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
폴 어빙 지음, 김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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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령화를 주제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대체로 고령화가 가져올 불행할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른 위치에 있다. 사실 지금까지 인류는 장수를 목표로 살아왔지만, 정작 장수가 현실화되자 이는 공포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년층, 부족한 저축 및 연금 그리고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


이에 반해 이 책은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가장 큰 지적은 바로 지금 고령화의 주축이 베이비붐 세대라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하는 고령화 사회는 수많은 잠재력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나이가 들었지만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노동자이며 경제력과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끄는 고령화사회는 노년층이 더욱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뿐 아니라 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174쪽)


IT에도 어느 정도 능하고, 이전 세대보다 높은 교육을 받은 베이비 붐 세대의 고령화는 고령화의 모습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결국 베이비 붐 세대는 경제력을 갖췄다. 이들을 기반으로 산업이 발달할 것이다. 더 이상 사회의 짐이 아니라 경제적 주체로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게다가 장수의 가장 큰 장애물로 알려진 질병 문제도 고령화시대가 되면 갑작스레 발전할 것이다. 새로운 백신의 개발은 알츠하이머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3D 인공장기의 시대도 곧 도래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사례로만 본다면 미국은 이민자 혹은 히스패닉계의 증가로 인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인재들이 계속 유입된다는 뜻이다. 거기에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할 것이다. 전세계적 고령화현상 속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은 좀 다를 것이다. 지금 한국의 고령사회는 자식이 노인을 부양하던 세대에서 노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물론 아무생각 없는 정부는 이 변화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20여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도 전 세대와는 교육의 질이 다르고, 산업화의 혜택을 그대로 받아들인 60년대가 고령화사회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아래세대와의 갈등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생에 단계로 이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변화다. 직장을 떠나는 대신 중년기와 전통적인 은퇴기 사이의 시기 혹은 중년기와 노년기 사이의 시기에 진입하고자 한다면 의미 있는 삶과 생산적 기여를 특징으로 하는 이 새로운 생애 단계에 대비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이행기에 도움이 되는 한 가지 전략은 특별히 이 생애 단계를 위해 ‘갭 이어' 다. 마치 많은 청년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갭 이어를 가지면서 미래를 위해 시야를 넓히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180쪽)


고령화 책들이 지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일본의 고령화인데,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지적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만큼 고령화에 대한 정부차원의 그리고 사회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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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발견하고는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대한 부정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판을 가지고 있고, 어떤 대체의학이 소개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 이 책의 저자 허현회씨의 부고 소식이 있다.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병원치료만 제때 받았으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SNS에 돈다.

그의 의견을 따르다 세상을 떠난 이들 이야기도 있다.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717001346438

 

일단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다만 대체나 대안은 대안으로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런 책들과 식품첨가물에 대한 비판 등은 조심히 읽어야 한다. 물론 과학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는 아닐 것이다.

 

       

 

식품첨가물 등에 대한 책은 아래 태그 '불량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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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6.25) 기념일만 되면 북침이냐 남침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등. 그런데 알고 보면 남침, 북침의 정의를 두고도 말이 많다.

 

남침이다의 의미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로 쓰이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남한이 북한을 침략했다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중요한가?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왜냐면 한국전쟁은 평화롭게 살고 있던 어떤 날 느닷없이 북한이 평화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맞나? 사실 북침이냐, 남침이야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한국전쟁이전에 남북사이에는 쉴새없이 전투가 벌어졌고, 미국은 이승만이 북한을 침략할 것을 염려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전쟁발발의 책임이 있는냐가 아니라 왜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의 결과 한번도 평화와 국민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느냐가 아닌가?

