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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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별점 두개와 세개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지나치게 프로이트등의 이론에 기대고 있는 점과 일본인에 의해 씌여져 잘 알지 못하는 일본의 저자와 개념이 등장하고, 또 어렵다. 읽기에도 불편하고(읽기에 불편하다는 점은 다른 한편으로 아직 내 자신이 여성혐오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성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여성이 갖는 차별에 대해 보편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실제에서는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남성이기 때문에)

 

저자는 차별이라는 정의부터 하고 시작한다.

차별이란 어떤 이를 타자화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다른 이와 동일화하는 행위이다. (42쪽)

 

그래서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타자화와 차별이 근본임을 이야기한다. 페미니스트란 바로 그런 차별과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남성의 여성 혐오는 타자에 대한 차별인 동시에 모멸이다. 남성은 여성이 될 걱정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성을 타자화하고 차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에게 있어 여성 혐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된다. 자기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모든사람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회적 약자는 그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비슷한 '범주 폭력'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범주는 지배적인 집단social majority/dominant group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되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렇게 적었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떤 식으로 여성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서이다. 
....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 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156-158쪽)

 

이런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근본 원인은 지배적 집단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중에 의미있는 것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그 사회적 성을 결정하는 것은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소수자역시 남성에 속하지 못하고(특히 남자 동성애자들에 대한 침해가 심한 것을 보면) 배제된 자들이다.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남성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남자는 남자들의 집단에 동일화하는 것을 통해 남성이 된다. 
남자를 '남성'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남자들이며 남자가 남성이 되었음을 승인하는 것도 다른 남자들이다. 여자는 기껏해야 남자가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 혹은 남성됨의 증명으로 부여되거나 쫓아오는 보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여자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은 남자이며 '여성됨을 증명하는것도 남자들이다. 
...
남성에게 이성애 질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이 성적 주체임 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성애 장치 아래에서 남자와 여자는 대등한 짝이 될 수 없다 남성은 성적 욕망의 주체, 여성은 성적 욕 망의 객체 위치를 차지하며 이 관계는 남녀 사이에 비대칭적이다. 이성애 질서란 남성은 동성 남자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되며 남성이 아닌 자(즉 여성만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하라는 명령을 가리킨다 뒤집어 말하면 남성에 의해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 자는 남성 아님 여성이 된다 그것이 남성일 때 그자는 여성 화, 즉 '여자 같은 남자가 된다 여기서 '여성이란 그 정의상 남성 의 성적 욕망의 객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의 성적 욕 망을 환기시키지 않는 여자는 정의상여자가 아니게 된다. (288-289쪽)

 

읽기에는 힘들지만 여성혐오와 그에 대한 인식의 기반을 가지기에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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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우리 시대의 질문 2
윤보라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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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전의 우리나라는 여성차별의 시대였다. 여성차별이 약화된 - 실제로는 여전한- 시대에 여성차별은 여성혐오로 대체된다. 기존에 나쁜 여자의 이미지가 있었다면 '김치녀', '김여사'로 대변되는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나쁜 여자'와 '착한 여자라는 이분법적 구분 자체가 흐려진 현 상황이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나누어 보상과 처벌을 반복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여성을 통제하는 매우 오래된 방식이지만, 현재의 '여성 혐오 현상은 거의 모든 한국 여 성들을 '나쁜 여자로 만든다, 2006년에 등장한 '된장녀' 담론과 현재의 김치녀, 담론을 보라 "모든 여성은 아니지만 일부 여성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린다는 궁핍한 이유로 굳이 스타벅스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여성을 색출해왔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사라졌다 김치녀라는 말이 내포하듯 이제 한국의 모든 여성이 '나쁜 여자의 몇 가지 유형 안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이 유형들은 마치 거푸집과 같아서 여성 전체를 엇비슷한 방식으로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구도 속에서는 어떤 여성도 이 거푸집을피해갈수가 없다. (17쪽)

 

실제 여성혐오는 광범위하다. 진보적인 팟캐스트도 여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젊은 진보 작가들의 여성폭력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여성혐오를 양산하는 이벤트들은 조작된 경우도 심심치 않다. 사실확인에 앞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단죄를 하고 끝나 버린다.

