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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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영화를 봤다. 그 유명하다는 뮤지컬로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영화도 나쁘지 않았다. 첫 장면에서부터 나는 헉, 하고 빨려들어갔으니까. 영화를 보고 그 아쉬움을 아마 책으로 달래보겠다며 책을 샀던 것 같다. 영화가 먼저였는지, 뮤지컬이 먼저였는지, 원작이 따로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영화를 봤는데 책이 있었고, 그래서 읽어보려 했었던 것 같다. 한데 언제나 그렇듯이 읽겠다고 하고선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두었다. 근데 그 책이 새로 나왔다(-.-). 이.럴.수.가!!

 

이번 주부터 25주년 내한기념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공연을 한다고 한다. 역자 소개를 보니 그 계기로 이 책의 새로운 판을 내게 되었단다. 부족한 점을 많이 참고하고 보완하여 낸 책이란다. 읽어보니 과연, 그런 것 같다. 그때는 왜 못 읽었을까? 알 수 없지만 이번엔 제대로 휙휙 넘어갔다. 

 

영화든 소설이든 감상을 말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저 재밌다, 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어려운 순간은, 진심으로 감동했을 때다. 그 감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지? 내가 고민스러운 건 『오페라의 유령』을 읽고 난 지금이다. 내가 느끼는 당혹감은, 글쎄, 이 감정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것?! 하핫;;;

이 소설은 빛의 시대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비극은 비극인데,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이 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그 결말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읽어보시라! 읽어보면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

 

"그 점이 바로 끔찍한 거예요. 그의 존재는 제 마음을 공포로 가득 채우죠. 하지만 그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어요. 라울, 제가 어떻게 그를 미워 하겠어요? 지하의 호숫가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저를 인도하고는 발밑에 꿇어앉아 사랑을 고백하는 에릭을 생각해봐요! 에릭은 스스로를 저주했어요. 자신을 비난했어요. 그리고 제게 용서를 빌었어요! 자신이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도 고백했지요. 에릭은 저를 사랑해요! 그는 저 지하 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넓고 비극적인 사랑의 왕국을 펼쳐놓았어요. 에릭은 사랑 때문에 저를 데려간 거예요. 사랑 때문에 땅 밑에 저를 가두었지만…… 하지만……  에릭은 나를 존중해줬어요! 전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다시 자유롭세 해주지 않는다면 평생 그를 경멸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고통의 눈물을 흘렸지요. 하지만 에릭은 제게 자유를 주었어요. 비밀 통로를 알려주었지요. 단지…… 단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라울,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해요. 에릭은 천사도 유령도 천재들의 정령도 아니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어요. 그가 일어나 노래를 부르지만 그만 노랫소리에 빠져 그곳에 머무르고 말았으니까요!"

 

덧, 아, 이 장면 생각난다. 그리고 OST 좋아서 한참 들었더랬다. 지금도 응얼응얼~ 아 책을 읽고 나니 뮤지컬이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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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문학동네 시인선 30
이승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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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시집을 보여줍니다. 페이지마다 접힌 시집,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비슷한 듯 아닌 듯한 취향이지만 시집에 있어서만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라 귀를 쫑긋하고선 아 그래? 그렇다면 읽어보겠다며 그날 저녁 바로 시집을 펼쳤습니다. 목차에 나온 시 제목부터 남다른… 역시 이번에도 그 친구와 나는, 통했더군요.

 

시에 관해 얘기를 할 때면 늘 이렇게 말합니다. 시를 잘 몰라요. 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이 시가 왜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데 읽는 시마다 제 마음 한 구석을 콕콕 찌르더군요. 시인의 말부터 그랬어요.

 

정직하게 울었고

맨드라미가 피었다.

