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말 부터 12년 주요 키워드를 찾아보았다. 예를 들자면 누구 몇 주년.
다행히 한국일보에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0113222486330.htm

 

그중에 키워드를 몇 잡아보았고, 자료수집과 더불어 독서 혹은 음반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2012년은 찰스 디킨스 출생 200주년, 마르셀 프루스트 출생 150주년, 잭슨 폴록 출생 100주년, 다산 정약용 출생 250주년, 작곡가 드뷔시 출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클림트 역시 출생 150주년이나 클림트의 경우 예전에 한번 관심을 둔 적이 있어 이번에는 디킨스, 프루스트, 잭슨 폴록, 정약용, 드뷔시를 키워드로 잡고자 한다.

 

아울러 올해는 한중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몇 년전부터 생각해오던 중국읽기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중국읽기 자체의 범위를 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느슨하게 컨셉을 잡아 천천히 읽어볼 요량이다.

 

그리고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이다. 아무래도 정치는 올 해 내내 화두가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정치읽기가 시도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 말에 몇 권 읽었던 복지를 주제로 한 독서후기를 몇 개 남겨야 하고, 연말에 시도했던 안철수 읽기 또한 조심히 일정에 넣어본다.

 

(디킨스의 경우 디킨스 책 목록을 파악해 보고 번역본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디킨스에 대한 책들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의 경우 일단 소장하고 있는 앨범이 있는지 찾은 후 대표적인 곡과 추천음반 목록을 만들고 있다. )

디킨스 http://blog.aladin.co.kr/rainaroma/5344977
드뷔시 http://blog.aladin.co.kr/rainaroma/5361403
프루스트 http://blog.aladin.co.kr/rainaroma/534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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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 사회복지 문제가 새삼 대두되고 있다. 광주 인화학교와 같은 문제는 사실 오래된 문제이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서 사회복지라는 탈을 쓴 그들의 악랄함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당시 책으로 나오면서 잠깐 이슈화가 되었지만 영화화 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광주 인화학교 말고도 에바다 농아학교, 성립재단 등이 문제가 되는 대표적 사회복지 법인이다. 

도가니가 전부가 아니다  ← 기사클릭

이런 사회복지 법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무현 정부는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려고 했지만 한나라당의 거센반대의 부딪혔다. 대표적으로 한나라당의 고경화의원, 김충환 의원 등이 반대했다. 그들은 도가니 사건을 두고 국민앞에 나와 사죄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몰랐다고?'도가니'의 '불편한 진실' ← 기사클릭

노무현 정부 만들려 한 '도가니 방지법' 반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바로... ← 기사클릭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한 사회의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우리사회는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장애인을 걸림돌인 존재로 여겨왔다. 고려, 조선사회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던 장애인은 현대사회 특히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없어져야 할 존재가된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명박, 오세훈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시청사와 시청역 주변에서는 농성중인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호혜성이라며 그 혜택을 줄여갔던 장본인들이었다. 복지문제를 논하면서 망국을 이야기하지만 고려, 조선시대보다 못한 그들의 생각은 너무 구식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덕일의 글이 중앙일보에 실렸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 왔다가 돌아가는 아들 ‘학유(學遊)에게 노자(路資) 삼아 집안의 계율을 써 주는데[贐學遊家誡]’ 여기에 옛날 선왕들이 사물을 활용하는 지혜가 있었다면서 장애인 등용 방식을 설명했다. 즉 “맹인에게는 음악을 관장하게 하고, 다리를 저는 사람에게는 대궐문을 지키게 하고, 환관(宦官)들에게 궁궐 안을 출입하게 하고, 다른 여러 장애인들에게도 모두 적당한 임무를 맡겼다”면서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왕정(王政)이 제대로 펼쳐지는지는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를 뜻하는 환과고독(鰥寡孤獨)과 장애인 정책 여부로 판명 났다. 장애인 우대 정책은 조선보다 고려가 더 나았다. 고려 성종(成宗)은 재위 10년(991) 10월 서도(西都·평양)에 행차하면서 민정을 살펴 “중병이 든 자[篤疾]와 장애인[癈疾者]에게 약을 내려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예종(睿宗)도 재위 원년(1106) 9월 80 이상 노인과 의부(義夫)·절부(節婦)·효자·순손(順孫) 같은 의행자들과 함께 환과고독과 중병 든 자, 장애인을 대궐 마당으로 초청해 직접 잔치를 베풀고 물품을 하사했는데, 이런 기록이 많다. 그래서 성호 이익(李瀷)은 ‘고려 때의 진휼정책[高麗賑政]’에서 “환과고독은 모두 관에서 구휼하고 이외에도 온갖 장애인도 모두 국가에서 부양했으니 백성들을 우대하는 정사가 지금(조선)에 비해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었다”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10/07/6007456.html?cloc=olink|article|default 