 

그리고 이 여성혐오는 지난한 싸움이다. 지속적인 동일한 혐오에 동일한 대응. 정희진이 이야기하는 '낡은 새로움'은 이 싸움에 걸맞는 언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남성실업의 일상화가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협이 여성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다.

 

우리는 언제나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같은 억압'에 반복해서 대응해야 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 나는 이 고통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해서 대응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모욕에 대응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미국처럼 사법상 혐오 범죄 hate crime 규제를 법제화하 거나 국가가 해결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언제나 피해자가 나서야 하고, 가해자는 표현의 자유를 외친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에서의 노골적인 발화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런글을'또' 쓴다. 물론 작금의 여성혐오 현상은 남성 실업의 일상화, 즉 자본주의의 질적인 변화와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린 시대적 배경이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낡은 새로움이라고 본다. 여성 혐오, 약자 혐오, 피해자 혐오에 대해 한국사회는 유독 관대하다. 자신과 체제에 대한 분노를 약자에게 투사하는 방식,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모든 계급 갈등을 봉합하는 막강한 남성 연대 종속적 남성 입장에서는 패권적 남성에 대한'짝사랑. (98쪽)

 

그리고 그 차별, 혐오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젠더를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성별은 인류가만든위계와 불평등 중 가장 오래된 제도다. 이렇게 장구한 역사 때문에 제도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문화, 무의식, 인간 몸의 일부로 체화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차별적 제도, 인간의 모든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모델이 된 것이다. 계급, 연령, 인종적 소수자, 환자,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와 억압, 착취, 혐오는 남성이 여성에게 한 행위를 기준으로 삼고 '배운' 것이다. (115쪽)

 

여성 뿐만이 아니다. 성소수자의 혐오 역시 이에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 혐오와 성소수자 혐오에는 공통의 기반이 있다. 성별 고정관념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여성 차별적인 성별 고정관념과 가족 제도를 위반한다. 여성들의 삶의 변화가 여성의 평등과 해방을 위한 열망으로 분출했을 때마다 성소수자들도 운명의 변화를 꿈꿨던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여성 혐오는 단지 비뚤어진 인식과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적인 평등 이미지로 인해 기만적으로 은폐되는 체계적 차별과 폭력의 문제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시민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혐오의 파괴적 영향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위치에 있다. 다른 한편에서, 오늘날 여성 혐오 현상은 성소 수자 운동의 목표와 전략에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제도적 인정과 형식적 평등만으로는 천대와 혐오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30쪽)

 

결국 여성에 대한 혐오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사회문제의 원인을 소수자에 돌려버리는 것이다. 살기가 점점 힘들어질 때 소수자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그 출구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법적 규제와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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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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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따금 불쑥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나 음모론을 늘 어놓는 사람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지만, 내 경험 상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쳐서 정면 대결을 일삼는 사람은 유독 한쪽 성에 많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 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길거리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젊은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여자들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15쪽)

 

저자 레베카 솔닛은 황당한 경험을 한다. 한 파티에서 한 남자가 자신이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자, 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상대방인 레베카 솔닛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남녀관계에 있어서 종종 보게되는 장면인 것 같다. 물론 나 자신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써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 자신도 무언가 자꾸 설명하려 든 것이기 때문에. 물론 이런 내용이 불편하다. 그래도 남들보다는 남녀평등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자신이 고른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자유도 없지만 자신에게는 그녀를 통제하고 처벌할 권리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 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45쪽)

강간을 비롯한 폭력적인 행동들, 극단적으로는 살인에까지 이르며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까지 포함하는 이 모든 행동은 일부 남자들이 일부 여자들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펼치는 방어막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런 폭력이 두려워 스스로를 제약하며, 그러다보면 자신도 익숙해 져서 그런 상황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50쪽)

 

