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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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니의 폐경> 김훈


형부가 제철회사 중역으로 재직하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장지에서 돌아오던 차 속에서 언니가 생리혈을 쏟는다. 폐경이 임박하면 조그만 충격에도 생리가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재벌회사 전무인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꺼낸 뒤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은 때때로 다른 여자의 머리카락을 옷에 묻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그에게 패악을 떨지 않았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에게 이혼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한 점만 조금 불편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입사 동기와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그는 승진이 느렸고, 남편이 전무로 승진하자 제일 먼저 퇴출 당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 채고 앙고라털 옷을 입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언니와의 경주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는 선선히 좋다고 대답했다. '내' 옆에서 언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금가마니> 구효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키에르 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을 발견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어머니가 이런 책을 읽게 된 데에는 마을 유일의 기독인이자 일본유학파이며 풍문의 아버지인 박성현이 관여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런 풍문은 아버지를 부추겨 어머니를 폭행하게 만들었고, 돈만 생기면 들병이에게 가져다 주고 오입을 일삼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모진 학대를 당하면서도 두부를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다. 대추나무에서 떨어진 딸을 살리기 위해 폭우를 뚫고 나무를 베어 내며 강을 건넜고, 전쟁 중 부역 혐의로 갖은 고초를 받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97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화자는 어머니의 생이 얼마나 위대했었는지 생각한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주석을 붙이는 '나'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자 구성된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참가하는 '그'의 이야기가 중첩된다. 엄혹한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 '그'는 소설을 읽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자살한다. '그'가 쓴 소설을 '내'가 읽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가 혼자서 정상을 공략하기 위해 떠난 뒤,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박민규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수 밖에 없는 상고 학생인 '나'는 시간당 3천원을 주는 '푸시맨'이 되기로 한다. 그곳에서 어떤 상사에 다니는 아버지도 열심히 전철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동안 편의점 사장은 고작 천원을 주면서 여자 알바생의 허벅지를 만졌고, 전철 안에서는 변태가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 겨울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졌다. 봄이 되고, 전철역에서 '나'는 기린을 만난다. 기린은 아버지가 틀림없어 보였지만, 정작 기린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안 일을 들려주었다. 이윽고 기린이 자신의 앞발을 '내' 손 위에 포개더니, 천천히, 이렇게 얘기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인타라망> 박성원


어느 날,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나'는 환자를 돌보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나'의 대소변도 받아 주었는데, '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69일간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했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온다. 69일 전 '나'는 아내의 진통 소식을 듣고 달려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나'는 모르는 사내에게 구조되어 어떤 집으로 가게 되지만, 그로 인해 살인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한다. '나'는 '긴급피난'이라는 명목으로 그 집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주머니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다. 병원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그 집이었고, 남자는 자신이 살해한 아주머니의 가족이었다.


<잃어버린 인간> 성석제


재종형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재당숙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고향을 찾아간 '나'는 재당숙인 이한봉에 대해 듣게 된다. 이한봉은 일제시대 때 유학을 갔다가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귀국 후 경찰이 감시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해방 후 까막골로 돌아온다.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배에 총상을 당하지만 겨우 살아난 뒤 53세로 세상을 뜬다. 나중에야 독립 유공자로 인정 받는데, 실제로 그가 어떤 종류의 독립 운동을 했는지는 모호했다. 그리고 그 이한봉의 불쌍한 쌍둥이 아들을 '내'가 행패를 부려 집에서 쫓아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상갓집에서 듣기로, 쌍둥이 형제는 굶어죽었다고 했다.


<탱자> 윤대녕


제주도에 사는 '나'에게 고모가 30년만에 연락을 해 온다. 잠잘 곳을 예약해 달라 했으나 고모를 모르는 장삿집에 재우기도 뭐해 집으로 모신다. 하지만 고모는 한사코 다른 곳을 구해달라 했다. 겨우 거처를 마련해 드리고 고모에게 제주도 구경을 시켜드리다 보니 고모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모는 16세에 절름발이 담임과 야반도주를 했다가 쫓겨나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온갖 구박을 다 받다가 28세가 되던 해에 겨우 시집을 간다. 그러나 고모부는 나병에 걸려 자살하고, 그때부터 고모는 생계를 잇기 위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겨우 자식을 공부시켜 취직까지 시켜 놓으니, 그 자식이 이민을 가버린다. 폐암 진단까지 받고 홀로 된 고모는 뒤늦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주유하며 생을 마감한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은희경


출판산 경영에 온 힘을 쏟아 제법 그럴듯한 회사로 키워 놓은 '나'는 최근 들어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오랫동한 함께 해 온 J 국장이 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 날, '은숙'이라는 여자의 메일을 받는다. 그리고 책상에서 원고를 발견해 읽기 시작한다. 유리 가가린의 이야기를 쓴 '1991년의 코스모나츠'라는 제목의 원고였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져 버린 뒤 돌아오게될 코스모나츠의 두려움과 쓸쓸함에 대해 상상한다.