그랬단다, 아가야

솔아

 

사실은 이 문장 때문에(물론 ‘승희’라는 이름도 한 몫 했습니다) 시인이 당연히 여성이라고 단정을 하고 읽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엄마의 목소리였고 난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시인의 저 말에 괜히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이후 모든 시에서 ‘내’가 되어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시집을 펼쳐 1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저의 밑줄은 시작됩니다. 친구의 빼곡하게 접혔던 시집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고요. 놀랄 일도 아니었어요. 시를 읽을 때면 항상 현실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경험들이 떠올라 공감을 하게 되는데 요즘의 나를 생각하면 굳이 슬퍼할 일도, 쓸쓸해할 일 틈도 없었기에 내가 왜 이 시집에 이토록 빠지는 걸까, 어색할 뿐이었죠.

 

햇살이 가만히 죽은 나무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나는 죽은 내 얼굴을 만져볼 수 없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_맨드라미는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 산기슭처럼 무너진 집 한 채 있다면 그 옆에 죽은 듯 늙어가는 나무 한 그루 있겠다.(…)당신이 나를 절반만 안아주어도 그 절반의 그늘로 나 늙어가면 되는 거라고./그러면 나 살 수 있을까?/내 몸 어딘가에 나 살고 있기나 한 걸까?_제목을 입력하세요

(…)고개를 돌린 채 늙는 일에 열중이신 늙은 토마토는 오늘도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읽는다. 늙는 일도 아직은 살아서 할 수 있는 일_늙은 토마토는 고요하기도 하지

(…)날 버린 마음들 환하게 불빛으로 켜지고, 마음 없는 몸은 창백하게 앉아 뼈를 깎는다._봄비는 그렇게 내린다.

 

하, 여기까지 읽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누군가와 독한 이별을 한 걸까? 왜 시들이 이렇게 쓸쓸하고 슬픈 걸까. 그래서 시 감상을 뒤로 하고 순서가 바뀌었지만 해설부터 읽고 말았죠. 알아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일단 시를 감상한 후에 읽어야 하는 거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가끔은 해설을 읽은 다음에야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니까요.

 

“쓸쓸함은 낡아서 쓸모없어지거나 버려진 존재로부터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려 바닥난 존재의 상실감에서 스며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마치 거울을 보다 문득 마주하게 된 눈가의 주름이나 기미처럼, 책갈피에서 우연히 발견한 번진 글씨 자국처럼 낯설고 우울하고 쓸쓸하다.(…)‘늙음’과 ‘죽음’에 대한 사유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무언가를 상실한 ’나‘는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시적 주체이다.”_이경수(해설중에서)

 

아, ‘늙음’과 ‘죽음’

 

그제야 조금 시를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더군요. 시 전체를 아우르는 쓸쓸함은 죽음의 그림자와 늙음의 사유들이었어요. 다시 앞으로.

 

(…)나의 절망은 비루하였고, 꽃이 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네가 떠나간 흔적처럼 남았다.(…)_다시 봄비는 내리고

(…)어제 꽃피지 못한 하루는 버려진 채 빛날 것이다. 무릎을 모으고 나를 기다리는 저 그림자의 검은 입 속으로 난 무엇을 앞세울 수 있을까.(…)_그림자들

외로운 것들이 갈수록 착해지는 게 싫어서/비명이 말랑해지도록 내버려두는 건 죽기보다 싫어서/버려진 것들은/낡아지지 않고 죽어버리라고/종일 휘파람을 불었다.(…)_110-33

(…)내가 꿈꾸는 것은 매일 조금씩 지워지는 것.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덜어내는 일(…)_부치지 못한 편지

 

정말이지 어느 시 하나 그냥 넘길 수가 없더군요. 내가 이토록 공감하는 이유가 뭘까, 왜 그러는 걸까. 물론 감수성이 짙은 시나 문장들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한 편도 빠짐없이 밑줄을 그어대는 경우는 없는데 이 시집에선 그랬습니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너무 멀리 왔다는 말/쓰러질 곳을 찾지 못해/비가 되지 못한 바람 같은 거라고/우체국 소인처럼 찍힌다_어느 여름날

