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지도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든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도 눈이 나리리라.

    

                  <윤동주>

 

 

 

어제 나는 내가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누군가를 내 손으로 벌주고 싶었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 조금 착해졌을까. 아니면 그마저도 생각하기 지친걸까.

아이와 착한 희망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기를 바래야 한다고 우겨본다.  

그 우김에 순순히 넘어가지진 않지만 그나마 숨통이 트인 이유는 하나다.

밤새 내린 눈.. 눈이 내리는 시간.. 평소보다 밝았던 밤하늘..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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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런적 있었는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남 벌도 못주고 저만 망가졌더랬죠. 눈보면서 마음도 평안해지시길..

치니 2006-02-0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었다니, 갑자기 정말 고맙게 느껴지는 눈.

rainy 2006-02-0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 님..
며칠 내내 님의 글에서 본 무기력함과 방치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어요.. 아니 그 자체로 살아가다가 님의 글에서 마주친 것일테지요.. 어쩌면 남을 벌 주고 싶단 생각도 그거라도 하면, 어떤 패턴에서 비껴갈지도 모르지 않겠냐는, 틀릴 것이 분명한 생각이겠구요.. 모든 생각들을 처음 하는 것처럼 신선하게 하고 싶단 바램이 들어요.. 매일 하던 식으로 말구요.. ^^ 반갑습니다..

치니 님..
그런데 정말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리스 2006-02-0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러셨군요. ^^
앞으로도 자주 뵈면 좋겠어요..
 

책방에서 본 눈. 아침을 맞으려 애쓰고 있는 하늘.

언젠가 영화에서 본 기차역의 연기같은 ..  떠나고 싶다 ..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보랏빛 하늘..

멀리 있는 나무..

무언가는 떠나고 그 자리에 눈이 왔다. 빈자리는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 삶 또한 무엇으로든 채워진다. 그것이 상심과 비탄이 아니기를.. 그것이 공허와 분노가 아니기를.. 그것이 선량한 것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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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2-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던 생각이 나요. 마지막에 저렇게 점점이 흰색 물감으로 눈을 찍어 그리곤 했는데.
늦게지만, 새해 인사 드려요.
선량하고 기쁜 일들로 가득한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평화도 빌어드릴게요.

쓰루 2006-02-0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이 선량한 것이기를............

rainy 2006-02-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저도 새해인사 못드렸지요... 아프신건 많이 회복 되셨는지요.. 뮤지컬은요?
나무님에게도 눈처럼 설레이는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쓰루님.. ^^

rainer 2006-02-07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서 레이니님 동네에만 눈이 저렇게 예쁘게 내리는 걸까요.

sudan 2006-02-0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 동넨 저런 눈 안 와요.

rainy 2006-02-0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니어 님..
어째서 레이니어님 댓글엔 이렇게 설레는 걸까요.

sudan 님..
하핫..
 

不醉不歸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는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허수경>

 

크게 안녕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혹여 너무 심하게 안녕하지 못할까봐 몸을 사리는 날들.. 이건만!

조금 전 문득, 며칠 전 lamb lamb 이란 곳에서 온 편지봉투가 생각이 났다.

아이를 마중하러 나간 길에 우편함에 꽂혀 있던..

기억이 맞는다면 특이한 문구류를 파는 곳으로

아마도 나는 꽤 여러번 그곳의 물건을 애용해 주었을  것이다.

거기서 최근에 물건을 산 적이 없는데 뭘까 하는 순간 아이가 왔고

난 편지봉투를 잊고 있다가 조금전에야 생각이 난 것이다.

봉투를 열어보니 아무런 메모도 없고 달랑 즉석복권이라고 여겨지는 카드 3장과

사진을 끼울 수 있는 칼라시트가 들어 있었다.

난 무심코 카드를 긁었다.

그건 쳇~ 복권이 아니라 오늘의 운세였다.

운세 왈.

[당신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돈도 잃을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친절하다. 그래서 당신의 행동에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 불행을 가져올 것이므로 친절하고 약해 보이지 말아라. 당신은 당신이 의지하던 오랜 친구를 잃을 것이다.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 질 수 없다.]