<나비길> 임철우


산간마을 중학교에 기병대 선생이 새로 부임한다. 그는 깨끗한 옷차림의 점잖은 선생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나비가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뒤 나비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병대 선생을 황천이발소 주인 양씨가 사랑하게 된다. 양씨는 자기도 모르게 동성의 기병대에게 끌리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추문이 되어 더러운 소문으로 떠돌게 되고, 방범대장 나씨가 선생을 흠씬 두들겨 패기에 이른다. 기병대 선생이 사라진다. 늪지를 뒤졌지만 끝내 그는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방녹색부전나비 한 마리가 팔랑 날아가는 것을 양씨가 쫓아간다.


<웨하스로 만든 집> 하성란


이층 양옥들이 헐린다. 한때는 뉴스에 깨끗한 집들로 소개되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 해 재개발되느라 포크레인의 삽날을 받아 무너지고 있다.

외국으로 시집 갔다가 이혼하고 돌아온 여자는 어머니가 무너진 집들에서 가져온 온갖 잡동사니들을 쌓아 놓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자는 어렸을 때 알고 지냈던 s, 지금은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s와 관계를 갖는다.

여자가 어릴 적에 자매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과자로 만든 집이야. 마루는 음, 웨하스로 만들었어. 이건 웨하스 씹을 때 나는 소리야."... 그러니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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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을 읽으면서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눈이 내릴때까지>를 떠올렸다. 관조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념을 버려야 한다. 폐경은 그런 의미에서 정념이 지워지는 기점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내면 심리가 어떠한지 남자인 나로서는 잘 모르지만, 김훈이 그리는 중년 여성의 내면 세계는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 발간된 그 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2005년은 내가 우체국에 들어간 해다.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많았던 시기였다. 손을 크게 다쳤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했고, 사람들과 다퉜다. 그런 2005년도를 떠올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걸 보니, 그런 나쁜 일들도 모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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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0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구했는데 ㅡ읽으셨군요! 부럽게도~^^
 
은색의 강 - 아이스윈드데일 트릴로지 2부, 드리즈트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완결 드리즈트 시리즈
R. A. 살바토레 지음, 손원석 옮김 / 서울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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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 케셀이 마법의 크리스탈 크렌쉬니본을 손에 넣은 뒤 고블린과 오크 등을 동원하여 텐타운을 공격한다. 드리즈트, 브루노어, 울프가 그리고 레지스는 마을의 단결을 이끌어 내 방어에 성공한다. 크렌쉬니본은 다시 눈 속으로 사라지고,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브루노어는 지금이야 말로 잃어버린 옛 왕국 미스랄홀을 찾기에 가장 적합한 때라고 여겨 드리즈트와 울프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들은 기꺼이 브루노어를 위해 여행에 따라 나선다. 그리고 파샤 푸크의 보석을 훔쳐 자객의 추적을 받는 레지스 역시 따라 나선다.  


처음 도착한 곳은 항구도시 러스칸이었다. 러스칸은 다름 아닌 아케인 호스트 타워가 있는 도시였다. 아케인 호스트 타워 중앙에는 최고 마법사인 아크 메이지가 기거하고, 나머지 네 개의 탑에는 네 명의 마법사가 살았다. 이들 네 명의 마법사는 자신이 맡은 방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감시하고 개입했다. 그리고 네 명의 마법사 중 하나가  덴디바였다.

그는 크렌쉬니본을 찾아 내 강력한 힘을 갖게 되길 원했다. 마법을 쓰는 시드니와 러스칸의 경비대 군인인 지에르단, 그리고 자신이 죽인 뒤 지배력을 행사하는 '붉은 로브의 모카이'가 덴디바의 수하들이었다. 물론 '붉은 로브으 모카이'는 덴디바의 마력이 그를 지배하는 한에서만 충성했다. 


