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의 유토피아는 어때? 1부터 10까지"

매끈하게 읽히지는 않는 매력을 가진 정보라 작가의 <너의 유토피아>작품이다. 8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인 너의 유토피아는 "상실", "애도", "생존" 을 이야기한다.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나"는 인간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 홀로 남아있다. 타이어와 전구와 케이블을 찾아 죽어버린 동료들의 시체를 뒤지다가 314는 발견한 "나"는 뒷좌석에 그를 태웠다. 314가 "나"를 향해 너의 유토피아는? 질문을 던지면 "나"는 남아있는 건전지의 양에 비례하여 유토피아 수치를 가르쳐 준다. 어느 날 괴물이 나를 향해 돌진해오고, 그 충격으로 인해 314의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 "나"는 마지막 자신의 소유주였던 인간을 떠올리며, 314를 위해 전력을 소모할 수 있는 모든 장치를 차단한다.

새해부터 장례 소식이 많았다. 나는 인생의 종착역이 결국 "죽음"인데 사는 동안 죽음을 향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행위가 너무 허무한 것 아니냐고, 또한 인간이 밟고 서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누군가는 죽어야 또 누군가가 태어난다고 그게 자연의 섭리인데 머리는 이해가 되어도, 마음은 잘되지 않는다고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나에게 <너의 유토피아>결말은 위안이 되었다. 사는 동안 상실된 사람들을 행동해 주고 기억해 주는 일, 즉 애도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내가 생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정보라 소설은 희망적이다. <아주 보통의 결혼>은 아내가 언제부터인지 자신 몰래 누군가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통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추적 끝에 참혹한 진실을 마주한다. 남편은 아내를 내치는 대신에 함께 앞으로 전진하는 과정을 담았다. 끊임없이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씨앗>도 빼놓을 수 없다.

정보라는 깨알같이 반전도 심어놓았다. 특히 <여행의 끝>은 압도적이었다. 전염병을 피해 달아난 우주선에조차 감염자가 발생하자 지구 측에서 이들을 버린다. 감염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인간을 먹잇감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우주선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무렵 우주선이 폭발한다, 우여곡절 끝에 구명정에 타게 된 "나"는 지구에 다시 도착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의미를 만들어서 부여하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인물들과 함께 하다 보면 나의 유토피아 점수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 무례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한 연결에 대하여
김민섭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살아왔던 나에게 삶은 잔인할 만큼 힘들고 버거웠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타인에게도 인색해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책과 문학을 가까이하는 삶이었지만 인간으로서의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를 유영할 때 종착지는 어김없이 이기심이었다. 녹록지 않는 나의 삶 속에 내 상처가 제일 크게 느껴지며 내 삶이 가장 애틋해지는 만큼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내가 지닌 성향이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가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 궁금증이 생길 무렵 김민섭 저자의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작품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작품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신문과 잡지에 연재한 글들을 다시 손보며 엮은 글들이다. 그는 7년 동안 다정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며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썼다. 저자가 택한 방법은 같은 동, 마음 정, "동정" 누군가와 같은 마음이 되어보는 일과 나와 닮은 사람의 범위를 확장시켜 나갈 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말한다. 저자의 일상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아동 전기 후원과 헌혈을 하며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태풍으로 행사가 취소되고, 숙소도 환불되지 않았지만,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고, 누구도 사과하거나 상처받지 않게 처리한다.

저자가 다정한 태도로 삶을 살게 된 이유에는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힘 때문이었다. 마음을 다해 응원해온 존재들에게 정중하고 다정하게 응답해야 계속 응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저자는 누군가에게 받은 마음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노력한다. 갑과 을, 혹은 수직관계에 있을 때 모호한 언어나 의미 없는 몸짓에도 누군가는 상처받는 사실을 깨달으며 타인의 향한 자신의 언어와 몸짓을 되돌아보거나, 카드 서명에 리본을 그리면서 추모를 위한 행위 등 크고 작은 선한 영향력을 이어나간다.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개인적으로 호의를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배려를 배려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즉 꼬이지 앓은 마음, 심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곧 다정한 시대가 당도할 것이라 말하는데, 진짜 그러한 시대가 빨리 찾아오기를, 나는 기도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섬세가 필치가 돋보이는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여성들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챙겨보게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삶을 이어나간다. 옷깃만 잠시 스쳐가는 얕은 인연도 있으며, 친밀하고 오랜 사이를 유지하는 인연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타인과 가벼운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결속력을 다지며 깊은 관계로 발전하길 원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작품에서는 대학시절 셋이 붙어 다니며 쓰리 걸스라고 불리는 리에, 다미코, 사키, 세 여성이 있다. 30년이 지나 50대에 접어든 이들의 삶은 모습은 제각각 다르다. 여전히 미혼인 다미코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글 쓰는 직업을 삼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샤키는 무뚝뚝한 남편 무로후시와 아들 둘을 낳아 기르고 있으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종종 요양원에 방문하고 있다. 리에는 금융 쪽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며 결혼과 이혼을 두 번씩이나 경험하며 자유로운 생활 중이다. 리에가 영국 생활을 접고 다미코의 집에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일상은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이들은 사는 모습도 제각각이지만 성향의 결도 제각각 다르다. 셋이 모이면 대게는 리에가 가장 말이 많고, 다미코는 리에의 말 하나하나에 반응을 하고, 샤키는 모임 자체를 가장 즐긴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공기가 옛날로 돌아가 친구들을 통해 환기되는 과거의 나를 만나는 일을 반가워한다. 학창 시절 쓰리 걸스는 영어책 속에 나오는 미지의 것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특히 셔닐'과 '캔덜루프 멜론' 단어의 정체를 알 수 없어 토론을 벌이며 상상의 나라를 펼쳤고, 30년이 지난 후 정체를 알게 되면서 " 우리 참 오해가 많았던 인생이네" (P0204) 깨닫는다.

