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세 권의 산문집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 세 권의 책 저자가 소설가라는 점입니다.

한창훈, 전성태, 손홍규. 세 작가님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아는 독자들은 잘 알지만, 모르는 독자들은 전혀 모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네, 우리나라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길들여져 있으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면 기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들 한국 문학에서 나름의 자리들을 하나씩 가지고 계시는 작가님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아, 이 세 작가님의 또 다른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제는 사라진 모 소설상을 받으신 분들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다 보면 한창훈 선생님의 산문집 제목처럼 왜 글을 쓰는지 혹은 작가는 어떻게 된 것인지, 소소한 일들을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 작가님은 학교 다닐 때부터 작가가 되려고 했을까요?

세 작가님이 생각하는 문학은 무엇일까요?

세 작가님은 정말 왜 쓰려고 하는 걸까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을 나는 고향집 근처 절에서 지냈다. 그때도 방학은 명목뿐 학생들은 등교해서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 고3을 코앞에 둔 겨울방학을 자율적으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어른들에게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부진한 입시 준비를 나름대로 메워보려고 절에 하숙을 구했지만 당시 나는 학교생활이 숨막혀서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낙오자로 끝없이 추락해가는 듯한 소외감과 열패감, 매 순간 자기 합리화에 빠져 산다는 자괴감. 하다못해 옆자리 친구들에게는 적의마저 치밀었다. 그들 역시 자의식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속물들처럼 여겨졌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일기 쓰기와 소설 쓰기였다. 나는 고1때부터 자취방에서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이 년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홀로 끼적거린 소설이 30편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내 꿈이 작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보상 심리였다.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벗어날 방도를 못 찾은 나는 탈선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값진 일을 하고 있다는 충만감이 들곤 하였다. 그 방학을 앞두고 나는 그 짓도 그만두자고 마음을 먹었다. 초조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절로 향한 내 발걸음은 도피에 다름아니었다.

(…)

   방에 들었을 때 그는 노트에 뭔가를 쓰다가 덮었다. 소설 원고는 내 책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궁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뭔 얘기가 그래? 꼭 『선데이 서울』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구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등지고 돌아앉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이야기가 황당하고 엽기적이고 선정적인데다가 어쩌면 개연성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모욕을 받고 나니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소설이 뭔지나 아세요?” 그가 몸을 돌리고 앉았다. “글쎄, 그냥 내 느낌을 말했을 뿐이야. 난 정말 아무 감동도 받지 못했다.” 나는 원고를 들고 나와 아궁이에 집어넣어버렸다. 그리고 부지깽이를 쑤석거리며 울었다.

(…)

   산을 내려오다가 나는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쉬면서 그의 편지 묶음을 풀었다. 애초부터 부칠 마음은 없었던지 주소도 없는 종투는 봉해지지 않은 채였다. 이미 나는 그의 편지를 하찮게 여기고 있었으므로 그중 하나를 꺼내 읽으며선 죄책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숙!' 하고 불러놓고 시작되는 편지는 구구절절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인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여자는 비록 떠났지만 이 편지를 받고 나면 분명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글이 이쯤은 돼야지, 나는 뭉클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

   내 사명은 그렇게 쓸쓸하게 끝났지만 나는 새로운 각오로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_「『선데이 서울』과 연애편지」 중에서

 

 

   그리 오래된 시절도 아니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소설가 혹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들은 얼굴만 봐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얼굴에서 다 드러났다. 문학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런 문장을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때는 문학을 한다는 생각마저도 조심스러웠다. 대체로 가난했고 앞으로도 기꺼이 가난하게 살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이미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는 희미해졌으며 누구도 그런 변화를 막을 수 없어 보였다. 문학에 목숨을 걸었던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분개하며 떠났고 이 변화를 용납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 역시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떠났다. 아직 문청에 불과했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같은 일에 종사하던 동료가 이 일에는 희망이 없다며 미련 없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간들이라니.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시절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법정을 세웠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한 시대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난 뒤에야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매번 깨달음은 한 걸음씩 늦게 찾아오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내가 사는 시대의 증인이 되는 것뿐이다. 그런 뒤에야 나는 문학에 한 가지 증거를 부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노 디아스의 소설에서 발견한 이 문장처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 너는 하느님이 도미니카 사람이라는 증거야.” _「나는 왜 쓰는가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마디 내뱉어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이 모국어 기피, 근친 혐오, 그 배경 속에서 쓰고 있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들어가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_「사람이 떠난 빈 곳으로 바람이 분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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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2015-06-0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좋아요..