한편, 파샤 푸크가 보낸 자객 아르테미스 엔트레리가 레지스를 찾아 브린섄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을을 떠난 뒤였다. 하지만 노련한 자객 엔트레리는 추적을 위한 단서를 차근히 모은 뒤 이들이 러스칸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게다가 중간에 브루노어의 의붓 딸 캐티브리까지 인질로 잡게 되어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추격 과정에서 엔트레리는 덴디바와 목적하는 바가 동일함을 확인한 뒤 일시적인 동맹을 맺고, 시드니와 지에르단을 동맹군으로 삼아 드리즈트 일행을 추격한다.


드리즈트와 브루노어 들은 여전히 미스랄홀을 찾기 위해 고군 분투 했지만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브루노어가 미스랄홀을 떠난 지가 20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했을 뿐 아니라, 미스랄이 은색 강처럼 흐르는 그 왕국은 드워프들 이외의 종족에게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단서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사는 하펠 가문의 영지, 알루스트리엘 여왕이 다스리는 실버리문, 문장관의 홀드패스트 등을 거치면서 차츰 왕국에 가까이 가게 된다.

그리고 알루스트리엘 여왕이 준 기억을 돕는 물약이 잠들어 있던 브루노어의 기억을 일깨워준 덕분에 마침내 미스랄홀을 찾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사악한 그레이 드워프들인 듀에르가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고, 듀에르가 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의 차원에서 온 쉐도우 드래곤 '쉬머글룸' 이었다.


마침 엔트레리 일당 역시 미스랄홀에 도착했기 때문에 드리즈트는 엔트레리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브루노어 등은 쉬머글룸과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다. 브루노어의 희생 덕분에 쉬머글룸을 처치 하는 데 성공하지만, 엔트레리는 구엔휘바를 불러내는 석상과 레지스를 인질로 잡고 도주한다. 캐티브리는 브루노어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드워프 일족 하브룸에게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들은 아낌 없는 지원을 약속했지만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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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을 며칠 전에 봤는데, 문득 드리즈트 시리즈가 생각이 나서 이틀 간 읽게 되었다. <은색의 강> 중간에 검은 머리 바바리안의 주술사 발릭이 톨린이라는 긍지 높은 전사를 주술로 사주하여 울프가와 싸우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워크래프트에서 굴단이 막고라와 전사의 긍지를 무시하는 부분과 매우 흡사하다. D&D 룰에 주술사와 전사의 포지션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하여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드리즈트 시리즈는 절판된 책인데 특히 <은색의 강>은 구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과거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종종 파주 출판단지에 가곤 했는데, 거기에 있는 헌책방에서 비닐도 뜯지 않은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나온 이야기 처럼, 언제나 가기로 계획하고 가지 못한 매음굴이 가장 매혹적인 법이다. 책이 절판되면, 그 책 내용이 무척 궁금해진다. 최수철의 <고래뱃속에서>가 그랬고, 송기숙의 <암태도>가 그랬다. 결국 중고서점에서 정가 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 책꽂이에 고이 모셔 놓았다. 그 책들이 소유하기 전 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순전히 기분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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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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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은 애인과 약혼자가 있는 연희와 세중이 한 눈에 서로를 '알아' 본 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차를 타고 강원도로 가면서 시작된다. 돌아오는 길에 폭설이 쏟아지자 이들은 휴게실에 차를 세우고 산책을 나섰다가 외따로 떨어진 농가에 들어서게 된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허기도 달랜 이들이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을 때, 시체를 한 구 발견한다. 시체는 그 뒤로도 두 구가 더 발견 된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 모두 상처를 입고 사망해 있었다.

연희와 세중은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폭설 때문에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일주일을 그곳에서 머물게 된다. 연희와 세중은 고립과 죽음이 주는 공포에 서로에 대한 성적 집착으로 대항하며 왜 세 사람이 죽어야 했는가를 파헤친다.


죽은 남자가 남겨 놓은 일기에 따르면, 그는 탈북자였다. 남한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 되지만, 남자는 도시에서 경쟁하며 사는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강원도 산골로 숨어들어 은둔자적 삶을 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소망은 '세계여행' 이었다.

