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맨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 차라리 그의 두 손만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산악 도시의 가게에 들어선 남자는 폐결핵 환자다. 하지만 그는 '치료되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요양소에 들기를 거부하고 별장을 하나 얻는다. 젊은 여자 넷이 죽어나간 집이었다.

그에게는 두 종류의 편지가 온다. 하나는 손으로 쓴 편지, 다른 하나는 닳아 빠진 타자기로 친 편지. 가게 주인(화자)은 편지들을 남자에게 전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 주인들이 차례로 도착한다. 첫번째 편지 주인은 조금 퉁퉁한 여성으로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남자는 그녀와 호텔에 묵는다. 두번째 편지 주인은 나이 어린 여자였다. 남자는 어린 여자와 젊은 여자 넷이 죽어나간 별장에 묵는다.

간호사는 그녀를 두고 '그런데 여자가 너무 어려 보이지 않아요?' 라고 했다.

사람들은 두 여자가 만나면 뭔가 문제가 생길거라 생각해지만 실제 그녀들이 만났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남자의 병세가 악화되고, 끝내 비쩍 마른 육신으로 죽는다. 가게 주인은 남자에게 전해주지 않은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고 어린 여자가 남자의 혈육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가게 주인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겼고 살갗에는 한동안 수치심이 들끓었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는 1909년 우르과이 몬떼비데오 태생으로 로이터 통신사를 거쳐 시립도서관장을 역임하였으나, 보르다베리 독제체제 하에서 반체제적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이었다는 이유로 투옥된다. 1974년 스페인으로 망명한 뒤 1994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1963년과 1908년에 우루과이 국가문학상과 세르반떼스 상을 각각 수상하였으며, 대표작으로 <우물 El pozo, 1939>, <짧은 생애 La vida breve, 1905>, <조선소 El astillero, 1951>, <죽음과 소녀 La muerte y la niña,1983>이 있다.

에필로그를 쓴 전 워싱턴주립대 교수 볼브강 A.루칭은 '공범-독자(lector-complice)', '관객-참여(audience-participation)', '독자-참여(reader-participation)' 등의 개념을 가지고 소설을 풀어나간다. 이는 브레히트와 그의 낯설게 하기(Verfremdung)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관객-독자를 픽션의 창작과정에 포함시키려는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

루칭은 오네띠가 독자인 우리를 끌어들여 우리가 결국 '후레자식' 이라는 것을 까발리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면서 헨리 제임스가 즐겨 사용한 관점 기법을 언급한다.

사실 복잡하게 얘기했지만 <아디오스>를 읽는 독자는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두고 젊은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매우 파렴치한 인물이라고 짐작한다. 이는 온전히 가게 주인의 시각에 우리의 관점을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늦게 편지를 통해 알게된 사실은 어린 여자가 그의 혈육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독자는 관점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 역시 '가게 주인의 시각'으로 수정하게 된다. 가게 주인이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혈육'은 곧 딸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딸은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산악마을로 온 것이고, 남자의 애인은 그런 부녀를 지켜보며 호텔에 머문다. 일단 말은 된다.

하지만 또 다른 해석은 없을까? 혈육이 '여동생'이고, 남자와 여동생이 근친관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오네띠의 이런 수법은 사실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나사의 회전>처럼 멀리 갈 필요도 없이 1926년에 발표되어 찬반격론을 불러 일으킨 에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서술 트릭도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9932979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범죄조직의 시나리오 작가다
린팅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반타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애인을 모두 잃고 실의에 잠겨있던 주인공 허징청은 우연히 다크펀 이라는 범죄 조직에 들게 된다. 다크펀은 이자카야 '후보쿠'를 아지트로 활동했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새로운 시나리오에 따라 바꿔주 는 댓가로 의뢰인의 전재산을 요구했다. 허징청은 다크펀에서 시나리오 작가 역할을 했으며, 이자카야 주인 우팅강은 돈을 대는 제작자를, 샤오후이와 케빈이 각각 미술감독과 촬영감독 역을 맡았다. 그리고 감독은 후보쿠의 다락방에 기거하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매우 나이든 사나이였다.