 

남한이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해 7월에 먼저 공격을 개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1949년 9월 2일, 스티코프는 이승만이 올리버에게  보내는 편지(자료 17)를 스탈린에게 보고한다. 이 편지를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것은 이승만의 북침 계획이 분명하다는 명백한 증거로 이용된다.
남쪽의 선제공격이 있을 거라는 북한 지도부의 생각이 남침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쩌면 당시의 남북한 관계는지금 북한과 미국사이에서 벌어 지고 있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 의 모습 그대로인지 모른다. 어느 한쪽이 먼저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양쪽 모두 방어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최선의 방어를 위해서는 공격이 더 좋을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료만으로 볼때는 당시 미국 만이 유일하게 공격이 최선의 방어 가아니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178쪽)

2010년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되었을 때 몇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에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단 한권만 읽는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 남침유도설, 북침설 등에 대한 근거와 왜 6월에 일어났는지, 침공초기의 왜 북한이 서울에서 몇일을 머물렀는지, 그리고 정전협정에는 왜 2년이나 걸렸는지 등 한국전쟁에 대해 크게 볼 수 있는 책이다.

           

 

2010년 박태균의 <한국전쟁>과 함께 총 4권의 책을 읽었다.

 

<전쟁과사회> 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65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었지만 한국전쟁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국내에서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는 전쟁의 발발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연구에서 벗어난 점 그리고 사회적으로 접근한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을 통해 발생한 국가억압체제가 오늘날의 한국사회 가정, 학교, 사회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억압으로 폭력이 구조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는 인민군 편, 국군이 올라왔을 때는 국군 편을 들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구조가 자유당 시절엔 자유당을 민정당 시절엔 민정당을 찍는 순응주의적 태도로 나타났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학살의 경우도 현재화되고 있는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일어난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한국전쟁이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 분향소를 폭력적으로 철거했던 서정갑 등 보수주의자들의 행태는 점령 당시 남한에서 있었던 모습과 유사해보이고 북한에 대한 압력을 위해 집회를 하는 그들의 뒤에 일본 극우파 인사와 자본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한국전쟁의 왜곡된 사회구조가 지금까지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11가지 시선>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62

남북한 내부적으로도 한국전쟁은 체제안정화(?)에 큰 역할을 한다. 남한이나 북한모두 불안정하게 정권을 잡았던 이승만, 김일성에게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은 반공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되었고 김일성 역시 당내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한국전쟁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체제 안정화에도 큰 기여를 한다. 서로 상대방의 영토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산업기반을 모두 파괴해버렸기 때문에 남북한 모두 새로운 경제체제를 도입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시범적 대립장소가 되면서 남북한 모두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게 된다. 국가재정(수입)이 남한의 경우 1959년 52%, 북한의 경우 1955년 28%가 해외 원조가 차지하게 되었다. 농업중심의 남한의 경우 전근대적 유산을 청산하고 자본주의체제를 급속하게 발전시킬 토대를 형성했고, 상업자본이 발달했던 북한은 한국전쟁을 통해 체제의 반대하는 자본세력들이 제거되었기에 사회주의 건설을 촉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70

5장 두 명문 양반가의 충돌, 금산군 부리면의 비극

금산군 부리면은 해평 길씨와 남원 양씨 두 양반 가문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1931년 부터 1960년까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길씨와 양씨 중에서 면장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두 성씨는 혼인으로 돈독한 관계를 이루어왔다. 일제시대 길씨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반면 양씨는 대체로 우익편에 있었다. 특히 길씨 중에서 주류는 우익에 길씨 비주류와 양씨는 우익에 대체로 섰었다. 보도연맹과 인민군 점령시 길씨, 양씨 일가 중에서 처형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마을에 비하면 그리 큰 사건은 아니었고, 대규모 학살도 없었다. 이는 두 가문이 사돈으로 돈독하게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 금이 간 사건이 발생한다. 길씨를 중심으로 한 좌익들은 인민군 후퇴 후 근처에서 빨치산이 되는데 1950년 11월 2일 우익을 중심으로 한 결의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빨치산이 결의대회장을 습격해 78명을 학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우익을 대변했던 양씨집안과 비주류 길씨 집안의 많은 이들이 학살 대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길씨와 양씨간의 관계는 깨어졌고, 이후 길씨는 마을에서 세력이 급격히 축소된다.  
 

