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박영희 지음, 강제욱 외 사진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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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책을 사들일 때 다소나마 신중(?)을 요하는 편이다. 도서관이나 서점을 통해 미리 ‘간보기’를 하거나, 여의치 않을 땐 이웃님들의 ‘손맛’이라도 몰래 탐한 후 결정(?)한다. 하지만 역시나 내 지랄 같기도 한 버릇 하나(?)는 불쑥불쑥 튀어 올라 내 신중함을 조롱하듯 무너뜨리기 일쑤이다. 뭔가 느낌이 닥쳐오는 책 앞에서는 그 결과가 어찌될지는 전혀 상관할 바도 문제될 바도 아니다. 오랜만에 제목과 표지, 그리고 기획의도에 반해 홀린 듯 지름신이 내린 책이 바로『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이다.

EBS에서 예전에 방영한《사진 잘 찍는 법》이라는 영상을 찾아서 보던 중에 이 책에 얽힌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순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 다분히 동정이나 연민의 그것과는 다른 감정샘의 폭발이었다. 한 젊은 카메라 수리공의 안타까운 죽음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이 시대에 분명 존재하면서도 우리네 관심 밖으로 밀려나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일명 ‘수공업자’에 삶의 흔적을 담아냈다는 기획의도가 참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지름신 강림(?)을 허용하게 된 것이다.

35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 행복한 카메라 수리공과 이 책에 실린 여섯 명의 ‘장인’들은 대구, 포항, 경산이라는 지역성에 국한된 채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모든 장인들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금)세공사 김광주 씨, 제과제빵사 이학철 씨, 선박 수리공 황일천 씨, 이발사 문동식 씨, 철구조물 제작사 김기용 씨, 자전거 수리공 임병원 씨. 이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쉽게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아이러니에 대해 우리는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하루 꼬박 힘들게 손을 놀리고 발품을 팔아도 얼마 안 되는 푼돈이 전부이지만, 하나같이 그 웃음만큼은 만족을 말하고 있다. 왜 씁쓸하고 고달프지 않겠냐마는 이들의 낯빛은 자애롭기 그지없다. 한때는 ‘기술자’라는 직함으로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살았던 사람들. 그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고 인정받으며 그만큼의 행복에 감사하며 살은 사람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장인’이니 ‘수공업자’니 하는, 인정할 수도 그렇다고 부인할 수도 없는 바스러질 것만 같이 남루한 딱지뿐이다.

그들의 꿈은 소박했고 순진무구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지난 시절 품었던 꿈이란 빛바랜 액자 속에도 담기지 못할 만큼 조각조각 나 일찍이 흩어져 버린 먼지와 같이 느껴진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꾸역꾸역 눈칫밥 먹어가며 미술대학에 들어가 화가를 꿈꾸었던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마르크스를 읽고 운동권에 뛰어들었던 그때는 또 얼마나 의욕이 넘치고 당찼던가. 그 힘든 도제식 선박제조기술을 배우고 드디어 배목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때는 또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던가.

꿈에라도 생각이나 했을까. 붓을 놀리는 손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해나갈 줄로만 알았지 그 손에 함석가위가 들리고 철판을 자르고 마름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읽고 또 읽어대던 책을 손에서 놓아버릴 줄을 누가 알았을까. 목선 만들어 이제 자식새끼들이랑 마누라 호강시킬 일만 남았다고만 생각했었지 선박 수리공이 되어 하루 만 오천 원 일당으로 혼자 남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들은 그렇게 옅어지고 사위어 갔다. 이젠 누구도 그들을 선명히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

제목과 표지, 그리고 기획의도에서 받은 그 표현할 수 없었던 감동에 비해 다소 깊이는 떨어지는 듯 한 게 사실이다. 사실 제목에 환상을 심어 풀이해버린 내 부족함과 어리석음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글 역시 소박하고 담담하며 다소 싱거운 편이다. 이 사람들이 무슨 ‘우리 시대의 장인들’이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면, 누가 이들의 존재를 옅어지게 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이 책을 계기로 주변에 하도 닳고 닳아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느 소박하고 무심한 ‘기술자’를 한 번이라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다.

끝으로, 많은 사진가들이 참여했다. 모두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젊은 수리공에게 빚을 진 사람들이다. 그에게 치료받은 카메라들이 사위어 가는 수공업자들을 담아냈다. 사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지만, 하나같이 소박하고 소탈한 느낌이다. 무엇하나 꾸밈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이 사진에 담긴 ‘장인’들은 본래 그런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돋보이기 위해 요즘 사람들처럼 치장하지도 자신의 기술을 뽐내지도 않는 사람, 그저 묵묵히 아는 만큼 세상을 보고 보이는 대로 만족하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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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7-0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중간에 얼굴 참...친근한 느낌인데요.^^

ragpickEr 2009-07-13 06:46   좋아요 0 | URL
인상이 참 좋지요? ^^* 아저씨도 그렇고 특히나 젊은 분은.. 물론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조촐하지만 담백한 맛이 배어 있는 책이었어요. 초라하지 않은 시선으로 그네들을 그려낸 터라 더욱 좋았던..^^*

에샬롯 2009-07-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닮았어요.^^ 저분..그래서 친근한지도 모르겠어요. 저분 선한 표정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