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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있잖아요. 늘 숨을 쉬어요. 낮에 숲에 들어가 소리를 느껴 보면 아주 졸음에 겨운 강아지 숨을 쉬어요. 움직이기 싫어하면서도 누가 건들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 하품하면서 반가워하는 그런 모습이죠. 어떤 때는 고양이처럼 가롱가롱거리기도 하고요. 저녁이 되면 소곤거리는 숨소리로 가득해요. 햇볕이 가득한 동안 마치 일을 열심히 했다는 투죠. 뭐 궁리를 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라니까요. 그리고 밤에는 아주 무거운 숨소리를 내요.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진짜로 몸이나 생각이나 이런 것을 키우고 있는 것 같아요.

새벽에는, 그때의 숨소리가 가장 좋은데, 아주 활기차면서도 비밀스러운 게 숨어 있는 그런 숨을 쉬어요.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거든요. 할아버지 따라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서 느꼈던 것처럼, 산이나 숲이 살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가장 뚜렷하게 들 때이죠. 사람으로 치면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갈 때의 쾌활함 같은 거겠지요. 그러면 난 그것을 건들까봐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다니곤 했어요.

그런데 바다도 숨을 쉬는군요. 다른 숨이에요. 아주 특이해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라면, 익숙하겠지만. 숲이 몸 구석구석 모공을 통해 숨을 쉰다면 바다는 커다란 허파를 통해 숨을 쉬는 것 같군요. 아니, 어떤 거대한 존재가 쉬는 숨, 그 자체인 것 같아요. p127 _ 먼 곳에서 온 사람

 

이런 생각을 해요.

흰색과 검정색을 섞으면 회색이 되잖아요? 저 유럽 중에서도 정열적이라고 소문이 난 나라에서는, 그들이 쓰는 말에서는, 슬픔의 색이 회색이래요. 이해해요. 파란색을 슬픔의 색으로 보는 나라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회색이 훨씬 슬픔의 중심을 엿볼 수 있는 색깔이에요. 닮은 곳이 전혀 없는 상반된 두 개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 바로 슬픔이거든요.

하지만 말이죠. 살면서 감내해야 할 것들 중의 첫째가 그것 아닌가 싶어요. 홀로 남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언제 어디서든지 끊임없이 생기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어요. 그러고 보니까 말이죠.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약속한 스타일과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고요? 자신이 원하는 형태란 아무래도 자기의 특성들이 투영된 모습이기 때문에 스스로와 제법 닮아 있기 마련이죠. 물론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지만.

결혼을 할 때가 되면 자신이 그 동안 키워온 생각과는 다른 사람에게 끌려버린 것이죠. 호호. 그리고 한평생 후회하고 살지요. 왜 그때 저 사람에게 끌렸을까. 스스로 이해하기 힘들죠. 가만히 보면 말이죠. 그렇게 뜻하지 않게 끌렸던 이들은 여러 개인적인 특징들이 완전히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매력이나 기대, 그러니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이 생길 수밖에. p141 _ 먼 곳에서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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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여느 시인들처럼/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한 잔의 진한 커피/한 잔의 맑은 녹차와 어우러지는/양장본 속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그러나 나는 늘 거리에 서야만 한다/너희가 쓰다 버린 850만 비정규직 쓰레기인간들에 대해/노래해야 하고, 일손을 빼앗긴 350만 농민의 시퍼런 절망에 대해/노래해야 한다. 미군기지에 밀려 다시 세 번째 생의 이주를 앞두고 있는/팽성 대추리 노인들의 얼굴 위에/너희가 늘씬 퍼부어주던 포탄 선물을 받으며/피투성이로 울부짖던 이라크 아이들의 얼굴을 겹치며/다시 나는 거리에 서서 분노와 증오로/피 어린 시를 써야만 한다//그렇게 너희는 가만히 있는 나에게서/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고/내가 좋아하는 내 영화를 빼앗아가고/내 친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이젠 그도 모자라/내가 쓰는 전기를, 통신을, 언론을, 가스를, 물을, 약품을/송두리째 모두 너희의 것으로 내어놓으라 한다/10원에 쓰던 것을 1,000원에 사라하고/1,000원으로 살 수 있던 생태적 삶을/10,000원짜리 경제적 삶으로 업그레이드시켜라 한다/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젠 모두/너희의 허락을 맡고 써라 한다/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세계화라 한다//빌어먹을 이런 개똥같은 게 세계화라면/나는 내 온몸에 불을 싸지르고라도/전 세계의 반민중적 세계화를 반대한다/이것이 21세기 선진 세계시민사회라면/나는 정중히 그 세계시민사회에/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한 손은로 미사일 버튼을 잡고/한 손으론 조약서를 들이미는 것이 자유무역협정인가/오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완용의 잔재들이여/너희의 역사의식 속에서/을사조약은 여전히 구국을 행한 결단이었으니/오호, 아직 끝나지 않은 김영삼의 잔재들이여/너희의 역사의식 속에서 IMF 신탁통치는/여전히 어쩔 수 없는 세계화의 대세였으니/오호, 민중이여!/이제 우린 다시 갑오농민전쟁가를 불러야겠구나/오호, 다시 오늘의 이 땅을 죽음이라 부르고/87년 6월과 7,8,9의 함성을 준비해야겠구나//너희가 준비한/퇴행의 세계화 무장한 세계화/빈곤의 세계화 양극화의 세계화/초국적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획일의, 통제의, 부자유의 세계화에 맞서/평등 평화의 세계화를/다양한 인류의 다양한 세계화를/웃음과 사랑과 연대와 나눔을 실현하는 민중의 세계화 변혁의 세계화를/이제 곧 준비해야겠구나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만 노래할 수 있는