누군가 내게 주고 간 사는 게 그런거지라는 놈을 잡아와 사지를 찢어 골목에 버렸다(…)사는 게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밤. 난 내 우울을 펼쳐놓고 놀고 있다. 아주 나쁘지만 오직 나쁜 것만 세상에 없다고 편지를 쓴다._여름의 우울

수시로 나는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잃어버리곤 해. 가만히 내 몸을 내려다볼 때 참 쓸쓸해. 골목 어디쯤을 휘청이며 걸어가는 내 마음을 만나는 저녁. 내가 울지 못하는 이유는 내 몸에 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불안하기 때문이야._여름의 대화

(…)사는 게 처음부터 상처 나는 일이었다고 맨드라미가 빨갛게 피었다._맨드라미가 피는 까닭은

(…)내가 버려진 상자가 되는 것은/정말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입니다_맨드라미 정원

 

곰곰 시들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왜?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죠. ‘(…)빈방처럼 나이 드는 일은, 마음의 한끝이 자꾸만 투명해지는 거라고(…)’ 와 같은 시구에 밑줄을 긋는 나를 보면서 ‘늙음’, 나를 공감케 한 것 것은 ‘죽음’보다는 ‘늙음’이라는 것을. 늙는다는 것에 대한 그의 사유들에 아, 그래!

 

나이와 상관없이 이제 내가 늙는구나, 늙었구나, 아니 늙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읽어주고 싶습니다. 연말이 되어 한 달 후면 찾아올 또 다른 숫자에 대해 겁을 먹는 사람들에게도 말입니다. ‘늙는 일도 아직은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이며 ‘지금은 늙어가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어두워지는 저녁 오늘의 죽음이 내일을 열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 즐거운 불안에 대하여’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늙음’도, 그 이전에 혹은 그 이후에 올 ‘죽음’에 대해서도 좀 관대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 행복하여라

_이승희

 

외로움은 나의 밥, 찬 없이도 먹을 나의 끼니. 내 소망은 세끼 밥과 야식까지 골고루 야무지게 잘 챙겨 먹는 것. 외로움으로 살찌는 일. 그리하여 외로움 하나만으로 나 풍성해지는 거짓말 같은 생. 나 이제 외로움의 식구를 얻었으니 함께 먹고 또 먹어 배 터져 죽고 싶다. 버석거리던 날들이 외로움의 독을 입어 이리 촉촉하니 축복받음 아닌가. 날마다 독이 퍼져 이 저녁의 숨소리 그윽하구나. 외로움이 서 있는 그 자리. 거긴 원래 미루나무가 오래 서 있던 자리. 딸 아이 날마다 학교 가던 길. 지치고 아플 때 하염없이 집을 바라보던 길. 오늘도 집 나간 마음은 기별 없으니 기다림으로 접혀진 마음자리는 쉽게 찢어지고, 마음 없이도 몸은 자주 아프고, 마음 없이 병든 몸은 가난한 세간 옆에서 쓰러져 잠들고, 그리운 것도 없이 살 수 있다니, 오 놀라워라 거짓말 같은 나의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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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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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한 얘긴 나오기 전에 들었다. 

난 눈물나게 만드는 책을 싫어하므로 귓등으로 들었다.

특히 요즘은 더욱 그렇다. 웃으면서 살아도 우울이 얼굴 한 가득인데 

이런 책을 읽겠다고 펼치면 

분명 눈물 한 바가지 흘릴 게 분명할 테니까.

한데 어쩌다가 읽게 되었다. 책을 받아놓고 한참을 쳐다봤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제목의 글씨체에서부터 울컥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엄마 죽지 마'라는 노골적인 투가 아니라 '엄마 사라지지 마'라는 

감정을 건드리는 제목에다 '~지 마'의 희미한 글자 디자인이 

정말로 엄마가 사라지기라도 하듯,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젠장, 하는 말부터 나왔다. 이걸 넘겨, 말어?

용기를 냈다.


