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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2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4월
평점 :

폴란드의 여성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 작품은 우주의 중심에 놓인 '태고'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태고" 공간과 시간 경계가 허물어져서 읽는 내내 몰입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기보다는 84편의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 동식물, 천사 신, 이르기까지 모든 대상들이 주인공이 되는 설정을 둔다.
방앗간을 운영하는 미하우는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러시아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아내였던 게노베파는 임신 중이었으며 딸 미시아를 출산하게 된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하우의 귀환 역시 점점 늦어졌다. 게노베파는 방앗간에 일하러 온 유대인 소년 엘리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마을에는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소녀 크워스카가 임신을 하였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이후 그녀는 숲속을 떠돌며 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게 된 미하우는 미시아를 돌보았고, 미시아 동생인 이지도르가 태어난다. 시간이 흘러 미시아는 파베우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였고, 이지도르는 크워스카의 딸인 루타와 가깝게 지낸다. 얼마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이 태고를 점령한다.
살아오면서 불가사의 한 일들을 경험해 본 적 있는 나는 저 너머의 차원의 세계를 믿는 편이다. "자 다들 보세요 이 아이가 바로 내 작은 영혼입니다."(P023) 와 같이 천사의 시각, 신의 시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지점은 흥미를 유발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를 두려워하며 신을 찾게 되는 습성이 있다. 또한 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저자의 상상 속에 신은 우리 생각과 다르므로 신의 현현, 현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대의 비극은 개인의 삶에도 전염되지만 태고의 시간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 단 앞으로 나아가는 이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만 있을 뿐이다. "이반 씨, 이 전쟁은 왜 일어나게 된 건가요? 누가 전쟁을 일으킨 거죠?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학살을 하러 나섰고, 사람들을 죽이는 건가요?."(P251) 저자는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놓치지 않았다. 올가 토카르추크 작품 대부분은 여성이 중심인물이 되어 서사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태고의 시간들> 작품에서도 성장, 욕망, 출산, 등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