이런 마을내부에서의 전쟁에서 나오는 질문은 바로 '국가는 무엇했냐'이다. 실제 해방이후 신탁통치를 거치면서 형식적으로 남과북 각각에서 각 세력(이승만과 김일성)이 장악했지만 실제 마을 공동체까지 장악했느냐에 이르러서는 의문이 따른다. 마을에서는 아직까지 마을 내부의 권력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을 치루면서 국가는 마을내부의 갈등을 이용 혹은 방치하여 마을 내부까지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남과 북 각각 인민위원회와 우익청년단을 이용해 마을을 단속하고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마을의 문제 역시 제대로 된 국가의 부재에 의해 나타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조차 용납되기 힘들다. '평온하던 남한에 적화야욕의 북괴가 침략했다'라는 한국전쟁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런 마을내부에서의 전쟁은 논의의 토대를 갖기가 힘들다.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4595066

미망인들의 삶은 전후사회의 변화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대부분이 스스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적 가부장사회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생계를 위한 억척스러움이 지금이 한국의 아줌마를 형성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미망인들은 대체로 농사, 바느질, 행상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는데 최소한의 자본으로 가능했던 행상이 이 때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사실 여성이 시장에 가는 행위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이들의 등장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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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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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하면 왠지 쎄보이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뭐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고, 조작된 이미지인지는 머리로는 충분히 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란 각인효과가 참 크다.

 

아디치에는 책에서(TED 강의에서) 그 과정을 유쾌하게 설명한다. 페미니스트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자 그녀는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붙이는 등.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 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14쪽)

 

아디치에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37-39쪽)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규정이 우리의 삶을 얽매는가. 생각해보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자니까, 여자니까라는 프레임속에 살아왔다. 비단 부모의 이야기 뿐이 아니라, 학교에서, 심지어는 TV에서도 그런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는 상관없이...

 

       

 

젠더 문제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젠더문제를 문제가 아니라고 배워왔으니까.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 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를 바꾸는 것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 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 년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 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 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 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챙각에 그런 반응은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 교육,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44쪽)

 

젠더문제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해보자.

그러니 남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는요.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물론 예외도 많지만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21쪽)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해냈지만, 아직 우리는 젠더문제에 대해서는 민주적이지 못하다.

 

아직 남자들은 페미니스트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민주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사람(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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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는 입 - 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 질문의 책 2
모로오카 야스코 지음, 조승미.이혜진 옮김 / 오월의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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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정도 읽었던 책을 주말내내 정리중)

 

여성혐오에 대한 책을 읽어가면서 어느정도 감을 잡아가는 중이다. 일단 남성인 나는 기본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실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혐오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잡아주는 좋은 책이다.

 

1980년대 미국 대학교에서는 비백인과 여성의 입학을 차별하는 사건이 빈발했다. 당사자와 교수 등을 중심으로 차별 표현 시정이나 금지 등 언어를 중심으로 문화적인 차별을 철폐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운동이 고조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대학이 혐오발언을 포함한 괴롭힘 행위 전반을 막는 규제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규제의 합헌성을 둘러싼 논쟁이 미국에서 사회문제가 되면서 혐오발언이란 말도 널리 퍼졌다(75쪽)

 

혐오발언의 역사가 그리 짧지 만은 않다. 30여년 후 지금의 대한민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 민주화가 되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인식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여성혐오는 단순히 남성-여성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남성이라는 지배권력과 피지배권력과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오키나와현 내 이전을 강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환경영향평가서를 2011년 연말까지 제출하려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평가서를 연내에 제출할지 아닌지 왜 확답을 피하느냐고 보도진이 묻자, 다나카 국장은 (여자를) 강간하기 전에 이제부터 강간하겠다고 말하고 하느냐”고 말했고 이 사실이 보도되자 다음날 경질되었다.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를 강간하는 남성과 당하는 여성의 관계처럼 폭력적 지배-피지배, 차별-피차별로 봤던 것이다. 오키나와를 차별하는 동시에 여성을 차별하는 속내를 들켜버린 셈이다. (68쪽)

