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상을 훔치다 - 우리시대 프로메테우스 18인의 행복한 책 이야기
반칠환 지음, 홍승진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몇 번의 북로그 모임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 그 중 가장 값진 것, ‘확실하게’ 느낀 것을 꼽자면, ‘누군가’와 책에 대해서,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종일토록 책에 대한 이야기며 그에 얽힌 각자의 경험담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지루하지도, 그럴 틈조차 없다. 많은 독서관련 책에서 책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벗’을 두라고 하지 않았던가. 왜 이 점을 강조하는지 직접 경험해보니 입이 닳도록 침이 마르도록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온라인상의 교류 역시 아주 값진 경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애석하게도 북로그를 하기 전까지, 물론 지금도 내 친구들 중에는 북로그 이웃님들이나 직접 모임을 통해 만나는 분들처럼 ‘확실한 독서 벗’이 없다. 아니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듯.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책도 선물해보고 꼬드겨보기도 했다. 아예 ‘수다’를 시작하면서부터 책이야기만 주구장창해보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웬만해선 내게 대거리를 하거나 반항(?)하지 않는 녀석들이지만, 책이야기 앞에서만큼은 마치 철옹성의 커다랗고 탄탄한 성벽처럼 완벽한 방어태세를 유지한다. 녀석들이 참으로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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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훔치다』『책, 세상을 탐하다』와 유사한 구성과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열여덟 명의 ‘프로메테우스’들이 책에 대한 감상과 자신들의 최근 생활, 독서를 시작하게끔 해준 책 혹은 최근에 기억에 남는 책,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 등등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덧붙여, 여기 실린 글들은『사람과 책』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연재한「나의 서가 이야기」를 엮은 책이기도 하다. 책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교보문고에서『사람과 책』과월호를 열람하는 방식으로도 책 내용을 접하실 수 있으니 참조하시길.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나온다. 가장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故 장영희 교수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 한 켠이 많이 아리고 아팠다. 이 인터뷰 당시『문학의 숲을 거닐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많이 유명해졌다고, 앞으로는 좀 안 유명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장영희 교수를 만나니 더더욱 그리움이 짙게 깔렸다.

다음으로는 요즘 들어 많이 좋아하게 된 사진작가 김홍희이다. 그 특유의 입담과 세상에 관한 철학이 어디에 기인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가장 인상 깊게 본 책들은 죄다 여행기나 표류기였다. 그의 방랑벽의 기원을 알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밖에도 아침편지를 배달하는 고도원, 가수 김창완, 화가 김점선, 시인 장석주, 바람의 딸 한비야, 번역가 김난주, 프리랜서 백지연, 작가 유용주 등등 내 관심 안의 분들이 참 많아서 읽어나가는데 더없이 신나고 의미 있는 독서였다.

덧붙여 인터뷰 연재를 담당했던 시인 반칠환의 글은 아주 감칠맛난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고 문장마다의 표현력은 물론 자연을 벗 삼아 놀아본(?) 적 없는 사람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하고 푸근한 맛이 인상 깊다. 아직 그의 작품을 접해보진 못했지만 좋은 느낌과 인상으로 깊이 각인된 것이 부수입으로는 꽤나 짭짤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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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세상을 탐한다는 것, 세상을 훔친다는 것은 사람의 손과 입, 그런 행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책은 스스로 힘을 갖지 못하며 절대 빛을 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읽어내는 즐거움 혹은 수고로움이 없이는 그저 그 옛날 뒷간에서 볼 일을 보고 마구 비벼서 용무를 마무리(?)하던 신문‘지’만도 못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결국 사람의 손을 타야만 책은 비로소 ‘책’으로 명을 이어갈 수 있으며, 유용한 쓰임으로 존재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독서라는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 삼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면, 나는 이 삼박자가 ‘책’과 ‘사람’ 그리고 ‘벗’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세상을 훔치려면 적어도 마음이 맞는 공범(?)이 좀 있으면 수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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