장애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한 활동가가 있다. 김도현이다. 장애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이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뼈아픈 말이다. 아프리카 끔찍한 흑인 노예무역 역사를 읽다 보면 닮은 생각이 절로 난다. “아프리카가 엉망진창이어서 유럽 제국주의에 당한 게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에 당했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엉망진창이 됐다.” 우리 근현대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조선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조선이 형편없는 나라가 됐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나라가 분단당한 것이 아니라, 미국 소련이 우리나라를 분단했기 때문에 우리가 형편 무인지경이 된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05541.html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담은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가 나온다. 북유럽 출신 인류학자인 베네디크테 잉스타와 수전 레이놀즈 화이트가 쓴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오랫동안 장애인 차별철폐 운동의 현장에서 일해 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김도현(37·사진)씨다.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장애학을 배우고 고민해 온 활동가로서, 그는 이전에도 몇 권의 저작을 통해 장애학 담론의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다. 
  
 
29일 만난 김씨는 “장애학 담론 소개라는 벅찬 작업에 착수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장애 차별에 맞선 사회운동에 필요한 담론적 기반을 찾는 것이다. 여성운동이 여성학 담론을 부르고 그 담론이 다시 여성운동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처럼, 장애운동도 담론과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장애운동·담론은 여러 이유로 그런 상호작용을 본격적으로 겪지 못했다고 그는 진단한다.

두번째 목적은 장애 문제를 장애인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낯설게만 대하는 사회에 대해 확장된 고민과 소통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이냐 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고민을 놓고, 결코 장애 문제를 생략하거나 우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우리가 사는 사회를 풀이하고 인간다움이 뭔지 밝히는 일에서 “장애는 중요한 연결점이자 매개점”이라고 했다. 컬렉션 출간은 떨어져 있던 장애-비장애의 연결고리를 다시 복구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학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여성학에도 다양한 성격과 견해의 담론들이 있는 것처럼, 장애학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따라서 컬렉션에서도 다양한 견해와 방법을 담은 책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그 가운데에서 굳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찾자면,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관점으로 다룬다는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곧 ‘장애는 만들어진 개념’이자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억압’이라는 인식이다.

우리가 아는 장애란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발달과 연관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자본주의 이행기에 공장제 노동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랑인들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훈육’을 맡았던 국가가 이들을 분류·관리하는 과정에서 ‘일할 수 없다고 판단된 사람’(the disabled bodied)이라는 기준을 적용하게 됐다. 이것이 근대적 장애 개념의 시초라고 한다. 그 뒤 이들에게 사회적 배제·격리가 가해졌고, 이들을 다시 노동하게 만드는 ‘재활’이란 개념도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인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는 아프리카, 아시아, 북유럽, 미국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장애의 저마다 다른 양태를 보여준다. 신체의 일부나 전부가 불완전하다는 ‘손상’의 개념이 손상을 지닌 사람을 사회 활동으로부터 배제시키는 ‘장애’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그런 낙인 효과에 의해 인간 존재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구조화된다. 이런 방식으로 장애를 둘러싼 역사, 문화, 사회적 관계 등을 두루 읽어내는 것을 장애학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70734.html 

장애학 함께 읽기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사회가 장애에 관해서 얼마나 찌질한 사회인지 떠들어 보자. 왜 찌질하다고 하냐면 저열함을 감추기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데, 그 포장지가 너무 천박하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아직도 장애인의 집단 거주지가 있다. 시설이라고 하는 곳이 그것인데, 가끔 비인간적 운영 실태가 보도되곤 한다. 그런데 언제나 사건은 운영자와 관리자의 개인 비리, 그것에 대한 분노, 그걸로 끝난다. 장애인들을 왜 그런 시설에 격리 수용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나가려면 이 사회의 구조가, 사회 구성원의 생각과 매너가 바뀌어야 하는데, 바로 그 비용 감당이 싫어서다. 시설에 두면 일단 내 눈앞에서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없어도 되고, 그렇게 되면 장애는 오로지 장애를 가진 자, 그들만의 문제에서 멈춘다. 그래서 장애 운동 하는 사람들은 '탈시설'을 외치지만, 비장애인들은 두려워한다. 왜 나오려고 해? 그냥 그 속에서 편하게 살아, 걸리적거리지 말고, 이렇게 말이다.