얼마 뒤 한 사내가 남자의 옆집에 둥지를 튼다. 그는 보물지도가 있었다. 일확천금과 '스위트홈'을 꿈꾸는 그는 산에서 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도시를 향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자가 산으로 온다. 그 여자는 남자가 사는 집에 예전에 살았는데, 도시로 나가서 결혼을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정식 아내가 있었고, 태어난 아이는 빼앗긴다. 여자는 '살기 위해' 옛집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남자, 사내, 여자의 공동생활이 시작된다. 여자는 둘 모두 넉넉하게 품어준다. 완벽하진 못해도 균형을 유지하던 이들의 삶은, 여자가 임신하면서 깨지고 만다. 사내는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중요했다. '스위트홈'을 위해서는 핏줄로 연결되고 상속이 명확한 가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 서로를 해하게 된다.


세 구의 시체를 묻어준 뒤 연희와 세중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세중이 연락을 끊고 훌쩍 떠난 뒤, 연희의 회사 동료가 세중이 자신에게 집적거렸던 이야기를 해준다. 12년만에 세중과 다시 만났을 때, 연희는 한때나마 자신이 세중과 탐닉했던 성적인 관계 역시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대학교 때부터 매년 꼬박꼬박 사는 책이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인데 1996년도 수상 작품집에서 김형경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담배 피우는 여자>였는데, 생활도서관 친구와 한참 동안 그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시 읽은 게 <외출> 이었고, 이 작가는 스토리 텔링에 굉장히 능한 작가구나 생각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다시 읽은 게 <좋은 이별> 이었다. 힘든 일은 당한 선배가 <천개의 공감>을 읽고 힘이 되었다길래,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은 것인데 사실 그다지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아픔을 분석할 수 있을 때에는 이미 그 분석이 필요 없는 상황이기가 쉽고, 한참 아파할 때에는 그 어떤 분석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2014년 즈음 라디오 프로그램 인문학 산책에서 청소년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정신분석' 이라는 틀에 빠져 다소 순진한 분석을 하는 것을 들었다.

김형경에 대해 꾸준히 읽어 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성에>를 읽고 보니 작가가 심각한 성적 폭력, 또는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실 나는 '치유적 글쓰기'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은 아픔에 대해 회피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충분한 회피 기간이 지난 뒤에야 의식의 영역에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글쓰기를 통한 '자기로의 침잠'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치료되고 있는 환부를 강제로 드러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치료과정에 반드시 의식적인 자아가 개입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박의 일종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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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성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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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브르 백작의 저택에 도둑이 든다. 두 명의 수상한 사내가 큼직한 물건을 들고 도망쳤는데 물건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뒤쳐진 일당을 목격한 백작의 조카 레이몽드 드 생-베랑이 장총을 발사해 명중시킨다. 하지만 부상당한 범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없어진 물건도 전혀 없었다.

예심판사와 검사대리가 사건 현장으로 급파되는데, 기자들 사이에 수상쩍은 인물이 껴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지도르 보트를레로 고등학교 수사학급 학생이었다. 이지도르는 없어진 물건이 없다는 것은 가짜로 바꿔치기 되었다는 얘기라며 쉽사리 수수께끼를 파헤친다. 그리고 사람이 사라진 것 역시 어디엔가 은신처가 있다는 얘기 외에는 합리적인 설명이 안된다며 비밀 통로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 통로에는 괴도 뤼팽으로 보이는 시체가 있었다. 도둑 일당은 뤼팽의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한 대로 레이몽드를 납치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쪽지가 발견된다. 쪽지에는 알기 어려운 숫자와 점들, 그리고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쪽지의 의미를 알지 못해 고심하던 차에, 이지도르가 습격 당하고 쪽지가 사라진다. 쪽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을 표시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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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L'Aiguilee Creuse 로 직역하자면 '속이 빈 바늘' 정도 되는 것 같다. 일본에서 기암성으로 번역한 것이 우리나라에 재번역되어 통용된 것이다.

역대 프랑스 국왕들이 은신처 겸 보물 보관처로 사용하던 성을 찾는다는 모험소설인데, 이지도르 보트를레라는 연약하면서도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소년 탐정을 등장시켜 뤼팽과 대결 구도를 만든다. 물론 보트를레가 번번히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다.

어렸을 때 모리스 르블랑을 대단히 싫어했다. 뤼팽이 홈즈를 이긴다는 설정이 너무너무 불쾌했다. 홈즈는 나의 우상이었으므로, 르블랑 따위가 창조한 도둑놈 따위에게 져서는 안됐다. 나이가 들어서 완역본을 다시 읽어도 기분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여전히 홈즈는 나의 우상이다.

