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인 夢中人 - 사진, 내가 버릴 수 없는 이야기
이홍석 지음 / 바우하우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내가 생각해도 사진집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보통 도서관에 가면 세 권의 책을 빌려오는데 그 중 많게는 두 권 정도가 사진집이니 말이다. 예전에는 죽어라(?) 안 보던 사진집을 요즘은 아예 코를 박고 사는 것 같다. 우리 집과 가까운 성서캠퍼스에는 사진집이 적어서 대명동캠퍼스(예술대학이 있는)까지 발품을 팔아야 할 때도 있지만, 그 귀찮은 것까지 감수하면서 사진집을 탐하는 요즘, 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완전 ‘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夢中人』은 제목에서 먼저 끌렸고,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가 이홍석의 포스(?)에 매료되어 접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란 점이 있다. 먼저 사진가 이홍석의 나이에 놀랐다. 불혹을 넘긴 나이라니! 분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 멋진 포스를 봐서는 전혀 마흔을 넘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책을 반 가까이 읽고 나서 알게 된 이 충격적인(?) 사실이 이 책에 더욱더 빠져들도록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다음으로는 그의 사진과 글에서 풍기는 ‘데자부(?)’ 현상이랄까. 처음부터 나열된 사진들은 참으로 낯이 익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에 읽었던 조병준 시인의『따뜻한 슬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피사체가 동일한 것도 있고 그 구도까지도 흡사해서 ‘이거 내가 이미 본 책이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사진이 한둘이 아니었다.  


글에서 역시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사진가 김홍희의『방랑』,『나는 사진이다』에 녹아 있는 삶과 사진, 여행에 대한 철학과 잇닿은 느낌이랄까. 특히나 여행을 ‘자아를 방랑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홍석의 여행철학과 ‘어쩌면 나는 사진과 방랑을 통하여 나의 절대적인 善을 이루려 하는 구도자인지도 모른다.’는 삶에 관한 성찰적인 모습에서 소름이 돋아날 정도였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 불리는 각자의 길,
그 끝없이 이어진 여정 위에 서있는 외로운 여행자들이다.
너 나 없이 우리는 그렇게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안식처를 찾고,
또 아침이면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외로운 여행자들인 것이다.(p16)  


그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그는 이렇게 단정해버린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여행자’라고 단정함으로써 빼도 박도 못하고 고스란히 그와 함께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는 이처럼 영특한 듯, 조금은 간사하게 자신의 발걸음에 ‘우리’를 꼬리처럼 달고 여행을 시작한다. 이렇게 그와의 방랑은 하릴없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머리가 더 텅텅 비어가는 그런 날이었기에 나는 내게 작은 휴식을 선물로 주기로 했다.
오늘은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무위도식을 즐기자!(p97)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책임한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그 힘과 용기는 대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무위도식을 즐’기자니! 그렇다. 어쩌면 나는 여태껏 여행과 방랑이라는 이 두 단어를 같은 뜻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대책 없음’까지도 삶의 여유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화끈함! 오직 방랑의 길을 택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무모함이 아닐까. 온갖 것으로부터 사랑의 빛을 받아본 자만이, 그 의미를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스치는 모든 것들에게 우연이란 없는 것이다.
길 위에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 그리고 흔들리는 잎사귀 밑에서 우는 풀벌레 한 마리까지도
결코 우연한 스침은 없는 것이다!(p196)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사건(?)을 차근차근 줄여나간다면, 우연이 아닌 작디작은 모든 것들의 바람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값진 ‘필연’임을 깨달아간다면,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삶 속에 위치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우연이 줄고 필연을 늘여가는 것, 그것을 깨달아가는 것이 삶에 있어서 나 스스로가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게 아닐까. 내 삶에서 진정한 구도자가 되어가는 그 과정 속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우연의 참모습을 벗겨내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아닐까 싶다.  