남자들이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데에는 근본원인은 권위주의다. 그 권위주의는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으로 굳어져서 실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무려 40세대를 망라하는 신약 마태복음의 가계도는 아브라함에서 요셉까지 이어진다(다만 요셉이 아니라 하느님이 예수의 아버지로 추정된다는 사실은 언급 되지 않는다). 이새의 나무(Tree of Jesse)-마태복음에 나온 예수의 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일종의 토템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한 중세의 여러 예술작품에서 묘사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작성하는 가계도의 선조라고 일컬어진다. 이처럼 - 가부장제의, 가계의, 내러티브의 - 일관성은 삭제와 배제를 통해 확보된다. (103쪽)

여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은 또 있다. 이름의 문제를 생각해보라 어떤 문화에서는 여성이 자기 이름을 간직하 지만 대부분의 다른 문화에서는 여자가 낳은 아이에게 아버지의 성이 붙는다. 영어권 나라들에서는 최근까지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 앞에 ‘부인(Mrs.)을 붙여 불렀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는 가령 샬럿 브론테 이기를 그만두고 아서 니콜스 부인이 되었다. 이름은 여성의 계보를 지우고 여성의 존재마저 지운다. (105-106쪽)

 

실제로 사회제도 자체가 여성을 일관성있게 배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남성에 대한 권위는 배제된 여성위에서 만들어졌다.

여성에 대한 배제는 현실적으로 발생한다. 사회에서도 쉽게 발생하는 일들인데, 교수에 의한 조교에 대한 성폭력 문제나, 회사내 임원의 여직원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있을때, (남성과 여성의 발언이 있을때) 여성의 발언은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인식이다.

여자가 무언가 남자를 힐책하는 말을 하면, 특히 그것이 기득권의 핵심에 놓인 남자에 대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그 발언의 진실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능력이 있는가, 심지어 권리가 있는가의심하는 반응을 보 인다. 이런 일은 전혀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그동안 세대 를 막론하고 모든 여자는 자신들이 망상적이고, 헷갈려하 고, 타인을 조종하려 들고, 사악하고, 음모론적이고, 선천 적으로 부정직하다는 비난을 들어왔다. 가끔은 그 모든 표 현들을 동시에 (154쪽)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 즉 옷차림 등을 거론하며 차별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일어나지만, 나 조차도 인식하지 않고 있었던 문제들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한명의 비참한 젊은 남성 살인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가 문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금요일의 아일라비스타에서 우리의 평형은 깨어졌다. 지각판 사이의 긴장이 분출해 지진이 난 것처럼, 젠더의 영역들이 약간 이동했다. 학살 때문에 이동한 것이 아니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방대한 대화의 네트워크에 모여서 경험을 나누고, 의미와 정의를 재고하고, 새로운 이해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곳곳의 여러 추모제에서 사람들이 촛불을 치켜들었다면, 이 대화에서는 사람들이 생각과 단어와 이야기를 치켜들었다. 그것들 또한 어둠을 밝혔다. 어쩌면 이 변화는 앞으로 더 자랄 것이고 더 지속될 것이고, 더 중요해 질 것이고, 그리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영원한 기념비가될 것이다. (197쪽)

 

그리고 우리도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묻어 두었던 것들에 균열이 일어났다. 여성이란 무엇인지, 여성혐오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여성혐오라는 것을 드러낸 중요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의 결론은 많이 식상하다. 너무 뻔한 좌파적 결론을 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구속은 또 있다. 경쟁과 냉혹함 과 단기적 사고와 가혹한 개인주의를 높이 사는 체제 환경파괴와 무제한 소비를 너무나 잘 뒷받침하는 체제, 한마디로 자본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한 체제이다. 이런 체제는 최악의 마초성을 현실로 구현하고, 지구에 존재하는 최선 의 것들을 파괴한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이런 체제에 좀 더잘적응하긴 하지만, 이 체제는 사실 둘 중 어느쪽에도 진정으로 유익하지 않다. 사빠띠스따(Zapatista) 혁명처럼 페미니즘은 물론이거니와 환경, 경제, 토착문화 둥둥 여러 관점을 폭넓게 아우르는 이데올로기에 따른 운동들을 떠 올려보자 그런 운동이야말로 페미니즘만은 아닌 페미니 즘의 미래일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페미니즘의 현 재인지도 모른다, 1994년에 일어난 사빠띠스따 혁명은 지 금껏 진행되고 있으며, 그밖에 다른 사업들도 무수히 많 다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자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새롭게 상상하고 있다. (225-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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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 국민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김한종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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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정으로 발행되었다. 국사교과서가 원래부터 국정도서였던 것은 아니다.
...