"재작년 갑자기 아버지가 타계하시고

황망해하던 중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늙고 병들어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진

엄마가 곁에 있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프롤로그의 첫 문장에서부터 목이 메어 왔다. 

그리고 넘긴 페이지에서(아 제기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대로 감정이입 ㅠㅠ)

그만 덮어버리고 말았다. 

혼자가 아니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고 

흐릿해지면서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책을 들고와서 혼자 읽다가 그냥 울어버릴 것 같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선

다음 날 용감하게도(!) 출근 길 버스 안에서 펼쳤다.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감정이입 덜 될 거라는 얄팍한 마음으로;


역시 전날과 다르게 덤덤하게 읽혔다.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

내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그것이 부모를 잃는 경험이 아닐까."


내겐 아직 부모님이 계신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부모님이 안 계시는 삶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한데 요즘 들어 점점 노쇠해지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결혼을 하지 않은 터라, 내 가족은 엄마, 아빠, 나. 이렇게 구성이 된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은 결혼을 했기에 그들 가족이 따로 있으니까.

그렇다면 정말, 나는 고아가 되는 거지? 이런 스무 살도 안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을 펼치기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찍힌 저자의 어머니를 보면서 

자꾸 엄마가 오버랩되었다.


"내가 아는 것은,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이 기록의 마침표가 되리라는 것뿐이다."


생전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 그 엄마에 그 딸. 나도 전화를 잘 안 한다. 한데

어쩌다 요즘은 매일 출근 길에 안부 전화를 하게 되었다.

대화는 매번 똑같다.

엄마 뭐 해? 밥은 맛있게 드셨어? 일 많이 하지 말고 쉬세요. 감기 조심하고.

돌아오는 답도 매번 똑같다.

청소 한다. 맨날 먹는 밥 먹었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쉬냐. 

너나 출근길에 옷 따듯하게 입고 다녀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그다음이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서로의 시선 앞에선 숨김없이 남김없이

온전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야 만다."


<엄마, 사라지지 마>를 읽고 나니 나도 엄마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이제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래보고 싶었다. 한데 곁에 없으니~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큰 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집에 내려가면 저자처럼 엄마 등에 기대 사진 한 장 찍어야지, 생각했다.


'엄마' 라는 말, 

저자는 그 말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어는 없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엄마가 결코 되어보지 못할 나는, 그래서 더욱 엄마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엄마 뭐 해?


내가 불을 켜면 응? 하고 소스라치며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가던 엄마.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노래를 하나 가르쳐주었다.


저 하늘에 해와 달은 변함없이 비치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 어느 곳에 계시나요.

비 옵니다. 비 옵니다......


노래는 끝나지 않았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는 걸까.


그때는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엄마가 우는 것만은 가슴이 먹먹하도록 슬펐다.

나는 슬픔 속에서 어렴픗이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버릴까봐, 엄마가 사라질까봐 무서웠다.

왜 나는 슬픔 속에서 이별을 예감했을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이 그것이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버스 안에서 다시 책을 덮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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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11-2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잘보고갑니다^^
 
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무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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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읽지 못했던『만卍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읽었습니다.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읽은 책은 겨우 두 권.
그것도 한 작품은 읽다가 만 상태이고 다른 작품은 에세이였습니다.
이번에 이 작품을 읽고 나니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卍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쓴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책에 실린 작품 해설에 보니 그는
 '일본 현대문학계의 거두이자 탐미주의 문학의 거봉'이라고 하더군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1965년 8월 6일자 <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고 해요.