흠.. 미안하지만 안 물어 봤는데.. 그리구 뭐 별다른 소원이 없는데..

승복할 수 없어 나머지 두장도 마저 긁었지만 뭐 거기서 거기로

오늘 나는 재수가 없단다.  오늘 반가운 사람들을 여럿 만나기로 했구만..

이럴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황당하다. 진짜..

머리가 살짝 아플려고 하지만

오늘 재수가 없는 건.. 바로 니네가 보낸 편지 때문이거든요.. 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 아픈 詩에게 너무 미안하다.

어쩌면 이 詩를 피하기 위한 안간힘일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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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6-02-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램 램, 거기 장사 못하는데다. 운세를 넣으려면, 다 좋은것만 나오는걸로 알아서 넣어야지, 그게 머람. ㅉㅉ

rainy 2006-02-0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맞나)ㅋㅋ
 
고슴도치 아이 그림이 있는 책방 1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보림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모티프는 입양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닿아온 것은 아이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피오트르의 부모들은 간절함과 사랑으로 아이의 가시를 하나씩 사라지게 만들지만

나는 반대로 내 아이의 보들보들한 가슴에 가시를 하나씩 자라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반대로 가시는 나에게 있었고 아이로 인해 그 가시들은

조금씩이나마 무뎌지게 되었던 건 아닐까 라고..


아이를 왜 바라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 대상이 필요하다고 그들이 대답했을 때

그들은 아이를 만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부모를 기다리는 , 부모가 필요한 아이의 간절함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아이와 만날 수 있게 된다.

준비 없이 아이를 낳고, 먹이고 입히면 저절로 자라는 줄 아는 부모들,

아이가 자기의 소유라도 되는 양 선을 넘는 간섭을 하는 부모들에 비해

이미 그들은 한 수 위다.


이 책에는 입양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던 젊은 부부의 간절함과 

그들이 자식을 갖게 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에게 부모로 인정받는 순간이 진정한 출발임을

이 책은 실제 그들의 이야기답게 담담하고 과장 없이 그려간다.   


이 책의 마지막 결말에는 코끝이 찡했다.

내가 낳았건 , 나에게 와주어 만나게 되었건

아이는 나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언젠가 훨훨 날수 있게 될 때까지 내게 선물로 주어진,

사랑과 의무로 정성을 다해 보살펴야할 존재라는 것을

나는 때때로 잊고 있었기에..


자꾸 딴 소리만 한 것 같다.

내가 낳았건, 나와 만나졌건 중요한 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이란 말을 하고 싶었고

또 공부할 게 많고, 생각이 많아지는 입양이란 단어 앞에서,

고귀하고 어려운 일임에 분명한 그 일 앞에서

내가 가진 것은 너무 적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어떤 것도 구체적으로 힘주어 말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이야기는 모두 집안에서의 이야기란 것이었다.

입양에 관한한 집 안쪽이 문제가 아니라 집 바깥의 문제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말이다.

이 책이 가진 따스함과 간절함과 건강함이 모여서 

집 바깥의 편견을 하나씩 허물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은 그 어려운 길을 가는 발걸음 중 하나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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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기 2006-06-17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입양에 관한 글은 꼭 써보고 싶네요

rainy 2006-06-1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아름답고, 내용도 아름답고.. 꼭 읽어봐.
 



불혹.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 말이 공자의 논어에 있던 말인가?

공자의 말이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음을 알다.

 

어제 만난 그녀.

그녀는 소녀같다.

죽어버린 것이,흘려보내 버린 것이 드러나는

소녀는 가질 수 없는 소녀다움.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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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6-01-19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잔상은, 염치없게도 이런 느낌이다.
하지만, 문득 거울을 보았을 땐.. 늘어지고 탁한 모습이 그 속에 있다..
조금 부끄럽고.. 많이 황홀하다..

치니 2006-01-1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헤어의 질감, 그대로에요. ㅋㅋ

rainy 2006-01-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 님..
^___^

치니 님..
예술가의 눈은 ^___^

rainer 2006-01-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___^

rainy 2006-01-25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레이니어 님이 웃어주고 가셨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