첫번째 의뢰인은 하반신이 마비된 린위치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의사였는데 린위치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골몰하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린위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을 롤모델로 인생을 바꿔달라고 한다. 하지만 다크펀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롤모델인 여성이 암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린위치 역시 암에 걸린다. 타인의 인생의 좋은 면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린위치는 다시 한번 인생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이번에는 과거의 린위치 자신이 롤모델이었다.

두번째 의뢰인은 왕푸런이라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어렸을 적 집단 따돌림으로 상처 입은 적이 있었고, 성인이 된 지금은 아들이 비슷한 처지라 괴로워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데 앞장섰던 인물을 롤모델로 인생을 바꾸고자 한다. 젊은 나이에 이미 교장의 자리에 오른 쉬즈춘이었다. 왕푸런은 쉬즈춘의 인생 시나리오를 받아들였지만 쉬즈춘의 아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뒤늦게 쉬즈춘의 사과를 받고 인생의 명암을 깨달은 왕푸런 역시 자신을 롤모델로 다시 인생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다. 어머니와 애인 징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원인은 한때 친하게 지냈던 배우 샤오위 때문이었다. 샤오위는 징즈의 재능을 부러워한 나머지 다음 날 공연을 취소하게 만들 목적으로 교통사고를 계획하지만 음주운전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난 것이었다. 징즈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무대를 떠나 술집 접대부로 전락하지만 허징청을 만나고 다크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과거를 극복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

대만 소설이라 대만 정취를 기대하고 오정동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왜색 일색이다. 장소만 대만 시먼딩일 뿐 술집은 이자카야, 각종 축제는 일본 서브컬처 축제, 음식도 생각도 일본식이다.

대만에 놀러갔을 때 가이드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따르면 대만은 근대 이후 끊임없이 타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 본토와 일체감이 느슨한 데다, 일제 강점기 때 경제와 정치제도가 이식되어 발전된 측면이 있어 그 시기를 향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책은 대만 냄새가 나는 소설은 아니다.

뻔한 클리셰의 남발, 다크펀이 사실은 허징청의 뇌내 망상이었다는 마무리 등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소설이다. 아마추어가 인터넷 공모에 출품한 작품 정도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9919581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어머니와 어머니가 쓰시던 칼에 관해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의 어머니는 인천 송현시장에서 구입한 한 자루의 '특수 스뎅' 칼로 칼국수 집을 내고, 못난 남편을 건사하고, '나'를 거둬 먹이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삶을 살아낸다. 그 세 월동안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고, 어머니는 때로 화투를 쳤으며, '나'는 어머니가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은 풍성한 육체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칼 한자루에 의지해 집안을 다잡아 나간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국수를 삶다 쓰러져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장례 절차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들에 '그류'라며 울먹였을 뿐이다.

장례식 중간에 '나'는 집에 아버지 옷을 가지러 갔다가 어머니가 사용하던 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칼로 사과를 깎아 먹는다' 아, 맛있다!' 사과 조각은 우주 멀리 날아가는 운석처럼 뱅글뱅글 돌며 내 안의 어둠을 여행하게 될 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 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칼자국>을 읽다보면 김주영, 이문열, 이청준, 이문구 등 거장들이 고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과거로 회귀하는, 고전적인 스타일이 떠오르다. 다른 점이라면 거장들이 거대한 서사 속에서 장대한 이야기들을 엮어 나간다면, 김애란은 사람들을 응시하고 그 속에 숨겨진 삶의 비밀을 살그머니 끄집어내서 음미한다는 점이다. 별것 아닌 사건들이지만 김애란은 비밀을 캐내서 말 속에 녹여낸다. 그러면 위와 같은 문장들이 된다. 자꾸 읽어보고 싶어지는 문장들이 김애란 소설 속에는 많다.