간혹 기특하게도 어떤 종류의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장애인들은 대개 스스로의 장애를 극복하고(혹은 부모가 극복시키고) 비장애인에 근접한 기술과 기능을 익힌, 의지의 인물들이다. 그래서 장하다고 상도 준다. 여당 국회의원도 장애극복상이라나 뭐라나를 만들어서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을 국회로 초청해서 행사를 벌였었다. 그 행사 주체의 하나인 나모라는 의원도 장애아의 부모였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었다.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은 누구도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진정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장애인 살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이지 장애를 가진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를 극복하라는 말은, 장애가 곧 자기결함이라고 인정하라는 윽박지름과 같다. 장애인이 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장애를 극복해내야 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의문도 갖지 않았었다는 말이니, 이는 장애부모의 임무와 사회인의 책임 둘 다를 저버린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자기들만의 출발선을 그어놓고는 바로 거기서부터 자기들은 출발하면서, 장애인한테는 그 출발선까지 가는 게 목표여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왜 자기조건을 극복하고 이른바 일반인(그들만의 표준인을 말하는 것이겠지)처럼 살기가 목표여야 하는가 말이다. 이래서 웃긴다는 말이다. 그 인간 표준이라는 거. 낡아빠진 우생학적 발상 아닌가. 상품성에 미달되니 솎아내고자 하는. 비장애인들의 출발선까지 가기 위해 장애인들은 자신의 존재와 무관한 헛땀을 쏟아야 한다.

나는 그것은 비본질적 노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존재를 풍요롭게 하는 일과 상관없는 허상의 포장을 위한 헛땀 말이다. 금칠 범벅한 고층 빌딩이 강줄기를 차고 세워질 때, 수초 우거진 아름다운 강변이 시멘트 길로 메워질 때, 밤새도록 현란한 조명이 한강다리에서 번쩍일 때, 아, 삶의 터전이던 온 나라가 저들의 돈놀이와 유원지로 변해 가는 것을 볼 때, 그것들을 위해 내 땀과 내 수고가 얼마라도 쓰였구나 하고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바로 그게 비본질적 노동이 아닌가. 장애인들에게 자기 조건을 극복하고 표준화된 이 사회에 적응해서 네가 해야 할 몫의 노동을 하라는 것도, 바로 그 헛땀을 강요하는 셈법에서 나온 것이다.

다소 감상적인 이러저러한 내 소박한 장애관(이라고 말하니 좀 쑥스럽기도 하지만)이 바야흐로 '이론 학습'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가졌다. 김도현의 책 <장애학 함께읽기>를 접하면서 장애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으며 그것은 여성학처럼 여러 분과를 통섭하는 학제적 의미를 갖는 분야로 있어야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 자체에 대한 논의가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의학 내에 분산되어 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도 장애 문제가 체계성을 갖고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론적 기반과 실천운동의 기반을 제공하는 독립적 체계로서 장애학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때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017073634&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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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6개월간 배낭여행을 했던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비싼 물가덕에 일주일밖에 있지 못했지만 나중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그리고 부모님을 꼭 보내드리고 싶다고. 바로 북유럽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이다. 

북유럽이 복지가 좋기로 소문나 있지만 2MB 정부에 이르러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우리와는 정반대인 핀란드 교육에 이르러 최근엔 디자인까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케아로 대표되는 실용적인 디자인도 그런것 같다. 꼭 살아보고 싶은 나라이지만 책으로 먼저 접해보려고 한다.  

"나무 손잡이 컵과 포갤 수 있는 의자. 이 두 물건이 모두 북유럽 디자인이다. 두 물건에는 북유럽 디자인의 강점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유전자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잘 만든 물건’이란 만족감은 기본. 나무와 흙이란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적인 소재의 철학, 그리고 아름다움 이전의 기능주의,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절제의 미학.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회용이 아니라 계속 쓸 수 있는 지속가능성 같은 것들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과 강점들이다.