2010년 12월에는 성소수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TV를 보면 동성애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일본은 너무 제멋대로인 상태다.” “(동성애자는) 역시 어딘가 모자라 보입니다 유전 탓이겠죠. 불쌍하죠." 2013년 1월 13일 자《주간 포스트》 대담도 문제였다. “결국 동성애자란 건 불쌍한 겁 니다.” “미와 아키히로를  보면 남자가 그 나이가 먹고 그런 꼴로 나오느냐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불쌍해지기도 해요. 유전 공학을 연구하는 선생님께 들으니 인간뿐 아니라 포유류나 그 어떤 세계에도 몇 퍼센트는 꼭 순수한 호모가 생긴다고 하더 군요” 남자인 주제에 싸구려 여자처럼 하고 다니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남존여비의식이 특히 동성애자 남성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 것이다.  (70쪽)

 

혐오발언은 기본적으로 소수자 차별이다. 범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법으로 규제를 해야 한다.

 

혐오발언과 증오범죄는 소수자 차별이며 공격이란 점에서 본질이 같다. 그런데 혐오발언은 유형력을 수반하지 않는 언행에 의한 폭력, 증오범죄는 '주요하게 유형력을 동반하는 범죄'를 가리킨다. 혐오발언이 반드시 범죄 라고는 볼 수 없고, 엄밀히 보자면 증오범죄의 일부도 아니다. (77)


혐오발언이란 넓게는 인종, 민족, 국적, 성별, 성적 지향과 같은 속성을 갖는 소수자 집단이나 개인에게 그 속성을 이유로 가하는 차별표현이다. 그리고 혐오 발언의 본질은 소수자에 대한 자별, 적대, 폭력의 선동(자유권규약 20조),"차별을 선동하는 모든 행위(인종차별철폐조약 4조 본문),이자  표현에 의한 폭력, 공격, 박해이다. 국제인권기준에는 혐오발언의 정도에 따라 악질적인 것은 형사 규제, 그보다 덜한 것은 민사 규제, 그보다도 덜한 것은 법 규제가 아닌 것으로 억제하라고 요구한다. 모든 혐오발언이 범죄는 아니지만, 이를 둘러싼 법규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세 가지를 확실히 구별 하는 것이다. (84쪽)

 

혐오발언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을 때, 정치적인 마녀사냥이 필요할 때 권력은 혐오를 이용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인류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다. 일본-조선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때 일본은 조선인에 대한 학살을 저질렀다. 혐오발언을 경계해야 할 이유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혐오발언이 초래하는 또 다른 해악은 편견을 확산시켜 고정관념으로 만들고, 편견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하여 결국 차별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사회 심리학자 고든 윌러드 올포트에 따르면 혐오발언은 증오를 사회에 퍼뜨리고 폭력과 협박을 증대시키는 연속체의 일부이며 궁극적으로는 제노사이드나 전쟁으로 이끈다. 독일에서는 나치가 유대인에게 되풀이해온 혐오발언이 제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거액의 배상금을 치르느라 경제가 피폐해졌고, 국민들은 허덕였다. 사회에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나치는 패전의 원인이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의 책략과 음모라고 선전했다. 또 일부 고소득층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선동했다. 유대인이 '기생충', '열등민족'이므로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반유대인 캠페인으로 나치는 지지 기반을 넓혔고 결국 1933년에 정권을 잡았다. 집권 직후 반유대법이 제정되어 유대인의 직업, 영업, 재산을 제한하고 시민권을 박탈했다. 많은 독일인이 이에 반대하지 않았고 일부는 스스로 유대인 공격에 가담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독일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과거사 반성에 바탕을 두고 유대인 학살 사실 을 부정하는 것은 금지되며, 혐오발언은 엄한 형사처벌을 받는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후투족이 투치족 수십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학살은 후투족 정부 고위관리와 라디오방송이 “투치족은 바퀴벌레다 쳐 죽여라"라는 식으로 혐오발언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는 르완다 국제전범법정 판경에서 인정된 사실이다.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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