그런 해방된 사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거리에서 보낸 오늘 하루

나의 젊은 날도 헛되지만은 않으리

한낮의 꿈만은 아니리

아, 변혁을 노래하고 싶은 밤

아, 해방을 사랑하고 싶은 한밤

                                          _한미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 송경동

 

(…)

사실과 진실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더 많은 시간을 진짜 나의 적인 '나'와 싸운다. 나는 누구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한계와 모순과 무지와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누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나이거나, 나아가 아직 내가 보지 못한 희뿌연 안개 속의 나와 맑게 대면하기 위해 고투하고 사색한다. 해방은 내 안에서 오지 밖에서 오지 않는다. 아마 이시우 작가도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그 속을 국가보안법, 그 밴댕이 소가지가 어찌 다 알리요만. 그런데도 이시우 작가와 비슷한 꿈을 꾸었던 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면 나 역시 잡아가다오. 늘 꿈꾸되 나에게 오는 것은 평등과 평화면 좋겠지만, 그 길이 다시 가시밭길이라면 부끄럽게도 그 길을 가겠다.

(…)

이시우 작가가 그의 홈페이지에 적어둔 짤막한 잠언 몇 마디 붙여두고 마친다. 아무리 봐도 그는 훌륭한 사진작가, 평화운동가, 통일문제전문기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참 좋은 시인의 눈을 갖고 있다.

 

빛에 젖는 어둠과

어둠에 적셔지는

그 격렬한 고요.

 

상처는 아픔이면서도 교훈입니다.

용기만이 제 상처에서 교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잘 모른다. 송경동 시인. 트윗이 아니었으면, 희망버스가 아니었으면 영영 모를 뻔했다. 그러고보면 정부가 SNS에 압력을 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겠다. 이 책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아주 몰랐다고는 할 수 없는 삶들을 눈으로 직접 읽어내며 이해하는 척 하려니;; 난 더 많이 배워야겠구나, 생각할 뿐.

 

지금 현재, 이시우 작가는 무죄 판결을 받아 나왔고, '나 역시 잡아가다오' 라고 한 송경동 시인은 구속 수감 중이다. 책 마저 다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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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빛나지 않는 존재인 인간에게 어둠은 언제 찾아오고 언제 물러나는가. 스스로 빛나지 않는 사내에게 어둠은 찾아왔다 물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은 늘 있었다. 찾아왔다 물러갔다 다시 찾아오는 것은 빛이었다. 사내는 이제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무처럼, 한그루 나무처럼. 말을 잃은 계집애를 등에 업은 채. 

