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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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마인들의 기대수명은 25세였고, 1900년 까지 세계 평균 기대수명은 30세였다. 물론 이는 높은 유아사망률 때문이므로, 그런 위험한 시기를 지난 이들은 중년까지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45세 이상 살아남는 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26쪽)


장수는 인류의 소망이었지만, 지금 세계는 경험해보지 못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점차 인구구조가 젊은이가 줄어드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20세기라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70 이상 살게 하는 요인은 그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고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문화를 되돌아보고 과학 문헌과 실용서들을 모두 뒤져보면, 수명 연장에 관한 가지 두드러진 요인을 발견할 있다. 바로 20세기 이후에 태어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부유한 선진국에서 태어나는 것이 좋다. 이것에 필적할 만한 다른 요인은 전혀 없다

건강을 유지할 있는 복잡하고도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들에서 조차 20세기가 되어서야 안전한 음식을 넉넉히 제공할 있게 되었다. 게다가 쓰레기를 처리하고 깨끗한 물과 안전한 음식을 제공하는 공공 시스템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공공 인프라가 확산되면서 질병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사람들은 개인위생을 관리할 있었다. 특히 20세기 중반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현대 학은 한때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흔한 요인 이었던 전염병을 정복했다. (105)


이외에도 문해율의 향상이 있고, 또한 도시화가 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도시는 전염병의 확산이 쉬어 장수를 기대하기 힘들었지만 도시화의 흐름속에 도시는 인프라가 종합되면서 사람들의 수명을 늘렸다. 


이런 장수가 어떤 의미일까? 문제는 이런 고령화가 전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이미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유럽이 있지만, 동아시아 역시 곧 고령화사회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중국에서 고령화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산아제한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거치면서 중국은 1-2-4 구조가 만들어졌다. 즉 아이 1명에 부모 2명 양가 조부모4명인 사회다. 이것은 아이 하나에 성인 6명이 양육하는 구조이지만, 반대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때 부담해야 할 고령인구가 최대 6명이라는 의미이다. 정도야 다르겠지만 동아시아를 비롯한 이제 고령화시대를 맞이할 많은 나라들의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현대 산업사회가 고령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농경시대의 노인을 우대했던 전통과 달리 산업화는 노인을 노동력, 경쟁력의 프리즘으로 바라봤다. 


노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긍정, 무관심, 부정의 복잡한 혼합이다. 노인들을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으로 바라보는가 혹은 무기력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바라보는가는 우리의 행동을 지배할 있다.

...

커디 연구팀은 현대화가 주범일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하는 사회에서는 산업화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인들의 지위를 낮춘다. 산업화는 수명을 늘려 노인인구가 늘도록 했고 퇴직을 제도화했으며, 노인들이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현대화는 나이 사람들의 기술을 쓸모없게 했으며, 이들을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을로 만들어 고용을 어렵게 했다. 젊은이들도 뜨내기 노동자로 만들어 노부모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게 했다. 변화에만 얽매이도록 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으로서의 노인의 역할을 폄하하게 만들었다. , 신문 전자 미디어를 비롯한 시대의 미디어들은 젊은이들에게 최신 트렌 드를 알려주지만 기억이나 구전을 통해 내려오는 전통은 별로 전해주지 않고 있다. 커디의 분석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진행될 세계 인구의 고령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설명해준다. (384-385)


단순히 문제는 노인에 대한 편향된 시각만이 아니다. 노인들에게 활동성을 강조하면서 노인내에서도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육체적으로 기능이 저하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몇몇 나이보다 건강한 다른 노인들로 인해 준비되지 않은 노인 혹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노인으로 취급받는다. 어찌보면 젊을 때 부터 인간을 자원화한 체제가 노인까지 이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책은 딱히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이미 고령화를 맞이한 스페인 혹은 미국의 일부지역을 예를 들어 설명할 뿐이다. 그 이유는 고령화가 이미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기엔 좀 지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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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6-07-1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잘 읽었습니다

`고령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거 같습니다

雨香 2016-07-17 11:05   좋아요 0 | URL
많은 책들의 한국의 고령화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ㅠㅠ
 
글로벌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
폴 어빙 지음, 김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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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령화를 주제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대체로 고령화가 가져올 불행할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른 위치에 있다. 사실 지금까지 인류는 장수를 목표로 살아왔지만, 정작 장수가 현실화되자 이는 공포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년층, 부족한 저축 및 연금 그리고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


이에 반해 이 책은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가장 큰 지적은 바로 지금 고령화의 주축이 베이비붐 세대라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하는 고령화 사회는 수많은 잠재력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나이가 들었지만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노동자이며 경제력과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끄는 고령화사회는 노년층이 더욱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뿐 아니라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174쪽)


