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침을 먹는다. 8. 커피를 한잔 마시고 정유정의 <7년의 밤>을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읽는다. 문득 중요한 일이라도 생각이 난 듯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아직 11. 머리를 대충 말리고 혹시 잠이 오지 않을까 싶어 이불을 뒤집어 써본다. 잠은 오지 않는다. 좁은 거실을 수 차례 왔다 갔다 하며 아이가 벗어놓은 수면바지, 얼굴을 닦은 수건, 밤새 신은 양말을 빨래바구니에 넣고 그와 비슷한 종류의 일들을 서 너 가지 한다. 아무래도 제일 나을 듯 한 <7년의 밤>으로 조금 더 시간을 지탱한다. 12시반. 배는 하나도 고프지 않지만 심심해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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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12-1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알라딘 몇 년만인 거임? ㅎㅎ

rainy 2012-12-1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 월정리의 기운이 나를 쓰게 한 걸까? 알라딘은 어젯밤 끄적거리고 오늘 다시 온 것 같아^^

라로 2015-01-01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새로운해가 밝아오네~~~.^^;;; 건강하고 알라딘에서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라로 2017-08-19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아예 안 하는 거야??? 많이 바쁜가보구나~~~~.
 

‘알라딘에 팔기시 정산처리’를 ‘알라딘에 팔기시 정신차리기’로 읽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간단하다. 틀렸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정답이 있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해석하는 건 정답도 없고 쉽지 않고 때로는 낭패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내 멋대로인 것 같다. 어쩌면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뭐 요즘은 ‘미친봄’이니까.

언젠가 보았던 앨리맥빌 중에서 앨리가 말한다. ‘나쁜 남자라도 만날까? 외로운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녀의 현명한 룸메이트가 대답한다.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되는 것보다 외로운 건 없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앞으로 어떤 남자를 만나도 내가 더 나쁜 여자가 되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 든다. 꼭 못돼서라기 보다는 백 만가지 다른 이유들 때문에. 혼자 조용히 외로운 게 나을까? 둘이 죽어라 내기라도 하듯 나란히 외로운 게 나을까? 혼자 외로운 건 조용히라도 할 수 있지만 둘이 외로운 건 전쟁일 거야 분명히. 좋지 않다 이런 상상.

오후 네 시. 해가 비스듬히 비추는 시간. 곧 질 것을 준비하는 시간. 추운 겨울 어느 일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좁은 베란다에 기대 담배를 피울 때면 햇살의 결이 느껴지고 온기를 품은 것 같은 착각조차 들게 하던 그 엷고 비워진 시간들. 곧 저물 그 시간을 나는 참 좋아했었다. 어쩌면 마흔을 넘긴 내 나이 같기도 한. 곧 저물 것을 충분히 아는.. 짧을 그 시간들을, 그 시간 이후의 어둠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참 진부한 질문이지만 한번도 명확한 해답을 찾은 적 없기에 매번 또다시 던지게 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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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4-2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

나이 마흔 조금 넘고서 곧 저문다고 자꾸 그러믄, 어르신들한테 엄살 떤다고 혼난대이 ~ ㅎㅎ

rainy 2010-04-21 14:51   좋아요 0 | URL
헤헷.. 그르게..
너무 서둘러 어둠을 준비하지는 않을게 ^^*

rainer 2010-04-2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좋아요! 미친봄! ^^


rainy 2010-04-21 14:52   좋아요 0 | URL
회사에서도 반쯤만 미치고, 밖에서도 반쯤만 미치고,
지대로 이 봄처럼 미치고 시퍼요 ^^

2010-06-22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3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7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2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2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9-2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명절에 어디가???
우린 친정에 갈거야~.
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명절을 보내길 바란다.
그리고 명절 지나고 함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2011-03-0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7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1 0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1-09-0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댓글 달러 왔더니 내가 작년 추석에 달았던 댓글이 저 위에 있네,,,ㅎㅎㅎㅎ
정말 너무 하시네요. 그 글빨이면 나는 알라딘에 하루 종일 글을 올릴텐데,,,
자주 좀 봅시다.
추석도 해피하게 보내길 바라고,,,보고싶네.
 