소설은 제9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딴 얘기로 소설을 읽다 멈춰선 곳이 있다. "나는 물어본 걸 또 물어보고 정박아처럼 굴었다" 라는 문장과, "좋은 칼 하나라든가 프라이팬 같은 것이 여자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문장에서였다. 반복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밑줄 친 부분에서 멈춰섰던 것 같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9914239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대 검감 1~10 세트 - 전10권
한중월야 지음 / 시공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 전 무림은 정사대전이라는 홍역을 치뤘다. 절대적 힘을 과시하던 혈마가 이끄는 혈교, 그리고 그 대척점에 있는 무림맹과 무쌍성 동맹. 두 세력은 피를 피로 덮으며 싸움을 이어갔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자 혈마의 강맹한 무공에도 불구하고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혈교가 패배하고 만다. 구심점을 잃은 혈교는 사존자를 중심으로 혈교의 재건을 꿈꾼다. 벽을 넘은 고수일 것이라 추종되는 일존 파혈검제 단위강, 초절정 경지인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 독의 달인 삼존 혈사왕 구제양, 그리고 외공이 최절정 경지에 오른 기기괴괴 해악천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혈교는 구심점인 혈마를 누구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혈마의 장녀 백혜양은 뛰어난 무재를 지녔지만 정실의 딸이 아니었다. 반면 동생 백련화는 정실의 딸이었지만 백혜양 보다 무예가 모자랐다. 이에 혈교는 알게 모르게 두 패로 나뉘어 힘과 정통성을 다투며 분열되었다.

한편, 무림명가인 호남성 익양 소가 삼남 소운휘는 계모의 농간으로 단전이 부서진 뒤 무예를 익힐 수 없는 몸이 되자 술로 허송 세월을 보내 '율랑현 망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호남성을 휩쓴 혈교들에게 소운휘가 납치되고 혈고라는 벌레를 강제로 삼킨 뒤 삼류 첩자의 삶을 살아가게 전락한다.

혈교가 정기적으로 주는 해약을 먹지 않으면 혈고가 발작해 사망하므로 도망도 칠 수 없는 암울한 나날을 보내던 소운휘에게 무림연맹 장로 백위향과 후기지수 모용수가 접근한다. 그들은 과거 절대고수였던 검선의 심득이 쓰여진 <검선비록>을 찾는 데 도움을 주면 혈고를 없애주겠다고 제안한다.

이를 수락한 소운휘가 고생 끝에 검선비록을 얻게 된 순간, 백위향과 모용수는 비록을 빼앗기 위해 소운휘를 죽이고, 그렇게 한 많은 소운휘의 일생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깨어보니 소운휘는 혈교에 납치되기 직전의 술집으로 회귀해 있었다. 어떻게든 혈교에 납치되는 것을 피하려 했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송좌백, 송우백 형제와 함께 또 다시 납치된 소운휘.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10년 간의 무림 역사를 알고 있다는 점과,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의 유품인 소담검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소설은 주인공 소운휘가 혈교에 다시 납치된 뒤, 기름바른 듯한 세 치 혀와 10년간의 역사를 안다는 이점을 살려 무공을 쌓아가는 과정을 시원시원한 필치로 그려낸다. 게다가 검선의 심득을 체득한 뒤 검과 관련된 힘들을 얻는 능력이 생겼다. 검과 얘기하는 것은 물론, 검이 가진 힘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운휘는 송좌백, 송우백 쌍둥이와 함께 기기괴괴 해악천에게 잡혀가 강제로 무공을 익히게 된다. 기기괴괴 해악천이 의도한 바는 하나. 송좌백에게는 자신의 무공을 가르치고 소운휘에게는 사망한 남천검객의 검술을 익히게 한 뒤 무공을 겨루게 하여 누구의 무공이 더 나은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소운휘는 남천검객이 남긴 남천검을 통해 부서진 하단전이 아닌 중단전을 통해 선천진기를 운용하는 법을 배워 무공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한다.

이후 기기괴괴 해악천과 백련화의 라인을 탄 소운휘는 혈마검을 탈취하여 그녀의 혈마 옹립을 지원하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혈마검과 대화하고 백을 흡수한 뒤 검에게 선택받는 기연을 얻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과 소운휘 출생의 비밀이 오버랩된다.

과거 혈마의 핏줄 중 일부가 무(武)가 아닌 문(文)을 택한 삶을 살기로 한다. 그들은 혈교를 나온 뒤 황가에 들어가 벼슬을 했다. 하지만 약 삼백년 전 무림과 척을 진 황제가 무림을 일소하기 위해 칼을 들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혈마의 핏줄들은 무를 포기했음에도 숙청대상이 된다. 이들은 신분을 숨기고 무쌍성으로 숨어드는데, 후일 비월영종이라 불리는 일족이다.

그런데 20년 전 무림대전이 일어나자 무림맹과 무쌍성이 동맹을 맺게 되고, 무림맹은 동맹의 진정성을 보이라며 무쌍성에게 비월영종의 축출을 요구한다. 그들은 혈마의 핏줄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쌍성은 비월영종을 축출하고 만다.