1973년 2월 16일에 문교부는 중학교 국사 교과서 11종에 대해 개편을 지시했다. '①유신정신의 반영, ② 새마을, 수출증대, 교육재료 보강, ③급변하는 국제사회에 적응, ④변동된 교재 및 통계 보완 ⑤ 국사교육 강화'내용을 반영하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정책을 선전, 홍보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라는 노골적인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208-209쪽)

 

국사교과서가 국정화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바로 박정희가 종신독재를 꿈꾼 유신정권의 시점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검인정 체제였지만, 국정화까지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역사는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다. 해방후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육자들은 식민사학의 극복을 위해 싸웠다. 조선은 어쩔 수 없이 식민지가 되었다는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조선후기를 연구해 조선후기 '자본주의의 맹아' 등의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정체성론'과 '타율성론', '당파성론' 등 시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인식까지 바꾸기는 힘들다.

붕당정치는, 국왕이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집단으로 한정되기는 하지만 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립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정치이며 집단 간의 경쟁으로 올바른 정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있다고 해서 역사인식 자체가 정말로 달라지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붕당정치는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당쟁으로 다가온다. 권력을 잡기 위한 다툼은 추하고,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선한 편과 악한 편을 가린다. 숙종조에 있었던 서인과 남인의 대립에서,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비교하면서 여전히 '인현왕후는 선, 장희빈은 악'으로 다가온다. 서인과 남인의 정책, 정치적·경제적 기반 등을 알고 있더라도, 그것은 역사지식이지 역사의식의 내면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169쪽)

 

역사교육의 거대한 걸림돌은 식민사학 뿐만 아니라 일제가 그랬던 것 처럼 지배층은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교육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해 역사에 깊숙히 개입한다. 삼별초의 몽골항쟁이나 충무공 이순신 등에 대한 무인들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역사학계는 민중사학이 등장한다. 민중사학은 역사 주체를 지배층이 아닌 민중으로 보고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근현대사 부분에서 성과를 보였다. 민중사학 덕에 사회동요 등으로 설명되던 역사교육이 사회구조의 변동 등으로 바뀌었고, 일제시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기술은 경제성장 논리로만 설명되었다. 하지만 보수지배층은 이러한 작은 변화에도 거부감을 갖게 되고 1990년대 국사교육 준거와 관련된 파동이 일어난다.

 

1980년대 특징중의 다른 하나는 재야사학자라 불리는 사이비사학자들의 영향력 확대이다.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한단고기 등 상고사 내용을 바탕으로 위대한 한민족을 이야기하는데, 박정희 정권에 이어 무력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과 결탁한다. 이들은 강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보여 12,12 군사정변과 5,18광주항쟁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전두환정권에 의해 역사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한사군 등과 관련해 여전히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중사학에 의한 근현대사 연구결과가 미미하게나마 교과서에 반영되기 시작한 건 보수우익에는 충격이었던 것 같다.

국정교과서 비판을 그대로 보아 넘길 경우, 앞으로 더 큰 폭의 개정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민중사관에 대한 비판과 국사 교과서 개편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과정 개정이나 국사 교과서 개편을 둘러싸고 장차 겪게 될 대립을 예고하는 것이었다.(292쪽)

 

