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ox 포토박스 2009.10
이미지파인더 엮음 / 이미지파인더(월간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덤’이라는 개념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개념인 듯하다. 덤이란 ‘물건을 사고팔 때, 제 값어치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단순히 조금 더 주거나 받아온다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잠시나마 맑게 웃을 수 있게 하는, 그런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온정과도 같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이를 조금 악용(?)한 적도 있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기도 하다. 덤으로 주기도 전에 먼저 덤으로 받고 싶은 걸 낙점하고서 시건방지도록 당당하게 요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PHOTO BOX』는 그렇게 시건방지게 요구해서 덤으로 갈취한(?) 책이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그 꼬장꼬장한 주인 할배의 헌책방에서 김중만의『동물왕국』과 태평양전쟁 당시 상황을 사진자료로 담아 정리해놓은 오래된 판본(70년대)인太平洋戰爭을 똥값으로 얻은 것도 모자라서 저, 저기 쪼매한 책 끼워주시면 안됩니까(들릴 듯 말 듯 잔뜩 주눅이든 목소리로), 하고 간도 크게 스스로 덤을 요구하다니! 사실 그날 주인 할배가 기분이 좀 좋으신 것 같아서(햇수로 6년 만에 처음으로 커피 한 잔 얻어 마신 날이었으니!) 아예 작정을 했었던 것 같다. 


집에 와서 찬찬히 살펴보면서 아차! 싶었던 건, 난 그저 어느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끼워주는 그런 비매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가 5000원에 달하는, 보기에는 작고 볼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사진 잡지더라는. 그때서야 어이쿠! 내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었구나, 싶더라는. 그날 이후로는 절대 헌책방에서 끼워 달라니, 값을 좀 깎아달라니(사실 단골 헌책방 두 곳에서는 절대 주인 할배가 셈한 값을 깎지는 않는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은 당돌하게도(?) 너무 쌉니다, 다시 셈해주세요, 하는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래봐야 늘 내 손에 쥐어지는 책들은 너무 싸다!  


*

내가 겁도 없이 덤으로 갈취해온『PHOTO BOX』는 아마 2월호(‘+02’라고 새겨져 있다)인 것 같다. 크기는 작지만 꽤나 내용이 옹골찬 잡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좋아해서 동호회활동을 하거나 아마추어, 프로 사진가들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또 사진은 물론 미술관련 전시일정도 정리되어 있으며, 후반부에는 메모를 할 수 있는 공간(엽서로 사용해도 괜찮을 법한 메모지?)도 근사하게 꾸며져 있다. 이밖에도 사진을 주제로 한 카페나 스튜디오정보, 포토샵 강의, 카메라에 대한 궁금증, 새로 출시된 카메라를 비교·분석하고 있으며, 카메라 부수기기에 대한 꼼꼼한 리뷰는 물론 사진에 도움이 될 만한 서적들 소개까지, 실질적으로 사진을 찍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로 그득하다.

 

비. 내 리 는 풍 경 이 좋 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마치 그걸 예고하듯이 비가 올 듯한 구름이 만들어진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 설레임처럼 나는 비를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비가 내리면, 빠르게 흐르던 도시의 모습들이 비로 인하여 잠시 더디어진다. 달리던 버스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참을 바라본다. 회색빛 도시 위 젖은 티셔츠, 젖은 신발들. 소리를 잃은 듯 그렇게 세상이 고요해지면, 점점 커져 오는 빗소리가 묘한 감성을 이끌어 낸다.

∥『PHOTO BOX』_ 김대현「Rainy Day」中..∥

이 작지만 그득한 녀석과의 첫 만남이 더없이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있다. 거의 첫 코너에 소개된 김대현 작가(아마 취미로 사진을 찍는 대학생인 듯하다)의「Rainy Day」라는 작품들 때문이다. 그가 느끼는 비오는 날의 감성은 작품 속으로 나를 빨아들이기 충분했으며, 작품을 떠나 그와 아주 긴밀하게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 설레임처럼 나는 비를 기다리고 있다’는 작가의 말은 곧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아주 보기 좋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대변해주는 듯했다. 묘한 감성을 자극하는 그 빗소리의 매력을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은 참으로 기분 좋으며 오묘한 일이다. 더군다나 사진이라는 표현 도구를 통해서라 그런지 더더욱...