수이 2015-06-0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쵝오!
 

2월엔 정신이 어디로 갔었는지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별로 읽은 것 같지가 않다. 눈에 들어오는 책도 별로 없어서 책 구매도 뜸~했는데, 책 구매를 너무 안 하니 금단현상(!)이 와서 세상 살 맛이 안 나더라.....는 것은 거짓말이고^^;; (아, 쓸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눈에 들어와 찜해서 구매하고 읽었던 몇 권의 책들.

 

 

책이 나오자마자 읽기 시작. 멈출 수가 없었다. 읽으면서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이미 여기저기 소문을 내기도 했지만, 자서전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나? 근데 왜 우리나라의 '잘 나가는' 분들의 자서전은 온통 자기 치하밖에 없는 것인가...(라고 말하지만 안 읽어봤음으로 아는 척은 이만;)

 

원래 살만 루슈디를 좋아했다. 그로 하여금 파트와를 당하게 한 그 책 『악마의 시』를 읽고 나서 말이다. 그 뒤에 『분노』를 읽었고 『한밤의 아이들』을 읽었다. 그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을 읽으니 이젠 그의 모든 책을 전작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 읽으면 순서대로 읽을 예정이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그가 만난 세계의 작가들. 와우!

 

 

누군가 리뷰를 흥미롭게 쓰면 끌리게 되어 있다. 관심도 안 둔 책인데 올라온 리뷰를 보고 궁금해지고 말았다. "저마다 상처를 주고받지만 받은 것만 기억할 뿐 자신의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에 대해 너무 쉽게 망각하는 사람들의 이기적 성향" 느와르스릴러, 라고 책소개에 되어 있던데, 읽고 나면 불쾌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비록 소설이지만 세상이 은근 무서워질 수도 있을 것 같고. 근데도 이런 소설이 궁금해지다뉘! 나도 내 맘을 모르겠다. 그러니 넌들 알겠느냐! 『너는 모른다(하핫, 말장난=.=;;)

 

 

오가와 요코의 새 책이다. 『세상 끝 아케이드』 난 이런 류의 소설집도 좋아한다. "상실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슬픔을 끌어안고 헤매다 작은 아케이드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죽은 이의 기억이 담긴 물건을 사고 따뜻한 어둠에 슬픔을 풀어놓는다. 비록 그 슬픔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과 장소를 만나 위로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애정하는 김성중 작가의 소설집이 나왔다. 「국경시장」을 처음 접하고 혹,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서야 이 작가가 「개그맨」이란 단편을 썼던, 누군가 좋다고 추천해줘서 읽었던 작품의 작가라는 걸 알았다. 역시!! 그래서 완전 기대했던 이번 소설집. 두 말이 필요없고, 무조건 읽어보길 강력히 권함!!

 

 

북노마드에서 나온 『음악의 기쁨』이 재미있어서 한 권씩 야금야금 잘 읽고 있는데, 하루키가 클래식 대담을 한 책이 있다고 하여 관심이 갔다. 바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이다. 하루키의 클래식에 대한 관심은 익히 알고 있었던 바, 흥미가 당긴다. 이 작품은 "오자와 세이지가 식도암이 발병하여 음악활동을 잠시 쉬게 된 차에 자타공인 음악 애호가이자 그의 오랜 팬인 무라카미 하루키 기획으로 성사된 반가운 인터뷰 프로젝트이다. 솔직한 아마추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묻고, 담백한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가 하는 답으로 구성된 품격 있는 클래식 여행이 펼쳐진"단다. 읽고 나면 『음악의 기쁨』과 비교해봐야겠다!

 

 

 

     

 

난 스티븐 킹의 추천만 있으면 그 책이 궁금하다. 셜리 잭슨이라는 이름만으로 궁금한 책이었는데 스티븐 킹의 추천이 있으니 안 볼 수가 없다. 『제비뽑기』 공포스릴러. 첫 단편을 펼쳤더니, 엉? 이게 뭐지? 좀 밋밋한데.. 하다가 1부를 넘어 점점 갈수로 찐해지는 그 오싹함이라니!! 인간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귀신도 유령도 좀비도 아닌 인간인 것이다. 특히 표제작을 읽어보라. 헐! 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 "이 작가는 미치광이가 아니면 천재"라고 했다는데, 내가 보기엔 미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소설을 써낼 수 없다. 『힐 하우스의 유령』도 그렇고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도 그렇다. 아무튼 이런 책 내주는 엘릭시르 만세다!