IT에도 어느 정도 능하고, 이전 세대보다 높은 교육을 받은 베이비 붐 세대의 고령화는 고령화의 모습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결국 베이비 붐 세대는 경제력을 갖췄다. 이들을 기반으로 산업이 발달할 것이다. 더 이상 사회의 짐이 아니라 경제적 주체로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게다가 장수의 가장 큰 장애물로 알려진 질병 문제도 고령화시대가 되면 갑작스레 발전할 것이다. 새로운 백신의 개발은 알츠하이머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3D 인공장기의 시대도 곧 도래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사례로만 본다면 미국은 이민자 혹은 히스패닉계의 증가로 인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인재들이 계속 유입된다는 뜻이다. 거기에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할 것이다. 전세계적 고령화현상 속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은 좀 다를 것이다. 지금 한국의 고령사회는 자식이 노인을 부양하던 세대에서 노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물론 아무생각 없는 정부는 이 변화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20여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도 전 세대와는 교육의 질이 다르고, 산업화의 혜택을 그대로 받아들인 60년대가 고령화사회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아래세대와의 갈등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생에 단계로 이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변화다. 직장을 떠나는 대신 중년기와 전통적인 은퇴기 사이의 시기 혹은 중년기와 노년기 사이의 시기에 진입하고자 한다면 의미 있는 삶과 생산적 기여를 특징으로 하는 이 새로운 생애 단계에 대비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이행기에 도움이 되는 한 가지 전략은 특별히 이 생애 단계를 위해 ‘갭 이어' 다. 마치 많은 청년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갭 이어를 가지면서 미래를 위해 시야를 넓히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180쪽)


고령화 책들이 지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일본의 고령화인데,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지적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만큼 고령화에 대한 정부차원의 그리고 사회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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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발견하고는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대한 부정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판을 가지고 있고, 어떤 대체의학이 소개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 이 책의 저자 허현회씨의 부고 소식이 있다.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병원치료만 제때 받았으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SNS에 돈다.

그의 의견을 따르다 세상을 떠난 이들 이야기도 있다.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717001346438

 

일단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만 대체나 대안은 대안으로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런 책들과 식품첨가물에 대한 비판 등은 조심히 읽어야 한다. 물론 과학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는 아닐 것이다.

 

       

 

식품첨가물 등에 대한 책은 아래 태그 '불량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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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6.25) 기념일만 되면 북침이냐 남침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등. 그런데 알고 보면 남침, 북침의 정의를 두고도 말이 많다.

 

남침이다의 의미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로 쓰이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중요한가?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왜냐면 한국전쟁은 평화롭게 살고 있던 어떤 날 느닷없이 북한이 평화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맞나? 사실 북침이냐, 남침이야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한국전쟁이전에 남북사이에는 쉴새없이 전투가 벌어졌고, 미국은 이승만이 북한을 침략할 것을 염려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전쟁발발의 책임이 있는냐가 아니라 왜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의 결과 한번도 평화와 국민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느냐가 아닌가?

 

남한이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해 7월에 먼저 공격을 개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1949년 9월 2일, 스티코프는 이승만이 올리버에게  보내는 편지(자료 17)를 스탈린에게 보고한다. 이 편지를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것은 이승만의 북침 계획이 분명하다는 명백한 증거로 이용된다.
남쪽의 선제공격이 있을 거라는 북한 지도부의 생각이 남침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쩌면 당시의 남북한 관계는지금 북한과 미국사이에서 벌어 지고 있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 의 모습 그대로인지 모른다. 어느 한쪽이 먼저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양쪽 모두 방어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최선의 방어를 위해서는 공격이 더 좋을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료만으로 볼때는 당시 미국 만이 유일하게 공격이 최선의 방어 가아니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178쪽)

2010년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되었을 때 몇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에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단 한권만 읽는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 남침유도설, 북침설 등에 대한 근거와 왜 6월에 일어났는지, 침공초기의 왜 북한이 서울에서 몇일을 머물렀는지, 그리고 정전협정에는 왜 2년이나 걸렸는지 등 한국전쟁에 대해 크게 볼 수 있는 책이다.

           

 

2010년 박태균의 <한국전쟁>과 함께 총 4권의 책을 읽었다.

