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가족
아모스 오즈 지음, 박미영 옮김 / 창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꾸벅씨(?)가 된 채로 지내고 있다. 네모난 상자 안에 꼬박 하루를 밀어 넣은 채 졸음과 싸우는 학생들 틈바구니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공부가 될 리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죄다 네모난 것들뿐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들이 앞 다투어 네모난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 도서관. 그곳에서 네모난 책 속에 잠자고 있는 ‘숲’을 만났다. 비밀로 가득한 숲을.

스타카토. 《숲의 가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스타카토’와 같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길게 연주되는 스토리가 아닌, 딱딱 끊기는 전개방식이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내 손에는 퍼즐조각이 하나씩 생긴다. 서로 닮은 구석도 별로 없는 그런 퍼즐조각을 얻으면서 결정적인 퍼즐조각을 얻을 때까지, 그렇게 스타카토.

어느 마을, 동물들이 없다. 사라진 건지 죄다 죽은 건지 알 수 없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마치 저주받은 마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학교에서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을 뿐이고, 마을의 어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쉬쉬하는 듯한 모습이다. 간혹 학교 선생님처럼 참다못해(?) 동물 울음소리를 흉내내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몹쓸 행동을 한 것 마냥 금방 함구해버린다.

『이것은 마을에서 오랜만에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그날 밤 산귀신 네히가 모든 생물을 데려간 뒤로 마을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물, 말이나 비둘기, 쥐, 양, 수소 등의 생물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부모들 중에는 동물에 대한 주체 할 수 없는 그리움이나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나머지 동물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잊고서 아이들에게 동물 소리를 흉내 내어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닭이나 하마의 울음, 소가 음매 하고 우는 소리, 숲 속의 늑대가 짖는 소리, 비둘기가 구구하는 소리,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 거위가 꽉꽉거리는 소리, 개구리가 개굴개굴 하는 소리, 올빼미와 수리부엉이가 우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자신의 슬픔을 부인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단지 재미있는 소리를 내본 것뿐이라고 했다. 그게 전부라고. 또 동물들의 소리는 현실 세계의 것이 아니라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그대로 따라해 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략·····)
“그건 그냥 전래동화란다.”
“그 이야기는 농담이야.”
전래동화나 농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p50~p51)』


어둠이 깔리면 마을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어둠 속에 잠식당한 것처럼. 집집마다 커튼을 치고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어떤 두려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산귀신 네히에 대한 공포를 아이들에게 심어준다. 어둠이 깔리면 절대 밖을 나가서는 안 되며, 숲 근처로는 절대 가서도, 궁금해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할 뿐이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라고 말할 뿐, 마을 사람들은 그 ‘시답잖은 이야기’에 대해 언제나 쉬쉬할 뿐이다.

마티와 마야. 이 용감한 두 녀석들이 사고(?)를 치고 만다. 금기를 깨고 숲으로 모험을 떠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진실’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함께 어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모험을 말이다.

『“어떻게 너는 숲을 무서워하지 않니? 네히가 무섭지 않니?”
니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나도 무서워. 나도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 특히 밤이 무서워. 네히는 무섭지 않아. 사실은 동굴에 있을 때보다 나를 미워하는 아이들 속에 있을 때, 그 아이들이 내게 소리를 지르고 돌과 기왓장을 던질 때가 더 무서워. 어른들이 내게 손가락질 하면서 저기 좀 봐, 저기 소리지르는 병에 걸린 불쌍한 아이가 오네, 정말 안됐어, 하고 말하면서 항상 어린 아이들에게 내 곁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 난 그게 두렵고 무서워.”(p70~p71)』


마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몹쓸 병에 걸린 아이 취급을 받는 니미를 만나면서 마야와 마티는 자신들을 둘러치고 있는 울타리의 습성을 알게 된다. 미움과 시기,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와 경멸, 조롱하는 마을이라는 울타리의 습성을 말이다. 어른들은 이렇게 아이들을 유리시키고 진실을 은폐하며, 금기라는 것으로 경계를 만든다. 그렇게 세뇌를 시킨 채, 아이들을 유린하는 것이다.

소통의 부재. 두려움이란 진실체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는 것으로부터 파생된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전혀 진실체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나와는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 나보다 우월할 것만 같은 사람들을 오직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고 그들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을 자기가 속한 집단 속에 퍼뜨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상대를 격리시킨다는 착각 속에 빠져, 각자 제 스스로 자신이 속한 집단 전체를 고립시키고 외부와 단절시켜가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숲의 끝자락에 도착하자 어렴풋이 마을의 집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네히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 밤이야. 저기서는 벌써 걱정들을 하고 있을 거야. 이제 둘 다 집으로 돌아가. 언제든지 오고 싶을 땐 산에 있는 숨겨진 우리 집으로 와. 해기 지기 전까지 몇시간 동안은 함께 있을 수 있을 거야. 너희만 괜찮다면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좋고 더 있어도 돼. 다시 만날 때까지 너희도 다른 사람을 경멸하거나 조롱하고 놀리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 귀찮게 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아이들에게 말해. 화나게 하거나 약을 올리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말하는 거야. 신경쓰지 말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거야. 괴롭히지 말라고, 그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싫다고 말하는 거야. (····중략····)
자, 이제 너희는 가서 평화롭게 지내. 그리고 잊지마. 너희가 커서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서도 잊지마. 마야, 마티, 잘가. 안녕.”(p136~p137)』

마야와 마티의 험난한 여정을 통해 만난 진실, 온갖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진실을 싸고 있는 온갖 편견과 선입견 등을 벗겨내는 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 그렇게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 세상을 바꿔나갈 사명과 힘을 지닌 존재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이며, 아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이 아닐까싶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실들을 쉬쉬하며 살아가는가. 얼마나 그릇되고 왜곡된 정보들을 가르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단 1%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진실에 대해서 99%의 왜곡된, 자기합리적인, 그릇된 거짓으로 사기를 치고 있는가. 시시각각 불쑥 찾아드는 진실에 대한 갈망 앞에서 얼마나 초연하고 태연할 수 있는가. 늘 두려움에 떨면서도 쉬쉬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가치관과 중심은 지배나 종속됨 없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인가.

책을 덮으며 퍼즐조각은 다 찾았지만 퍼즐은 완성하지 못한 기분이다.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나를 조롱하듯 그런 퍼즐이 내 앞에 있는 것 같다. 하나씩 찾아낸 그 퍼즐조각들에 대해 어떤 의구심도 품지 않은 채, 그냥 당연히 퍼즐을 맞춰나간 결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지는 모든 퍼즐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듬으며, 때를 벗겨내는 작업을 시작해야할는지도 모른다. 마치, 조각모음을 시작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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