십 대 이십 대까지만 해도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결혼에 대한 환상, 직장 생활에 대한 환상, 어른에 대한 환상 등 삶이 지속될수록 가지고 있던 환상이 하나씩 하나씩 깨어지며 쓰리 걸즈처럼 '지금'을 살아가게 되는 것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도 새소설 18
김엄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음과 모음 새 소설 시리즈 18은 김엄지 저자의 <할도>이다. 섬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짧은 분량이지만 소설 같기도 하고, 시집을 엮은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 가며 특유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활도>작품은 "내가 아는 벌레가 있다."(P07) 강렬한 첫 문장으로 문을 연다.

아버지 발인이 끝난 뒤 돌아오는 버스에 "나"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할도로 향한다. 비가 잦고 빗줄기가 거세 뺨에 맞으면 살갗이 베인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할도에서 머무는 동안 "나" 면도를 하지 않고, 술생각이 나면 쥬지오로 향했고,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며 그저 살아있음에 충실하다. 할도에서는 A,B, 쥬지오의 여주인, 나이든 의사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나"를 향해 여기를 왜 왔는지, 혹은 왜 아직 섬을 떠나지 않는지 묻는다. "나"는 갑작스럽게 감기와 눈덩이에 다래끼가 생긴다. 다래끼는 곧 터질듯하면서도 터지지 않았고, "나"는 통증에 익숙해진다. 서쪽 절벽으로 가라고 했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나"는 짐을 꾸려 떠난다. 절벽으로 기어오르면 오를수록 나의 신음과 숨소리가 아버지의 숨소리와 닮아있음을 알아차리며 눈물을 흘린다.

서사는 연속성 없이 끊임없이 나열되고,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잘 읽히지만 보이지 않는 공백이 많으므로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인생은 계절과 매우 흡사하다. 따뜻한 시절에 행복을 만끽하기 하고, 혹독함을 견뎌내야 하는 시절도 있다. 혹독함을 잘 견뎌내기 위해서 저자에게는 쉼과,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는 보통 사람들, 시간이 필요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향해 할도에 와서 가장 즐거웠던 일을 말해보라고 하자 "나"는 주저 없이 다래끼가 터진 게 좋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평범한 하루, 보통의 삶에 조그마한 균열이 발생하게 되면 행복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지만 망각 동물인 인간은 곧 잊어버리는 게 문제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위트 솔티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단짠단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인생의 맛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총 8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황모과 저자의 신간 (스위트 솔티)는 우리가 살아내는 인생의 모습과 비슷하다. 8개의 단편 소설이 하나의 대동맥으로 이어져 있기보다는 각각의 개별적인 존재로 독자들을 맞이한다. 저자는 이십 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한국 SF 소설을 읽고 일기를 소설로 확장한다. 이번 단편 소설집에도 SF 소설이 여러 편 실려있고, 단순히 재미에 그치기보다 독자 스스로가 묵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서 책을 완독하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순애보 준코, 산업 위안부 김순자』작품은 전범 국가는 강제 징용 조선인 노동자를 상대한 산업 위안부 김순자 씨에게 순애보라는 오염 데이터를 주입시켜

기억 데이터를 왜곡시키며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저자의 상상 속 미래에서 펼쳐질 법한 현실들이 지금 세계에서도 일어날 법한 일들이라 마음 한편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존재한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역사적 사실 앞에서 또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국가를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절망스러울 것 같다.

『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작품은 만화가가 되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안고 도쿄에 도착한 피복 3세인 "나"는 치매를 앓고 있으며 오메라시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이웃집 할머니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할머니가 왜 고향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는지 궁금하다. 한편 빈손으로 귀국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문득 누구나 오메라시에 갇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단편 소설은 윤 정부 초기에 작성한 『시대 지체자와 시대 공백』작품이다. 스마트 보디 갱신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시대 지체자들(냉동 인간)에게 제3의 눈의 시술에 관한 매뉴얼을 읽어주며 설득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나"는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미래복지부가 끊임없이 과거를 만회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서슴지 않아 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들이 가진 도구로 인해 누구나 시대 지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자신의 시대의 공백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건 제대로 잘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힘이 난다.

저자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피커가 간절히 필요한 자들에게 자신의 스피커를 내어주려는 마음 때문이다. 타자들을 가둬두고, 배척하는 것보다는 우리도 "이 하의 삶' 자리에 언제든지 당도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함께 더불어 가는 삶으로 안내해 주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