쇠처럼 단단해지는 어둠속에서 수많은 소리가 돋아났다. 발소리, 구세군의 종소리, 크리스마스 캐럴, 동전 부딪치는 소리, 침 삼키는 소리, 짧게 들이쉬는 숨소리, 길게 내쉬는 숨소리, 눈 깜박이는 소리, 심장 덜컥거리는 소리, 운명의 주사위가 구르는 소리, 지하철에서 쏟아져나온 군중 같은 시간이 어깨를 치며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가냘프고 앳된 목소리. 

-할아버지.
-그래.
-할아버지, 괜찮아?
-괜찮아.
-할아버지, 누구 기다려?
-응.
-누구?
-누구.
-힘들어?
-괜찮아.
-노래 불러줄까?
-그래.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싼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엔 서언물을 안 주신대요. 싼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밤에 다녀가신대._33~34쪽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울면 안돼, 라고 노래 부르지만 울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이 단편을 지난 주에 읽고 한숨밖에 안 나왔는데, 어제 이런 기사를 봤다. 

"또래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중학생들이 ‘등교 정지 10일’ 처분에 그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피해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피해자 어머니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 

뭐 이런 개떡 같은, 중학생이 문제를 일으켜도 학교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징계는 겨우 등교 정지 10일이란다. 

소설 속 할아버지의 행동이 백번 이해가 가지만, 그래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상황들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다를 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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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가 강 쪽으로 몸을 조금 더 내밀었다. 강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그래도 어젯밤에 너랑 있어서 좋았어. 아주 좋았어." 제이가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처럼 말했다. 제이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난간에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선 다음 있는 힘껏 달려 양화대교 난간을 손으로 짚고 허공으로 경쾌하게 날아올랐다. 마치 체육수업 시간에 호각 소리에 맞춰 뜀틀을 넘는 아이들처럼 그토록 경쾌하게. 제이는 마치 정지해 있는 새처럼 공중에 잠시 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강으로 떨어졌다. _바람의 언덕, 김언수

 

그린란드 이누이트 에스키모들은 80퍼센트가 우울증을 앓는다. 이누이트족의 일부 지역에선 매년 인구 천 명 중 서른다섯 명이 자살을 한다. 이런 끔찍한 자살률은 그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곳에 신이 금지한 어둠의 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곳은 한 번 밤이 오면 석 달씩이나 태양이 뜨지 않는 북극의 땅이니까. 하지만 이누이트족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은 봄 햇살이 찬란한 5월이다. 이누이트족은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하 40도씩 내려가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 불도 뗄 수 없는 얼음집에서 수천 년을 살았다. 두꺼운 얼음을 깨서 물고기를 잡았고, 물개와 북극곰과 바다사자와 고래를 사냥했다. 북극에서는 얼음 구덩이에 발이 빠지는 작은 실수만으로도 다리를 잘라야 할 때도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이누이트족은 그 아찔한 동토를 수천 년이나 견뎠다.
이누이트족이 사는 북쪽 그린란드에는 나무가 없다. 그래서 이누이트족은 얼음집 속에 작은 물개기름 램프 하나만을 켠 채 대가족이 모여 산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체온은 친밀함 이상이다. 체온은 얼음집 안의 거의 유일한 난방시설이므로 사람들의 따뜻함은 더도 덜도 말고 정확히 생물학적 의미로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그들은 유대하고 부대끼고 얽혀서 산다. 그래서 이누이트족은 관대하고, 인정이 많고, 유머 감각도 뛰어 나고, 잘 웃는다. 얼음집 안에서서의 공존과 평화로움은 절대적이다. 이누이트족은 결코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지도 않는다. 이누이트족은 불평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남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규칙도 없고 심지어 그런 개념조차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도 않는다. 서툰 동정도 서툰 위로도 하지 않는다. 동정이나 위로 그 자체가 상대방에겐 심한 모욕이 될 수 있으므로 사실 간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니 누가 어떤 상태를 보이든 그저 묵인하며 스스로 견디도록 내버려둔다.
상대방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이누이트족은 아무도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분노에 대해서, 외로움에 대해서, 견딜 수 없는 역겨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이누이트족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각자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 따위를 털어놓아서 상대방에게 짐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 거친 북방인들은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왔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죽어야 했다. 물개기름 램프가 흔들리는 얼음집 안에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거나 아님 사냥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든다. 아무도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아무도 서로에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 얼음집에서, 바다사자와 물개와 고래의 피를 마시고 자란 이 거칠고 뜨거운 사람들은 상냥하고 온순하고 평화롭게 지낸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격정과 우울이 찾아오면 조용히 얼음집 밖으로 나가 혼자서 자살을 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바다사자와 물개와 고래의 피를 마시고 자란 사람들은 그렇게 죽는다. _<한낮의 우울>309-320쪽 요약 ; _바람의 언덕, 김언수 

