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
열린책들 편집부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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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

열린책들 편집부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책의 제목, 구성, 디자인, 재질 어느 것 하나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이다.

최근 출간된 <오이디푸스왕 외>로 총 286권이 된 열린책들 세계문학 중 고르고 골랐을 총 111권의 첫문장이 담겼다. '111개의 첫문장 중 그 첫 페이지를 차지할 도서는 무엇일까?' 호기심과 기대 속에 조심스레 벗긴 비닐 안에서 가장 먼저 만난 첫문장은 "1990년 10월 3일, 수요일 아침 10시 30분." 제임스 A. 미치너의 <소설>이다. 많은 사람이 인생책으로 꼽기도 하고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의 1권인 <죄와 벌>이지 않을까 짐작했었으나 모든 일이 예상대로만 된다면 재미없지 ㅎㅎㅎ 반전의 재미가 어찌 소설에만 있을쏘냐!

개인적으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권읽기를 하고있는터라 이번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이 유난히 반갑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음미하는 문학의 첫문장이 새롭게 다가선다. 소설의 시작인 그 첫문장으로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하며 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호평받는 문장들이 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카뮈의 이방인처럼 말이다. 이방인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라도 이 첫문장을 한번이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시작만큼은 거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명문장이다.

 

한장씩 넘기며 음미하다보면 이미 읽은 책들은 반갑고 읽지 않은 책들은 느슨해졌던 독서의 속도에 의욕을 불지핀다. "기다려~ 내 곧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권읽기"에 반드시 성공하고 말테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의 표지를 엽서로 디자인해서 뒷면에 첫문장을 넣은 책이라니 사랑받아 마땅한 이 아이디어에 박수를!! 이걸 누가 기획한 겁니까아~~

이번에는 선택받지 못했지만 주옥같은 첫문장의 나머지 도서들을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으로 또 기다려봐도 되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시리즈로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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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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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

유명인들이 얽힌 마약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잊을만하면 불거지던 마약 스캔들의 횟수도 더이상은 잊을만한 횟수가 아니고 상습적으로 거론되던 일부 유명인에서 우리에게 친근하고 바른 이미지였던 유명인과 일반인들에게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 중독의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일까? 의지를 가지고 했던 선택과 행동들이 결국 의지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무엇이 그런 선택의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일까?

그런데......나는 진정 무엇 때문에 이 모든 일을 기도(企圖)하고 행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 뇌 2 본문중에서

사뮈엘 핀처의 죽음을 조사하던 뤼크레스는 그 배후에 인공 지능 컴퓨터가 존재할거라는 추리를 하며 핀처가 근무했던 성 마르그리트 병원과의 연관성을 파고 든다.

인간과 인공 지능의 차이인 동기의 유무를 두고 동기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맞닥뜨리게 된 진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의 성공이었다.

성 마르그리트 병원의 환자들을 한 뜻으로 단체 행동에 이르게 한 동기, 전직 의사이자 성 마르그리트 병원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 수단인 배의 사공인 움베르토 마저도 갈망했던 동기 '최후 비밀'. 그 최후 비밀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불러온 광기는 인간성의 상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최후 비밀이라 명명된 비밀에 다가갈수록 파편처럼 흩어졌던 일련의 사건과 사고들이 모두 한 곳에서 시작되었음이 드러난다.

너무 많은 빛은 우리를 눈멀게 해요. 그와 마찬가치로 너무 많은 쾌감은 고통이 되고, 나아가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요.

- 뇌 2 본문중에서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좀 더 오래, 좀 더 많이, 좀 더 큰 쾌감을 느끼기 위해 최후 비밀에 이르려는 자들이 벌이는 무모함.

위대한 발견을 해놓고도 그 결과의 위험성에 위대한 발견을 비밀로 묻어버린 제임스 올즈, 그 비밀을 사사로이 이용한 체르니엔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아테나. 이들을 보며 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유혹도, 쾌감도, 자극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또다른 사뮈엘 핀처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 모든 유혹의 시작에는 호기심과 오만이 함께다. 그러나 그 끝엔 몰락이 있을 뿐.

뤼크레스가 다가가는 배후의 끝에는 아무가 있다.

이 모든 일을 전체적으로 지휘하듯 계획하고 실행해온 아무의 존재는 과학의 발전을 자만하는 인간들에게 경고가 된다. 아무라 불리우는 존재는 아무도 아닐 수 있고, 반대로 아무나 될 수도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명 센스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팍'치게 기발함이 있다) 아마도 핀처가 관심가져 주지 않았다면 아무 존재도 아니었을 아무(존재가 가능하지도 않았을)가 아무도 넘볼 수 존재가 되기까지 가졌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기? 의지? 의식?

