을 때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이 책의 2부 격인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발간에 맞춰 개정판을 내겠다는 편집부의 전화를 받고 나서 지난 4년을 떠올려봤습니다. 그동안 천 번 정도 더 바닷가를 거닐고 또 삼백 번 정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더군요. 그러니까 달라진 게 없는 거죠. 저는 이곳에서 그대로 살면서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물고기들을 계속 만나고 있으며 사람들 사연 또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은 파도가 치고 바람 불고 동백과 나리꽃이 피었다가 툭툭 떨어집니다.


친근함에는 한계점이 없습니다. 바다와 사람들이 더 친해지면 좋겠습니다. 

 

2014년 여름

거문도에서 한창훈 

 

 

 

작가의 말

이제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시작합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가 가족끼리 바다에서 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쓴 거라면 이번에는 '바다와 나'에 관한 것입니다. 다분히 개인적이고 술 관련 어른들 이야기라서(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더 깊고, 멀리 쏘다닐 예정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바다가 있는 이유'를 저도 모르게 말할지 모릅니다.
동승하시겠다면 기꺼이 환영합니다. 편하게 앉아주시고요. 술잔은 옆에 놓아두겠습니다. 일단 건배를 하죠. 풍랑에 시달리고 때론 외롭기도 하겠지만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럼 닻 뽑고 돛을 올리겠습니다. 자, 출항합니다.
'올 라인 네코!'

이렇게 말해놓고 문학동네 카페에 원고를 연재하던 중인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바다에 그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을 수장시켜버린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이가 갈렸습니다. 연재를 멈추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을 집단으로 죽여버린 대한민국. 제가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게, 그 무능하고 책임 없는 사람들의 안정된 생활과 품위 유지를 위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게, 바다가 무참하게 훼손당해버렸다는 게,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미워해야 할 것과 미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목숨과 바다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요.

바다는 인류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스스로 있어왔습니다. 장마와 폭우가 하늘의 실수가 아니듯 바다 또한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깊고 푸르게 출렁거려야 할 곳입니다.
때문에 저는 뒤늦게라도 이 이야기를 마쳐야 했습니다.

304명의 이름, 그리고 바다에서 스러져간 이들 앞에 묵념하며

2014년 여름
거문도에서 한창훈

 

 

****

울컥, 해지는 작가의 말.

이미 연재 때 그 마음을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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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재빠르게 알려주는 알라딘 알람, 사랑합니다~

 

 

 

드디어 올라온 한창훈 쌤의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완전완전완전 좋으다. 사진도 글도 예술이라며 ㅋ 에로틱함과 철학적인 사유까지, 여태 본 한쌤의 글 중에 젤 재밌고, 젤 야하고, 젤 쓸쓸했던. 빨리 책으로 만나보고 싶다.

 

더불어 함께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이 책은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의 부제로 붙어 있던 제목을 새 제목으로 썼는데, '밥상'과 '술상' 한창훈 쌤과 정말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사진도 몇 장 교체했다고 하더라. '인허바'가 있지만, 세트로 구매해주겠노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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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8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8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8-0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완전 반가운 소식이네요. '한창훈'에 '술상' 이라뇨. 맙소사. 환상적인 궁합이잖아요!! >.<

readersu 2014-08-08 16:26   좋아요 0 | URL
에로틱과 유머와 쓸쓸함과 외로움까지.....
그기에 사진이 완전 환상적이에요!!!!

프레이야 2014-08-0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으래요? 마음이 확 가는 소식입니다. 이참에 두귄 다 담아가요. 땡스투유~

readersu 2014-08-12 17:1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의 마음에 쏙 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