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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eadersu >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작가, 천명관 낭독회

오래 전에 집에 놀러 오던 ‘아는’ 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명관 작가를 만났다며 이곳에 사는가보다고 했다. 그래? 하는 놀라움보다는 마침 그의 첫 작품 『고래』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아, 그 소설, 정말 재미있었는데! 딴소리를 했다지. 사실, 그땐 작가들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천명관 작가가 아니라 김훈 선생이 옆집에 사신다 했어도 시큰둥했을 것이다(정말?) 아무튼 재미있다는 친구들의 강력 추천에 의해 『고래』를 읽고 그 느낌이 너무나 새롭고 놀라워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정말 오래(!) 기다린 셈이다. 그의 장편을!

알라딘에서 있었던 천명관 작가의 낭독회였다. 지난 번 <상수이리카페>를 한번 다녀간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잘 도착했다. 저녁을 먹지 않아 빵과 우유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으니 작가가 도착했다. 아주 잘생기신 외모와 멋진 목소리(^0^), 그보다 초큼 덜 잘생긴 장 모 과장의 사회로 낭독회가 진행되었다.

신간인 『고령화 가족』은 작가로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가족 이야기였단다. 이전에 발표한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은 독자들이 『고래』와 비교하며 천명관이 왜 이러나, 그랬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작가로서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성과가 별로 없었고 『고래』를 읽은 독자들이 실망했던 것 같다고 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경우는 연극으로도 만들었단다. 연극의 제목은 <참치>였는데, 연극 역시 별반응은 없었단다(갑자기 왜 제목이 <참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야길 했는데 못 들은 것일까??).

아직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어보지 못해 그 책이 실망스러웠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지만 낭독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었다는 친구는 ‘어, 재미있어, 괜찮아!’ 라며 읽어보길 권했다. 또 우리만 알고 있는 어떤 공통점 때문에 나도 집에 가면 그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집에 분명 있을 거라(이상하다 분명 있었는데 말이다) 생각하고선 도착하자마자 책을 찾았는데 어라, 책이 없네! 이건 웬 착각이었을까? 괜한 허탈함이라니…암튼 다시 낭독회로 돌아가서,  

제목을 왜 ‘고령화 가족’이라고 지었는지 물으니 나이 많은 자식이 ‘엄마‘와 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를 해봤단다. 책을 읽은 분들이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엔 보통 대부분의 작가들이 어느 작품에서든 본인의 고백들이 조금씩 들어가지만 그는 그럴 만한 글이 없었기에 『고령화 가족』의 오인모라는 캐릭터를 보며 영화제작자라는 점에서 천명관 작가를 투영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한다. (참고로 천명관 작가는 여러 영화사에서 총무과장으로 일하다가 시나리오를 썼고, 한번쯤은 들어봤을 영화 <북경반점>이나 <총잡이>가 그의 시나리오였고 그외 시나리오가 많 으나 영화화 되진 못했다고 한다.)

이어 천명관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작가들은 왜 하나같이 이토록 멋진 목소리를 가졌는지…가만히 듣고 있으면 귀에 착착 감긴다. 처음으로 읽은 부분은 93~94쪽으로 헤밍웨이를 언급하며 오인모에게도 헤밍웨이의 젊은 날과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길 하며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한탄(!)하는 장면이었다.

“내게도 아마 헤밍웨이의 젊은 날과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신비하고 달콤한 희망으로 빛나며 옆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시절…… 하지만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 당신의 감정이 어땠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것이며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였다.” 

『고령화 가족』에 ‘오인모‘가 쓰레기통에서 헤밍웨이 전집을 주워 오는 부분이 있는데 천명관 작가는 사실적이고 화려한 문체를 가진 헤밍웨이를 좋아한단다.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실제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작가이기에 두루 감회가 남다른 작가다. 그래서 천명관 작가의 작품에도 등장을 한 셈이다. 천명관 작가는 미국 문학을 좋아한단다. 헛소리가 별로 없고 사실적이며 하드보일드 한 부분들이 그와 맞는 코드라고 생각하기에 그렇단다. 하드보일드라고 말을 하니 하루키가 생각나고 문득 레이먼드 챈들러가 생각난다. 정말 하드보일드 한 사람들이지. 그렇게 두고 보니 천명관 작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 사티의 음악에 맞춰(내 아침 알람 음악이기도 한) 46쪽을 낭독했다. 어느 주택에서나 한 부류 정도는 있을 할머니 그룹,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고 앉아 그 어떤 소설가보다도 소설을 잘 쓰시는 할머니들. 어쩌면 이 책에서 제일 코믹한 장면을 연출해준 분들이 아닌가 싶다.