최근 국내에서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화려하지 않아 질리지 않는 디자인, 고전적인데도 모던한 디자인, 어디에 놔둬도 어울리는 조화의 디자인이 북유럽 디자인의 매력이다. 
 
이 북유럽 디자인을 제대로 소개하는 거의 첫번째 대중서일 듯한 안애경씨의 <북유럽 디자인>은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과 철학을 아주 쉽게, 그리고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사진들로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핀란드에 사는 디자이너 겸 아트 디렉터. 북유럽에 살며 보고 느끼고 써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철저하게 생활 속 디자인을 추구한 북유럽 디자인의 철학처럼 디자인 이론은 일부러 제쳐두고 생활인의 시각과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북유럽 디자인에 왜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지 잔잔하고 설득력 있게 가르쳐준다.

그 핵심은 자연, 일상, 사람이란 세 단어다. 너무나 당연해 오히려 놓치는 이 세 가지를 끝까지 추구하는 것. 그게 바로 디자인의 본질이며, 북유럽 디자인은 이 본질에 충실하다. 그 지역에서 나는 가장 흔한 소재인 나무가 중심이 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디자인이자, 특별함보다는 일상성을 더 중시하는 디자인이다. 예술가의 눈, 기술자의 정교함에 생활공예가의 따듯함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76793.html 

아울러 북유럽과 관련되 소개된 몇 권의 책들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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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한 케이블 TV(TVN으로 기억)에서 김정운 교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본 서민 교수 때문이다. 기생충에 대해 유쾌발랄한 설명에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 웃음 사이 숨어있는 기생충에 관한 진실들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기생충은 최대한 숙주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평화롭게 기생하는 것이다. 물론 기생충중에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생충에 관한 설명 말미에 인간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인간은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조용히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때 마침 기생충을 다룬 책이 5월에 출간되었다.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 정준호 지음/후마니타스·1만3500원
 

"기생충은 언제나 우리 몸 안에 존재해왔다. 한 알로 사람 몸속 기생충을 제거할 수 있다는 신약이 나오고 생활 환경이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2010년 현재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은 몸속에 여전히 기생충을 지니고 있다. 첨단 의학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세계 인구의 10%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 90%의 인구는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무런 의료 시설이 없는 곳에 살고 있다.

......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 책을 ‘기생충에 관한 전반적인 소개서’라고 밝히고 있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자의 시선은 기생충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서로 기생·공생하며 살아가는 생물의 진화에도 닿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덧붙여 그는 기생충이 갖는 다양한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기생충의 발생 및 소멸의 역사를 되짚다 보면 인류의 이동사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다. 약한 말라리아로 신경매독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것도 기생충이었다. 그래서 기생충은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라는 이야기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77917.html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는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출간과 동시에 기생충을 다룬 책들을 같이 소개하고 있다. 

브리지트 자일스 지음, 김승태 옮김, <할미새는 들소 몸에서 기생충을 청소해요>(다섯수레, 2008)

어린이용 책이라 우습게보면 안 된다. 다른 기생충학 서적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다양한 공생, 기생 생물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쉽게 풀이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서술하고 있다.


칼 짐머, <기생충 제국>(궁리, 2004)

한국에서 나온 거의 유일한 기생충 관련 과학 교양서. 풍부한 사례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생충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생충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읽기 가장 좋은 책이다.


로버트 버크만, <우리 몸 기생생물에 대한 관찰 노트>(휘슬러, 2006)

인체는 사파리다. 사람 몸 안에는 3백여 종이 넘는 기생충이 기생할 수 있으며, 지금도 많은 생물들이 우리의 모공 속에, 귀지 속에, 장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본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것을 책으로 만들어 삽화가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생충 책이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아쉬운 책이다. 

http://www.humanitasbook.co.kr/bbs/?id=board&no=741 

 

아울러 서민교수의 책을 모아본다. 서민교수의 스타일을 봤을 때 재미있음에 틀림없다. 

    

서민교수와 관련된 인터뷰 http://www.vop.co.kr/view.php?cid=A0000039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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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2011-07-12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책들, 제가 철없을 때 낸 건데요, 잼 없어요. 아직 안사셨기를 빕니다 ㅠㅠ

雨香 2011-07-15 18:52   좋아요 0 | URL
앗! 교수님이 직접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8월쯤 읽을까 생각중입니다.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지만 주요 뉴스는 원자력발전소이다. 생전 들어보지 못하던 세슘이 이제는 일반 단어처럼 다가온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물질이 미미하지만 유럽 및 미국에서 검출되었다는 사실과 수돗물 음용에 대한 경고, 후쿠시마 근처 농산물 금지 등의 조치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사능의 위험을 상기시켜 준다. 