컴퓨터가 인공 지능을 뛰어넘어 인공 의식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될까, 재앙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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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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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은 우리 안에 있지 않다. 그 감각은 밖에서부터, 자라나는 아이들, 떠나가는 이웃들, 늙어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 『밖의 삶』 본문 18페이지

첫눈에 반하는 기적같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찰이 선행된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관찰이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아니 에르노가 『밖의 삶』에서 보여주는 많은 대상들에 대한 관찰은 그 대상을 넘어 보다 넓은 세상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싶은 바램이 느껴졌다.

RER을지나치며 마주치는 노숙인들과 온정을 베풀기를 호소하는 극빈자들 에게 사람들과 아니 에르노가 보이는 행동들은 값싼 동정심보다 피하고 싶은 거리감이 보이지만 그런 무심함을 탓하고 싶진 않다.

지하철에서 구걸 대신 껌을 파는 선량해 보이는 노인이 사실은 억대 건물의 소유주였다더라는 경악할 만한 사실과 힘든 육체적 노동보다 구걸과 범죄의 길을 택한 이들에 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아온터다. 가까이 있는 타인의 불행보다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고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더 안타까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릎 아래 다리가 절단되었다며 구걸을 하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엉덩이에 깔고 앉은 정강이를 본 듯하다는 아니 에르노도 그러했을까? 『밖의 삶』에서는 보스니아 전쟁에 대한 언급이 잦다.

가난한 사람들의 조롱은 별거 아니라서, 그것은 흉기가 아니라 그저 성가신 정도.(『밖의 삶』본문 29페이지) 동정을 강요하는 이들에게는 무심함을 보이면서도 보스니아에서 자행된 가혹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의 기록을 증거로 남기려 한다. 하지만 먼 곳의 그들의 비극이 우리들에겐 얼만큼의 아픔으로 전해질 수 있을까.

 

RER 생미셸역에서 터진 폭탄처럼, 대구 지하철에서 일어난 방화처럼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특정인에 대한 관찰을 하게 만든다. 관심이 아닌 경계와 적대의 눈빛으로.

하지만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려고 타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랑받으려고 준다.(『밖의 삶』본문 68페이지)이토록 아플 수가! 아니 에르노의 의 펜이 어떤 비수보다 날카롭다.

자신의 출신이 서민임을 들먹이는 이른바 성공한 자들의 발언에 동조 대신 비난을 하면서도 대놓고 따져 묻지 못하는 비겁함, 대주주들의 부유를 위해 가족이라 불리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는 현실, 다이애나의 죽음에는 뒤따르던 거대한 애도가 전쟁에서 참수된 사람들에게는 무관심으로 대조되는 현실에 대해 아니 에르노는 기록의 행위로 아파한다.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그들의 삶이 과연 나와는 무관할까?

밖의 삶이 결코 밖의 삶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타인에 대한 관찰로만 기록했음에도 바깥의 삶에 눈감고 귀막는 결과는 누군가의 바깥인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공포로 다가온다. 책은 가볍지만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밖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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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6
소포클레스 지음,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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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 외』

소포클레스 (지음) | 장시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필멸의 인간은 저 최후의 날을 기다려 보면서,

누구도 행복하다 말해서는 안 되리라.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 『오이디푸스왕 외』중 오이디푸스왕 120페이지

"테바이 3부작"으로 불리는 <오이디푸스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이해가 쉽도록 저작 연도가 아닌 진행 순서로 배치한 열린책들의 버전으로 읽어보았다.

'우와~ 오이디푸스가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이었어?' 희곡이라고 지레 겁먹었던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 중에서도 <오이디푸스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찬을 받았다고 하는데 반전과 대립이 주는 긴장감이 그 재미를 더한다.

『오이디푸스왕 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립에서는 선과 악의 절대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정당하다고 여기는 사유가 있고, 이를 비튼 것은 예언을 통한 신의 장난, 당하는 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의 운명인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테베이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로부터 해방시켜준 영웅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패륜아로 곤두박질시킨다.