"다니자키 준이치로, 일본문학계의 원로. 
도쿄의 미곡상 아들로 태어나 79세에 심장마비로 사망.
그는 여성에게 예속당하는 성도착자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길 즐겼으며,
성(性)과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을 118편이나 발표하여 동양의 D.H. 로런스로 불린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였고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였으나 아깝게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노벨문학상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읽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첫 번째 단편 _만卍은 네 명의 남녀가 얽히고설켜(마치 卍이라는 한자처럼) 애욕의 거짓말, 
갈등의 거짓말, 그 거짓말의 거짓말을 해대며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정에 약한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또 이 작품의 화자격인 한 미망인이 선생님이라 불리는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밝혀지는 이야기는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줍니다.
도대체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고, 
누가 거짓말을 하며 이 이야기의 결말은 과연 무엇인가?
한 치의 틈도 없이 작품 속으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이야기에 놀아나는 '나'를 발견하게 만듭니다.
번역하신 김춘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도 자기 소신을 지키고 관철하는 존재가 아니며
상대방에 따라 끊임없이 대응하고 변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 라고.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었어요.

두 번째 단편 _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아아, 그야말로! 강추하고 싶은 단편이었습니다.
두 남자, 아비와 아들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한때는 아내와 어머니였던 여인에 관한 흠모와 숭배를 어찌나 아름다운 문체로 들려주는지
마치 귀를 쫑긋하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숨죽이며 듣는 듯한 느낌으로
정신없이 읽었답니다.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읽어보세요! 라는 무책임한 답만(-.-)  

이 책에 실린 두 권의 단편은 한 편은 비교적 초기에,
뒤에 실린 _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말년에 쓴 작품입니다.
어쩌면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스스로 굉장히 몰입하며 쓴 작품이 아닐까, 했는데
해설에 보니 역시 육체가 쇠약해진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젊은 마쓰코 부인에게 "너무 젊은데 불쌍하다. 당신 바람 피워도 돼"라고 했다는 군요.
왜 이 말에 그렇게나 공감이 가던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맘에 들어온 책입니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라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역시 한동안 
제 맘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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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2-10-0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세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readersu님 리뷰 읽으니 이 책은 더 기대됩니다.

readersu 2012-10-04 16:44   좋아요 0 | URL
저도 <세설>을 넘 재밌게 읽던 중에, 다른 책 읽느라고 놓치고 말았었어요. 얼른 <세설>을 다시 잡아 읽어야겠다고, 이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더랍니다. 부디 blanca님의 마음에도 이 책이 들어가면 좋겠네요^^
 
사진아 시가 되라 - 달털주 샘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詩 수업 이야기
주상태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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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이야기다. 전혀 문학소녀답지 않았던 내가 학교에서 실시하는 시화전시회에 나가게 되었다. 맞다. 상상하는대로 시와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것을 말한다. 자초지종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일단 나가게 되었으므로 안 나가면 창피한 일이라 무조건 나가야 했던 것만 생각난다. 근데 그때의 나는, 그림은 둘째치고 책도 잘 안 읽는 소녀였다. 더구나 독후감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무늬만 문학소녀였던지라 시를 '골라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자작시'를 써야 한다는 소릴 들었을 때,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몹시 고민이 되었더랬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는 겁나게 쎈 편이라 곧죽어도 까짓것, 써보겠다며 시작(詩作)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시를 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시인들의 시를 골라 그림과 같이 꾸미는 일도 어려운데 자작시라니! 언감생심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몇 줄 적었다. 친구에게 보여줬다. 친구가 웃었다. 그럼 네가 써봐! 라고 말하니 까짓것, 하며 써주겠단다. 며칠이 지난 후 시를 적어왔다. 어랏, 꽤 괜찮다. 좋아, 그럼 이걸로 하겠어. 하고 그 시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시화전에 제출했다. 무사히 시화전은 끝났다. 그 판넬을 집으로 가져오는 날, 친구를 만나 고맙다고 인사 했다. 그 친구 그제야 킥킥거리며 실토를 한다. 헤르만 헷세의 시와 무슨 클래식 가사인지 뭔지에서 패러디했음을(-.-) 아놔;;; 그 뒤로 나는 시 같은 것은 안 썼다. 아니 읽을 생각도 안 했다. 아무도 그 시에 대해 아는 척을 해주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내 자존심 구겨지는 일은 정말 싫었으므로. 세월이 지나 요즘은 시를 조금 읽기는 읽는다. 하지만 여전히 시를 쓰는 일은 진심으로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 책, 《사진아 시가 되라》를 읽기 전에는.