처음 책을 냈을 때 천명관 작가는 본인의 책을 ‘누가‘ 읽을지 궁금했단다. 왜냐하면 작가 주변의 친구들은 전혀 책을 읽을 만한 친구들이 아니었기에 그랬단다. 한데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들의 아내들이 책을 읽어 보고 재미있었다며 얘길 해주었다고 한다. 의외였는데 오늘 낭독회에 참석한 독자들을 보니 남자들보다는 여성이 많아 이 또한 생소하기도 하다며 웃었다.

이어 읽은 부분은 277쪽이다. 에로물을 제작하는 박사장의 이야기다. 오인모가 만든 에로 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 편 더 계약하자며 박사장이 들려주는 시나리오였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고 좋아하는(!) 부분이라(내가 잘못 들었나??ㅎㅎ) 읽었다고 했다. 박사장의 이야기 다음에는 영화의 에필로그처럼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으로 인물들의 그 이후 삶을 넣었는데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을 감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위의 박 사장 이야기는 유머로 넣은 거라 했다.


작품 집필 중에 고충은 없었냐는 질문에 『고래』를 쓸 때는 상상이 많이 들어간 내용이란 쓰기가 쉬웠지만 『고령화 가족』은 너무나 현실적이라 글쓰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다큐가 아닌 픽션으로 커트 보네거트처럼 작가가 소설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는 메타픽션을 좋아한단다. 해서 이번 작품을 쓸 때도 인물들의 창조자로서 너그러운 군주가 되자고 생각을 했더란다.

글을 쓸 때는 제목과 첫문장, 그리고 표지가 떠오르면 글을 쓰기 시작한단다. 표지를 떠올리는 것은 표지가 영화포스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지와 첫문장이 떠오르면 문체가 결정되고 인물들이 떠오른단다. 물론 강렬한 것들은 머릿속에 두고 있지만 『고래』를 쓸 때는 결말을 본인도 잘 몰랐었다고 한다. 작품을 떠올릴 때 영화포스터를 생각하듯 표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또 영화제작을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천명관 작가는 의외로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단다. 많아야 일 년에 한두 편이란다. 예전에 많이 봐서 그런지 재미가 없다고 했다. 

작가는 소위 말하는 386세대이다. 그가 한국문학을 접한 시기에는 이청준 선생이나 이문열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 생각한단다. 하지만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Rabbit, Run』를 스무 살에 읽고 낯선 나라, 낯선 곳 낯선 인간들이었는데도 꼭 자신이 경험한 일처럼, 본인이 살았던 곳처럼 느껴져 존 업다이크에게 빠져들었단다. 읽어보면 어느 소도시 커플들의 ‘찌질한‘ 이야기들이고 사건은 없이 그저 평범하게 흐르는 일상들인데도 빠져들었는데 그때 작가란 모름지기 이런 평범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면서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스토리는 세계 어느 누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쓸 생각을 했고 문체와 문장은 한국문학에서 배운 것이라 했다. 앞으로 한국문학도 번역이 많이 되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데 그럴 경우라면 특히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작가를 만나고 나면 늘 생각하는 거지만 다들 어쩜 그렇게 말들을 잘하는지-.-;;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사인을 한다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 있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들고 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고령화 가족』에만 사인을 받았는데 예전에 같은 건물에 산 적이 있었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혼자 즐거웠다나. 

