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의정서 2
앨런 폴섬 지음,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독서편식이 아주 심한 편임을 안다. 그래서 다독가도 아닐뿐더러 진정한 독서가는 더더욱 될 수 없음을 나 스스로 잘 안다. 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 관심 안의 책들을 탐할 뿐이고, 그렇지 않은 책들은 손은커녕 눈길만 겨우 표지나 책등에 가닿거나 아예 ‘보려’고도 않는 지독하고 아주 오만불손한 행태를 보인다. 특히나 ‘자기계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책들과 ‘추리소설’에 대한 내 선입견과 편견은 극에 달한 실정이다. 도무지 정이 안가서 늘 관심 밖에 밀려나 있는 장르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내게 작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그 변화라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혹은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말로 꼬집어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탄탄하다 못해 철옹성 같던 내 독서편식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내겐 대단한 의미이면서 발전(?)이라 할 만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저 평소 손이 가지 않던 반찬을 한 젓가락쯤 집어 먹어본 것에 지나지 않다. 한 젓가락 한 젓가락 손이 가다보면 나도 언젠간 독서편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이 인다. 


*

『마키아벨리 의정서 1·2』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지닌 ‘미지의 맛’에 대한 한 젓가락쯤의 기대로 집어든 책이다. 그보다 앞서 책 제목에 묘한 호기심이 발동한 책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라는 단어와 ‘의정서’라는 단어는 적어도 내게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았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어서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스티브 베리의 추리소설『호박방』(전2권)처럼···. 첫 장을 읽어나가면서 희비가 교차했다. 중세 어느 때쯤의 이야기가 아닐까했던 예상이 빗나가면서 조금은 씁쓸했으며, 다행이도(?) 중세사 강의를 듣다가 포기하다시피 한 개인적인 이력(?)을 갖고 있는 나였기에 조금은 안도했다. 


줄거리(정말이지 난 줄거리 요약을 못할뿐더러 정말 싫다!)는 대강 이렇다. 전직 형사였던 마틴의 옛 연인 캐럴라인의 죽음,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자 미 하원의원이었던 마이크와 아들의 죽음을 시발점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틴은 캐럴라인이 죽기 전에 들려준 이해할 수 없는 말들과 그녀의 부탁으로 사건을 파헤쳐나간다.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면서도 작은 호기심 같은 것들을 슬며시 흘리면서 진행된다. 마틴은 영국,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을 동분서주한다. 그럴수록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들어가고 몸집을 서서히 불려나간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1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게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구나 싶었다.

 

솔직히 1권을 보고 별로라는 생각이 들면 2권을 구입 안할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재미가 있어서라기보다 1권에는 빙산을 이루는 일각일각들을 두서없이, 그것도 아주 광범위하게(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늘어놓았기 때문이랄까. 궁금해서! 이제 퍼즐을 완성해야하니까! 아무튼 1권은 사건의 연속이고 그 사건들을 통해 엉뚱하다시피 한 단서들을 하나씩 모아가는 과정이다.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캐럴라인 가족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미 대통령 해리스는 그의 최측근들의 무시무시한 제안(자신들과 미국의 정치적 행보에 방해가 되는 각국의 수장들에 대한 암살계획을 승인해달라는)을 들은 후, 삼엄하고 깐깐한 대통령 경호망을 뚫고 탈출(!)해 마틴을 만난다. 이 둘은 마키아벨리 의정서를 표방하는 혈맹조직의 음모를 파헤치고 세계평화(?)를 위한 동지가 된다. 적의 실체는 거의 세계 모든 곳곳에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채 자신들의 명예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피로써 맺어진 잔인하고 포악한 거대조직이며, 이들에 맞서 마틴과 해리스는 고군분투한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주 긴박하면서도 스릴 넘치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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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앨런 폴섬은 참 유명한 사람이란다. 추리소설계에서는 소위 시쳇말로 대박작가쯤 되는 사람이래나 뭐래나. 잘은 모르지만(저자에 대해서도,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도)『마키아벨리 의정서 1·2』를 읽으면서 꽤나 흡족했던 것들이 있다. 하나는 굉장히 스케일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광범위한 무대에서 종횡무진 이야기가 전개될 뿐만 아니라 어느 곳곳이건 작가의 묘사가 참으로 생생해서 좋았다. 앤 패디먼의『서재 결혼 시키기』에 언급된 현장독서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게는 부러우면서도 저자의 생생한 묘사 덕분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또 하나는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정확한 날짜와 요일 그리고 세세한 실시간으로 단락되어 있어서 긴장감과 긴박함, 스릴이 배가 되어 거의 9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다. 1분 혹은 2분 차이로 장면이 교차되거나 이야기가 흘러가는 부분에서는 짧지만 아주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고, 등장인물들과 나의 감정교류랄까, 감정이입이 아주 은밀하면서도 세밀하게 이루어져 이야기에 몰입하기 좋았던 것 같다. 김영하의『빛의 제국』이 24시간 동안의 사건을 한 시간 간격으로 단락해놓아 이야기에 동참하는 것이 즐겁고 용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그 이상의 스릴이 존재한다. 