시인 조병준이 말한 사랑에 대한 메시지들과 그와 유사한 사진들, 그리고 사진가 김홍희와 닮은 방랑에 대한 철학과 확고한 생에 대한 신념. 이 모두를 합쳐 놓은 것만 같은 책이 바로『夢中人』이 아닌가 싶다. 이홍석은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그치지 않고 역시나 그만의 사랑과 외로움과 방랑의 흔적을 새겨놓았다. 흥미로움으로 시작해 놀라움 속으로 나를 매료시킨 책, 특유의 긍정하는 삶의 원칙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불혹의 나이. 그 흔들림 없는 나이에 단언컨대 그는 불륜을 저질렀다. 아직도 끊임없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리라. 세상과의 간통을 당당하게 낱낱이 적어 내려갔으며, 사진으로 증거까지 남기는 그의 대담함(?). 여전히 그는 세상이라는 ‘만인의 여인’을 탐하고 범하기에 여념이 없음을 안다. 여행자, 그것도 불혹을 넘긴 이 여행자의 방랑은 온통 찬란한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다채로우며 눈물겹기까지 한 몸부림을 닮은 듯하다. 그렇게 아름답고 때때로 쓸쓸하기까지 한 세상과의 떳떳하고 대담한 불륜행각에 과연 어느 누가 그에게 간통죄를 씌울 수 있을는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는 언제나 세상과의 불륜을 즐기며 방랑하는 한줄기 뜨거운 바람일 테니.  


‡‡‡‡‡‡‡‡‡‡‡‡‡‡‡‡‡‡‡‡‡‡‡‡‡‡‡‡‡‡¨¨주워 담기¨¨‡‡‡‡‡‡‡‡‡‡‡‡‡‡‡‡‡‡‡‡‡‡‡‡‡‡‡‡‡‡

 

누가 먼저 사랑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많이 가슴에 품을 수 있고, 더 오래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래야만 비로소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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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들어도 열대의 바다가 빙하로 뒤덮이지 않는 한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은 반짝이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의기소침한 예언 따위와 검은 월요일이 우리의 침대를 눈물로 적시지는 못할 거야!(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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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톡스는
세월의 주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가득한
미소일 것이다!(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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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中에 가진 것 없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꽃처럼 살고 싶다.
속내 붉은 꽃잎은 붉은 물로 흐르고,
속내 푸른 꽃잎은 푸른 물로 흐르는 솔직함.
가끔은 그런 꽃처럼 살고 싶다!

누군가 어여쁜 이의 손에 '툭' 꺾여서 낡은 화병에 담겨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도 좋을
그런 꽃으로 살고 싶다.(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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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삶도, 허망한 죽음도, 나와 당신의 병약한 가슴속에도 우린 모두 무언가를 묻어두고 산다.
그것이 한때는 찬란했지만 패배해버린 꿈의 잔해든, 사랑의 기억이든······.
미련해 보여도 조금만 더 오래도록 기억해주고 쓰다듬어줄 수 있다면
가슴 헛헛한 날에도 미칠 듯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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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게 떠나지 않는 자에겐 가슴 시린 만남도 없다!
그리고 망설이는 삶은 언제나 그 자리일 뿐이다.(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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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따라 유연하게 흔들리되
결코 그 뿌리가 뽑히지 않는 지혜로운 파스칼의 갈대처럼
불혹이란 때로 그러해야 한다.(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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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것들은 외로운 것들끼리 서로 기대어 있을 때
세상은 비로소 세상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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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사진과 방랑을 통하여 나의 절대적인 善을 이루려 하는 구도자인지도 모른다.
그래, 그런 구도자라면 외로움쯤은 괜찮다!
세상과 조금 떨어져 고독하여도 괜찮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긍정이어야 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은 늘 뜨거워야 한다!(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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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한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비로소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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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잊혀지고 싶겠는가!
누군들 마지막을 생각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 봄, 나는 보았다.
너무 조촐하여 초라하기까지 한 꽃잎의 마지막 비행을 바라보며 나의 마지막도 그러하기를 소망한다.(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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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목적지는 단지 형식일 뿐,
진정한 여행이란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방랑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떠나 왔다고 기뻐할 일도, 돌아갈 곳이 없다 하여 슬퍼할 일도 아닌
여행은 그저 느리게 걸으며 온전히 나를 사색하는 일이다.(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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