 아무튼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 받은 것은 엄마였다. 작가도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적었듯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그것! 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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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eadersu > 각기 세대가 다른 세 작가의 만남


한 행사에서 세 명의 작가를 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는 여간해서는 오지 않는다. 더구나 같은 세대도 아니고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 마치 일부러 그렇게 고른 것처럼 세대를 넘나든 만남이었기에 더욱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일찌감치 두 작가의 책을 읽었으나 리뷰를 쓰는 속도가 책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요즘인지라 읽기라도 했으니 다행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 행사에 나갔다. 다른 한 분, 평론가인 그 분의 책은 감히, 읽어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내게 평론은 너무 어렵고 높은 벽이다.-.-;)  

작지만 예쁜 북카페 <토끼의 지혜 홍대점>에서 가진 이번 행사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도서출판 문학동네가 주최한 행사였다. 작년 말에 평론집을 낸 신형철 평론가와 이미 열권이 넘는 책을 펴냈으나 내겐 너무나 생소하여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했던 한창훈 작가, 그리고 이제 겨우 한 권의 소설집을 냈을 뿐이지만 많은 독자와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신예 작가 염승숙과 대화를 갖는 시간이었다. 평론가이신 신형철 님의 질문에 두 작가가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세대가 다르고 추구하는 문체도 달랐지만 두 작가의 작품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런 행사였다.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웃음을 보여주고 싶은 작가, 한창훈

리얼리즘 작가로서 농경사회의 작품이 많고 그동안 펴낸 책들의 70% 이상이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리얼리즘 작가, 이문구 선생의 계보를 이으며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한창훈 작가는 현재 살고 있는 거문도에서 1박 2일을 투자하며 독자와 만남을 위해 올라왔다. 거문도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데다 3년 전에 아예 그곳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덕분에 최근에 나온 그의 소설 『
나는 여기가 좋다』를 읽으면 그곳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63년 생으로 놀면서 일하기 좋아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는, 언제쯤 고향에 정착할 수 있을까가 인생의 화두였다고 한다. 등단하고 펴낸 책만 해도 열권이 넘는 중견 작가이지만 책으로 재미(!)를 못 본 탓에 지난 작품집인 『청춘가를 불러요』의 작가의 말에 ‘이 책이 잘 팔리면 딸에게 피아노를 사 주겠다’까지 했음에도 책이 안 팔려서 다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딸에게 피아노를 사줬다며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약간 야한 소설인데 그것에 승부를 걸어보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한창훈 작가는 남들보다 늦게 문학을 시작했다. 글이 너무 쓰고 싶어 습작도 많이 했으나 쓴 글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소설 수업을 받았을 때 그는, 숙제로 단편소설을 써서 제출하라는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단다. 남들은 모두 괴로워했지만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소설 써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얼마가지 못했다. 막상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하니 한 줄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소설은 그저 잘 쓰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언어로 글을 써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때 우연히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을 읽게 되었고 백석의 시집과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며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한창훈 작가를 보고 다들 이문구 선생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고 한다. 그 점에 대해 그는 계보 같은 것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고 감동하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박상룡 작가의 글이나 박경리 선생, 체홉과 칼 세이건의 글들이 좋았다고 했다.

한창훈 작가의 글엔 리듬감이 있다. 시적이고 아름답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사용한 고향의 사투리가 다른 지방의 사투리보다 리듬감이 있어서 그렇단다, 그 언어에 어렸을 때부터 노출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다보니 리듬감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언어의 맛이란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한 문장을 표현하더라도 3~40년이 지나 그 문장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게 진정한 언어의 맛이라고 한다.  

 


 