 

 

     

 

그외 내 감성을 위해서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로 눈호강을 시킬 것이고, 시리즈로 모으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최근작인 『끝의 시작』을 순서대로 채워놓을 것이고, 소설리스트에서 추천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나온 『새하얀 마음』을 찜해두었으며,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은 일단은 무조건 읽어봐야겠다. 아, IS가 궁금하여 꼭 읽어보고 싶은 책도 있다. 『이슬람 불사조』와 『이슬람 전사의 탄생

 

끝!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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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나온 책,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를 담은 『그날들』 책이 나왔을 때, 사진을 보고 글을 쓴 형식(!) 때문에 관심이 갔었다. 소피 칼의 『진실된 이야기』를 읽고 공감했던 것처럼. 아마,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자주 올리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는 내 마음을 알 것이다.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어울리는 글을 한번이라도 적어봤다면 소피 칼이나 윌리 로니스의 사진과 글을 좋아할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이 특별 개정판으로 나왔다. 구판이 양장본에 보기 좋은 큰 사이즈의 판형이라면 개정판은 무선이지만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대중판(!)인지 싸다(^^). 만약, 예전에 나왔을 때, 비싸서 차마 사지 못했다면 개정판을 강추한다. 사진 사이즈가 조금 작긴 하지만, 보고 느끼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

 

책을 펼지기 전엔 사서 읽어야지, 하고 읽지 않은 줄 알았는데 책을 펼치니 떠오르는 기억. 맞아, 이 책을 몇 장 읽긴 읽었더랬다. 동생 책장에 꽂힌 책을 읽고 맘에 들어서 나도 사야지, 했다가 잊고 있었던 것.

 

책을 읽어보면 괜히 맘이 찡~ 한다. '그날'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책은, 내 이야기도, 내 사진도 아닌데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나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상하지? 왜 그럴까? 막막 향수가 느껴짐(-.-);; 흑백사진이라서? 아니면 단순하게도 '그날'이라는 단어때문일까?

 

그날들, 그날은, 그래 그날에, 그날이었지, 그날!

 

아무튼 읽으면서 내내 내 책인양 빙의하여 추억에 잠긴다. 기분이 묘하게 좋다. 좋든 나쁘던 지나간 것들은 죄다 아름다운 건가보다. 그러고 보면 책은 추억으로 가는 플랫홈인 셈이다.

 

   그날, 나는 파리 외곽 몽트뢰유에 거주하고 있는 집시들 사이에 있었다.(…) 사실, 내 사진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완전히 우연한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줄 줄 안다. 내 시선을, 내 감성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사진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일어나고 있다. 내 인생은 실망으로 가득차 있으나 커다란 기쁨도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이런 기쁨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삶이 슬그머니 아는 척을 해오면 감사하다. 우연과의 거대한 공모가 있다. 그런 것은 깊이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면 그것에 감사하자. 내가 '의외의 기쁨' 이라 명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머리에 꽂은 핀처럼 사소한 상황들. 바로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뒤에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늘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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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1-0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판 봤었는데... 참 좋은 사진과 글!

readersu 2015-01-08 18:26   좋아요 0 | URL
진짜, 글 다시 읽으며 우왕, 우왕, 했어요...멋짐멋짐!
 

_ 사랑한다(あいする)라고 내가 히라가나로 쓰는 것은 make love를 가리키는 것으로, 말하자면 내 몸으로 파파를 사로잡아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로 사랑한다()는 마음의 자유를 바친다는 것이니 이런 뜻이라면 내가 한 말은 거짓이에요

 