1994년 이후 가장 더운 한 해였다고 하는데 어제 소나기가 온 뒤로 선선한 기운이 아주 조금 느껴진다. 이제 곧 가을이 올 것이고, 찬바람이 불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795786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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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1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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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1784년), 규장각 검서관은 백탑파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가 맡고 있었는데, 이 중 책벌레로 불리는 이덕무가 적성 현감으로 발탁 된다. 이덕무가 적성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나머지 검서관의 목민관 임명 여부가 결정될 터였다.

이덕무가 가장 먼저 처리할 일은 열녀 품신 글의 진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의심스러운 글들 중 하나가 부임 예정지인 적성에서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 글은 얼핏 보면 이상할 것이 없었다.


김아영은 홀어머니 홍씨를 극진히 모시다가 1781년 임거용과 혼인한다. 1782년 남편이 사망하자 자진하려 했으나 족친들이 말려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때 시어머니가 먼저 쓰러지자 극진히 수발하여 살려낸다. 지극한 슬픔 속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기운 가세를 일으켜 전답을 두배로 만들었고, 1784년에는 자진하여 남편 곁으로 간다.


김진은 2년 내내 슬퍼하던 김아영이 가세를 일으켰다는 내용이 모순되고, 가세를 다 일으키니 곧바로 자살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했다.


이명방과 김진이 적성으로 내려가 처음 만난 사람은 열녀 품신 글을 지어 올린 임창봉이었다. 임참봉에 따르면 김아영은 문재가 뛰어났고, 가난한 자신을 위해 은구슬이 달린 주머니를 선물로 주는 등 살뜰한 마음가짐까지 지녔다고 했다. 김아영의 도련님인 임거선도 그동안 형수에게 의지하며 글도 배웠는데 허망하게 자살하여 이제는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통곡했다. 

김아영의 시아비 임호는 아들이 도적에게 살해 당하고 그날 비싼 삼을 도둑 맞아 가세가 기울었는데 새아기가 가세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 뒤로 만난 몸종 향이, 향이와 연인 관계인 똘이, 의사 조광종, 임거용의 친구 남재태, 향청과 질청의 관련자들 모두가 김아영의 정절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김아영의 시체를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 진술이 엇갈린다는 점이었다. 향이와 똘이는 임거선이 처음 발견했다 했고, 임거선은 어머니 남씨가, 남씨는 임참판이, 임참판은 향이가 발견했다는 식이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을 지목하면서 자신에게는 유리한 정황만 대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임호의 팔촌 형이자 세도가인 한성판윤 임명보에게는 계목향이라는 기생이 있었다. 그녀는 이명방에게 호감을 품었는데, 자신이 김아영과 의자매라고 했다. 김아영과는 별투색전(別妬色傳)이라는 소설을 같이 썼는데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자살했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아영은 야소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였는데, 야소교도는 자살을 금지하는 종교였다.

또한, 김아영의 친정어미인 홍씨가 편지를 보여주는데 그 편지에는 김아영이 임신했음을 암시하는 문구마저 있었다.


김진은 도래샘 모양 제 꼬리를 문 구렁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향이를 의금부로 압송한다. 연결고리 중 하나가 끊어진 셈이었다. 얼마간 시일이 흐른 후 김진이 관련자들을 다시 불러 모은다. 향이가 문초 중 죽었다고 알린 후 다시 진술을 요구하자 그들은 향이에게 떠넘긴다. 향이는 이 모든 진술을 한쪽에서 듣고 있다가 억울하다며 항변한다. 사태가 불리해졌음을 알게 된 임호는 가솔을 이끌어 관에 대항하려 하나 백동수가 이끌고 온 군사들에 진압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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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파 두 번째 이야기로 역시 중후반부 까지는 술술 읽히고, 결말은 다소 억지스럽다. 아비가 야소교도가 된 아들을 죽이기 위해 도적을 불러 들이는 부분도 그렇고, 굳이 김아영을 살려 내어 연경에 등장시키는 것도 그렇다.

김진의 '모든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직은 확증이 없으므로 입다물고 있는 거야' 태도는 한 두번은 긴장감 고조에 도움이 되지만,자꾸 반복되면 독자의 기대치가 올라가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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