주어진 상황을 어떤이는 오만하게, 어떤이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어떤이는 상황자체나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며 받아들인다. 오이디푸스의 패륜을 오염이라 칭하며 추방한 크레온의 행동을 마냥 비판하기만 해야할까? 그렇다면 친족의 허물을 정으로 감싸고 고의가 아니었다며 눈감아줘야 했을까? 크레온의 위치가 한 나라인 테베이를 다스리는 왕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쉬운 답은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오빠의 장례를 치룬 안티고네를 비난할 수도 없다.

크레온은 기성세대의 기준과 통치자로서 엄수해야하는 법, 외국 군대를 끌고와 신전마저 파괴하려 들었던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에게 다른 반역자들과 공평하게 벌을 내렸다. 반면 안티고네는 여성임에도 당대의 남자들이 하는 자기소신의 발언과 행동으로 변화하는 청년 정신을 보여주었으며 법보다는 관습, 행위의 원칙보다는 존재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었다.


 

크레온과 안티고네는 대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오이디푸스과 크레온은 공통적인 모습과 운명을 지녔다. 권력자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피해망상과 권력에 대한 집착, 가족들의 죽음이 그것이다. 진실에 눈 감고 입바른 충언에 귀를 닫는 아집. 진실을 마주했을때 크레온과 테이레시아스를 한통속이라 몰아붙이며 의심했던 오이디푸스왕, 민심을 전하는 아들 하이몬과 충언을 하는 테이레시아스를 협박하는 크레온을 보며 과연 이것이 2500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가 맞는가하는 감탄이 절로 인다.

아무리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예언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자라왔던 코린토스를 떠나왔던 오이디푸스가 끝내는 테바이에서 그 운명을 마주하고 만 것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과 존재를 소포클레스는 이 비극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이었던지 모른다. 영원한 행복은 없으니 오만 대신 현명함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도.

단연코 현명함이 행복의 으뜸이라네.

신들에 대해서는 불경한 어떤 행동도 하지 말지어다.

오만한 자들의 큰 소리들은 큰 타격을 갚고서야 노년에 현명함을 가르쳐 준다네.

- 『오이디푸스왕 외』 중 안티고네 33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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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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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펴냄)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이나 개인적인 반성, 각오, 바램들로 채워지는 비밀스러운 지면의 공간이다. 그런데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는 일기라는 단어가 풍기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있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타인들에게 머물러 있고, 날짜를 기록하는 일기의 기본 형식에서도 거리를 두어 연도만을 적어 기록했다.

아니 에르노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그 문체 또한 여타의 작가들에게선 자주 볼 수 없는 어투다. 문장의 마침이 명사나 명사형으로 끝나는 곳이 많았다. 작가를 알지 못한채 읽어도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눈에 띈다는 말은 아마도 이러한 그녀만의 문체 때문일 것이다.

『밖의 삶』과 『바깥 일기』 두 권 중에 『바깥 일기』를 먼저 펼친 이유는 단순하다. 작가의 집필 순서대로다. 『바깥 일기』에서 자주 거론되는 장소는 RER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하철 쯤 되려나. 이제는 손바닥만한 휴대폰을 들여다 보느라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 작은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목적지를 일부 공유하며 가는 동안 누군가를 관찰하거나 말을 건네며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드물지 않았다. 『바깥 일기』에서 아니 에르노가 얘기하고 있는 것 또한 그렇게 바라보고 관찰하고 관찰한 행동들의 이면을 생각해보는 것들이다.

그녀가 관찰한 이야기들은 바다 건너 문학인의 눈에만 띄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열차 안에서 글을 모르는 아이가 외워서 읽는 그림책 이야기, 역 앞에서 구걸하는 노숙인, 부패한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평범한 국민들의 증오와 선망의 이중적인 시선, 일명 바바리맨으로 불리우는 노출증 환자, 슈퍼마켓과 미용실에서 노출되는 제 3자들의 뒷담화, 말로는 평등과 공평을 부르짖으면서 자기 자신은 누구보다도 높게 자리하려는 정치인, 극빈층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안타까움보다는 통상적이라고 여기는 생각들, 같은 행위를 두고도 누리는 경제적 지표를 기준으로 달라지는 평가 등 1980년 대에 씌여진 『바깥 일기』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여전히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과연 그것이 타인의 이야기이기만 할까?'라는 생각이다. 불합리한 일들에 "나는 너와 다르다"고들 말하지만 결국 수많은 나와 수많은 너가 만든 우리, 사회가 아니던가. 나에게 너가 너 이듯이, 너에게 나도 너일 수 밖에 없는, 모두가 타인이지만 모두가 하나일 수 밖에 없는 모순. 이제야말로 모두가 달라져야 할 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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