UAE 원전 수주를 자랑하던 정부의 행태가 불과 얼마 전 일이라 묘하게 대비되기도 한다.  

지진 등에 대한 독서를 어느 정도 한 후 원자력에 대한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먼저 책세상 문고를 뒤져보았으니 아직은 없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에너지 고갈 시대에 원자력은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입장과 원자력의 안전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마도 원전 르네상스를 비판하기 위해 출간된 듯 한 책,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다. 출간은 1월에 되었는데 3월에 많이 소개가 되고 있다.  

특히 한겨레 신문의 기사는 곱씹어 볼 만 하다. 현재의 기술로 원자력 발전소를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번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게 되면 계속해서 돌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빨간불을 끄는 기술은 아직도 없습니다. 그리고 고준위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은 여전히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못합니다.”
일본의 반핵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가 1992년 도쿄 특별강연에서 한 예언이 20년 뒤 현실이 됐다. 대지진 뒤에 덮친 후쿠시마 원전 비극의 핵이 바로 끄고 싶어도 마음대로 끌 수 없는 불이다.
“결국은 수명이 아주 긴 방사능이 남게 됩니다.…100만년이 지나도 아직 1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남아 있다면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불, 끌 수 없는 불, 독성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만든 불이라면 끄고 싶을 때 끌 수 있어야죠. 원자력의 불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는 점에서 빵점짜리 기술입니다.”


원자력 이용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를 염원하는 7명의 젊은 생태사회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토론을 거쳐 내놓은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은 다카기의 경고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조근조근 차분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동 급변사태로 더욱 가팔라졌지만, 석유가격의 고공행진과 온난화 가스 저감 압박 속에 등장한 ‘원자력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아니면 상상을 절하는 일본 현실에 압도당한 탓인지 사람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서도 원자력 드라이브정책을 한 축으로 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발전전략이 불러들일지도 모를 위험성엔 여전히 둔감한 듯하다. 사람들은 일본과 한국 원전의 발전방식과 세대 차이, 도쿄전력과 일본 당국의 어수룩해뵈는 대응조처 등을 거론하며 한국은 다를 것이라 믿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다카기의 시선으로 보면 별로 다를 게 없다. 스리마일이 그랬고 체르노빌도 그랬지만 예상치 못한 원전사태 때 제때 불을 끌 수 없는 일본의 한계는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8818.html 

이외에도 여러 책들이 나와 있는데 다른 책 들은 좀 더 살펴보고 보충하려고 한다. 특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은 원자력이 그린 친환경 코드와 더불어 소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력은 아니다/헬렌 카디코트/양문 

원자력은 아니다의 저자 헬렌 카디코트는 원자력발전의 옹호로 사용되는 두가지 주요 주제인 청정에너지와 안전성에 대해 모두 아니다라고 말한다.  

원자력의 원료인 우라늄 채굴에 점점 더 많은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있고 원자력발전을 위해 우라늄을 농축시키는 과정에서 사용 금지된 프레온가스가 엄청나게 방출되고 있다.  

또한 어떤 원자력발전소도 비용과 공기를 초과하지 않은 것이 없다. 미국 뉴햄프셔의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8.5억달러 6년에 완성시키는 것으로 계획되었지만 총 70억 달러, 14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물론 1976년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즉, 막대한 정부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이라고 하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근래의 원자력발전소는 안전 보다는 비용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어 더 큰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 

http://media.daum.net/culture/book/view.html?cateid=1022&newsid=20070822075308703&p=ohmynews 