끝으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마틴이 모든 일이 끝나고 집에서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잠시 잊었던 의구심을 떠올리면서 독자 역시 여태껏 사건을 다시금 재정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등한시 했던 부분들에 대해 이미 내용상으로 종결된 사건을 재추적하게끔 한다. 사건의 중심으로부터 제외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그네들의 행동이나 숨은 의도에 대해 재조명함으로써 사건의 종결과 동시에 또 다른 사건이 내내 벌어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앨런 폴섬의 다음 작품은 아마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은 그런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참!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는 마키아벨리의『군주론』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에 녹아있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이해랄까, 자신만의 정의랄까 하는 것에는 조금 인상이 찌푸려지더라는. 이야기 속에 드러난 것처럼 마키아벨리 의정서에 따라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일이건 불사하며 서로 피로써 동맹을 맺은 조직체들의 성격을 그대로 빌려 마키아벨리는 물론『군주론』까지 동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자 자신이 만들어낸 이 이야기 속의 해괴망측한 조직체의 모든 특성들이 마키아벨리와 그의 작품『군주론』에 기인한다는 식의 저자의 인식은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 않더라는. 


또한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한계라면 한계일 수 있는 느낌도 받았다. 소위 영웅주의라는 것을 표방한 것인지 극복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슈퍼맨이나 배트맨, 스파이더맨과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마틴과 함께 세계평화를 지켜낸 미국 대통령 존 해리스의 악전고투를 보면서, 사건의 종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을 암시함으로써 영웅의 존재에 대한 어떤 정당성을 필역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내가 뭘 잘 몰라서 그런 것일까 하는 의구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자극했다. 물론 참 인간적인 대통령이구나, 싶긴 했다만···. 


***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들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것이 꼭 일반의 음모론처럼 허무맹랑하다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거나 혹은 믿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와 반대로 아주 사소한 것들이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것들의 집합일는지도 모른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들면 들수록 그 실체에는 가까워질는지 모르나 결코 이득이 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지라. 식자우환(識字憂患). 세상이라는 이 시·공간은 생각보다 아는 것 못지않게 모르고 사는 게 득이 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의식함으로 인해 뇌리에 각인되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각성의 파장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독하리만치 스스로를 번뇌케 하는 불씨가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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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05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보는 레인님의 리뷰!! 저도 편식이 심한 편인데... 자기계발서와 추리소설 저도 손이 잘 안 가는 장르예요. 리뷰만 보면 이 책 읽고 싶어지는데 막상 손에 들면 어떨는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레인님의 리뷰는 언제 봐도 친절하고 깔끔합니다. 책에 대한 정보는 물론 문제의식에다 곁가지 정보까지 꼭 필요한 건 잊지 않고 챙겨주는 자상한 삼촌 같은 리뷰라고나 할까요 ㅋㅋㅋ 암튼 잘 봤습니다 레인님~^^*(근데 교보에는 왜 안 올리셨어요?)

ragpickEr 2010-01-19 13:31   좋아요 0 | URL
무질님^^* 댓글이 많이 늦었네요..죄송해요..;;
리뷰 쓰기가 싫어졌다가..그냥 올려봤어요..ㅋㅋ 저는 태어나서 두 번째 추리소설이었어요..;;ㅋㅋ
여전히 제 귓볼을 뜨겁게 하시는군요..^^*;; 주절주절인걸요..후훗..;;
삼촌 같은?? ㅋㅋ 형님!!왜 그러셔요..ㅋㅋㅋㅋ

교보에요? 그러게요~^^*; 왜 안 올렸을까요..;;
조만간 올려야겠어요..^^*; ㅋㅋ 제 북로그에만 올려야지..ㅋㅋ
늘 건강하시구요!! 으라차차차차차!!

에샬롯 2010-01-10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 읽었네..^^ㅋ

ragpickEr 2010-01-19 13:31   좋아요 0 | URL
나곰양^^*
후훗..네~다 읽었어요..ㅋㅋㅋㅋ
거금(?)을 들여 읽었습니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