1990년대에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한 '국사교육 내용 준거안'이 발표되었다. 새로운 준거안은 먼저 용어의 변경을 시도하였다. 5·16은 쿠데타로 제주4·3항쟁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냉전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자 했다. 모스크바3상회나 한국전쟁 중 민간인학살 등에 기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준거안에 대한 보수언론들은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국사교과서 내용 자체도 아니고,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준거안 시안을 놓고 언론은 왜 이처럼 극렬한 반응을 보인 것일까?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는 단지 국사 교과서 내용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사회상황과 정치적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준거안 파동은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역사학계의 진보적 움직임과 역사 교과서 비판의 반작용이었다. 일부 정치·사회 세력은, 준거안과 같이 국사교과서가 서술될 경우에 자신들의 존립근거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반탁운동은, 우익 세력이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세운 정통 세력임을 주장하는 근거였다. '반탁=우익=애국, 친탁=좌익=매국'이 오랫동안 이들의 존재가치를 뒷받침해주었다. 이들에게 모스크바 3상회의를 달리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5·16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5·16은 당시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선전되었다.그러기에 5·16을 '군사혁명' 또는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준거안 시안대로 서술하면 5·16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로 전락할 상황이었다. 이는 5·16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하던 사람들에게는 존재를 위협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330~331쪽)

 

이런 보수우익의 반응은 2000년대 중반에 있었던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문제와도 맥을 같이한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서는 더 이상 검인정 교과서 체제에서는 이런 역사적 연구결과들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논란은 식민지 시대부터 계속되었다. 일제, 군사정권, MB, 박근헤 정부. 역사교과서를 대하는 태도가 어찌도 이렇게 똑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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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교육의 역사 -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역사교육이 걸어온 길
역사교육연구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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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역사교육이 시작을 알기는 어렵지만, 조선전기 <동몽선습>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동몽선습>은 역사서라기 보다는 중국중심의 충, 효 등이 강조된다. 조선후기에 이르러서야 자국사라는 개념이 생겼다.

<동사강목>은 유교적 도덕 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강목체 역사서답게 대의명분과 충성, 절의라는 도덕 기준에 따라 자국사를 바라보고, 절의를 지킨 인물과 애국 항재을 강조했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파악하던 견해를 부정하고, 화(華)와 이(夷)를 구분하는 기준이 지리에 있지 않음을 역설함으로써 전통적 화이관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강목체 사서의 기본 특징인 유교적 교훈 중심의 정치사, 사대부 중심의 역사인식이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지만, 독자적인 자국사 연구와 편찬에서 일대 획을 그은 책이었다. (55쪽)

 

조선말에 이르러서 주체적인 역사와 역사교육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지만, 일제시대 들어 역사교육자체가 말살되는 데에까지 이른다. 일제시대의 국사는 일본사의 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었는데, <보통학교 국사>가 대표적이다.

"천황은 히로시마 대본영에 계셨는데 좁은 집무실에서 밤낮으로 모든 일을 친히 처리하셨다. 그리고 황송하옵게도, 출정군인과 고락을 함께하시겠다는 생각으로, 불편함을 숨기시고 마디마디가 에이는 혹한에도 스토브조차 사용하지 않으실 정도였다. 그리하여 출정 장병은 집을 잊고 몸을 던져서 점점 충성과 용맹을 나타내고, 국민은 모두 이것을 후원하여 상하가 마음을 하나로 하여 국사에 열심을 다했기 때문에 드디어 이와 같은 커다라 승리를 얻었던 것이다.<보통학교 국사 하권, 134~135쪽>"

 

천황의 솔선수범과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청일전쟁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사는 부정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었다.

 

"당파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율곡은 이것을 걱정하여 그 싸움을 그치게 하려고 힘을 다했지만 효력이 없었고, 점차 많은 당파를 만들어 각각 정권을 잡으려고 다른 사람을 죄에 빠뜨리려 꾀하매, 이때부터 정치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지금까지도 조선인 사이에 노,소,남,북 4색의 구분이 있음은 그 잔재이다.<보통학교 국사>하권 11쪽"

 

<보통학교 국사>에는 위대한 일본제국의 역사상과 부끄러운 한국의 역사상이 하나의 교과서에서 선명하게 대비되어 있었다. 전자를 통해서는 한국의 독립이 불가능함을 알게 하고, 후자를 통해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가르친 것이다. (115쪽)

 

일제강점기는 이렇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쳤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역시 역사에 개입하게 하는 여지를 만들어준 것이다.