 

매일 한 편의 시로 아침을 시작하던 주상태 선생님은 어느날 중고등학교 아이들과 '특별한 시 수업'을 해보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무턱대고 시를 지으라는 게 아니라 손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그 사진을 보며 시를 지으라는 거였다. 엉? 사진을 보고 어떻게 시를 지어? 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나조차 이런 반응이었을테니 아이들도 똑같았을 것이다. 역시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무조건 놀기나 하자는. 하지만 그 아이들이 사진을 보여주자 관심을 보인다. 그 사진 속에 '내'가, 친구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사진으로 시를 지어?

 

 

낚이다

이선주 (고2)

 

 

9월 17일

재미있는 강의가 있다더니……

 

오자마자 시 쓰란다

 

이 시는 책에서 내가 제일 재미있어 하는 시이다. 옆의 사진을 보고 이런 시를 지은 거다. 그니까 선주는 시가 쓰기 싫은 거였다. 한데 이런 것도 시가 되는 건가? 선주가 말한다. "네, 머릿속은 복잡한데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이 다 다르니까 괜찮아." 이 말에 선주는 어? 갸우뚱하며 "시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인가요?" 라고 묻는다. 선생님 말씀을 이렇다. "그래, 선주 작품은 선주 작품대로, 솔희 작품은 솔희 작품대로, 희원이 작품은 희원이 작품대로 다 개성이 있잖아. 선주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마음에 들 거야. 선주다운 시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시가 나오는 거거든. 조금 노력해서 깊이를 더한 시를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시가 너무 싫어지거나 하면 안 좋잖아." 그랬다. 나다운 시, 그게 중요한 거였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선주는 다시 시를 적었다.

 

 

 

 

자전거

이선주 (고2)

 

"띠링띠링"

시끄러워 죽겠다

자전거는 꼭 사람보다 빠르려고 한다

치! 자동차보다 느린 게

 

자전거는 왜 꼭 인도로 다닐까?

자전거 도로도 있는데

 

선주는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시란 이런 거다. 그냥 내 마음 가는대로 적으면 되는 것. 그것을 오래 전 나는 몰랐던 거다. 시란 뭔가 멋을 부려야 하고 은유해야 하며 감성이 풍부한 시적인 단어를 적어야 시가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시란, 그저 내 마음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적으면 되는 데 말이다.

 

이렇게 이 책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사진을 보면서 시짓기를 한 시 수업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진을 보며 시를 지은 아이들의 시도 있다. 그 시들을 읽노라면 이 아이들의 미래가 보인다. '자신들의 이야기와 자신들의 감성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로 자라날 것이다. 사진으로 시 쓰기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주상태 선생님은 하필이면 '사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교사가 공부하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 중학생들은 영상 세대라고. 예전에 우리들은 공부가 지겹거나 힘들 때 낙서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요즘 아이들은 낙서보다는 그림을 그린다고. 그래서 시를 지을 때 그림과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라고.

 

 

책을 읽고 나니 멋(!)을 잔뜩 부리며 시를 짓겠노라 고민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무렵에 주상태 선생님처럼 시 짓기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고 재미있게 가르쳐주었으면 나도 지금쯤은 시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시를 짓겠노라 설친 바람에 시와 오히려 멀어지고 말았으니 아쉬울 뿐. 다행이라면 몇 년 전부터 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시를 지을 엄두는 못 내지만 많은 시를 읽고 는 있으니까 말이다.

 

사진아 시가 되라》에 나오는 아이들의 시는 정말 좋다. 재미있고 센스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놀랍구나, 라는 찬사가 나온다. 이게 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 그래서 나도 오늘 밤에 사진 한 장 쳐다보며 시나 한 번 적어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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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8-2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시는 정말 어려워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readersu 2012-08-23 19:01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면 '시'도 어렵지만은 않다는 걸 아시게 될 거예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