그런데 소운휘의 어머니가 바로 비월영종이었다. 그리고 현 무쌍성의 최고고수이자 벽을 넘은 무정풍신 진성백이 바로 소운휘의 친부이다. 그는 소운휘의 어머니 하령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힘이 모자라 그녀의 축출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상의 연유로 소운휘는 혈교의 핏줄이기도 했으므로 혈마검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혈마검을 손에 쥔 자가 혈마라는 혈교의 법도에 따라 소운휘는 혈교 교주가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수많은 기연을 만난다.

4대 악인이자 벽을 넘은 고수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무공을 지닌 사마착의 여식 사마영과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개방의 차기 방주 후보였으나 방주의 욕심 때문에 개방을 등진 조성원을 부하로 두게 된다.

이후 8대 고수 대부분을 패퇴시키거나 무공을 흡수하고 무쌍성의 소성주가 되는가 하면 소검선으로 불리며 무림맹의 맹주가 된다.

또한 도인들이 사는 도화선으로 가서 시간여행을 하며 도인들의 술법을 배워 금상제(존주)를 죽이고 진(眞)보스인 마선을 패퇴시킨 뒤, 사마영 뿐 아니라 백혜향, 북해빙궁 궁주 설백까지 아내로 얻고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후반부에는 검을 타고 날아다니고 축지법을 써서 순간이동을 하는 등 힘과 능력의 인플레가 심하고, 무공이 아닌 사술로 대충 상황을 마무리하는 장면도 자주 나오기 때문에 밀도감이 떨어진다. 또한 세 여인을 아내로 얻는 결말도 다소 시대와 뒤떨어진 느낌이다.

가짜 보스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끌어 나가다 한순간 내동댕이 친 뒤 짜잔 하고 최종 보스를 들이미는 수법 역시 독자들로 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시원시원한 전개와 짧고 확실한 복수, 복선의 빠른 회수 등 장점도 많아서 장기간 운전할 일이 있을 때 오디오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9863246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宫野真生子)와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磯野真穗)가 주고 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미야노 마키코(宫野真生子)는 후쿠오카대학 인문학과 교수로 인간과학 박사로 일본 철학사를 연구했다. 20세기 초 철학자인 구키 슈조가 연구한 우연성에 천착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저서로 <우리는 왜 사랑하며 살아가는가: '만남'과 '연애'의 근대 일본 정신사>, <마주침의 아련함: 구키 슈조의 존재논리학과 해후의 윤리> 등이 있다.

이소노 마호(磯野真穗)는 인류학자이자 국제의료복지대학 부교수로 문학 박사이며 전문 분야는 문화인류학과 의료인류학이다. 저서로 <왜 평범하게 먹을 수 없는가: 거식과 과식의 문화인류학>, <의료인이 말하는 정답 없는 세계: 목숨을 지키는 이들의 인류학> 등이 있다.

미야노 마키코는 암이 재발하여 자신의 몸이 암세포에 의해 침식 당하던 즈음인 2019년 4월 27일, 이소노 마호에게 첫 편지를 보낸다. 그 후 병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2019년 7월 9일 이노소 마호로 부터 마지막 답장을 받고 며칠 뒤인 7월 22일 영면한다.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자는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우연한 시점에 질병을 얻게 된 상황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려 애를 쓴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자면 "죽음은 분명히 다가온다. 다만 지금이 아닐 뿐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자는 하이데거, 구키 슈조, 프리드리히 셸링, 팀 잉골드 등을 인용하며 암 발병이라는 우연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생을 대해야 하는지, 지금의 우연이 필연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탐구한다.

편지글 중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옮겨 적는다.