역사교육을 국민통합과 국민의식 형성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하려 했던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광복 이후에도 교육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렇듯 한국사교육을 민족의식과 국민의식 형성을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하려는 과도한 정책적 의도와 경향은 황국신민화 정책기의 역사교육 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150쪽)

 

그리고 뒤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은 한국역사가 객관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6·25전쟁은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학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해방 직후만 해도 역사교과서에 38선의 성립과 남북 문제에 관해 미국과 소련 양쪽에 공평하게 책임을 돌리는 서술이 우세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민족의 대립이 동족상잔으로 이어지고 분단이 고착되면서 외세나 제국주의가 아니라 민족의 다른 반쪽이 가장 중요한 적으로 등장하는 적 개념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까지 경계의 대상이었던 외세가 '새로운 적'인 민족의 다른 반쪽을 넘어서기 위한 지원 세력으로 여겨졌다. 전쟁으로 남북 분단이 고착되면서 교육과정과 교과서 속에 이데올로기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까지도 남북 양쪽에서 정권 유지와 반대 세력 축출에 6·25전쟁과 남북 분단을 활용하는 폐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169쪽)

 

역사교과서과 본격적으로 정권의 홍보물로 전락한 것은 박정희시대 후반부부터이다.

1969년 교육과정의 부분 개정 이후 국사 교과서에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면, 각 시대별로 대외관계를 중시했으며, 현대사 부분에서 베트남 파병, 경제개발5개년계획, 새마을운동, 국가비상사태 선언, 남북 대화 등 구체적인 정부시책을 홍보하고, 5·16 쿠테타를 혁명으로 부르면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이 개정은 이후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방향을 보여주었으며, 국사교과서가 정권의 홍보 수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출발점이 되었다.(177쪽)

 

이후 박정희 정권은 '국적있는 교육'을 강화하며 국사교과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국사교과서가 국정화된 것도 이 때이다. 그리고 아울러 <시련과 극복>이라는 책을 역사 읽기 교재로 활용한다.

"고려인의 독립자존의 정신과 꺾이지 않는 기개는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발휘되었는데, 특히 이것은 무인의 전통으로 이어져, 일찌기 거란과의 항쟁에 있어서도 그러하였거니와, 몽고와의 항전에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라거나, "삼별초가 3~4년 동안에 걸쳐 대몽 자주 항쟁을 벌인 것은 역시 고려 무인의 전통적 기백을 드러낸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라는 <시련과극복>의 서술은 무인의 국난 극복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단적인 사례다. 이러한 서술은 박정희 정부가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192~193쪽)

 

그런데, 이러한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역사교과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1994년에 있었다. 당시의 역사연구를 반영하여 6·25전쟁은 한국전쟁으로 바꾼다거나, 4·3항쟁으로 용어를 바꾸고 이승만과정의 독재화 과정 및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사항 등에 객관적 서술을 권고했는데, 이는 보수 우파의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개정 시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보수 언론과 단체들은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시안의 내용이 '위험한' 민중사관에 근거하여 북한을 지지하고 남한을 비판하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런 비판에 직면한 교육부는 논란이 된 용어나 내용을 대부분 종전의 교과서와 같이 되돌렸다. ...

이 사건은 국정 <국사> 교과서가 지나치게 지배층 중심의 역사관을 대변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있으며, 정권의 홍보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에 대한 보수·우익의 반격이었다. 민중사학이나 기존의 교과서 비판에 맞서 보수·우익 관점의 <국사>교과서 서술을 그대로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1994년의 '국사교과서 준거안 파동'은 2000년대 들어 <한국 근·현대사>교과서와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과 역사 이념 논쟁으로 이어졌다.(222쪽) 

 

2000년대 후반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들은 다시 역사교과서에 손을 댄다. 그리고 뉴라이트라는 집단이 나타나 역사전쟁의 선봉에 선다. 금성출판사는 그 논란의 중심에 섰다.

 

뉴라이트 파동과 관련해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태동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1980년대 부터 뉴라이트가 등장한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사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반성의 입장에서 보려는 시각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한 점 등이 비슷하다.

 

역사교육의 역사로 보면 우리에게 역사교육은 항상 왜곡으로 가득차 있다. 정치적인 공세는 다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시키는데까지 돌아간다. 역사계의 성과에는 눈을 감고 가르치고 싶은 것만 왜곡해서 가르치겠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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