_내 이야기는 지저분해. 나 같은 인간의 출생, 성장, 가정교육, 인척, 가족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면, 이건 뭐, 스사노오노미꼬또가 내던져졌다는 뱀투성이 구멍 같은 거야. 이런 냄새 나고 더러운 뱀에게 휘감겨 자란 인간은 가까스로 구멍에서 기어나와봤자 평생 그 냄새가 빠지질 않는 것 같아요. 가난이란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질이 나쁜 악이어서 이건 결핍이라든가 부족이라든가, 혹은 불평등이라는 것과는 다른, 다시 말해, 뭔가 모자라는 것을 더하기만 하면 회복될 수 있는 그런 결함이 아니지. 존재 그 자체의 비열함이라는 거죠. 난 한때 코뮤니스트였지만 가난뱅이의 원한 때문에 코뮤니스트가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 비열한 원한 같은 건 꿀꺽 삼켜버린 근사한 괴물이 바로 나이고, 나는 무엇보다도 지적인 충동에서 혁명의 이미지를, 그리고 파괴 후의 폐허 너머로 망령처럼 아름다운 석양을 보는 것만을 바라며 닥치는 대로 벽 허무는 일을 시작한 것이라는 식으로 믿었던 듯해.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 세계의 멸망을 바라는 인간의 원한과 증오에는 역시 가난뱅이의 비열함이 스며들어 있는 거야. 이건 존재론적인 원한인가, 존재적인 원한인가? 유감스럽게도 내 경우는 아마 존재적이지. 난 자신의 존재적인 비열함 속에서 몸부림치던 것에 불과했던 거겠지.

 

_소설에 나오는 선의는, 땅 위 인간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그것이 해풍과 태양에 그을려 굳어지면서 마침내 거칠거칠한 껍질 같은 정신을 획득한다는 식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만일 그런 인간이 있다고 한다면, 무수하게 긁힌 자국이 있는 딱딱한 피부 같은 감수성이라든가, 원해는 지적인 인간 특유의 비겁함이나 연약함이 일종의 부드러움으로 변모해 남아 있는 정신이라든가, 세월의 흐름이 거친 로프처럼 온몸을 감고 있는 듯이 보이는 나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더 없이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은 어딘가 범죄자 같은 구석을 지니는 법이다. 거리 안의 생활이나 가정의 불빛, 요컨대 지상의 규정들을 믿지 않을 듯한 느낌을 지니고 있고, 그것만으로 이미 범죄자의 소질을 갖췄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인간에게 물려 지독한 상처를 입은 듯 보이지만 실은 인생을 배신한 것은 그들 쪽이고, 그들로서야 이 상처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추방의 낙인으로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_그보다 이것이 통상적인 남자들의 행동 원리, 혹은 차라리 행동하지 않는 원리인 것이다. 여자는 이것을 비겁의 원리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남자는 여자를 위해 만용을 발휘해야 마땅하다고 하는 뻔뻔스러운 가치 기준에 근거하고 있다만약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했다면, 하고 여자는 말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택했을 거야. 그리고 이 원리를 의심하는 남자를 여자는 비겁하다고 정의한다. 하지만 정말로 사랑했다면, 이라는 조건 그 자체가 실은 이제부터 결정되어야 할 일에 속하는 것이다. 몸속에 심장이 있는 것 같은 존재 방식으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를 택한다고 하는 행동이 있을 뿐이고, 더구나 그것은 사랑을 증명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데 여자는 적어도 그것을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 것이다.

 

 

 *********

 

 

새해에 처음으로 읽은 소설은 『성소녀』였다.

책소개를 제대로 안 보고 제목과 앞부분의 야릇한 부분만 여러번 읽다말다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1장을 넘기고 2장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 소설의 진가가 나왔다. 몰입도는 장난 아니었고, 울 엄마와 같은 해에 태어난 작가의 개성넘치는 섬세한 문장들은 사소설에 빠져 있는, 일본 소설은 근대에서 멈춘 거야, 라며 다소 황당한 상상에 빠진 나를 흔들었다. 그 당시에 이런 소설을 쓰다니. 내가 진작에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도 집어던지지 않고 잘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책을 읽던 스무살 시절에 이 소설을 만났다면 여전히 못 읽어냈을 지도 몰라. 내 정신연령은 이 나이에 겨우 스무살을 이해할 정도인 듯.

 

하! 난 왜 그 나이에 세상을 보지 못했을까?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았을까? 왜 나는 원하는 것도 없었을까..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 다시 태어난다면, 그냥 막, 살아보고 싶다. 그냥 막.

덧, 위의 문장들로 이 소설을 짐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읽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일독을 권함! 단! 소설리스트 준의 말처럼 도덕적인 사람은 읽을 수 없을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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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3시 무렵에 누군가 벨을 눌렀다. 그 새벽에 올 사람이 없기에 모른척했다. 장난이 아닌 듯, 계속 누르는 소리를 듣다가 내려가 문밖비디오(아..나도 명사분실증인가? 그 단어가 생각 안나네)를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감추고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는 것?? 괜히 무서워서(다행이라면 우리집엔 우유투입구가 없다!) 숨도 안 쉬고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며 이중잠금을 해두었는지 보았다. 다행히도 위, 아래 모두 잠근 상태.. 모른척하고 다시 누웠다. 잠이 깰 줄 알았는데 벨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잤다. 별 이상한 인간들이 다 있구나..