 

젊은 작가 7인의 상상 이상의 서른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은 《30,Thirty》작가들이 하필이면 서른이라는 테마를 죽음의 테마로 변주한단다. 호기심에 책을 펼쳤다. 남들은 서른이 될 무렵에 그토록 방황을 한다는데, 내 기억의 저편에선 서른이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모르니 그들의 방황도 이해가 안 되고... 근데 죽음이라니. 하긴 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인생에 서른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고들 하니, 서른=죽음이라는 공식이 틀리지는 않았겠다. 

첫 단편은 김언수 작가의 <바람의 언덕>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요약해서 시작한다. 그 요약대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제니, 왜 그녀가 자살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 채.  

앤드류 솔로몬이 말하는 이누이트족들의 자살률, 읽으면서 내내 우울에 걸린 사람들에게 있어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한편으론 그들의 성격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만,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 자신을 조금씩은 내보이며 살아야 하는구나, 싶다. 가끔은 그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근데 때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쏟아냈을 때의 그 허무함이랄까, 속이 시원할 것이라는 이면에 허전하고, 후회되는 마음. 괜히 말했어. 괜히 떠들었어. 뭐 그런. 그렇다고 그런 걸로 우울증을 앓을 나는 아니지만, '소통'보다 이누이트족의 '무간섭'이 꽤 맘에 든다는. 어쩌면 내가 '무간섭'할 만큼 완벽하지도, 내공이 쌓이지도 못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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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준다면』은 한 소녀의 이야기다. 교통사고를 당해 가족이 모두 죽고 의식불명인 소녀가 죽음의 기로에서 죽을 것인지 살아나야 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이야기다. 소녀는 "살다 보면 때로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내 선택이 나를 만들기도 하지."라고 생각하지만 선뜻 살아나야 할지 이대로 가족들에게로 가야할 지 정하지 못한다. 그런 과정에서 소녀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친한 친구들의 입장이 되어 소녀가 죽은 후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하기도 한다. 아래의 글은 동생이 살아 있을 거라 믿었지만 결국은 죽었다는 것을 알고 내뱉는 독백이다. 눈물이 뚝뚝-.- 

나는 마지막으로 테디의 머리 냄새를 맡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울지 않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 내 눈물에 젖어 축 처져버린 금빛 소용돌이 곱슬머리를 빼놓고는.

테디는 평생 어린이 야구를 졸업하지 못할 것이다. 콧수염을 기르지도, 주먹다짐이나 사슴 사냥을 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여자랑 키스를 하거나 섹스를 해보지도 사랑에 빠지거나 결혼하거나, 저와 같은 곱슬머리 아이을 갖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테디보다 고작 열 살이 많을 뿐이지만 이미 인생을 한참 산 것 같다. 이건 불공평하다. 우리 중에 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우리 중에 더 살 기회가 주어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테디여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남편이 죽고 앨범을 보다가 남편의 사진들을 보며 올리브 부인이 내뱉는 독백이다. 『네가 있어준다면』의 테디는 이제는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해 누나가 상상하는 것이었지만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미래에 일어났던 일들을 읊조리는 거였다. 이 장면에서도 역시 난 눈물 뚝뚝, 흘렸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막 슬펐다. 

"(...)헨리의 다른 사진은 키가 크고 마른 해군 시절의 모습이었다.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어린 청년이었다. 당신은 짐승 같은 여자하고 결혼해서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거야. 올리브는 생각했다. 아들이 하나 생길 거고, 그 애를 사랑하게 될 거야. 하얀 가운을 입고 키만 훌쩍한 당신은 약을 사러 온 동네 사람들한테 끝도 없이 친절할 거야. 당신은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어 휠체어에서 생을 마감할 거야. 그게 당신 인생이 될 거야." 

아마 두 문장 공히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 하는 부분이어서일 것이다. 살아보진 못한 테디나 살아본 헨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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