평범한 일상이지만 빗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바라보기

 

나의 이런 묘한 심리상태가 내 손끝으로 이어져 빗속에서 빗소리와 함께 셔터를 누른다.
‘찰칵’
실내로 들어간다. 경쾌했던 빗소리가 사뭇 다르게 들린다. 다음 빗소리 트랙으로 넘어간 것이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창문을 두드리며 흐르는 비가 나의 가슴을 울린다. 그것은 어쩌면 창밖의 세상들로 하여금 내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을 하게 만들지도 모를 풍경. 

 

잊 고 지 냈 던 추 억 들 이 비. 와 함 께 뿌 려 진 다

∥『PHOTO BOX』_ 김대현「Rainy Day」中..∥

잊고 지냈던 추억과 만나는 시간. 그 추억들이 비와 함께 뿌려지는 시간. 그래서 더더욱 숨을 죽이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지도 모를 그런 시간. 어느새 내가 흐느끼게 될지도 모를 그 막연하면서도 야릇한 시간이 비가 내리면서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피어난 시간들은 비가 그치기까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빗소리에 담긴 많은 감정과 추억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올라 물이 내어주는 여행길을 따라 세상 곳곳으로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지 비가 오는 날이면 무작정 비를 맞으며 곳곳을 누비고 싶은 충동이 이는지도.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들은 우산으로 반을 가리고 세상을 본다.
나는 가려진 그 반을 나만의 시선으로 사진에 담아 보았다.
우산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 비 오는 날의 모습들이다.  


∥『PHOTO BOX』_ 김대현「Rainy Day」中..∥  


그러고 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비오는 날을 사진으로 담아본 경험이 없다. 그렇게 마음먹은 기억조차 없는 것 같다. 그저 음악을 듣는 기분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추억에 젖고 잦아들고 노닐었을 뿐이다. 내 눈으로 기억했던 그 많은 비 오는 날의 풍경들은 어느새 흐릿하기만 하다. 오직 몸으로 기억하는 풍경들만이 표현할 길을 몰라 뒤섞여 피고 질뿐이다. 언젠가는 빗소리가 담긴 그런 풍경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그와 작품을 만나서 더없이 반갑고 기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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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11-15 0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헌책방에서 책을 산 적은 없고 제 것을 가져다가 바꿔온 적은 있어요. 근데 그게 문제집이었다는..^^; 독해집이 필요해서 바꿔왔었죠. 그래서 전 헌책방의 계산법을 잘 몰라요.^^;;다음번에도 책을 몇 권 들고가서 바꿔와야지 했다는...^^ㅋ

이 책이 그 덤^^? 비가 싫을 수도 있고 눈이 싫을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눈,비오면 불편하니깐...그런데 그 걸 그냥 자연의 감정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또 괜찮더라고요.^^ 천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음 마음이 편안해 져요.

ragpickEr 2009-11-18 13:47   좋아요 0 | URL
와~^^* 맞교환이군요..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멋진데요?
계산법은 저도 몰라요..^^* 주인할배의 계산법이 있겠지요? 저는 이제 순응하려구요~좋은 책에는 제각각 제 값이 있겠지요~으흐흐~

네..제가 달라고 해서 빼앗은(?) 덤이 이 책이야요..^^*;; 부끄럽네요..;덤을 달라고 떼를 썼으니..;; ㅋㅋ

비나 눈..더운 날이나 추운 날 모두 불편한 점이 있기 마련이겠지요..그걸 되도록이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창조적인 행위 이상의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것 때문에 비를 좋아하고 그런건 아니지만요..후훗.. '천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음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나곰양의 말씀이 참 좋으네요~^^* 으흐흐~

오늘도 멋진날 보내셔요~!! ^^* 이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