그 바람에 늦게 일어났다. 핸폰의 배터리가 다 되었다는 소릴 듣고 눈을 뜨고 핸폰을 꺼버렸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머리맡에 둔 책더미에서 책을 하나씩 골라 펼쳤다.


《세 겹으로 만나다》에서 한창훈 쌤의 글과 손보미 작가의 글을 읽었다. 《더 클로짓 노블-7인의 옷장》에서 김중혁 작가의 글도 읽었다. 그 단편에 `명사분실증`이란 말이 나왔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치매인가? 라고 말하는 것보다 `명사분실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것 같다. 그리고 카렐 차페크의《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읽었고(몇 편 읽었는데 아직까진 좋은 줄 모르겠다) 2014 겨울 문학동네》계간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호는 마치 산타의 선물 같다. 어릴 때 점빵을 하던 외삼촌이 크리스마스 즈음에 선물이라며 주시던 과자종합선물상자처럼 보기만 해도 푸짐한 느낌에 행복해졌다.


김훈 쌤의 <영자> 부터 읽고 있었다. 그다음은 김연수 작가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아카이 토리가 누구인지 찾아보았지만 하얀 무덤이란 노래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은희경 쌤의 작품..차례차례 읽고 있다.


새벽의 일을 친구에게 말했더니 요즘 중딩들이 장난으로 잘 그러고 다닌다 했다. 담엔 문을 열어볼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난 간이 작아서 그런 모험은 싫어하지..


일요일의 맛이란 보일러를 최대한 켜놓고 따뜻한 방에 누워 책이나 읽는 것. 그런 행복한 일욜의 오후다.


덧..
북플로 페이퍼를 쓰면 피씨에서는 어떤 형태로 보이는지 궁금해서 써본다. 피씨와 북플이 연동되는 줄 모르고 있다가 피씨로 내서재 보고 깜놀랐다. 아직은 좀 어색한데...

 

덧덧..

피씨로 수정했다.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뭔가 예쁘지 않으면(아니, 내가 '내 방'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예상대로 생각했던 스탈로 안 나오면) 포스팅을 삭제해버리고 싶....그래서 아래의 짧은 글들..없애버리고 싶....;;; 이제 조금씩 북플에 대해 알아가고 있으니, 금방 익숙해지겠지..(표지 정렬 다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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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u 2014-11-3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북플로 첨부한 책은 아래에 이런 식으로 등록이 되는구나..그럼 피씨로는??

readersu 2014-11-3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씨버전으로 보니 뭔가 어색하네~
컴을 켜봐야겠다..

보물선 2014-11-3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첨부가 여러권이 되기도 하나봐요....

readersu 2014-12-01 09:49   좋아요 0 | URL
넵, 혹시나 해서 해보니 여러권 되더라고요..
근데 역시...피씨로 보니 막 잘리고...ㅎㅎ
담엔 좀 더 잘 올려봐야겠어요;;

보물선 2014-11-3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몸살나서 끙끙 앓고 있어요.

readersu 2014-12-01 09:50   좋아요 0 | URL
어이쿠, 이제 좀 괜찮으세요?
저도 금욜에 감기 증세 있고 토욜엔 죽을 것 같아서..ㅎㅎ
집에 내려가려던 계획을 바꿔
일욜엔 꼼짝도 안 하고 몸 추스렸더니..
오늘 한결 나아요. 마지막 단계에 온 듯..ㅎ
약도 안 먹고..잘 견딘....몸뚱어리 ㅎㅎ기특..

icemoon 2014-12-0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서재의 어마어마한 독서기록을 보고 놀랐어요~독서 동기부여가 됩니다^^자주놀러올게요!

readersu 2014-12-01 09:51   좋아요 0 | URL
아앗, 저보다 더 많이 책을 읽을 분들이 알라딘엔 너무나 많으셔서..
저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예전엔 서평도 잘 썼는데..요즘은 서평 대신 페이퍼로 대신하고^^;;
반갑습니다..책 많이 읽는 사람이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