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출판기획 시리즈 2
강주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한날, 나무인간(?)께서 나와 친구 녀석을 일요일에 연구실로 부르셨다. 전공학생도 아닌 우리를 부른 그도 이상하지만, 천금 같은 휴일을 그의 부름에 주저함도 없이 응했던 나도 이상했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먹고는 연구실 책상 위에 <생태문화아카데미 기획안>이라고 적힌 종이 뭉치(?)를 주시더라는. 나는, 워낙에 계획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계획성 없기로 유명한 내 앞에 놓인 기획안이라니!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훑어보고 수정할 부분이나 세부계획을 정리해봐”라는 말만 남기고는 회의일정을 잡느라 관련 기자며 교수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당시, 내가 그 기획안을 제대로 수정하고 보완했는지, 썩 괜찮은 아이디어를 보충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또한 별 연관성도 없는 전공자인 내 의견이 반영이 되었는지 그저 일종의 ‘테스트’였는지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만, 기획안이란 걸 거의 처음 접했던 그 새로움이랄까, 더불어 조금은 두렵고 긴장된 상태로 기획안과 마주했던 그 순간이 내겐 가장 기억에 남을 뿐이다. 그날, 나는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었던 것 같다. 기획안 속의 많은 세부계획들을 훑으면서 전체적인 그림이란, 어떤 일에 대한 구조는 계획성 없이 뭉뚱그려 막연하게 연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 즉 비교도 안 될 만큼 선명함은 물론 마구 실행에 옮기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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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에는 국경이 없다』는 출판에 관한 책이다. 또 ‘책’에 관한 책이며 ‘읽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독서교육에 관한 책이면서도 이 시대의 출판계가 나아가야 할 길이랄까, 추구해야 할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현 출판업계의 문제점은 물론 그로 인해 빚어진 많은 독서에 관한 사회적인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이야기들의 주축에 있는 것, 그 시작에 있으면서도 끝에도 있는 아이러니한 것, 즉 이 모든 과정들이 의미 있고 원활하도록 만드는 쟁점이 기획이고 기획력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어떤 책이라도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거기서 좋은 책이 결정됩니다. 두툼한 책을 지루하게 읽을지언정 한 문장에서라도 감동을 받거나 공감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습니다.(p5) 


종종 좋은 책에 대해 홀로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은 좋은 책인가, 하는 식으로. 어제 읽었던 책은? 누구의 책은? 좋은 책의 기준은? 하면서 물음을 던지다 보면, 결국엔 ‘책’이라는 섣불리 정의내릴 수도, 그러기도 힘든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자기만족’이라는 단어로 적절히 타협(?)을 보고는 다시 이 책 저 책 뒤적이게 된다. 엉뚱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책(?)이다. 


책은 문화상품일 수 없다. 책은 교육을 위한 상품이다. 언젠가부터 평생교육이란 낱말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었지만 그 역할은 교육기관만의 것이 아니다. 출판계가 만들어낸 책을 통해서 진정한 평생교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브 미쇼처럼 살아 있는 목소리를 전해줄 저자들을 찾아나서는 출판사들이 우리에겐 얼마나 될까? 텔레비전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서 묵묵히 사색을 거듭하며 깊은 내공을 쌓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려 노력하는 출판사가 얼마나 될까?(p129~p130) 


책이 문화상품인지 교육상품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책은 그냥 ‘일상용품(?)’인 듯하다. 상품으로 평생교육을 이룬다하기엔 좀, 뭔가 뉘앙스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서 차라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품이 아닌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보태본다. 어쨌든, 저자가 말한 것처럼 ‘텔레비전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미는 사람’뿐만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서 묵묵히 사색을 거듭하며 깊은 내공을 쌓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해줄 수 있는 출판사가 많아진다면, 그네들이 만들어 제공하는 책은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정말이지 일상생활의 필수품처럼 구매하고 사용하며 활용하고 여럿이서 나누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편집자는 교정을 보고 교열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책을 어떤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출판인을 뜻한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기획력과 편집력을 겸비한 사람이다. 쉬플린이 말하는 편집자의 기획은 대중의 취향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독자에게라도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능력이 기획이다.(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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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해서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리스 올랑데와 같은 기획자가 필요하다. 시장을 읽기 전에 독자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지닌 기획자, 더 크게 말하면 새로운 독서 시장을 만들어가겠다는 꿈을 지닌 기획자가 필요하다. 그런 기획자에게 필요한 조건은 장인 정신이며 책과 독자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이런 기획자가 없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p188) 

 

가끔, 이런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둥, 이런 주제를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놓은 책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입맛에 맞는 책, 즉 소수의 독자가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책을 찾아내고 읽어내어 구미에 맞도록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출판업계의 사정을 끊임없이 변명처럼 입에 올리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이 책에 예로 소개된 출판사들의 자기만의 개성과 예리한 관찰력 그리고 탄탄한 기획력과 편집력을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이룩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에게도 조금 더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늘어나기를 소망해본다. 


독서교육은 구호로 하는 것이 아니다. 논술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다. 권장도서를 발표해서 읽으라고 강요한다고 독서교육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수학 부분의 권장도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필독서로 충분하다. 학생들에게 책과 현실, 책과 교과서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면 된다. 꼭 신간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매달 추천도서를 선정해서 그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 것도 아니다. 독서교육은 프랑스의 예에서 보았듯이 분위기 조성이다. 정부, 교육계, 문화계 모두가 나서야 한다.(p201) 

 

다니엘 페나크의『소설처럼』에서 제시하고 있는 독서교육에 관한 해법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효과를 발휘한다.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 많았던 책이 아닐 수 없다. ‘분위기 조성’이라는 말을 다니엘 페나크처럼 명확하고 단순하게 제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저 읽어주는 것, 어릴 적 그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선물해준 부모들이, 선생님들이 다시금 다 자란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그 옛날처럼 읽어주는 행위만으로도 분위기 조성은 물론 엄청난 자발적인 독서효과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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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책-해일에 휩쓸려 저 멀리 둥둥 떠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이와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획력이란 꼼꼼하고 치밀하며 계획성과 실천성이 아주 높은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독자들의 마음을 읽는 것, 독자들의 욕구와 욕망을 캐치하는 것, 독자들이 그리워하는 시간이나 그런 향수에 마음껏 젖어들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소소하면서도 선명하게 책을, 이야기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을 디자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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