 

<전쟁과사회> 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65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었지만 한국전쟁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국내에서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는 전쟁의 발발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연구에서 벗어난 점 그리고 사회적으로 접근한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을 통해 발생한 국가억압체제가 오늘날의 한국사회 가정, 학교, 사회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억압으로 폭력이 구조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는 인민군 편, 국군이 올라왔을 때는 국군 편을 들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구조가 자유당 시절엔 자유당을 민정당 시절엔 민정당을 찍는 순응주의적 태도로 나타났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학살의 경우도 현재화되고 있는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일어난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한국전쟁이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 분향소를 폭력적으로 철거했던 서정갑 등 보수주의자들의 행태는 점령 당시 남한에서 있었던 모습과 유사해보이고 북한에 대한 압력을 위해 집회를 하는 그들의 뒤에 일본 극우파 인사와 자본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한국전쟁의 왜곡된 사회구조가 지금까지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11가지 시선>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62

남북한 내부적으로도 한국전쟁은 체제안정화(?)에 큰 역할을 한다. 남한이나 북한모두 불안정하게 정권을 잡았던 이승만, 김일성에게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은 반공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되었고 김일성 역시 당내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한국전쟁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체제 안정화에도 큰 기여를 한다. 서로 상대방의 영토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산업기반을 모두 파괴해버렸기 때문에 남북한 모두 새로운 경제체제를 도입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시범적 대립장소가 되면서 남북한 모두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게 된다. 국가재정(수입)이 남한의 경우 1959년 52%, 북한의 경우 1955년 28%가 해외 원조가 차지하게 되었다. 농업중심의 남한의 경우 전근대적 유산을 청산하고 자본주의체제를 급속하게 발전시킬 토대를 형성했고, 상업자본이 발달했던 북한은 한국전쟁을 통해 체제의 반대하는 자본세력들이 제거되었기에 사회주의 건설을 촉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70

5장 두 명문 양반가의 충돌, 금산군 부리면의 비극

금산군 부리면은 해평 길씨와 남원 양씨 두 양반 가문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1931년 부터 1960년까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길씨와 양씨 중에서 면장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두 성씨는 혼인으로 돈독한 관계를 이루어왔다. 일제시대 길씨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반면 양씨는 대체로 우익편에 있었다. 특히 길씨 중에서 주류는 우익에 길씨 비주류와 양씨는 우익에 대체로 섰었다. 보도연맹과 인민군 점령시 길씨, 양씨 일가 중에서 처형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마을에 비하면 그리 큰 사건은 아니었고, 대규모 학살도 없었다. 이는 두 가문이 사돈으로 돈독하게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 금이 간 사건이 발생한다. 길씨를 중심으로 한 좌익들은 인민군 후퇴 후 근처에서 빨치산이 되는데 1950년 11월 2일 우익을 중심으로 한 결의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빨치산이 결의대회장을 습격해 78명을 학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우익을 대변했던 양씨집안과 비주류 길씨 집안의 많은 이들이 학살 대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길씨와 양씨간의 관계는 깨어졌고, 이후 길씨는 마을에서 세력이 급격히 축소된다.  
 

이런 마을내부에서의 전쟁에서 나오는 질문은 바로 '국가는 무엇했냐'이다. 실제 해방이후 신탁통치를 거치면서 형식적으로 남과북 각각에서 각 세력(이승만과 김일성)이 장악했지만 실제 마을 공동체까지 장악했느냐에 이르러서는 의문이 따른다. 마을에서는 아직까지 마을 내부의 권력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을 치루면서 국가는 마을내부의 갈등을 이용 혹은 방치하여 마을 내부까지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남과 북 각각 인민위원회와 우익청년단을 이용해 마을을 단속하고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마을의 문제 역시 제대로 된 국가의 부재에 의해 나타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조차 용납되기 힘들다. '평온하던 남한에 적화야욕의 북괴가 침략했다'라는 한국전쟁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런 마을내부에서의 전쟁은 논의의 토대를 갖기가 힘들다.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66

미망인들의 삶은 전후사회의 변화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대부분이 스스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적 가부장사회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생계를 위한 억척스러움이 지금이 한국의 아줌마를 형성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미망인들은 대체로 농사, 바느질, 행상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는데 최소한의 자본으로 가능했던 행상이 이 때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사실 여성이 시장에 가는 행위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이들의 등장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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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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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하면 왠지 쎄보이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뭐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고, 조작된 이미지인지는 머리로는 충분히 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란 각인효과가 참 크다.

 

아디치에는 책에서(TED 강의에서) 그 과정을 유쾌하게 설명한다. 페미니스트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자 그녀는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붙이는 등.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 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14쪽)

 

아디치에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37-39쪽)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규정이 우리의 삶을 얽매는가. 생각해보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자니까, 여자니까라는 프레임속에 살아왔다. 비단 부모의 이야기 뿐이 아니라, 학교에서, 심지어는 TV에서도 그런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는 상관없이...

 

       

 

젠더 문제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젠더문제를 문제가 아니라고 배워왔으니까.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 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를 바꾸는 것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 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 년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 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 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 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챙각에 그런 반응은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 교육,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44쪽)

 

젠더문제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해보자.

그러니 남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는요.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물론 예외도 많지만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21쪽)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해냈지만, 아직 우리는 젠더문제에 대해서는 민주적이지 못하다.

 

아직 남자들은 페미니스트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민주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사람(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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