이 뿐만 아니라 안전성의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원자력산업계와 정부는 캠페인과 미디어를 통한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꾸준히 원전의 안전성을 국민들에게 반복해 강조해왔다. 강도 6~7에 해당하는 강진이 일어나도 원전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원자력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방사능 유출사고는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우려하는 과학자동맹(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후쿠시마의 경우처럼 가까운 미래에 핵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왔다. 그들은 "그 재앙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가 문제"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원전은 기계의 오류, 원자로를 조종하는 운전자의 실수 등으로 얼마든지 인재가 발생할 수 있고, 특히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해도 축소되거나 감춰진다. 원자력발전소는 사고가 아니더라도 원자로의 정상적인 가동과 조작을 통해 통상적으로 방사선을 방출하는데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이런 사실에 무지하다. 미국 원자력산업계를 감독할 책임이 있는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핵에너지 발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공방사선으로 일반대중들이 매년 100밀리렘을 부가적으로 받는 것이 허용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은 인체에 축적되면 계속해서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문에 자연에 존재하는 방사능에 인공적인 방사능까지 더해지면 심장질환과 뇌졸증, 백혈병, 갑상선 암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낮은 방사선이라도 태아에게는 치명적이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433  

 이와 더불어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책 역시 '원자력은 아니다.'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절판인데다 책 내용이 소개된 기사가 없어 목차와 책 소개 정도로만 책 내용을 가늠해 볼 뿐이다.

근래 원자력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만큼 재출간될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일단은 도서관 등을 이용해 볼 생각이다.  (2011년 4월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원자력의 유혹'은 원자력과 관련된 각종 영화, 소설들을 다루고, 핵무기와 원자력발전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 것으로 보여 흥미롭게 원자력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인 듯 하다. 3만원의 가격대와 두께가 조금 부담이 되기는 한다.  

아울러 환경문제를 세계지도와 더불어 다루고 있는 '르몽드 환경아틀라스'는 조금 더 넓게 환경 및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의 진보적 신문 <르몽드>의 자매지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기획한 <르몽드 환경 아틀라스>는 이미지를 앞세운다. 에이(A)4 판형 100쪽 남짓한 책의 절반 이상이 형형색색의 지도와 도표다. 예컨대 인간이 쓰는 자원을 땅 면적으로 환산한 ‘생태발자국 지수’(14~15쪽)는 자원 낭비가 심한 나라일수록 커지는데, 이를 세계지도로 그려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 남한 등은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고, 아프리카, 중남미, 북한 등은 마른 명태처럼 말라비틀어져 있다. 책은 스물여섯개의 위협과 열여섯개의 대안으로 구성돼 있다. 가뭄과 홍수, 석유와 원자력, 도시화와 남북 격차, 온난화와 사막화 등이 위협 요소들이다. 이를 극복할 희망들로는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주택, 자전거, 국제 협력체제 등이 있다.  
     

원자력을 옹호하는 측은 대체로 현실적인 대안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두권 정도 일단 목록을 만들어본다.

   

이후 4월에 원전에 대한 책이 한권 더 출간되었다. 히로세 다카시의 <원전을 멈춰라>인데, 이 책의 초판이 24년전에 출간되었고, 저자는 이미 그 때 일본 원전의 지적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1987년 4월 26일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저자는 출간 시점까지도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원인과 후폭풍을 상세하게 기술한 후, 일본에서 ‘대사고’가 일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비관적 전망의 근거는 네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비상 노심 냉각장치, 격납용기, 원전 재료의 손상, 그리고 지진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원자력산업회의 의장은 원자로의 비상 냉각장치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 원자력 관계자는 “일본에는 ECCS라는, 긴급시에 노심을 냉각시키는 장치가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 역시 결과적으로 믿을 수 없는 말이 돼버렸다. 알려진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쓰나미로 인해 비상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탓에 발생했다. 격납용기, 격납용기를 둘러싼 콘크리트, 지진 등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와 원자력산업계는 줄곧 ‘일본은 문제없다’고 말해 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같은 일본 정부와 일본 원자력산업계의 말이 거짓이었거나 무지의 소산이었음을 입증한 셈이다.

그렇다면 원전 ‘전문가’들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이처럼 그릇된 판단에 빠져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국제적 대자본의 힘이다. 저자는 핵기술이 발명된 이후 모건 가문과 록펠러 가문으로 대표되는 자본이 전 세계 주요 원전시장의 돈줄은 물론이고 국제연합(UN)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기구까지 장악했다고 비판한다. 다음은 저널리즘 정신이 실종된 일본 언론이다. 책 출간 시점을 기준으로 일본 5대 민방의 주요 스폰서는 전력회사들이었다. 공영방송인 NHK도 전력회사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주체인 도쿄전력의 전 회장인 히라이와 가이시는 NHK 경영문제위원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는 보도는 사라졌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6&art_id=201104061719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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