------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에서 일상에 쫓기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죽음은 분명히 다가온다. 다만 지금이 아닐 뿐이다."(26p)

'언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이라는 말에서 기만을 느끼는 까닭은 죽음이라는 도착지가 확실하다고 해도 그 도착지만 보고 지금을 살아간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의 가능성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32p)

환자가 듣는 이야기에는 미래에 대한 의료인의 예상과 더불어 그 예상 속에서 환자가 취해야 하는 이상적인 행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자는...... 의료인이 제시한 확률에 따라......제일 결과가 좋은 쪽을 고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내 몸은 하나뿐이라 길도 하나만 골라야 합니다.(43p)

"암이 나으면 뭐가 가장 하고 싶나요?"라는 물음은 은연중에 '낫지 않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48p)

이 세상 만물의 근본에는 최종적으로 왜 지금처럼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수수께끼가 남습니다......이렇게 최종적으로 남는 수수께끼를 구키 슈조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의 용어를 빌려 '원시우연(Urzufall)' 이라고 불렀습니다. 구키 슈조는 원시우연을 고려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결국 필연이란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매 순간 갖가지 원인이 우연히 겹쳐서 '지금'이 태어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는 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성립되는 것 아닐까요. 구키 슈조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지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연이다. 우연은 '현실의 생산점'이다. (102-103p)

불운에...... 얌전히 따르면 ㅜ자신의 존재를 '환자'라는 역할에 고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놓아 버리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불행이 생겨나는지도 모릅니다......불운이라는 부조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인생을 고정한 순간 불행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129p)

불운이란 한 줄로 늘어선 여러 가능성 중 실제로 한 가지(점)가 일어난 것입니다. 한편 불행은 이미 일어난 일을 과거와 미래 사이 어딘가에 두고 의미를 부여한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불운은 점, 불행은 선이라 할 수 있다.(149p)

인간은 죽음을 제어할 수 없고 언제 죽음이 닥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준비한들 충분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인생은 무언가 하는 도중에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란 완성될 수 없으며, 인간은 항상 '자신의 미연' - 아직 목적지로 가는 도중- 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180p)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여 미완결인 채 끝날 수밖에 없는 인간이 과연 미래에 대해 미리 결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요? 죽음의 가능성을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미래에 대해 결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약속을 맺습니다......그처럼 무모한 모험, 또는 도박을 눈앞의 상대에게 '지금' 표명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184p)

제가 우연에 의문을 품고 '없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을 계속 설명하려 한 뿌리에는 무(無)에 사로잡혀도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애쓰는 삶에 대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없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 하는 집착이 있었지요.(199p)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쓴 책 <선들>......에서 '궤적과 연결선'을 다룬 장. "역사 속에서 선(궤적)을 만들어내던 운동이 점차 선(궤적)에서 없어지는 경위를 밝히는 것"......최종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도보 여행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세계를 지각하고 그 세계와 친밀감을 나누며 통과해가는 일종의 운동입니다. 그렇게 운동함으로써 궤적(선), 즉 발자취가 새겨진다고 하지요. 그런데... 도보 여행이 수송으로 변하는 순간......출발지와 도착지라는 점과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여 화물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고 횡단시키는 행위......수송되는 동안 승객에게 다가오는 풍경, 소리, 감각은 승객을 옮기는 움직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209p)

함께 운동하여 계속 선을 그리면서 세계를 통과하는 것, 그러는 와중에 서로를 기분 좋게 하는 언동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발자취로 남긴 다음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관계성을 만드는 것이란 바로 이렇게 앎과 깨달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운동)(214p)

제가 돌봄을 받을 뿐인 약자가 된다면 모두들 친절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돌보는 자 - 돌봄을 받는 자'라는 고정적인 형식이 생겨나고, 그 매뉴얼을 따르면 일단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전혀 행복하지 않겠죠(251p)

구키 슈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뚜렷이 나타난 상황의 우연성과 직면하여 정열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무력無力한 초력超力이 운명의 자리"라고요. 풀어서 써보면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우연에 휘말리면서(무력) 그 우연에 대응하는 와중에 자신이란 무엇인지 발견해내고 우연 속을 살아가는 것(초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59p)

자연 발생만으로는 우연이 일어날 수 없으며, 우리가 그곳에 있기에 우연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각자 끌어낼 용기를 품고, 우연을 필연으로서 받아들일 각오를 지닌 채 만났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이와 같은 근원적 만남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만남을 위해서는 선을 그리겠다는 각오, "연결점이 되지 않으려 저항하면서 사람들과 진실하게 마주하고 함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겠노라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용기를 지니고 우연을 붙잡아 끌어낸다면, 근원적 만남이 가득한 세계에 자신이 만들어낸 의미의 그물을 짜 넣을 수 있습니다.(264-265p)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9848580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