 



 

 

 



 




아마도 올겨울 마지막이 될. 차례를 지켜 순서대로 내릴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하염없고 끝도없이 휘날리던. 눈의 짧고 결정적인 탄생과 소멸을 지켜보면서  길고 지루한 생, 더 지루한 생에 관한 답 없는 물음들에 몸서리쳐지던. 그래도 눈이 내리니까 사랑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따스해 지기도 했던. 어수선한 전깃줄을 피해 올려세운 발끝을 저리게 하고, 가슴을 저혼자 뜨겁게 하고, 카메라를 잡은 손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시리게 하던. 3월 봄밤에 내린 눈. 눈내린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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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10-03-1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마실 산책 나와서 포근하게 사진 바라보다 갑니다.
레이니님, 따스한 하루되시길 바랄게요~^-^

rainy 2010-03-11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제랄 님의 기원 덕분에 꽃샘추위도 두렵지 않은 따스한 시간이 되고 있다는^^

라로 2010-03-1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와야 글을 올리시는군요!!ㅎㅎ
눈을 좋아하면서 왜 닉은????ㅎㅎㅎ
자기가 찍은 눈 사진은 따듯하게 느껴진다,,,

rainy 2010-03-1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은 왠지 느닷없는 선물 같잖아^^
눈은,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 같지가 않아..

2010-03-25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를 본 것으로 충분했던 지난 겨울 속초 행.    

이젠 우리와 그, 또는 그들과 나에 관해 명쾌히 정리할 때라고.

저 바다 색 운동화를 사 신고 앞으로만 걸어가야지 생각했던.  



밀려 왔다 밀려 가던 파도.  돌아가다 다시 곧 돌아오던.  

오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는 게 꼭 나 같기도 했던.

그 반복 . 하루 종일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러나 서둘러 해는 지고.  

작은 소란, 작은 갈등 따위는 아랑곳 없이 어둠은 내려앉고.  

저 시리지만 든든한 어둠이 무섭기도 또 편안하기도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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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er 2010-02-2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바다 사진이 따뜻해 보이는 건, 역시 작가의 힘이겠지요! ^_^

rainy 2010-02-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니어 님~

댓글 감사해요. 히힛..
언젠가 스쳐가는 생각 가운데 저의 글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랬군요, 그래요, 맞아요, 꼭 그렇진 않죠, 나도 그래요, 나는 그렇진 않아요.. 가 아니라
'쏘 왓!'을 외치고 싶도록 만든다고 자평한 적이 있었거든요.
이런, 한살 더 먹더니 한살 만큼 더 소심해진 ^^;;

그날 바다는 제게 무척이나 친절하고 따스했답니다.
그리고 언제든 또 오라고 말해주었다지요^^



쎈연필 2010-03-0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과 색이 너무 예뻐요. 왼편, 그림자, 가로등, 먼 바다 배 한 척...
이런 고운 사진 찍을 수 있는 시선, 손,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rainy 2010-03-0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댓글 ^^
감사 해요 ^^
 

비가 오니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매일 매일 미칠 것 같았는데
비가 오니 견딜 수 없어지는 것.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외로움도 가난도 두려움도
바쁜척 일상으로 살짝만 가려두고 살다가
때때로 견딜 수 없어지는 시간이 기어이
닥쳐 오고야 마는 것.

이런 날은 기꺼이 지각을 행한다.
서두르면 지각을 면할 수 있는데
이를 앙다물고 서두르지 않는다.
전철역 커피집에서 커피도 한잔 사들고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마음 속의 무언가를 쓰고 싶은데
그것도 해 본지 오래라 어렵기만 하다.
새벽 세시가 아니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아, 정말 어쩔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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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2-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두 써!!!!!!!!!!






rainy 2010-02-0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핫! 확실한 반응이닷^^
뭐라도 쓰니 나비의 댓글도 받고 좋으네^^

라로 2010-02-10 09:49   좋아요 0 | URL
나두 그래~.ㅎㅎㅎ너가 글 쓰니까 댓글도 달 수 있고!!!!!
너 담에 만나면 많이 꼬집어 줄거다!!!ㅎㅎㅎㅎ(글 안쓰면,,,)

치니 2010-02-1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백만년만에 손 풀린 레이니 작가님, 저도 왕기대 ~ 자주 써주삼!

치니 2010-02-10 11:38   좋아요 0 | URL
근데 ~ 나도 어제 지각했다, 히히. (언니처럼 앙다물고,는 아니었지만 커피 한 잔 사들고 여유를 좀 부리기는 했지, 엄청 막히더라고)

rainy 2010-02-1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우리가 아무리 제멋에 살아도 작가님은 심했다 언감생심 ^^;;;
오늘도 비오네. 출근은 잘했재?

나비 무섭다 ^^
그 날카롭고 화려한 손톱으로 날 ㅋㅋ 봐주라 봐줘 ^^

쎈연필 2010-02-19 18:03   좋아요 0 | URL
작가님, 쓰세요, 쓰는 게 남는 거예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