그렇듯 그의 작품에는 사투리가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사투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쓰는 이야기들이 변방의 이야기들이고 그걸 표현하다보니 자연스레 사투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한창훈 작가의 작품에는 섬 이야기와 위트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나는 여기가 좋다』에 수록된 단편들 중 표제작과 「섬에서 자전거 타기」마지막에 단편인 「아버지와 아들」은 연작으로 보인다. 그렇게 쓴 의도를 물어보니 그는 얼떨결에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작가가 아무 생각 없이 쓴 작품을 평론가들은 항상 정리를 잘해준다며 웃었다. 그가 생각하는 섬은 제주도와 같은 큰 섬이 아니다. 동서남북으로 5분 정도의 거리에서 바다가 보여야만 섬이라고 할 수 있단다. 그런 섬에서는 사돈의 팔촌까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작처럼 보일 뿐이다. 더구나 섬 생활은 고달프다. 하루 종일 일을 한다.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고 버티기 힘들다. 그런 삶을 섬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버티는가? 바로 웃음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웃는다.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웃음, 별 것도 아닌 것을 깔깔거리는 요소로 만든다. 그게 강할수록 슬픔의 강도는 강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최근에 그는 80년대에 등단한 사람으로서 보편적인 책무를 떠나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문화가 비슷하여 글들도 비슷한데 그들이 한 자리에서 글을 쓰지 말고 여기 저기 방방곡곡에 흩어져서 각기 다른 내용의 개성적인 글들을 썼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누가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은 작가, 염승숙

1982년 생으로 80년대 작가군인 한유주, 김애란, 정한아와 같은 또래이지만 그들과는 조금 다른 형식의 소설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 염승숙 작가는 어릴 때부터 문예반 활동을 했지만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문예반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이상하게도 문예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고 한다. 소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수능 후에 하게 되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공부보다 분과 활동을 하며 각자 쓴 소설에 대한 합평하는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문학에 글 잘 쓰는 작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들이 김소진, 최인호, 오정희, 전상국 같은 작가라고 한다.(아, 물론 한창훈 작가도!^^)

신형철 평론가는 언론에서 최근 출간된 첫 소설집『채플린 채플린』을 두고 환상적인 소설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그의 작품을 보면 새롭긴 하지만 전통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염승숙 작가는 그런 반응에 대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현실을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데 현실의 절망감을 극대화 시키다 보니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갔을 뿐이며 환상 속에서 현실의 자기 위치 발견하고픈 욕망이 커진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염승숙 작가의 어휘를 보면 젊은 작가답지 않다. 낯선 단어들이 많이 보인다. 그 점에 대해 염승숙 작가는 소설을 읽거나 공부할 때 낯선 단어를 발견하면 꼭 적어두고 써먹을 생각을 했단다. 그게 낯설다는 것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알았단다. 학교 다닐 때부터 유별나게 단어에 집착했는데 그래서인 것 같다고 했다. 소설 습작 시절부터 국어사전을 끼고 살았으며 적재적소에 발견한 단어를 넣었을 때 만족을 느끼게 된다며 웃었다.

이번 그의 첫 소설집은 문학지에 실린 순서대로 묶여 있다. 그런 까닭에 첫 단편에 대한 말들이 많다.(뭔 내용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실린 덕분에 염승숙 작가의 첫 단편에서 보여준 문체와 그 이후에 나오는 작품들에 쓰인 문체의 변화를 볼 수 있어서 독자나 작가로선 오히려 잘 된 셈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게 농담이라고 했다. 사람들을 웃기는 것에 행복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래서 소설 쓸 때도 재미있게 쓰고 싶었단다. 표제작인 「채플린 채플린」이 그렇다. 채플린의 연기를 볼 때마다 그는 경외감이 들었다고 한다. 목소리를 배제하고 동작하나에 울리고 웃기는 채플린을 보며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쓴 것이다. 그는 채플린처럼 웃음을 위한 웃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염승숙 작가는 첫 소설집을 묶고 보니 이렇게 밖에 쓰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단다. 첫 책을 내고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며 부족함을 확인하느라 그 후에 다른 소설을 한 편도 못 썼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누가 봐도 재미있는 이야길 써보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몰락의 에티카』를 펴낸 신형철 평론가는 좋은 평론이란 그 작품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짚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서 작가가 얼마나 잘, 호소력 있게 글을 썼는가를 짚어내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평론가가 되겠다며 행사를 마쳤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흘렀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로 인해 ‘벌써 끝났어?‘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작품에서와 그다지 차이 없이 위트 있는 한창훈 작가와 의외로 차분하게 시종일관 웃으며 말도(!) 잘하던 염승숙 작가, 그리고 너무나 매끄럽게 진행을 해준 신형철 평론가, 각기 세대가 다름에도 너무나 잘 통하던 대화들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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